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지털 키스-31화 (31/119)

# 31

31화 온라인 속의 친구

토요일. 날씨는 제법 쌀쌀해져 있었다. 재훈은 프레퍼 타운 안에만 있는 젤리가 답답할까 봐 모처럼 요리를 해 주려고 떡볶이 재료를 사서 식물공장으로 향했다. 핑크레드의 사무실에 딸린 식당으로 올라온 젤리가 요리 준비를 하던 재훈의 얼굴을 계속 살펴보다가 말을 걸었다.

“재훈 씨, 뭐 걱정되는 거 있어요?”

“예?”

“아니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생각이요? 저는 그저 어떻게 하면 떡볶이를 맛있게 만들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그래요?”

젤리는 미심쩍은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재훈의 볼을 꼬집었다.

“아! 아파요!”

“거짓말하면 못써요! 분명 다른 생각 하고 있었잖아요. 뭔데요? 말해 봐요.”

재훈은 들킨 게 멋쩍은 듯 자신의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말할게요. 이건 뭐 속일 수가 없네. 이번에 맡은 사건 생각 중이었어요.”

“사건요? 정말이에요?”

“정말이에요.”

젤리는 계속 의심에 찬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알았어요. 뭔지는 몰라도 이번엔 속아 드리죠. 대신!”

“대신?”

“혹시라도 다른 여자 생각하기 없기예요!”

“에이, 그걸 말이라고 해요? 내가 젤리 씨 말고 다른 여자 생각을 왜 하겠어요?”

“혹시 모르죠.”

“참나…”

재훈은 본격적으로 요리에 들어갔다. 그런 재훈의 모습을 지켜보던 젤리가 갑자기 혼자 웃기 시작했다. 재훈이 황당해하며 젤리에게 물었다.

“아니 갑자기 왜 웃어요?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아니요. 그냥 웃겨서요.”

“갑자기 왜 웃긴데요?”

“그게… 사실, 전에는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떡볶이였거든요.”

“정말요? 잘 먹잖아요.”

“그러니까요. 원래 매운 거 잘 못 먹었었는데, 재훈 씨랑 다니다 보니까 어느새 맛있게 먹고 있더라고요.”

“나는 젤리 씨가 잘 먹길래 원래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아무래도 재훈 씨가 좋아하는 음식이라서 따라먹다 보니 좋아하게 된 거 같아요.”

“억지로 같이 먹어 주는 건 아니고요?”

“아니에요. 정말 맛있다니까요.”

그때 재훈이 사무실에 틀어 논 TV의 뉴스를 우연히 보게 됐다. 아나운서가 굳은 표정으로 기사를 전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6시 30분경, 한강 원효대교 근처에서 머리가 없는 남성의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남성은 숨진 지 오래돼 보이지 않은 상태였으며, 특이한 점은 머리의 흔적으로 보아 펩스가 강제로 제거된 것 같다고 합니다. 경찰은 펩스를 노린 일당의 범행을 의심하고 있으나, 정확한 사인 조사를 위해 시신을 국과수로 인도해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DNA 신분 조회 결과 이 남성의 신분은 경기도 산본시에 거주하고 있던 김 모씨로 밝혀졌으며 펩스 위치 기록에 의하면 서초동에서 마지막 신호가 잡혔다고 합니다. 며칠 전 수입차 매장에서 이 남성을 봤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들어 보시겠습니다.”

모자이크로 가려진 남자의 목소리가 변조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날 저희 모델 중 제일 상급 모델을 계약하고 나가셨고요, 저희가 봤을 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뉴스를 보던 젤리가 말했다.

“와, 세상에 무섭네요. 펩스를 꺼내려고 머리를 통째로 날려버린 건가?”

“그러게요, 잔인하네요.”

젤리가 갑자기 재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뭐가요?”

“이제 저는 펩스가 없으니까, 적어도 저렇게 머리가 날아갈 일은 없을 거 아네요?”

“그러네요. 근데 불편하지 않아요? 펩스가 없어서?”

“솔직히 제거하기 전에는 많이 불편할까 봐 걱정했는데, 막상 지내다 보니 크게 불편 하진 않아요.”

“다행이다.”

젤리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며 말했다.

“그리고 메시지 보낼 때 이모티콘을 날리는 게 은근히 재미있더라고요. 이모티콘을 이쁜 걸로 더 사야겠어요.”

“그래요? 하하.”

재훈과 젤리는 식사를 끝내고 식물공장 안에 있는 인공 숲으로 들어갔다. 상쾌한 공기와 함께 인공 바람이 마치 진짜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 인양 어색하지 않게 나무의 향기를 두 사람에게 전달해 주고 있었다. 지금 순간만큼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진짜 숲 속을 거니는 것 같았다.

재훈과 손을 잡고 한참을 걷던 젤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뭐가요?”

“며칠 전에 뉴스를 보니까 디지털 키스 앱을 삭제했던 사람들이 다시 앱을 다운로드하는 비율이 크게 증가했데요.”

“그래요?”

“카사노바가 펩스 해킹을 하던 얼마 전까지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디지털 키스 앱을 잘 안 쓴다고 하더니, 카사노바가 죽고 사건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으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앱을 사용하고 있잖아요.”

재훈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저도 기분이 참 묘하네요. 사람들은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그 큰 사건들을 다 잊은 걸까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킹 사건으로 불안해했으면서.”

젤리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금방 그 사건들이 잊힌 걸 거예요. 사람들이 원래 그렇잖아요. 뭔가 일이 해결되면 잊어버리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빨라요. 더군다나 요즘엔 경찰에서 펩스 통제권을 이용해 여러 사건들을 신속하게 처리하니까 국민들도 안심하는 걸 거구요. 아까 사무실에서 본 그 뉴스도 보세요. 펩스 위치 기록을 수사를 위해 마음껏 사용할 수 있으니, 아침에 일어난 사건의 피해자의 마지막 위치가 서초동으로 빨리 밝혀졌을 거고, 아마 사건도 빨리 해결될걸요?”

“그렇겠죠? 하지만, 사람들이 해킹 사건을 이렇게 빨리 잊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 펩스 해킹들의 기억들이 잊힌 게 아니라 마치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빨리 느껴진다라는 거죠?”

“예, 그렇게 느껴져요.”

젤리는 재훈이 왠지 허탈해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재훈 씨,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거죠?”

“예, 펩스 해킹 사건이 이렇게 갑자기 잊히고 평화로운 일상이 펼쳐지고 있는 게 이상해요. 아직 카사노바가 속해 있던 조직에 대해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말이에요.”

젤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재훈의 입에 키스를 진하게 했다. 그렇게 한참을 키스를 하던 젤리가 입술을 떼며 말했다.

“재훈 씨, 우리는 펩스가 없어도, 또 디지털 키스 앱이 없어도, 이렇게 키스를 할 때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말아요. 앞으로 어떤 사건이 펼쳐져도 내가 꼭 함께 할 거니까요.”

“고마워요, 젤리 씨.”

재훈은 그렇게 젤리를 꼭 안아주었다.

다음 날, 재훈은 집에서 세탁소의 노인이 남겨 놓은 휴대용 SSD를 노트북에 연결해서 내용을 검색해보고 있었다. 파일들은 특이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재훈이 여러 프로그램으로 그 파일들을 분석하고 있다가 한 가지 파일을 보며 뭔가가 안 되는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혼잣말을 했다.

“아니, 이건 도대체 뭐 길래 이렇게 안 열려?”

재훈은 노트북에서 휴대용 SSD를 뽑은 후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재훈은 식물공장의 원웅에게로 갔다. 연구실로 가자 원웅이 걸어서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어? 이제 휠체어 안 타셔도 되는 거예요?”

“뭐 좀 걷기가 불편 하긴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그나저나 젤리 씨한테 바로 내려가 보시지 여길 다 들리시고 그래요? 혹시 제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 건지?”

“젤리 씨는 어제도 봤었고요, 오늘은 이것 때문에 왔어요.”

재훈은 휴대용 SSD를 꺼내서 보여주며 말했다.

“이건 제가 다른 사람 모르게 구해 온 카사노바에 관련된 기록이에요. 그런데 한 파일이 도저히 풀어지지가 않아요.”

원웅은 재훈에게서 받은 휴대용 SSD를 자신의 장비에 꽂은 후 그 내용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건… 저도 낯선 형태의 프로그램이네요. 이 디코더[1]로 여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잠시 만요.”

『각주[1] 디코더: Decoder. 코드화 된 신호를 원래 형태로 되돌리는 장치나 프로그램.』

원웅은 계속 다른 디코더를 이용해 그 파일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려 가며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원웅이 입을 열었다.

“이건 아무래도 white key 213에게 물어봐야겠는데요?”

“예? 화이트… 누구요?”

“핑크레드가 안다는 얼굴 없는 친구 말입니다. 그 하늘나라에 왔다 갔다 한다는.”

“아, 그 친구요?”

잠시 후, 원웅의 호출을 받고 핑크레드가 올라왔다.

“어, 임 박사 무슨 일이야? 강 형사가 나를 찾는다면서?”

핑크레드는 재훈을 보자마자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강 형사, 그 마음 다 알아. 물론 내가 매력이 철철 넘치는 거 알아. 하지만 강 형사에겐 젤리 씨가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리 내가 끌려도, 이렇게 젤리 씨 몰래 나를 만나려 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재훈은 굉장히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 저기,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 좀 하지 마세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핑크레드는 잡고 있던 재훈의 손을 휙! 하고 뿌리치며 말했다.

“그래? 그럼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한 건데?”

옆에 있던 원웅이 웃으며 말했다.

“핑크, 그 white key 213을 강 형사랑 좀 만나게 해줘 봐. 무슨 파일을 디코딩하려는데 나도 모르는 형태의 파일이야. 그 녀석이라면 알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

“그래? 잠깐만.”

핑크레드는 잠시 펩스로 뭔가를 검토하더니 말했다.

“강 형사, 마침 잘됐네. 그 녀석이 지금 새로 개설된 임시 서버에 들어와 있어. 같이 가 보자고.”

“어떻게 가면 되죠?”

핑크레드가 원웅의 책상 쪽으로 가더니 VR기기와 웨어러블 장갑 각각 두 세트를 가져와 한 세트를 재훈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전에 말했다시피 녀석은 온라인상에서만 만 날 수 있어. 일단 이걸 착용하고 나랑 같이 서버에 접속하자고.”

재훈과 핑크레드는 장비를 착용했다. 핑크레드가 말했다.

“그럼 white key를 만나러 가볼까? 아, 참고로 알아둬. 내 아이디는 red sexy girl 362436이고 그쪽 아이디는 furrr8282야.”

재훈의 VR기기 앞에 복잡한 부호들이 부팅되더니, 이윽고 큰 도시의 시장 모습이 펼쳐졌다. 시대는 마치 이집트 시대 같은 모습이었다. 핑크레드가 말했다.

“잘 따라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다 해커들과 중개인들이야. 여기는 하늘나라와 비슷한 곳인데 이 서버는 좀 달라. 뭐 간단하게 말하자면 해커들이 이 안에서 부킹을 한다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재훈의 눈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복장과 각종 금으로 된 액세서리를 한 채 복잡하게 여기저기 길을 왕래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피라미드도 보였다. 핑크레드는 꽤 섹시한 여성의 캐릭터였다. 재훈이 말했다.

“가상공간 속에서도 섹시한 걸 추구하시네요. 그나저나 여기서 그 친구 분을 어떻게 찾죠?”

“사실 나도 지금 녀석이 어떤 모습으로 여기 접속해 있는지 몰라. 잠깐만 기다려봐 개인 쪽지로 연락을 해보자.”

핑크레드가 휘파람을 불자 하늘에서 매 한 마리가 내려오더니 그녀의 팔 위로 내려와 앉았다. 재훈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 이게 개인 쪽지를 날리는 거예요?”

“어, 잠시만 기다려봐.”

핑크레드는 종이를 꺼내 뭔가를 적은 뒤 매의 다리에 편지를 묶어 하늘로 다시 날려 보냈다. 잠시 후, 매는 하늘 위의 안 보이는 곳까지 날아올라가더니 이윽고 모습을 감췄다. 재훈이 매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말했다.

“쪽지가 잘 갔을 까요?”

“잠시만 기다려봐.”

잠시 후, 매가 다른 색 실로 묶인 쪽지를 발에 묶은 채 되돌아왔다. 핑크레드가 그 편지를 펴서 본 후 재훈에게 말했다.

“날 따라와.”

그렇게 한참을 걷자 피라미드에 가까워왔다. 옆에는 스핑크스도 있었다. 사람들이 낙타를 타고 여기저기 이동하고 있었다. 재훈이 좀 답답한지 핑크레드에게 말했다.

“아니 도대체 그 친구 분은 여기서 어떤 캐릭터로 접속해 있는 거예요?”

핑크레드가 발길을 멈추며 말했다.

“이 캐릭터야.”

재훈의 눈앞에는 커다란 스핑크스 석상이 엎드려 있었다. 재훈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예? 설마… 이 스핑크스가 그 친구 분이라고요?”

스핑크스 석상이 고개를 숙여 재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당나귀는 누구인가?”

“다… 당나귀?”

재훈은 그제야 가상현실 속에 있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아래를 보니 영락없이 짜리 몽땅한 당나귀의 발이 보였다.

“아니 뭐야? 난 당나귀 캐릭터였어?”

핑크레드가 웃으며 말했다.

“어이 white key, 이쪽은 내 중요한 친구야. 인사해.”

“어서 오게, 당나귀 친구. 그나저나 무슨 일이지 red sexy girl? 나를 만나러 오는데 친구를 데리고 오다니 말이야.”

“부탁 하나만 들어줘.”

“부탁? 그게 뭔가?”

“파일 하나를 풀어야 하는데 아무리 디코딩을 해도 알 수가 없어. 그걸 좀 알아봐 줘.”

“red sexy girl, 자네의 부탁은 안 들어줄 수가 없지. 파일을 줘보게.”

핑크레드는 주머니에서 당근을 꺼내 스핑크스에게 전해주었다. 스핑크스가 그 당근을 입으로 먹으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게 내가 곧 결과를 알려 줄 테니.”

스핑크스가 잠시 얼굴을 들더니 행동을 멈췄다. 재훈이 핑크레드에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면 되는 거예요? 저런 걸 그렇게 빨리 알아내요?”

“저 녀석 아이디가 왜 white key 213인 줄 알아?”

“글쎄요?”

“아이큐가 213이기 때문이야. 녀석은 천재라고. 어쩌면 이 파일도 생각보다 금방 해석할지도 몰라.”

기다리는데 심심해진 재훈은 당나귀의 앞발로 모래를 휘적이고 있었다.

“더 오래 걸릴까요?”

“글쎄.”

그때 스핑크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훈과 핑크레드가 고개를 들어 스핑크스를 바라봤다.

“알아냈네. 이걸 받게.”

스핑크스가 입으로 당근을 토해냈다. 재훈이 망설이자 핑크레드가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뭐해? 얼른 받아먹지 않고?”

“예? 저걸 먹어요? 저 스핑크스가 방금 입으로 토한 저 당근을요?”

“아니 뭐 어때? 이건 가상공간이잖아. 진짜 토한 걸 먹는 것도 아니고, 저걸 먹어야 프로그램이 전달된다고.”

핑크레드는 바닥에 떨어진 당근을 주워 재훈의 캐릭터인 당나귀에게 강제로 먹였다. 그걸 꾸역꾸역 씹으며 당나귀인 재훈이 말했다.

“으… 아무리 가상이라지만 이상하네요.”

스핑크스가 자세를 낮추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봐, 당나귀 친구. 자네 꽤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가지고 왔더군.”

“흥미? 프로그램 내용이 아는 겁니까?”

스핑크스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그건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프로그램이야. 나도 그 내용을 다 풀 수는 없었어. 사진 몇 장을 디코딩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야. 나머지 디코딩이 할 수 없었던 부분은 굉장히 복잡한 실행 파일들이었다.”

“복잡한 실행파일?”

“그 실행파일의 일부분을 디코딩하려고 시도하다가 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어.”

“그게 뭐죠?”

“그걸 전문 용어로 말하면 어려우니 쉽게 말해주지. 그건 사람의 뇌에 작용해 기억의 일부분을 지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뭐… 뭐라고요? 그런 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스핑크스는 지그시 눈을 한번 감았다 뜨더니 말을 이었다.

“나도 믿기 어렵고, 본 적도 없지만. 분명 그건 뇌의 기억을 지우는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이 프로그램으로 지울 수 있는 기억의 범위는 한정적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프로그램으로 누군가는 어떤 기억을 의도적으로 지운 것이 확실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거죠?”

“내가 방금 건네 준 파일을 열어보면 내가 디코딩 한 파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상은 나도 알지 못하니까 잘 살펴보도록 해. 그럼 난 이만 가도록 하지.”

“잠깐! 고마워요. 그리고 만나서 반가웠어요. white key 씨.”

스핑크스는 이동하려다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red sexy girl의 친구니까 도와 준걸세. 감사는 그 친구에게 하게. 그럼 난 이만 가네. 잘 가게 red sexy girl, 그리고 당나귀도 잘 가게.”

스핑크스는 커다란 날개를 펼쳐서 하늘로 날아가더니 사라져 버렸다.

재훈이 VR기기를 벗자, 원웅이 휴대용 SSD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게 좀 전에 white key가 준 당근이야.”

재훈은 그 휴대용 SSD를 받아 손에 꾹 쥐었다. 그의 손은 크게 떨고 있었다. 재훈이 원웅과 핑크레드를 보며 말했다.

“도대체 카사노바는 자신의 어떤 기억을 지워버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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