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27화 브레인 터보 파워
재훈은 핑크레드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 하늘나라가 돌아가셨다 뭐, 그런 건 아니죠?”
핑크레드는 그런 말을 하는 재훈이 귀여운 듯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아니지. 죽은 사람한테 부탁을 할 순 없잖아.”
“그렇죠?”
“하늘나라라는 건, 사이버 공간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비밀스러운 거래자들의 모임이야. 추적을 피하기 위해 서버는 항상 다른 지점에서 열리게 되어 있지. 일단 그 모임에 참석하면 모두 죽은 듯이 연락이 끊기기 때문에 하늘나라라고 불려. 그 녀석은 거기 며칠씩 틀어박혀서 안 나올 때도 있어. 일단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냥 직접 찾아가면 안 돼요?”
“아니, 그냥은 절대 만날 수 없어.”
“왜요?”
“우린 서로 얼굴도 몰라. 언제나 온라인에서만 만나거든.”
“예? 친구라면 서요?”
“친구지, 사이버 공간에서만 만나는 친구. 아이디 외에는 서로에 대해서 전혀 몰라.”
“아니 그게 무슨 친구예요?”
“왜? 꼭 얼굴을 알아야만 친군가? 사이버 상에서 거래를 하다 보면, 때론 이렇게 자기 아이디만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종종 만나게 돼. 하지만 대화를 몇 번만 해보면 금방 감이 와. 이 사람은 믿을 만하겠구나, 또는 아니구나.”
재훈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도 한 번 안 본 사람이 친구라는 게 전 좀 이해하기 어렵네요.”
“물론 우리 순진한 강 형사는 그런 친구를 사귀기는 어렵겠지.”
“암튼, 그 사람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일단 메일을 보내볼게. 아마 돌아오면 바로 연락이 올 거야. 일단 카사노바 본명과 DNA 정보를 줘봐, 내가 전해줄 테니까.”
재훈은 휴대용 SSD를 주었다.
“이거예요. 참! 그리고 이건 원웅 씨 말고는 누구한테도 비밀이에요.”
“비밀? 그럼 우리 잘생긴 김 형사님 한 테도 비밀인 거야? 둘이 파트너잖아?”
“좀 그럴 일이 있어서요. 부탁할게요.”
“알았어. 결과 나오면 연락할게.”
“그럼 전 가볼게요.”
재훈이 막 계단 쪽으로 가고 있는데 뒤에서 핑크레드가 박스를 들고 오면서 재훈을 불렀다.
“강 형사!”
“예?”
“이거 내가 좀 전에 수확한 감자야. 아주 맛있을 거야. 한 박스 가져가.”
재훈은 감자 박스를 받아 들며 말했다.
“고마워요. 요즘 여기 와서 맛있는 거만 잔뜩 얻어먹고 가네요.”
재훈은 감자 박스를 차에 싣고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SCCIT 본부. 정철민 부장과 최홍규 반장, 재훈과 태현, 조 팀장과 서 순경이 회의실에 모였다. 정 부장이 말했다.
“카사노바가 사망함으로써 놈이 어떤 사람들과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어졌어. 윗선에서도 일단 이 사건은 관련된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잠시 보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다들 그렇게 알고 그동안 미뤄졌던 사건들이나 새로운 사건들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해.”
태현이 말했다.
“저… 부장님 카사노바 정체에 대해서는 뭐 알아내신 건 없는 겁니까?”
“안타깝게도 계속된 DNA 분석 대조 결과에도 어떠한 신분이나 정보가 나오지 않았어.”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숨길 수가 있는지…”
회의가 끝난 후 밖으로 나온 태현이 계단을 내려가던 재훈을 불렀다.
“강 형사, 같이 가. 혼자 가지 말고.”
“예?”
“아니 요즘 나한테 뭐 서운한 거 있어? 왜 이렇게 피하고 그래?”
“피하긴요. 일이 많아서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까 그런 거예요.”
“아, 그래? 내가 모르는 스케줄이라도 있나 보지? 우린 팀인데?”
“선배님도 참.”
“알았어. 그냥 관심받고 싶어서 농담 좀 해봤어. 그나저나 새로운 사건 목록 봤어?”
“안 그래도 그 새로운 사건들 생각하니 머리가 다 아프네요.”
“자, 그럼 오늘 하루도 시작해볼까?”
재훈과 태현은 새로운 사건을 검토하고 있었다. 태현은 굉장히 고민을 하다가 마침 옆을 지나가던 조 팀장을 불렀다.
“조 팀장, 이 사건 기록에 이게 뭐야? ‘브레인 터보 파워’라는 거 말이야. 혹시 알아?”
조 팀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거요? 요즘 그것 때문에 인터넷이 떠들썩하잖아요.”
“그래? 이게 뭔데?”
“그거, 머리에 헤드밴드처럼 쓰는 건데, 그걸 쓰면 펩스의 처리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지고 저장 용량도 커지고, 뇌기능이 활성화되면서 운동 능력도 향상되고, 거기다가 각종 성인병도 예방해주면서 노화도 방지해 준다는 거예요.”
“뭐라고? 무슨 만병통치약이야? 그리고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를 믿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그 사기꾼이 펩스는 했는데 나이가 많거나 원리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상대로 사기 치는 거예요. 어쨌든 믿는 사람이 있으니까 유행일 거고, 그러다 보니 사건 기록에 올라왔겠죠.”
“그나저나 이런 사건이 왜 이제야 올라온 거야?”
“저도 관심 있어서 좀 훑어보긴 했는데 관할 경찰서에서 제대로 수사를 안 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우리한테 온 거 같더라고요.”
“하여튼 게으른 자식들이 꼭 있어.”
태현은 잠바를 챙겨 입으며 재훈에게 말했다.
“자, 그럼 피해자 중 한 분을 만나러 출동하자.”
경상북도 영천시의 한 시골마을. 재훈과 태현이 어떤 집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와, 아직도 이런 시골집이 다 있네.”
“여기 농촌 마을 보존 지역이라 아직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거예요.”
태현이 벨을 누르자 인터폰에서 힘없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요?”
태현이 인터폰에 형사 팔찌를 보여주며 말했다.
“저, 서울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입니다.”
할머니는 급하게 나와 문을 열더니 둘을 맞아 주었다.
“아이고, 어서 오이소. 안 그래도 억수로 기다렸다 아닙니까. 영감! 서울서 형사님들이 오셨네요.”
집안으로 들어가자 누워계시던 할아버지가 재훈과 태현을 보고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재훈이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어르신, 몸도 불편하신 거 같은데 그냥 누워 계세요.”
할아버지는 연신 기침을 하면서 겨우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형사님들이 이 먼 곳까지 오셨는데 일어나야지예.”
할머니가 부엌에서 식혜를 내 오시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우야꼬. 뭐 드실만한 게 이거 말곤 없네요.”
태현이 식혜를 받아 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 식혜 무지하게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먹어보고 정말 오랜만이네요.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태현은 식혜를 꿀꺽꿀꺽 삼킨 후 말했다.
“와, 정말 맛있네요. 꿀맛이에요.”
“맛있다니, 다행입니다.”
재훈은 할아버지에게 사건에 대해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그 브레인 터보 파워는 어떻게 구입하시게 된 거예요?”
할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금세 눈시울이 빨개지시더니, 겨우 말씀을 꺼냈다.
“말도 마세요, 내가 미쳤재. 그게 뭐라고, 아들내미한테 돈까지 빌려다가 400만 원을 날려쁘렸심더.”
“400만 원이요?”
“예. 아들내미가 그 펩스라는 거 있으면 좋을 기라고. 그거 할 때도 지가 돈을 다 대줬는데…”
“처음에 그 판매자를 어떻게 만나시게 된 거예요?”
“그게, 옆 마을에 이장님이 어느 날 놀러를 오셨다가, 인터넷에 기가 막힌 물건이 나와서 샀는데 죽인다고 카드라구예.”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구입하러 직접 가셨던 거예요?”
“예, 직접 갔지요. 가서 보니 병원도 아니더라고예. 그냥 무신 창고 같은 데였는데, 그 판매자가 자기만이 설치할 수 있는 거라고 하면서 해줬지요.”
“어떤 식의 설치였나요?”
“그게, 말은 억수로 번지르하게 하드만 생각한 거하고는 다르게 너무 쉽더라구예. 그냥 머리 밴드같이 생긴 거 속에 뭐 철판 같은 걸 넣더니, 제 머리에 이렇게 둘러 주더라구예. 그러더니 좀 있으니까 다 됐다고 하더라구예.”
“그래서, 그때는 효과를 좀 보셨던 거예요?”
“그게, 그때는 그걸 하고 나니까 머리가 맑아지는 거 같고, 왠지 몸도 가벼워지는 거 같더라고예. 그리고 그 사람이 노인들은 밴드를 네 개 정도 겹치면 노화까지 방지된다고 하더라구예. 그래서 더 하면 더 좋을까 싶어서 나중에 세 개를 더 샀지요. 그랬더니 밴드 위에다가 밴드를 더 씌워주는 걸로 하더니 시술이 끝났다고 하데요.”
“그래서 정말 더 큰 효과를 보셨던 거예요?”
처음에는 쬐매 좋은 거 같더니, 나중에 보니까 더 좋을 게 없더라고 예. 그래가, 다시 가서 환불해 달라켔더니, 안된다고 효과가 있는데 왜 그러냐고 오히려 역정을 내 뿌리더라고예. 그래서 신고는 했는데 계속 늦어지고, 이렇게 형사님들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더.”
재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할아버지 머리맡에 놓인 헤드밴드를 보았다.
“혹시 저 밴드인가요?”
“맞습니더. 그겁니다. 근데, 저걸 지가 네 개나 사뿌렸씁니더.”
“그럼, 저희가 저걸 가져가 봐도 될까요? 저희가 서울에 본부 분석실로 가져가서 분석해 볼게요.”
“그라이소. 다 가져가시지예.”
재훈은 헤드밴드 네 개를 주섬주섬 챙기며 말했다.
“저희가 일단 이걸 분석해서 결과를 보고 연락드릴게요.”
할아버지는 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형사님들 부탁입니다. 제발 저런 나쁜 놈들 꼭 잡아다가 저처럼 멍청하게 당하는 사람 더 나오지 않도록, 꼭 그리해 주이소.”
“예, 저희가 최선을 다 해서 수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할머니는 대문 앞까지 마중을 나오시며 말했다.
“형사님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태현은 웃으며 말했다.
“예, 할머니 저희가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쉬세요.”
본부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태현이 헤드밴드를 여기저기 살피더니 말했다.
“아니 이게 뭐라고 그 할아버지는 400만 원이나 속으신 걸까?”
“노인분이 뭘 아셨겠어요? 속인 사람이 잘 못 한 거지.”
“참, 궁금하긴 하다. 이 속에 들은 게 뭘지.”
“그러게요. 우선 빨리 가서 분석을 해보죠.”
“그나저나 만약에 이거 분석했는데 진짜 효과 있는 거면 어쩌지?”
“에이, 설마요.”
둘은 본부를 향해 갔다.
며칠 뒤, 저녁 늦은 시각. 젤리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누군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젤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부러 자기 집보다 2층을 더 올라가서 내렸다. 그리고는 계단을 통해 조심조심 내려오기 시작했다. 계단통로에서 조심스럽게 자기 집 현관 쪽을 보는데, 아까 미행하던 남자가 자기 집 현관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남자는 벨을 누르다가 인기척이 없자 갑자기 계단 쪽으로 다가왔다. 젤리는 재빨리 위쪽으로 올라가 몸을 숨겼다. 남자는 계단을 통해 내려가며 전화를 했다. 젤리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예, 집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예, 예, 확인되는 대로 바로 제거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몸을 숨긴 젤리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다음날 SCCIT 본부 분석실. 재훈과 태현이 조 팀장을 찾아갔다. 태현이 궁금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 팀장, 며칠 전에 우리가 맡긴 거 분석 결과 나왔어?”
“예, 나왔죠.”
“그거 정체가 뭐야?”
“저도 많이 궁금했는데 막상 분석해보니 일종의 스테인리스로 감싼 자석 같은 거더라고요.”
“그게 뭐야? 효과가 있는 거야?”
“효과요? 글쎄요. 이걸로 무슨 효과가 있을 라나? 암튼 혹시 몰라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도 샘플을 보내 놨어요.”
“결과는 언제쯤 나와?”
“오자마자 보냈으니까 오늘 안에 나올지도 몰라요.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오케이.”
재훈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 사건 정리를 하고 있는데 핑크레드로부터 전화가 왔다. 재훈은 조용히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강 형사. 지금 전화받기 곤란하지?”
“네, 좀 그러네요. 빨리 말씀하세요.”
“그럼 내 말만 들어. 그 얼굴 없는 친구가 연락이 돼서, 강 형사가 부탁한 거 전달했거든. 그랬더니 알아보고 곧 연락 준대. 알고 있으라고 전화했어.”
“고마워요. 그럼 연락 기다릴게요.”
전화를 끊은 재훈은 왠지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지었다.
몇 시간 후 태현이 재훈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 헤드밴드, 국과수에서 그러는데 그냥 스테인리스 속에 자석 있는 거래.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그 사기꾼이 인터넷에 올린 각종 허위 광고들이랑 영상을 우리 서 순경이 다 정리해놨고, 다른 지역 피해자들도 계속 신고들을 하고 있어서 체포영장이 바로 발부됐어. 우리가 잡으러 가면 돼.”
“지원 조는 누가 간대요?”
“다들 바빠서 반장님이랑 조 팀장이 지원 나왔어.”
“예? 다들 그렇게 바쁘데요?”
“우리가 항상 다들 바쁘지 않냐.”
재훈 일행은 용의자가 있는 창원을 향해갔다.
다음날 새벽에 재훈 일행은 용의자가 있는 창고 앞에 모였다. 최 반장이 말했다.
“용의자는 전승호. 나이는 62세. 전과는 딱히 없는데 다들 조심하자고.”
“예!”
“그럼 나랑 조 팀장이 창고 뒤를 막고 있을 테니까 김 형사와 강 형사가 용의자를 만나봐.”
“예.”
재훈과 태현은 창고로 들어갔다. 재훈이 아무도 없는 창고 안에서 안쪽 사무실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다가가며 말했다.
“거기 누구 없어요?”
아무 인기척이 없자 재훈이 다시 외쳤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그때 안에서 한 노인이 나오더니 말했다.
“누구쇼?”
재훈은 형사 팔찌를 보여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특수 사이버 범죄 수사팀의 강재훈 형사입니다. 전승호 씨 되시나요?”
노인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소. 내가 전승호입니다만.”
태형은 체포영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전승호 씨, 당신을 사기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필요시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태현이 수갑을 채우려 하자 노인은 완강히 뿌리치며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왜들 이러시오! 내가 사기꾼이라고? 누가 그런 막말을 해? 난 잘못한 게 없소!”
재훈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동안 브레인 터보 파워라는 가짜 제품으로 사기 치셨잖아요. 체포합니다.”
“무슨 소리 하시는 거요! 내가 만든 브레인 터보 파워가 얼마나 혁신적인 제품인데, 사기라니! 그건 특허도 낸 거란 말이요!”
“일단 경찰서로 같이 가시죠.”
“아니 이 사람들이!”
노인은 강하게 저항했지만 곧 재훈과 태현에게 제압당해 수갑이 채워진 채 체포되었다.
SCCIT 본부로 돌아온 재훈 일행은 노인을 취조실로 끌고 들어갔다. 몇 시간의 취조가 끝난 후 재훈과 태현이 나오는데 서 순경이 다가와 물었다.
“와! 브레인 터보 파워 사기꾼 잡았다면서요? 뭐래요? 자백해요?”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묻지 마, 난 좀 쉬어야겠어.”
태현이 지나가자 재훈이 서 순경에게 말해주었다.
“대단하신 분이야. 자기가 만든 제품이 정말 효과가 있다고 굳게 믿고 계시더라고. 자기는 결코 사기를 친 게 아니래.”
서 순경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봐도 딱 사기인 걸 알겠더구만…”
“뭐, 특허도 내셨다고 주장하셔서 알아봤는데, 특허 출원을 한 거지 결정이 난 건 아니더라고.”
“암튼 웃기네요.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사기를 치시는 분도 대단하고, 속는 분들도 대단하고.”
“그러게. 이런 최첨단 시대에 말이야…”
그날 저녁, 젤리가 재훈의 집으로 놀러왔다.
“재훈씨, 브레인 터보 파워 사기꾼 잡았다면서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며칠 전에 그거 관련해서 조 팀장님이 자료 좀 달라고 전화를 하셨었거든요.”
재훈은 주방에 가서 차를 끓이며 말했다.
“참,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걸 속이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하더라구요.”
“그러게 말이에요.”
재훈은 과자를 꺼내 젤리에게 전해 주면서 말했다.
“더 신기한 건 뭔지 알아요?”
“뭔데요?”
“취조를 했는데 그분은 자기가 절대 사기꾼이 아니며, 자기가 만든 그 제품이 정말 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말도 안 돼. 그럼 그 제품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있대요?”
“그게 없는데도 우기시는 거죠. 국과수 결과는 아무 효과 없음으로 나왔어요.”
“도대체 뭘까요?”
“어쩌면 그 노인의 펩스 속에 누군가가 그 물건이 효과가 있다고 입력해 놓은 게 아닐까요?”
젤리는 알송달송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재훈을 꽉 끌어안고 키스를 하더니 한마디 했다.
“재훈씨 더 신기한 일 가르쳐 줄까요?”
재훈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뭔데요?”
“제가 오늘은 집에 가지 않고, 여기서 자고 갈 거란 거죠.”
“예?”
재훈은 놀란 눈으로 젤리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