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지털 키스-33화 (33/119)

# 33

33화 족집게 점쟁이

SCCIT 본부. 재훈이 스마트폰으로 최두연과 김나연이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뭔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에이, 모르겠다, 모르겠어.”

그때, 최홍규 반장이 들어오며 말했다.

“모르긴 뭘 몰라?”

“아무것도 아니에요.”

“빨리 김 형사랑 회의실로 와봐.”

“예, 김 선배님 찾아서 갈게요.”

재훈이 태현을 찾아 회의실로 가자, 안에는 조 팀장과 서 순경도 와 있었다. 최 반장이 홀로그램으로 어떤 남자의 사진을 비춰주며 말을 이었다.

“이자는 ‘대명목’이라는 무속인으로 다른 사람의 과거를 귀신처럼 알아맞힌다고 해서 유명해진 사람이야. 어찌나 신통한지 개인의 세세한 과거도 다 알아내고, 어디가 아픈지, 뭐가 고민인지 그 자리에서 다 알아낸다고 하더군.”

서 순경이 남자의 얼굴을 보다가 말했다.

“어, 이 사람 방송에서 본 적 있어요. 굉장히 용하기로 유명해서 해외에서도 점을 보러 온다던데요?”

최 반장이 말했다.

“그렇지, 유명한 사람이지.”

태현이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요즘 세상에도 이런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유명해지고 돈도 벌었겠지. 이 사람 소유의 건물들이 얼마짜린 줄 알아? 자그마치 3000억이래.”

재훈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3… 3000억 원이요?”

그때 태현이 재훈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야, 강 형사, 우리도 이참에 점집이나 차릴래? 너 감 좋잖아. 내가 매니저 해주고 홍보도 해줄게.”

“아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도 미신은 안 믿어요.”

태현이 최 반장에게 말했다.

“근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제보가 들어왔어. 이 무속인이 다른 사람의 과거를 잘 알고 상태를 잘 아는 건, 찾아오는 사람의 펩스를 해킹하기 때문이라고.”

“예? 해킹요?”

“그렇지, 그래서 조사 좀 하고 오라고.”

재훈이 말했다.

“그걸 어떻게 조사해요?”

갑자기 최 반장과 태현과 조 팀장이 실실 웃으며 재훈과 서 순경을 바라봤다. 재훈이 당황하며 말했다.

“왜… 왜들 그런 얼굴로 보시는 거예요?”

태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 둘이 펩스가 없으니 연인인척 하고 점 보러 가보면 되겠네. 정말 용한 점쟁이라면 펩스가 없는 사람 것도 잘 볼 거 아냐?”

재훈과 서 순경은 서로를 바라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태현이 둘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뭐해! 어서 다녀오지 않고. 이건 다 수사를 위한 거라고. 임무야, 임무!”

청담동의 한 전통 기와집 앞. 간판에는 한문으로 ‘大明目’(대명목)이라는 큰 글자가 쓰여 있었다. 서 순경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뭐, 어쩔 수 없지. 펩스가 없는 게 우리 둘 뿐이니… 그리고 임무라잖아.”

둘이 안으로 들어가자 한복을 입은 참하게 생긴 아가씨가 둘을 맞이했다.

“손님 예약하셨습니까?”

재훈이 당황하며 말했다.

“예약이요? 아니요. 저희는 소문을 듣고 바로 와 본 건데요.”

“그러시면 죄송하지만 예약을 하시고 오시겠어요? 저희가 워낙 손님이 많아서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약을 하면 얼마 정도 걸리죠?”

“대략 한 달 정도 걸리세요.”

“한 달이요?”

재훈은 발걸음을 돌렸다.

“어쩌지?”

“잠시 만요.”

서 순경이 다시 돌아가 그 여직원에게 뭔가를 말했다. 여직원은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서 순경에게 뭔가를 말해주었다. 서 순경이 웃으며 돌아왔다.

“들어가도 돼요.”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지금 들여보내 주면 점 본 비용의 반만큼을 여직원에게 주겠다고 했어요.”

“뭐? 돈이 어디 있어서? 여기 점 보는 비용이 상당히 비싸다던데.”

“일단 들어가 봐요. 안되면 강 선배님 카드로 긁죠 뭐.”

“뭐라고?”

“하하, 놀라시긴. 이럴 줄 알고 미리 최 반장님이 돈을 챙겨 주셨어요. 걱정 마세요.”

“아이, 뭐야. 놀랬잖아.”

둘은 여직원의 안내를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여러 신들의 조각상과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묘한 향이 퍼져 있는 방 가운데는 머리가 하얗고 풍채가 큰 남성이 흰색 도포를 입고 앉아 있었다.

여직원이 자리에 방석을 깔아주고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여기 앉으시고요, 도사님이 지금 명상 중이시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점을 봐 주실 겁니다.”

여직원이 나가자 방안에는 도사와 재훈과 서 순경이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도사는 그저 눈을 감고 가만히 명상 중이었다. 재훈은 계속 눈치를 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자, 재훈이 도사에게 말을 걸었다.

“저, 도사님. 언제쯤 점을 봐 주실 건가요?”

도사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재훈과 서 순경은 서로를 보다가 앞을 보다가 말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후, 도사가 짚으로 만든 머리띠 두 개를 재훈과 서 순경의 머리에 올려주며 말을 꺼냈다.

“운명을 보는 입구는 머리의 정 중앙, 양쪽 귀를 잇는 부분의 백회혈이라고 합니다. 이 짚으로 만든 머리띠로 백회혈 주변의 나쁜 악기운을 없애주면 비로소 천문이 열려 기가 통하게 되고,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도사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한참이 지나자 도사가 눈을 뜨며 재훈과 서 순경을 각각 바라보았다.

“두 분은 참으로 맑은 기를 타고나셨군요.”

서 순경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좋은 건가요? 실은 저희가…”

도사가 손가락으로 서 순경에게 조용히 하라고 지시했다.

“아무 말하지 않으셔도 압니다. 두 분은 지금 결혼을 앞두고 궁합과 미래에 대해 궁금하신 거 아닙니까?”

“아, 예.”

도사가 또다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외우더니 말했다.

“남자분은 참으로 힘든 과거를 보내셨던 모양이군요. 어릴 때부터 앓아오던 마음속 깊은 곳에 응어리진 고민과 병이 있죠?”

재훈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예, 좀 그런 마음의 병이 있네요.”

도사는 서 순경을 보며 말했다.

“이런…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죠?”

서 순경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도사는 다시 주문을 외우더니 말했다.

“병원에서도 고치기 어려운 병이군요?”

“예. 그걸 어떻게…”

“그 병은 아버지가 원인인 거죠? 힘든 생활을 하셨던 모양이군요.”

서 순경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도사님! 저희 어머니가 어떻게 하면 나으실 수 있을까요?”

도사는 하얀 한지를 꺼내 그 위에 침을 살짝 묻혔다. 그리고는 한지를 반으로 찢은 뒤에 촛불로 불을 붙였다. 한지가 화르르 타며 재가 되자 도사는 그 재를 손으로 집어서 벼루에 옮겼다. 그리고는 그 벼루에 먹물을 붓고 한참을 먹으로 문지르더니 어떤 종지에 들은 빨간 약물을 벼루에 섞었다. 그리고 다시 먹을 돌려가며 그걸 섞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노란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그렸다. 그리고는 서 순경에게 말했다.

“이 부적을 어머니가 주무시는 베개에 넣고 주무시기 전에 손으로 베개를 3번씩 탁탁탁! 치고 주무시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병이 나으실 겁니다.”

서 순경은 그 부적을 받아 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도사님, 감사합니다.”

도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두 분은 궁합이 맞지는 않습니다. 남자분이 불과 같다면, 여자분은 얼음과 같지요. 둘이 만나면 결국 여자분이 녹아 버리기 때문에 좋은 궁합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재훈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도사는 일어나더니 뒤쪽 농 안에서 도자기로 된 물병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서랍에서 하얀 보자기로 덮여있는 바구니에서 마치 파뿌리 같은 것을 꺼내더니 그 물병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한 항아리를 열어 국자로 그 속에 물을 떠서 물병 안에 조심스럽게 따라 넣었다. 그는 그 물병을 가지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건 운명초라는 약초에 100일 동안 놔둔 정화수를 섞은 겁니다. 이걸 운명수라고 하지요. 두 분이 3일에 한 번씩 이 운명수를 조금씩 따라 나눠 마시면, 그 반대됐던 운명이 이 운명수의 힘으로 점점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재훈이 그 물병을 받아 들자 도사가 말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두 분이 비록 지금은 힘드시겠지만, 저에게 오신 이상 분명히 좋은 운명으로 바뀌실 겁니다.”

도사는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더니 재훈과 서 순경의 머리에 올렸던 짚으로 된 머리띠를 내리며 말했다.

“두 분의 앞날에 밝은 빛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점을 다 본 후 재훈과 서 순경은 밖으로 나왔다. 서 순경은 부적을 만지작거리며 아직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입구로 오자 아까 그 여직원이 맞이하며 말했다.

“우리 도사님 용하시죠?”

재훈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시네요.”

여직원은 포스 기계로 계산을 하더니 말했다.

“점 비용이 100만 원, 부적이 100만 원, 운명수가 200만 원 해서 총 400만 원입니다.”

재훈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예? 400만 원이요? 그렇게 비싸요?”

그때, 서 순경이 끼어들어 수표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 있어요. 그리고 아까 약속한 데로 점 값의 반인 200만 원을 따로 드릴게요.”

여직원이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미소를 한가득 띤 채 말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점을 보셨으니까 이제 좋은 일들만 있으실 거예요.”

재훈은 서 순경과 같이 그 점집을 나와 차로 돌아갔다. 한참을 앉아있는데 서 순경이 아무 말 없이 부적을 손에 꼭 쥔 채 가만히 있었다. 재훈이 그걸 보고 말을 걸었다.

“서 순경, 어머니가 진짜 많이 아프신 거야?”

서 순경은 재훈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그 부적을 손으로 찢어버리며 말했다.

“아프긴 개뿔! 저희 어머니 다음 달에 마라톤 풀코스 대회에 참가하세요!”

재훈은 깜짝 놀라 말했다.

“뭐라고?”

“저희 어머니 건강하시다고요. 저런 사기꾼 점쟁이를 봤나!”

“아니, 그러면 연기를 했던 거야?”

“그렇죠. 일단 저희를 믿게 해야 했으니까요. 선배는 어땠어요?”

“뭐, 형편없는 점쟁이라고 생각했어.”

“그렇죠?”

재훈은 주머니에서 네모난 기계를 꺼내며 말했다.

“이건 일종의 전파 탐지기인데, 잠깐만…”

재훈은 그 기계를 스마트폰에 블루투스를 통해 연결한 후 내용을 확인했다.

“역시 생각대로군. 그 짚으로 만든 머리띠가 아무래도 근거리 해킹 장치였던 거 같아.”

“그럼, 이제 어쩌죠?”

“어쩌긴. 본부로 가서 영장을 만든 뒤에 다시 잡으러 와야지.”

며칠 후, 재훈이 태현과 서 순경과 조 팀장과 함께 도사의 한옥 집으로 출동했다. 차 안에서 조 팀장이 투덜대며 말했다.

“아니 전 이제 완전히 현장직 형사가 된 기분이에요. 도대체 저는 계속 왜 출동하라는 걸까요?”

태현이 웃으며 말했다.

“본부에 인력이 부족하대잖아.”

“그놈의 인력 타령은…”

그때 재훈이 말했다.

“다 왔어요.”

재훈 일행은 한옥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 또 오셨어요? 이번엔 친구들까지 데리고 오신 거예요?”

재훈이 영장과 형사 팔찌를 보여주며 말했다.

“저희는 특수 사이버 범죄 수사팀 형사들입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그때 여직원이 뭔가 당황하면서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태현이 그 모습을 보다가 외쳤다.

“여직원이 도사에게 지금 펩스로 전화를 해서 이 상황을 알려주고 있어! 얼른 들어가서 도사를 잡아!”

서 순경은 여직원을 잡고 있고, 나머지 셋이 도사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안에는 중년의 여성 두 명이 당황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재훈이 외쳤다.

“여기 있던 도사 어디 갔어요?”

여성 한 명이 벌벌 떨며 말했다.

“모… 몰라요. 갑자기 저 옆에 문으로 뛰어나갔어요.”

“제기랄!”

재훈 일행은 옆문을 통해 달려 나갔다. 도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태현이 급하게 차로 달려가더니 트렁크에서 드론을 꺼내 하늘로 날렸다.

“내 이럴 줄 알고 신형 순찰 드론을 가지고 왔지!”

드론은 하늘 높이 올라가더니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 정보는 곧 태현의 조종기로 전달되었다.

“놈이 뒤쪽 골목으로 가고 있다! 뛰어!”

재훈 일행은 미친 듯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골목으로 도망친 도사는 대로변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잠시 후, 도사의 앞을 순찰 드론이 막아섰다. 경광등을 요란하게 비추던 드론의 스피커를 통해 태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이, 가짜 도사님! 거기 서세요! 이미 당신은 위치가 파악됐습니다.”

도사가 다시 다른 쪽으로 도망가려는데 재훈 일행이 나타나 길을 막아섰다. 재훈이 총을 꺼내며 말했다.

“도사님 그만 항복하시죠?”

도사는 제자리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에이 이런!”

도사는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서 버렸다. 재훈이 재빨리 달려가 도사의 손에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본인이 이렇게 잡히게 될지 모르셨죠? 그러니까 당신은 가짜 도사인 거예요. 본인 운명도 모르다니.”

“원래 도사는 본인 운명을 점칠 수 없어!”

“끝까지 도사 행세를 하시네.”

재훈 일행은 도사를 연행했다.

다음 날, SCCIT 본부. 재훈이 검찰로 이송되어가는 대명목 도사의 뒷모습을 보며 태현에게 물었다.

“펩스를 해킹했다고 자백했죠?”

“끝까지 자기가 진짜 도사라고 버티더라. 더 조사를 해봐야지. 중요한 건 그 짚으로 된 머리띠가 강 형사 말대로 해킹 도구였대. 그걸 통해서 개인 정보를 알아내서 용한 도사인 척 해왔던 거지.”

“결국 자기가 이렇게 잡힐 줄은 몰랐었겠죠?”

“가짜가 자기 운명을 알기나 했겠어?”

뒤에서 최 반장이 다가오며 말했다.

“다들 수고했어. 막상 잡히고 나니까 피해자들이 난리인가 봐.”

태현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왜들 그동안은 의심들을 안 한 거야?”

재훈이 말했다.

“과거도 딱 맞추고 미래를 말해주니 어쩌면 정말 믿고 싶었던 거겠죠. 살아나가는데 다들 의지할 무언가가 필요하잖아요.”

“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해킹을 일삼다니 참 못된 놈이야.”

두 사람은 본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재훈이 조사실에 들어가 서 순경을 찾았다.

“저기 혹시 서 순경 없어요?”

직원이 두리번거리다가 답했다.

“글쎄요,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재훈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조사실을 나서는데, 서 순경의 향수 냄새가 약하게 느껴졌다. 재훈은 그 향기를 따라 걸었다. 향기는 휴게실 쪽으로 향해 있었다. 휴게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문틈으로 서 순경이 보였다.

“저기…”

재훈이 막 서 순경을 부르려는데, 서 순경은 하얀 물병에서 뭔가를 컵에 따른 후 조심스럽게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밖의 재훈과 눈이 마주쳤다.

“악! 깜짝이야!”

서 순경이 비병을 지르자 재훈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내가 뭘 훔쳐보려고 했던 건 아니고…”

“뭐예요? 몰라요!”

서 순경은 그대로 달려 나와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버렸다. 휴게실 탁자 위에는 운명수라고 쓰인 물병이 놓여 있었다. 재훈은 그걸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서 순경을 따라 올라갔다.

서 순경은 난간에 기대어 울고 있었다. 재훈이 다가갔지만 고개를 돌려 보지도 않았다. 재훈은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서 순경, 미안해. 진짜 몰래 보려고 한 게 아니라…”

서 순경은 눈물을 흘리다가 말했다.

“제가 진짜 부끄러운 게 뭔지 아세요?”

“뭔데?”

“이제 강 선배님 얼굴을 어떻게 보냔 말이에요. 흑흑.”

“서 순경.”

“…”

서 순경은 대답 없이 계속 울고 있었다.

“서수연!”

서 순경은 재훈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재훈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까 그거, 그 점집에서 받은 운명수 맞지?”

서 순경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재훈은 자세를 낮춰 서 순경과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그 마음 나도 알 것 같아. 나를 좋아해 주는 서 순경의 마음 잘 봤으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줄게.”

서 순경은 눈물을 더 주르륵 흘리며 말했다.

“강 선배님이 그 마음을 진짜 알기는 해요? 말도 안 되는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은 그 마음을 아시냐고요?”

재훈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어서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마음대로 이용권 1회’라고 쓰여 있었다.

“이… 이건?”

“내가 그 마음도 잘 알고 미안하니까 언제든지 이걸 내밀면 뭐든 다 들어줄게. 어때?”

서 순경은 놀란 표정으로 재훈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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