# 50
50화 신의 눈동자
날이 유난히 추운 2월의 어느 날, SCCIT 본부. 재훈이 출근하자 복도에서 기다리던 태현이 재훈을 보고 급히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오경수6 성형수술은 어떻게 됐어?”
“잘 돼서 지금 회복실에 있대요. 그런데 그 사람… 주민등록은 원래부터 없었대요.”
“그렇지. 복제인간이 주민등록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그때, 서 순경이 지나가며 말했다.
“부장님이 회의실로 모이래요.”
회의실 안에는 정철민 부장, 최홍규 반장이 이미 와 있었다. 재훈과 태현이 들어오자 정 부장이 입을 열었다.
“어서들 와. 미끄러워서 출근들 힘들었지? 무슨 2월 날씨가 이렇게 추운지 몰라.”
최 반장이 정 부장에게 말했다.
“우리나라 날씨 이상해진 거 꽤 됐잖아요. 그나저나 무슨 일로 모이라고 하신 겁니까?”
정 부장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말을 꺼냈다.
“셀트사에서 이번에 신제품을 출시하는데, 그 제품과 관련된 법안 세미나도 같이 열려. 그래서 자네들이 거길 가줬으면 해.”
태현이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예? 세미나요? 그런 데를 우리가 왜요?”
“뭐, 나도 지시받은 거라 자세한 건 잘 몰라. 그냥 간단히 말하면 셀트사의 신제품이 펩스 통제권 하고 관련이 있다나 봐. 그래서 그날 내가 법률에 관한 발표를 해야 하는데, 그림상 자네들도 그 자리에 참석해야 된다는 거지.”
재훈이 말했다.
“경찰이 발표하는 제품 발표회라니, 좀 이상한데요?”
정 부장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나도 좀 이상해. 그런데 뭐, 우리가 직접적으로 제품을 발표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이번 셀트사의 신제품 말고도 향후 다른 기업의 제품들도 비슷한 일을 겪게 될 거 같아. 그래서 미리 관련 법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가벼운 세미나 정도로만 생각하면 될 거 같아.”
재훈 일행은 회의실을 나왔다. 서 순경이 말했다.
“신제품 발표회에 가라니, 확실히 이상하죠?”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이번 셀트사 제품이 법안에 민감한 제품이란 뜻이겠지.”
재훈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셀트사의 신제품이라면 뭘까요? 왠지 단순히 새로운 밀키웨이는 아닐 거 같은데.”
태현이 답했다.
“일단 시기상으로 밀키웨이 SB-6가 나올 때는 되긴 했는데, 내 생각에도 단순히 그것만 발표하려는 거 같지는 않아.”
재훈은 창밖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지는 몰라도 또 새로운 문젯거리들을 잔뜩 만들어 낼 거예요.”
셀트사의 신제품 발표회 당일, 일산 ‘글로벌 킨텍스.’ 아침부터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들고 있었다. 재훈 일행은 경찰 제복을 입고 당당히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서 순경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말했다.
“와! 말도 안 돼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니.”
태현이 서 순경과 함께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기사를 보니까 오늘 예상 참가 인원이 기자단만 만 명 정도, 일반인 참가자까지 포함하면 10만 명이 훨씬 넘을 거라던데?”
“정말요? 엄청나네요.”
“셀트사의 제품이라면 전 세계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재훈은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태현이 물었다.
“누구 찾아?”
“젤리 씨요.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요. 아, 저기 오네요. 젤리 씨!”
젤리가 마스크를 쓴 채, 원웅과 핑크레드와 성규와 함께 왔다. 젤리는 재훈의 멋들어진 제복을 보며 말했다.
“재훈 씨, 제복 입은 모습 정말 멋있어요.”
재훈은 쑥스러운 듯 코를 매만졌다.
“고마워요.”
태현이 원웅과 핑크레드에게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어쩐 일로 다들 바깥세상을 다 나오셨네요?”
원웅이 답했다.
“딴 건 몰라도 셀트사 신제품 발표회에 형사님들이 나온다고 해서 구경 와 봤습니다.”
재훈이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저희가 연예인도 아니고 구경은… 하하.”
핑크레드가 재훈과 태현에게 다가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 우리 형사님들 멋진데! 역시 남자는 키 크고 잘생기고 봐야 돼.”
핑크레드는 서 순경 쪽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 꼬마 서 순경도 이렇게 제복을 입으니까 멋지네.”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때 행사 관계자가 나타나 재훈에게 말했다.
“세미나 리허설 들어가셔야 됩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재훈이 젤리에게 말했다.
“젤리 씨, 미안해요.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요. 끝나고 연락할게요.”
젤리는 재훈의 넥타이 위치를 바로잡아주며 말했다.
“우린 그냥 구경하고 갈 테니까 잘 하세요. 그리고 끝나면 저녁에 전화해요.”
“알았어요.”
성규가 재훈 일행들에게 외쳤다.
“형사님들 세미나 잘하세요. 파이팅!”
재훈은 성규에게 엄지를 들어주며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메인 발표 시간. 화려한 개막 쇼가 펼쳐지며 홀로그램이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새 한 마리 표현해냈다. 사람들 위로 새가 날아다니다가 몸이 빛으로 분리되며 각각 사람들의 몸 쪽으로 흩어져 들어갔다. 그리고 큰 글씨가 행사장 천장에 크게 ‘밀키웨이 SB-6’ 그다음엔 ‘밀키웨이 골드 아이’라는 두 글자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천장에서 한 남자가 와이어에 매달린 채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그 남자가 손을 흔들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남자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남자가 아래로 보이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무대 중앙에 있는 메인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사진과 영상이 멋지게 편집되어 메인 화면에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공중에 있던 남자는 무대로 내려와 와이어를 풀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한번 둘러본 후 힘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셀트사 대표 이정원입니다!”
사람들이 대답이라도 하듯 환호성을 질렀다.
“와!”
이 대표는 손을 들어 화답을 해주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은 기자단과 고객분들 앞에서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게 돼서 너무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저희 셀트사의 역사적인 날입니다.”
재훈 일행도 멀리서 발표를 보고 있었다. 태현이 말했다.
“역사적인 날이라… 두근거리네.”
이 대표가 무대 위에서 말을 이었다.
“방금 제가 공중에서 바라본 여러분의 모습이 메인 화면에 편집되어 나타나는 걸 보셨을 겁니다. 저희 신제품에 대해 눈치채셨나요?”
사람들이 들뜬 듯 웅성거렸다. 이 대표가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방금 전 영상들은 제 눈에 있는 이 스마트 콘택트렌즈로 찍어서 펩스로 바로 편집을 한 영상들입니다. 우리는 수년 전, 이미 콘택트렌즈형 카메라를 세상에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각종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고, 개인의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가 있을 것으로 우려돼 그동안 판매가 법으로 금지되어 왔었습니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이 편리한 기술이 어쩔 수 없는 문제로 그동안 묻혀 왔었던 거죠.”
이 대표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사람들을 쭈욱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우리는 희소식을 들었습니다. 바로 펩스 통제권의 발표였죠. 펩스 통제권으로 인해 펩스의 시대에 큰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펩스는 위험한 순간에 사람들을 더 빨리 구해주고, 각종 범죄를 예방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시기에 발맞추어 드디어 여러분이 기다리던 이 제품을 출시하게 됐습니다.”
이 대표는 자신의 눈에 있던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꺼내 손가락 위에 올린 후 말을 이었다.
“이 스마트 콘택트렌즈 속에는 5000만 화소 급의 고성능 카메라가 들어 있고, 동영상은 4K를 지원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원하는 영상을 촬영해 펩스로 그 자리에서 바로 편집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제품의 성능을 더욱 막강하게 연동해줄 새로운 밀키웨이도 동시 발매합니다.”
무대가 순간 어두워졌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불빛이 번쩍이며 이 대표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발표합니다! 신형 밀키웨이 SB-6와 밀키웨이 골드 아이입니다!”
어느새, 무대 위에 스마트 콘택트렌즈와 신형 펩스가 올라가 있었고, 뒷 화면과 홀로그램들이 그 기기들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나타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
발표회가 끝나고 행사장 안에는 여기저기 제품들이 전시되어 직원들이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재훈 일행도 제품을 구경했다. 태현이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오, 밀키웨이 골드 아이는 두 가지 버전으로 나왔나 보네.”
재훈이 여직원에게 물었다.
“이 두 가지 버전의 차이는 뭐죠?”
여직원이 웃으며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예, 첫 번째 제품은 일반판인 밀키웨이 골드 아이이고요, 두 번째 제품은 고급 모델인 밀키웨이 블랙 골드 아이입니다. 두 제품은 기본적으로 렌즈 색상을 고르실 수 있는데요, 블랙 골드 아이만 렌즈 테두리 끝 부분에 어두운 금색 띠가 하나 더 둘러 있고 작게 블랙 골드 아이라고 새겨져 있는 게 특징입니다.”
“고급 모델은 기능이 더 있나 보죠?”
“예, 블랙 골드 아이는 고소득층의 프리미엄급 사용자에게 판매가 되는 제품이고요. 일반판과 동일한 기능인 카메라 촬영, 시선을 확대해주는 실시간 돋보기 기능, 어두운 길을 밝게 비춰주는 나이트 비전, 암호화된 코드로 신용카드를 대신해 물건을 보고 바로 결제해주는 아이패스 결제 기능을 제공하고요, 일반판보다 더 추가된 기능으로 쇼핑하실 때 제품을 바라보시면 24시간 전문 상담원이 바로 설명을 해준다거나, 골프를 치실 때 주변을 바라보시면 프로골퍼 출신 상담원이 바로 케어해 드린다던지 하는 개인 비서 기능이 추가가 되어 있습니다.”
서 순경이 놀라며 말했다.
“와~ 역시 부자들을 위한 서비스는 다르구나.”
태현이 말했다.
“그렇지. 저 블랙 골드 아이는 부자들을 위한 제품이니까 말이야. 아, 나도 부자 돼서 블랙 골드 아이나 사고 싶다.”
재훈이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세미나 시간이 다가오는 데요, 가죠.”
재훈 일행은 세미나 실로 이동했다.
세미나실 메인 화면에는 ‘스마트 콘택트렌즈와 관련 법안’이라는 주제가 띄워져 있었다. 수많은 기자단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다. 자신을 김세형 전무라 밝힌 남자가 세미나를 이끌어 가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펩스 통제권이 가동되어 콘택트렌즈형 카메라로 인한 몰카나 각종 범죄가 보안 프로그램과, 관련 법안으로 인해 미리 예방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관련 법안에 관해 정 부장이 발표를 하고 나서, 여러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분명 펩스가 발표될 시기에도 해킹은 절대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해킹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신제품과 관련해 예상되는 새로운 해킹 범죄라던가 이런 것들은 어떻게 막으실 생각이십니까?”
김 전무가 답했다.
“이번 해킹 사건과 관련해 저희도 더 보안 프로그램을 강화했습니다. 펩스 통제권이 가동된 이후로 경찰청과 연계하여 실시간으로 범죄행위를 감시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기 때문에, 해킹 사건이 일어나는 건 극히 드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 신제품과 관련해 국민들의 펩스를 앞으로 더 강력하게 실시간으로 감시하겠다는 발표이신 거 같은데, 개인 사생활 침해 문제가 더 생겨나지 않을까요?”
정 부장이 답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펩스 통제권으로 인해 개인 사생활 침해 신고 처리 건이 10건도 안 된다는 걸 보시면 꽤 안정적이다 라는 걸 아실 수 있을 거고요, 만약 개인 사생활 침해가 일어났다면 저희 경찰청 사생활 침해 전담 부서로 연락 주시면 바로 처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기자가 질문했다.
“이 제품의 출시로 펩스 통제권과 관련해 범죄 예방을 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개발됐다던데 설명 좀 해 주십시오.”
김 전무가 대답했다.
“예, 만약 골드 아이 사용자가 길을 가다가 수배자를 보게 되면 경찰청 서버와 연동된 펩스가 실시간으로 판단해 그 수배자의 위치를 자동으로 경찰에 신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해당 지역 지구대 경찰이 바로 수배자를 검거하러 출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이 제품이 범죄 예방에도 더 강력하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에도 관련 법안에 관한 다양한 질문과 답들이 오고 갔다. 세미나가 끝나고 정 부장과 재훈 일행이 행사장 밖으로 나와 본부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훈이 정 부장에게 말했다.
“부장님 고생하셨어요. 날카로운 질문들이 많이 나오던데요?”
“좀 힘들긴 하더군. 전에 판매 금지됐다가 처음으로 풀린 제품이니까 이렇게 관련된 질문들이 쏟아지는 게 당연하겠지.”
그때, 옆에서 뭔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보안요원 여러 명이 뛰어가는 게 보였다. 재훈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아보았다.
“뭐가 이렇게 소란스러워?”
그곳에는 한 남자가 ‘악마의 눈을 판매 금지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외치고 있었다.
“셀트사는 경찰과 짜고 이런 악마의 제품을 판매하려 합니다! 이걸 국민 여러분이 사용하게 되시면, 결국 악마 같은 놈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될 것입니다! 정부도 국민 여러분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기 위해 이 제품의 판매를 허가 해준 겁니다! 셀트사는 당장 이 악마의 눈을 판매 금지하라! 금지하라!”
곧, 보안 요원들이 남자를 제압했다. 몸싸움이 일어나고 남자가 들고 있던 피켓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결국 남자는 보안 요원들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끌려가기 시작했다. 서 순경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어디에나 저런 사람들은 꼭 있다니까요.”
재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든 사람들의 생각은 각각 다른 거니까.”
재훈 일행의 앞에 곧 차가 다가왔고, 그들은 본부를 향해 출발했다.
심천우가 있는 기지. 심천우의 방 앞으로 도예가 걸어오고 있었다. 방 앞에는 두 경호원이 서 있었다. 도예가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경호원들이 막아섰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도예가 발끈하며 경호원에게 말했다.
“뭐야! 중요한 손님이 오셨단 말이야. 천우님에게 알려야 해. 어서 비켜!”
도예가 들어가려 하자 경호원들이 더 강하게 막아섰다. 도예가 갑자기 칼을 꺼내 경호원의 목에 갖다 대며 말했다.
“너, 내가 누군지 알면서 막고 그래? 죽고 싶어!”
“하… 하지만 절대로 호출이 있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천우님의 지시가 있으셨습니다.”
“비켜!”
도예는 경호원들을 재끼고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경호원이 다급히 외쳤다.
“도예님! 절대 침실에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도예는 코웃음을 치며 침실 앞으로 다가갔다. 순간 도예는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침실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낯선 여자의 향수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예는 순간 몸이 경직되어 가만히 얼음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침실의 문이 열리고 굉장한 미모의 여성이 옷깃을 고쳐 입으며 나왔다. 여자는 방금 샤워를 한 듯, 맨 얼굴에 머리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도예가 스쳐 지나가는 여자를 노려보자 여자도 노려보았다. 마치 그 여자의 표정은 ‘니가 뭔데 날 쳐다봐.’라는 듯한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다.
천우가 밖에 도예가 온 것을 알고 불러들였다. 천우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천우의 모습을 보며 도예의 머릿속에는 아까 밖으로 나간 여자의 표정과, 평소에 천우가 말했던 ‘쾌감에 이끌려 몸을 함부로 섞으면 안 돼!’라는 말이 한 대 얽혀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천우가 말했다.
“무슨 일이지?”
“중요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알았어, 곧 응접실로 나가지.”
“예.”
도예는 침실을 나오며 왠지 이상한 기분에 힘이 쭉 빠져 버렸다.
천우가 응접실로 들어서자 한 남자가 정중히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천우님.”
“정말 오랜만이군. 어쩐 일이지?”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천우에게 작은 상자를 건 네 주며 말했다.
“드디어 완성됐습니다.”
천우가 그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테두리에 두 개의 금색 띠가 둘러진 스마트 콘택트렌즈가 들어 있었다. 천우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가? 수고했네.”
“세상의 모든 것을 보게 되실, 신의 눈을 바칩니다. 천우님.”
고개를 든 남자는 셀트사의 이정원 대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