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지털 키스-32화 (3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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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사라진 기억들

재훈은 원웅과 핑크레드와 함께 휴대용 SSD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때 젤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훈이 젤리의 전화를 받지 않고 원웅을 바라보았다. 원웅이 말했다.

“젤리 씨죠? 올라오라고 해서 이걸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젤리 씨도 엄연히 프로그래머 겸 해커인데 이걸 통해 뭔가를 더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재훈이 전화를 받았다.

“재훈 씨, 많이 바빠요?”

“젤리 씨, 실은 지금 원웅 씨 연구실에 와있어요. 이쪽으로 올라올래요?”

“그래요? 지금 갈게요.”

잠시 후, 젤리가 올라왔다.

“재훈 씨, 어떻게 연락도 없이 왔어요?”

“미안해요. 좀 알아볼 게 있어서요.”

테이블 위에는 원웅이 웨어러블 장갑으로 옮겨놓은 홀로그램 덩어리가 두 개 올라와 있었다. 하나는 크고 원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는 작고 삼각형 모양이었다. 젤리가 그걸 보며 물었다.

“이건 뭐예요?”

“젤리 씨, 이건 세탁소 주인이 남긴 죽은 카사노바에 관한 펩스 기록들이에요. 제가 아무리 분석해도 안 되는 게 있어서 여기로 가져와서 분석하고 있었어요.”

“와, 여기 오면서 저한테 먼저 연락도 안 하고.”

“미안해요. 여기에만 신경 쓰다 보니 그랬어요.”

홀로그램을 살피던 젤리가 한 부분을 보면서 말했다.

“어? 이건 기억 삭제 실행 파일 아니에요? 근데, 뭔가 좀 많이 특이하네요?”

재훈이 깜짝 놀라며 젤리가 가리킨 부분을 보며 말했다.

“젤리 씨, 혹시 전에도 이런 파일을 본 적이 있어요?”

“예전에 병원 프로젝트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루팅으로 인해 기억 단절 에러가 온 환자를 치료하는 프로젝트였죠. 그때 본 프로그램이랑 비슷한데요?”

원웅이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젤리에게 물었다.

“그때 얘기를 좀 해주시겠어요?”

젤리가 테이블 옆에 있던 다른 웨어러블 장갑을 들어 홀로그램으로 핀셋을 만들어 잡았다. 그리고는 그 핀셋으로 눈앞에 떠 있던 커다란 원형의 홀로그램 덩어리에서 정말 작은 한 부분을 끄집어내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펼쳐 보았다. 그러나 그 펼쳐졌던 부분은 곧 다시 줄어들고 말았다.

“제가 지금 집어낸 부분이 카사노바의 기억 중 하나일 거예요. 보시다시피 이미 이 기억들은 한 번의 루팅으로 인해 기억 단절 에러가 온 상태예요. 다른 기억과 섞이거나 바뀌어 버린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재훈이 물었다.

“그럼 이 기억 단절 에러 치료 프로젝트는 성공했었어요?”

“그게, 꽤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어요. 그때 당시에 어떤 방법으로도 이미 뒤죽박죽 엉망이 된 기억을 되살릴 방법은 없었던 거죠. 그런데 한 박사가 색다른 아이디어를 냈어요.”

“색다른 아이디어요?”

“근데 이 이야기는 원래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이야기인데…”

젤리는 재훈과 원웅과 핑크레드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다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에라 모르겠다. 우리끼리만 아는 걸로 하고 말하죠. 색다른 프로젝트는 우재성 박사라는 분이 아이디어를 냈던 거였어요. 이미 뒤죽박죽이 된 기억을 살리지는 못하니까 아예 삭제해서 환자를 정상 뇌 상태로 돌리자는 거였어요.”

원웅이 핀셋을 들어 아까 줄어들었던 홀로그램의 한 부분을 다시 끄집어내었다. 그걸 다시 펴보려 했지만 이내 원래대로 줄어들고 말았다.

“이렇게 따로 복사된 기억도 다루기 힘든데, 뇌 속의 기억을 삭제하는 게 가능했었나요?”

젤리가 세모 모양의 홀로그램을 핀셋으로 뒤적이다가 한 부분을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아까 줄어들었던 원형의 기억 중 한 부분과 두 개를 같은 공간으로 합쳐버렸다. 그리고 손으로 그 섞인 두 홀로그램을 꽉 잡은 후 현미경 모드를 가동하여 그 섞인 덩어리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핀셋으로 몇 군데를 잡아끌었다. 젤리가 원웅에게 말했다.

“원웅 씨, 이 핀셋 좀 잡아주세요.”

원웅이 핀셋을 잡자 젤리는 홀로그램으로 봉합 기계를 만들어 원웅이 잡은 부분을 정밀하게 봉합해 내었다. 이윽고 봉합 부분이 잘 이어지자 두 손으로 그 합쳐진 덩어리를 잘 굴리더니 다른 공간에 던져 펼쳐 놓았다. 다른 공간에 펼쳐진 홀로그램에서는 동영상이 비치고 있었다. 한 남자가 일인칭 시점으로 어떤 여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영상이었다. 그걸 보던 재훈이 말했다.

“저건! 아마 카사노바, 그러니까 최두연의 기억이 틀림없어요!”

젤리가 말했다.

“제가 방금 세모 모양의 홀로그램에서 꺼내서 쓴 건, 이 기억의 뒤죽박죽 된 부분을 연결해 원래 상태로 돌리는 실행 파일이에요.”

젤리는 그 영상을 손으로 잡아 복사를 해서 똑같은 영상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는 다시 핀셋을 들어 세모 모양의 홀로그램에서 다른 한 부분을 집어내어 복사한 영상과 봉합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젤리와 원웅의 이마에는 땀이 한가득 맺혀 있었다.

“쉬운 작업은 아니군요.”

젤리가 잠시 후, 그 복사된 영상을 들어 올리자 점점 그 영상이 사라지더니 이윽고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재훈과 원웅과 핑크레드는 깜짝 놀랐다. 재훈이 물었다.

“젤리 씨, 그럼 이번에 꺼낸 프로그램은 기억을 삭제하는 프로그램인 거예요?”

“예.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실제 기억도 지울 수 있어요.”

“말도 안 돼. 그럼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쓰이고 있는 거예요?”

젤리가 세모 모양의 홀로그램을 노려보며 말했다.

“실은 우재성 박사님의 프로젝트는 그때 당시에 실패하고 말았어요. 기억을 완전히 재구성하고 지우는 데는 실패했었거든요. 기억 재생률 평균 70% 정도, 기억 삭제 율은 80% 정도이었으니까요. 결국 재구성과 삭제가 완벽했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해서 실패로 끝나버린 거죠.”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본 건 완벽했잖아요?”

“실은 저도 이렇게 완벽한 줄 모르고 시도해 봤던 거예요. 재훈 씨가 가끔 감으로 사건을 해결하듯이, 저도 이번엔 뭔가 감이 오더라고요. 이 프로그램은 완벽하다는 느낌이요.”

원웅이 말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누군가 기억을 재구성하고 지우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거고, 그 결과 카사노바도 자신의 일부 기억을 지울 수 있었다는 거군요.”

젤리가 웨어러블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그렇죠. 이제 저 카사노바의 기억의 일부분을 이 실행 프로그램으로 더 분석해보면 그가 어떤 기억들을 삭제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재훈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세모 모양의 홀로그램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걸 디지털 세탁소의 주인이 갖고 있었던 걸 보면 아마 그 사람이 이 프로그램을 완성시켰을지도 몰라요.”

원웅이 냉정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완성시켜서 그 세탁소 노인에게 준 걸지도 모르죠.”

젤리가 물었다.

“왜? 누가? 이런 기억을 지우는 프로그램을 만든 걸까요?”

재훈이 세모 형태의 홀로그램을 주시하며 말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누가 이걸 만들었는지, 또 그 목적이 뭔지. 그래도 한 가지는 알 것 같아요.”

젤리가 말했다.

“한가지요? 그게 뭐예요?”

“절대 좋은 목적으로 만든 건 아니라는 걸요.”

핑크레드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내 생각에도 그래. 이걸 만든 놈들은 분명히 뭔가 나쁜 목적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일요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날, SCCIT 본부. 재훈이 퀭한 눈으로 정신을 놓고 앉아있자 태현이 다가와 등을 한 대 툭 치며 말했다.

“이 자식아! 쉴 때는 좀 얌전히 쉬다가 와라. 뭘 했기에 이렇게 기운이 다 빠져 있냐?”

재훈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 일이 있어서 밤을 좀 새웠더니 죽을 거 같아요. 저 에너지 드링크라도 좀 사주세요.”

“밤을 새?”

태현은 재훈의 머리에 딱밤을 때렸다.

“아! 아파요!”

“이 자식아! 너의 사수는 지금 애인도 없어서 밤마다 외로움에 사무쳐 베개를 끌어안고 자는데! 넌 밤새 연애질이나 하고 와서, 선배님~ 저 피곤하니까 에너지 드링크 좀 사주세요~라는 말이 나오냐? 엉?”

“아니 누가 연애질 하느라 밤을 새웠데요?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옆을 지나가던 조 팀장이 구경하던 서 순경에게 말했다.

“저 콤비, 또 시작이냐?”

“여전하죠 뭐.”

“이번엔 무슨 이유래?”

“김 선배님이 외로우신데 강 선배님이 어제 밤새 연애하다가 와서는 피곤하다고 에너지 드링크를 사달라고 한 상황이에요.”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도 유분수지, 아예 나 연애 잘하고 있소 라며 자랑 질을 해 댄 거네.”

“그렇죠.”

그때 복도에서 뭔가 굉장히 강하고 큰 빛이 들어왔다. 조 팀장이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아니, 뭐야? 이 빛은?”

서 순경도 눈을 가리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누가 조명을 이런 데다 비추고 난리야?”

갑자기 그 빛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귀여운 서 순경, 그동안 잘 있었어?”

서 순경은 깜짝 놀라 남자의 얼굴을 살펴보며 말했다.

“어? 셰프님!”

주변 형사들이 깜짝 놀라며 기룡을 바라봤다. 재훈이 뛰어나오며 꾸벅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셰프! 이제 출근하시는 거예요? 몸은 괜찮으세요?”

기룡은 크롬 빛으로 빛나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 보이며 말했다.

“하하! 주문한 의수들이 제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제야 출근하게 됐어. 어때 이 빛나는 새로운 의수들이 멋져 보여? 이걸 보여주려고 이 추운데도 일부러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왔다고!”

재훈은 기룡의 번쩍번쩍하는 새로운 의수를 보며 말했다.

“셰프! 멋지긴 한데, 너무 강해 보여요.”

“그래? 그럴 수밖에 없지. 저번처럼 나쁜 놈들이 오면 혼내주려고 군용 전투 의수에 티타늄 합금과 특수 코팅을 입혀 놨으니까 말이야.”

태현이 기룡의 옆으로 다가와 의수를 만져보며 말했다.

“와, 셰프. 이거 뭐 이제 총에 맞아도 끄떡없겠는데요?”

“그래? 이참에 현장에 복귀해 버릴까? 하하하!”

그때, 뒤에서 정철민 부장과 최홍규 반장이 나타났다. 최 반장이 기룡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제 괜찮은 거야?”

“어, 덕분에 잘 쉬고 왔어.”

기룡은 정 부장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부장님, 덕분에 몸 건강히 돌아왔습니다.”

정 부장은 기룡에게 다가와 금속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잘 돌아왔어. 그동안…”

“그동안요?”

“자네가 없는 동안 구내식당 밥이 영 형편없었거든. 이제 안심이네.”

“하하! 이제 걱정 마십시오! 제가 쉬는 동안 더 다양한 요리들을 연구해 왔거든요.”

서 순경이 뛸 뜻이 기뻐하며 말했다.

“와! 어서 우리 점심 해 먹어요!”

다들 그렇게 기룡의 복귀를 축하해 주었다.

강력1팀. 재훈이 자리에 앉아 노트북에 휴대용 SSD를 연결했다. 그리고 화면에 최두연과 한 여성의 사진을 띄웠다. 그리고는 먼저 최두연의 사진을 인명검색시스템에 입력했다. 잠시 후, 화면의 검색 결과 없음이 떴다.

“그럼 그렇지.”

재훈은 이번엔 여성의 사진을 시스템에 입력했다. 잠시 후, 여성의 신상 기록과 주소가 화면에 떠올랐다. 재훈은 그 기록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옮겼다. 그리고 곧 노트북을 끈 후, 자리에 앉아 혼자 생각을 했다.

‘김나연 씨… 도대체 최두연과 무슨 관계였을까?’

저녁에 퇴근을 하자마자 재훈은 휴대용 SSD의 자료를 통해 알아낸, 최두연이 최근까지 살았던 오피스텔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에 입력된 기록을 보며 문 앞에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띠띠띠띠띠 띠링.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제법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가 펼쳐졌다. 아직 집의 계약기간이 남아서인지, 그 누구도 집에 침입한 흔적은 없는 듯했다. 재훈이 집안 여기저기를 보다가 책상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 일기장을 펼쳐보자 내용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계속 다른 페이지를 펼쳐 보는데 어느 부분에서 손이 멈춰 섰다. 그곳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최두연! 내가 지운 기억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마라. 내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다.’

그리고 그다음 장은 빈 페이지였다. 그렇게 몇 장의 빈 페이지 뒤에 다시 글이 쓰여 있었다.

‘내가 어떤 기억을 지웠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매일매일 그 기억나지 않는 그 기억 때문에 괴롭다. 분명 나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 기억을 지웠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난 어떤 기억을 지웠단 말인가? 그 궁금증이 나를 미치게 한다. 그리고 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기억을 생각해 내려고 하면 할수록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를 이토록 아프게 하는 그 기억은…’

일기장은 그 후로 기록되지 않고 백지로 남아 있었다. 재훈은 그 마지막 부분을 왼손으로 쓸어보며 혼잣말을 했다.

“카사노바, 아니 최두연 씨. 아마도 당신이 괴로워하던 그 사라진 기억은 이 사람일 것 같군.”

재훈의 오른손에는 스마트폰이 있었고 그 화면에는 김나연이라는 여자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다음 날 저녁, 재훈은 김나연의 주소지를 찾아갔다. 담이 높고 꽤 큰 규모의 집이었다. 재훈은 앞에서 벨을 누르려다 다시 자신의 차로 돌아왔다.

‘어떻게 하지? 기다려 볼까?’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한 여자가 그 집으로 다가가는 게 보였다. 사진 속의 그 여자였다. 재훈은 얼른 차 밖으로 나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기, 잠시 만요.”

여자는 깜짝 놀라며 경계를 했다.

“누구시죠?”

“저,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강재훈 형사라고 합니다.”

재훈은 형사 팔찌를 보여주었다.

“형사님이 무슨 일이시죠?”

“김나연 씨 맞죠?”

“예, 제가 김나연은 맞는데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는데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요?”

“예.”

나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제가 형사님을 만날 일이 있을까 싶네요.”

재훈은 망설이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혹시 최두연 씨라고 아시죠?”

나연은 굉장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요?”

“최두연 씨요.”

“저 그런 사람 몰라요.”

“정말 모르신 다구요?”

“예.”

나연이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자 재훈은 그녀를 다급하게 불렀다.

“나연 씨, 잘 생각해 보세요! 정말 모르는 사람입니까?”

“정말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가세요!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나연 씨, 중요한 일이라서 그럽니다. 조금만 도와주세요.”

“몰라요! 안녕히 가세요.”

나연이 집으로 들어가 버리자 재훈이 소리쳤다.

“최두연 씨, 얼마 전에 죽었습니다!”

나연은 잠시 머뭇하는 것 같더니 뒤돌아보며 대문 밖으로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죽은 거랑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제발 가세요!”

나연이 다시 뒤돌아가서 들어가는데 재훈이 대문을 붙잡고 말했다.

“최두연 씨가 자신의 기억 중 당신의 기억을 지웠어요! 그리고 죽었단 말입니다! 그 이유를 저도 꼭 알아야겠어요!”

나연이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두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듯 촉촉이 젖어 있었다.

“기억을 지워요? 제 기억을요?”

“예! 두연 씨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연 씨의 기억을 지웠어요. 그리고 분명한 건 그걸로 굉장히 괴로워했어요.”

어느새 나연의 눈에선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요. 저의 기억을 지우다니. 우리가 함께한 기억을 지우다니…”

그때였다, 집에서 나연의 어머니가 나왔다.

“아니 나연아, 대문 앞에서 무슨 일이야?”

나연의 어머니는 대문 앞으로 오더니 밖에 있는 재훈을 보고 말했다.

“누구세요? 남의 집 앞에서 우리 애를 울리다니, 뭐하는 사람이에요!”

“그게…”

나연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엄마, 저 사람 이상한 사람이니까 절대로 집에 들이지 마!”

나연이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자 나연의 어머니가 대문 밖으로 나와 재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이상한 스토커 같은데 얼른 가세요! 안 그러면 경찰에 신고해 버릴 테니까.”

나연의 어머니가 대문을 세게 닫으며 들어가자 재훈이 대문 틈으로 집으로 들어가는 나연을 향해 소리쳤다.

“나연 씨! 저는 특수 사이버 범죄 수사팀의 강재훈 형사입니다! 꼭 연락 주세요!”

나연은 그대로 어머니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재훈은 한동안 대문을 떠나지 못하다가 못내 발걸음을 옮겼다.

“에휴, 일단을 돌아가자.”

그렇게 돌아가는 재훈의 뒷모습을 나연이 이층의 자기 방 창문을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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