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3화 소개받은 남자
서울시립중앙병원으로 간 재훈과 태현. 이현중 교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들을 맞았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재훈이 묻자 교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심장 발작을 연기했어요. 담당 간호사가 놀라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쓰러진 줄 알았던 미나 씨가 간호사를 밀치고 달려 나가 1층 로비로 바로 뛰어내렸어요.”
“전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뛰어내리려고 한 것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워낙 발작이 리얼해서 간호사가 순간 당황한 듯합니다.”
잠시 후 재훈과 태현은 영안실로 향했다. 복도를 걷던 재훈은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는 미나의 어머니를 보았다. 재훈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돼버려서.”
미나의 어머니는 재훈을 보고 입술만 겨우 움찔거리다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주먹으로 재훈의 가슴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태현이 놀라서 말리려고 손을 내밀자, 재훈은 막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미나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내 자식 죽은 거야 원통하지만, 형사님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다 그놈 탓이지. 그놈, 꼭 좀 잡아주세요. 내 딸, 편하게 눈감고 하늘나라 갈 수 있게. 꼭요.”
“예, 그놈 제가 반드시 잡겠습니다. 그러려면 어머니께서 꼭 한 가지 도와주셔야만 돼요.”
“그게 뭐죠?”
“미나 씨 펩스를 저희가 볼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그 속에 반드시 단서가 있을 겁니다.”
“뭐라고요? 지금 죽은 것도 모자라서 내 딸 머리를 열겠다고요?”
미나의 어머니는 화난 표정으로 재훈을 바라보다가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알겠습니다. 잡아야죠! 불쌍한 내 딸을 위해서는 더 한 것도 해야죠.”
“어머니, 이렇게 힘든 결정을 내리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재훈은 미나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다음날 SCCIT 자료 분석실. 분석기에는 펩스 한 대가 장착되어 있었다. 조사실 밖에선 재훈이 초조한 표정으로 복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때, 태현이 음료수 캔을 들고 다가왔다.
“강 형사, 너 그렇게 신경 쓰다 쓰러지겠다.”
재훈은 음료수를 받아 들고 괜찮다는 듯 태현에게 살짝 미소를 보냈다. 그때, 조사실 문이 열리고 조현일 팀장이 나왔다.
“분석 다 끝났어요.”
재훈과 태현은 황급히 조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재훈이 다급하게 물었다.
“팀장님, 뭐 나온 거 있습니까?”
“복원 작업을 세 번이나 하면서 조사해 봤는데, SOC[1] 안에서 강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외부 명령 프로그램 흔적이 발견됐어.”
『각주[1] SOC: System On a Chip. 칩 하나가 하나의 시스템을 포함하는 맞춤형 반도체』
태현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조 팀장, 시스템 구조상 외부 프로그램이 강제로 작동된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아?”
“원래는 그렇죠. 만약 프로그램이 강제로 다운로드됐다고 해도 내부 보호 프로그램이 그걸 막아낼 테니까요.”
재훈이 모니터의 결과를 보며 말했다.
“팀장님, 어떻게 해킹이 가능했을까요?”
“강 형사, 나도 그게 이상해. 왜냐면 시스템 속의 프로그램들은 뇌 속의 뉴런으로 전달되기 위해서 일종의 통역 시스템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고도로 압축된 암호로 변환되게끔 설계가 되어 있거든.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신기하게도 외부도 암호로 닫혀 있더라고. 아무리 열어보려고 해도 열리지가 않아.”
“암호를 풀 방법은 전혀 없는 겁니까?”
“확률 계산을 해봤는데, 만약 한국 뇌공학 연구소의 뉴로모픽 컴퓨터[2]를 사용해 암호를 푼다고 해도 최소 2000년 이상이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지.”
『각주[2] 뉴로모픽 컴퓨터: Neuromorphic Computer. 인간의 뇌를 모방한 컴퓨터로 인공지능을 탑재했다. 2036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 중 하나이다.』
재훈은 주먹을 불끈 쥐며 쿵! 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제길! 빌어먹을.”
그런 재훈을 태현과 조 팀장은 놀란 듯 쳐다보았다.
SCCIT 본부 옥상. 재훈과 태현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 형사, 형사는 말이야 사건 앞에선 끝까지 냉정해져야 해. 근데 너 지금 아주 많이 감정적인 거 같아.”
“알아요.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어요.”
태현은 재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강 형사, 힘내. 그럴 때가 있어. 하지만 그것만 알아둬. 미나 씨의 죽음은 강 형사 탓이 아니야. 강 형사는 충분히 열심히 노력했어. 단지 그건, 미나 씨의 선택이었을 뿐이야.”
“알아요. 힘 내볼게요.”
“그래, 힘내는 거다. 자, 내려가자.”
재훈과 태현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최홍규 반장이 3층에서 내려오다가 그들을 불렀다.
“오, 마침 잘됐다. 너네 회의실로 좀 와 봐.”
회의실로 들어간 최 반장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두 사람을 부른 건 이번 펩스 해킹 사건 때문이야. 피해자가 둘, 그것도 한 명은 자살. 사건 속도로 봐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아. 그래서 특별팀을 꾸리려고 해.”
태현이 말했다.
“하지만 반장님, 이렇게 인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그걸 다 어쩌시려고요?”
“그래서 강력계에선 자네들 둘만 빼오고, 증거분석계의 조현일 팀장과 자료 분석계의 서수연 순경을 붙여서 팀을 꾸몄으면 해.”
태현이 놀라며 큰소리로 말했다.
“예? 아니 무슨 현장 수사를 사무실 직원들이랑 해요?”
“그렇게 흥분하지만 말고 내 말을 들어봐. 조 팀장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니까 도움이 될 거고, 서 순경은 아직은 신참이지만 자료들을 엄청 빠르게 분석하잖아. 분명히 이 조합이 잘 맞아떨어지게 될 거야. 강 형사 니 생각은 어때?”
재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 나쁜 거 같진 않아요. 다른 팀들도 바쁘고 하니, 우선 4명이면 수사하기에 아주 어렵진 않을 겁니다.”
태현이 열분을 토하며 말했다.
“좋아요. 조 팀장이야 그렇다 치고, 서 순경은 아직 애기잖아요. 같이 현장 다니다가 혹시라도 뭔 일 당하면 어쩌려고요?”
“서 순경도 기본 격투술은 하잖아.”
“아니 그래도… 암튼 제일 맘에 안 드는 건 서 순경도 펩스가 없잖아요! 펩스가!”
“펩스 없는 게 뭐? 강 형사도 펩스 없이 사건만 잘 해결하잖아. 실적도 너보다 더 좋고.”
“아니 그건 그렇지만…”
“어쩔 수 있냐? 다들 바쁜데. 일단 결정된 사항이니까 내일부터 같이 다니도록 해. 알았지?”
“아유, 두통이 밀려옵니다. 반장님!”
“난 너보다 머리가 더 아프다! 다른 일로 신경 쓰느라고 아주 미쳐버리겠구만.”
“알았어요. 내일부터 넷이 같이 해볼게요.”
“그래, 김 형사 부탁 좀 하자.”
회의실에서 나온 태현은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다.
1시가 다돼가는 새벽. 한적한 인천 국제공항 고속도로 인천 방향. 적막이 감도는 주황색 가로등 사이로 점으로 보이던 하얀 헤드라이트 불빛이 점점 커지더니 재훈의 BK380이 엄청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재훈은 무언가 화가 난 듯 액셀을 꾹 밟고 있었다. 240, 260, 280… 속도계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가상의 사운드 배기음은 새벽의 공기를 갈라버릴 듯이 카랑카랑한 날카로운 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재훈의 머릿속에는 미나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 자신이 잡아주었던 기억, 미나가 자살을 한 뒤 병원 로비 바닥에 사람 모양으로 띄어져 있던 홀로그램의 현장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억은 좀 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영정 사진 속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재훈은 기억들을 다 떠올린 후 혼잣말을 했다.
“막을 수 있었어. 더 노력했어야 했어. 그때도 지금도… 모두 내 탓이야.”
차 안에서 내비게이션이 울리기 시작했다.
“1km 앞에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있습니다. 속도를 줄여주십시오. 속도를 줄여 주십시오.”
잠시 후 과속 단속 카메라를 지나갈 때도 재훈의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빠르게 지나갔다. 차 안의 내비게이션에서 다시 안내 음이 나왔다.
“규정 속도위반. 시속 130km 구간을 시속 312km로 통과하였습니다. 규정 속도 182km 초과로 벌금 500만 원. 벌점 45점이 부과됩니다. 안전 운전해 주십시오.”
재훈은 그제야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톨게이트를 지나 다시 서울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규정 속도대로 천천히 가던 재훈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차 안의 블루투스로 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현은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어. 강 형사,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 있어?”
“선배님, 저번에 핑크레드한테 받았던 주소 있죠? 그거 좀 알려주세요.”
“아니, 그거 물어보려고 이 밤중에 전화한 거야? 야, 피곤해. 내일 알려줄게.”
“안 돼요! 지금이 아니면 안 돼요. 꼭 지금이어야 돼요.”
“아, 이 자식 참, 또 시작이네. 직감이냐?”
“30분 뒤에 집 앞으로 나오세요.”
약 50분 후 태현의 집 앞에 재훈의 차가 도착했다.
“좀 늦었네?”
“죄송해요. 이것저것 좀 챙기느라고요.”
“근데 이런 밤중에 찾아가는 건 실례라고.”
“걱정 마세요. 원래 이런 사람들은 밤에 활동한다고요.”
둘은 차를 타고 주소지를 향해 출발했다.
용산의 한 허름한 주택가. 재훈과 태현이 차에서 내렸다.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세상에! 아직도 1980년대 같은 달동네가 있네.”
“어떻게 알아요? 선배님도 그 세대는 아니잖아요?”
“우리 아버지 어렸을 적 사진에 나온 배경이랑 비슷해서 말이야.”
둘은 노란 가로등이 켜진 골목을 헤매었다. 낡은 담벼락 위에서 들고양이 한 마리가 마치 감시라도 하듯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한 낡은 주택 앞에 다다르자 태현이 발길을 멈췄다.
“여기네.”
재훈이 벨을 눌렀다. 벨은 아무 소리도 안 났다. 몇 번이나 더 눌러봤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강 형사, 벨이 고장 났나 본데?”
“아니면 일부러 꺼 놓은 걸 수도 있죠.”
재훈은 문 앞에서 안쪽을 향해 외쳤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안 계세요?”
안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재훈은 두리번거리며 건물을 살폈다. 불은 분명 꺼져 있었다. 태현은 미심쩍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아무도 없는 거 아닐까?”
“잠깐만요.”
재훈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건물 옆 굵은 전선이 보이는 전기계량기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살짝 미소를 보였다.
“왜? 뭔데?”
“건물 위를 보세요.”
건물 위에는 태양광 발전시스템이 있었다.
“가정용 태양광 발전 시스템 치고는 좀 크죠? 여기 이것 좀 보세요.”
전기 계량기는 엄청난 속도로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분명 불은 꺼졌는데 계량기가 이렇게 빨리 돌아가요. 속도로 봐선 분명 일반 가정집은 아닌 게 확실하죠.”
재훈은 건물 뒤편으로 갔다. 창마다 방범창이 두껍게 설치되어 있었다. 태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어쩌지?”
재훈은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거꾸로 쥐고 방범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야! 강 형사 너 미쳤어? 우린 형사라고. 이건 불법이야!”
그때 창문이 드르륵 열리고 한 남자가 나타나 두 사람을 노려봤다. 아무 말 못 하고 잠시 바라보던 재훈이 급히 말했다.
“핑크레드 씨 소개로 왔는데요.”
남자는 두 사람을 놔두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안에서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난데, 어떤 미친놈들이 니가 소개해줬다면서 찾아왔는데. 어. 뭐? 알았어.”
남자는 다시 창가로 왔다.
“당신이 강재훈 형사요?”
“네, 그렇습니다.”
“들어오세요. 현관문 열어 줄 테니까.”
두 사람은 그렇게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냥 보면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였지만, 집 안쪽 두 개의 방에는 수도 없이 많은 컴퓨터와 복잡한 장치들이 서로 얽혀있었다. 집안 내부의 에어컨은 각각의 기계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남자는 거실 소파로 둘을 안내한 뒤 주방에서 커피를 내왔다. 태현은 형사 팔찌를 보여주며 말했다.
“저는 특수 사이버 범죄 수사팀의 김태현 형사이고, 이쪽은 강재훈 형사입니다. 이렇게 들어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임원웅입니다.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해서 주변에서는 편하게 임 박사라고 부르지요.”
“그럼 저희도 임 박사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집에 계시면서 불은 왜 꺼놓고 계신 겁니까?”
“어릴 때부터 혼자 어둠 속에 있는 걸 즐겼어요. 제게 필요한 빛은 모니터의 빛 정도면 충분했거든요. 어둠 속에 있다 보면 온전히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아서 깊은 생각하기에 좋은 환경이 되죠.”
“그렇군요.”
재훈과 태현은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커피의 맛을 잠시 음미하던 재훈이 깜짝 놀란 눈으로 말했다.
“와, 이거 안티오키아 유기농 커피죠? 정말 끝내주네요.”
“커피에 대해 좀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안티오키아산 유기농 커피입니다. 아주 구하기 어려운 거죠. 요샌 죄다 식물공장에서 자란 커피들만 넘쳐나니 커피 맛이 영 좋질 않아요.”
재훈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박사님, 뭐 좀 여쭤 볼 게 있어 왔습니다.”
“말해보세요.”
“얼마 전부터 펩스 해킹 사건이 일어나서 저희가 지금 조사 중입니다.”
원웅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해킹은 당한 사람들만 억울하지요. 아무것도 모르고 순간적으로 스르륵 하고 당해버리거든요.”
태현이 말했다.
“그럼 박사님 말씀은 펩스 해킹이 정말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불가능이란 게 어디 있겠습니까?”
원웅이 갑자기 침착한 표정으로 둘을 노려보며 말했다.
“만약에 방금 두 분이 마신 이 커피에 제가 수면제를 탔고, 곧 두 양반을 내가 죽일 거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순간 재훈과 태현은 그 자리에 얼어붙을 듯 소름이 돋았다. 뺨과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원웅은 그런 둘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하하, 그런 겁니다. 해킹 이란 건 당하는 것조차 알 수 없지요. 걱정 마세요. 그 커피는 아무것도 안 탔으니깐.”
재훈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정말 놀랬습니다.”
“그래서 알고 싶은 게 뭡니까?”
재훈은 잠바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실리콘 팩 속에 칩과 전선으로 이루어진 물체가 들어 있었다.
“이건 얼마 전 해킹당한 후 자살한 피해자의 펩스입니다.”
태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야! 강 형사, 너 이걸 어떻게 꺼내왔어? 이렇게 막 꺼내오면 안 되는 거라고!”
“선배님, 흥분하지 마세요. 잠시 빌린 거뿐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나 참.”
원웅이 펩스를 보며 말했다.
“형사 양반이 이걸 불법으로 꺼내온 걸 보니 뭔가 아주 중요한 모양이겠죠?”
“맞습니다. 이 안에 범행에 관계된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은데 고도의 암호로 보호되어 있어서 열 수가 없어요.”
“그걸 풀고 싶단 얘기군요.”
“네. 박사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원웅은 그걸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 펩스를 꺼내, 분석 장치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키보드를 눌렀다. 태현이 재훈에게 말했다.
“이런 시스템이 가정집에 있다니 이상하지 않아?”
재훈은 잠시 뭔가 생각을 하더니 임 박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박사님은 ED메이커[3] 시죠?”
『각주[3] ED메이커: Electronic Drug Maker. 전자 마약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이 양반, 눈썰미가 있으시네.”
태현이 놀라서 물었다.
“그럼 박사님은 요즘도 ED를 만드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지금 당장 나를 체포하시겠습니까?”
순간 태현이 머뭇거리자 재훈이 태현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배님, 일단 지금은 저 펩스의 해독 결과를 보죠.”
“야, 우리나라 최고의 슈퍼 인공지능 컴퓨터도 2000년이나 걸려 푼다는데, 어떻게 이런 아저씨가 풀어? 그것도 이런 허름한 장비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때 원웅이 말했다.
“암호 풀었습니다.”
태현이 깜짝 놀라며 원웅을 주시했다.
“예? 정말요?”
재훈과 태현은 원웅이 너무 쉽게 암호를 푼 사실에 한동안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태현이 전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분명 뚫기 어렵다고 했는데, 어떻게…”
원웅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암호… 제가 만든 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