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206화 (206/207)

# 목표 #

“당신과 잘 어울리는 명칭이군요.”

숨 쉬듯 마법을 쓰는 기술은 마룡과 무척이나 흡사하니 지은 명칭. 사장은 가볍게 칭찬한 뒤 물었다.

“그럼 소개는 잘 들었으니, 다시 일로 돌아가죠. 어떤 식으로 보상해줄 생각이십니까?”

“문명의 탑에 회사의 이동 방식 말고는 차원을 넘을 수 없게 해드리겠습니다.”

차원 이동의 제한. 그 말에 이사진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는 존재는 그럭저럭 있는 편이다. 마룡만 해도, 전력을 다하면 본신 정도는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차원 이동에 금제를 거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방식은 둘째 치고, 개개인의 이동은 개별적으로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차원 이동을 파기하는 방식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아뇨. 그럼 이동 중에 기술이 중단될 테고, 들어오려 한 존재는 죽거나 소멸할 테니까요.”

이게 차원 이동에 대한 일반적인 약점이다. 이동 중에는 어떤 존재라도 취약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으며, 차원을 이동하는 도중에 끊긴다면 누구도 살아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무차별적인 학살 방어 시스템을 만들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회사에 침범하는 존재들을 봉쇄하려는 것뿐. 즉, 차원 이동 자체가 불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완성된 차원 이동을 닫는 것과 수준이 다른 난이도를 자랑했다. 일반적인 상식선에 있는 존재라면 불가능하다며 역설을 토할만한 수준.

그러나 사장은 조용히 한마디만 했다.

“···당신의 특기가 그 부분이군요.”

나와 그는 수준은 같지만, 존재는 다르다. 올라간 방식도 다르며 신념과 의지도 달랐다.

따라서 나와 그는 ‘특기’라고 할만한 것이 달랐다. 둘 다 세계의 규칙을 깨달았지만, 힘의 사용방식이나 지식만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게 있었으니까.

사장의 특기는 공간을 다루는 것과 영 거리가 멀었다. 이 자리에 올라와서 명확하게 깨달았다. 그는 ‘창조’ 쪽에 특화된 존재다. 나는 특별 상점의 물품 중 약 1%를 만들 수 없다. 이 수치가 적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극한에 달한 물건들만 못 만드는 걸 생각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반대로 그는 저주와 해주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좀 약한 것 같았다. 상대방을 헤치고 미워하며, 조종하기보다는 자유의지에 맡기는 사장다운 모습이었다.

내 경우에는 마법에 관련된 신비가 특기다. 자연 원소와 공간 쪽을 잘 다룰 수 있다. 못하는 쪽은 기계다. 손가락은 인지를 넘어서는 존재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신비를 뛰어넘는 불규칙성을 보인 탓이다.

물론 모든 것은 나와 사장 수준을 기준으로 잡은 것이다. 하나로 끝을 넘어섰다는 건, 다른 것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못하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못한다는 소리일 뿐이다.

그러니 사장의 힘으로는 차원 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문명의 탑은 거의 완전해지겠군.”

회사의 중추 시설이 몰려 있는 문명의 탑은 차원 하나를 통째로 기반에 두고 있다. 거대한 시설들을 눈치 볼 것 없이 쓰고 있는 건 좋았지만, 반대로 협회에 들켜도 위치를 이동할 수 없는 건 단점이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언제든 공격을 대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룡들이 돌아가면서 문명의 탑에 거주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던가.

만약 차원 이동 자체를 막을 수 있다면, 회사의 중추는 거의 안정화 된다. 정말, 극히 드물게 스파이나 조종당하는 존재만 조심하면 될 뿐이다. 그렇게 된다면 비효율적이라도 마룡들을 직원 구원으로 보낼 수 있었다.

이사진의 눈길이 사장에게 쏠렸다. 어지간해선 그들끼리 안건을 정해왔지만, 이번만큼은 사장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느낀 모양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사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거래 조건은 그렇게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함께해서 기뻤습니다. 하연성 사원.”

“저야말로 영광이었어요.”

나와 회사의 인연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차원 이동을 막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장이 적당히 촉매가 될 물건을 만들고, 거기에 마법을 부여하는 것으로 끝났다. 겨우 5분이 채 안 걸린 작업. 세상의 규칙에 통달한 두 존재가 힘을 합치는 것만으로 기적 같은 일이 손쉽게 끝났다.

예상은 하고 있었겠지만, 실감하고 나자 약간의 욕심이 생기는 모양인지, 사장이 말했다.

“정말 회사를 나가실 생각이십니까? 더 커다란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혼자 해보고 싶어요.”

회사를 나오고 싶다는 충동은 꽤 과거부터 있었다. 그곳에서의 경험과 인연은 소중했지만, 종종 발목을 잡는 기분도 들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회사를 나가지 못한 것은 차원 이동 때문이었다. 한번 이동에 너무나 큰 비용이 들다 보니,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은 탓이다.

지금은 스펠북으로 스스로 이동할 수 있기에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그러자 사장이 물었다.

“그럼 하고 싶으신 일은 정하셨습니까?”

“으음···.”

해줄 말이 없다. 아직 깊은 생각을 할 틈이 없었던 탓에, 생각의 진전이 없었다. 사장은 가볍게 한마디 조언을 던져줬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작은 부분에서 생각해 올라가면 바라는 게 보일 테니까요.”

“···조언 감사합니다.”

나는 스마트 워치를 풀어서 사장에게 건넸다. 사장과 직원으로서의 인연은 끝났지만, 동등한 수준의 존재로서 우리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스스로 차원 이동을 펼쳐 지구로 돌아갔다.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지아에게 돌아온 것을 알렸다. 그녀는 미소지으며 마중하려다가 말꼬리를 흐리고 한곳을 바라보는 날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앞으로 자리를 이동해 집 한구석 허공에다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협회장··· 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와아. 이건 정말 대단한걸. 사장도 이 아이의 능력을 파악하진 못했는데.”

허공에서 목소리가 울리고, 검은 공간이 뚫리면서 한 여성이 나왔다.

마녀와 같은 복장의 젊은 여성. 평범한 물건들을 걸치며 마치 달관한 노인 같은 분위기를 내던 사장과는 다르게, 느긋하지만 생기 넘치는 모습의 존재였다.

그녀의 등장에 긴장감을 끌어 올리며 스펠북을 꺼내 든다. 세상의 규칙과 연결된 책은 지금 내가 원하는 마법을 구현해 내었다. 목표는 협회장의 뒤에 보이는 검은 구멍. 즉, 도약룡이었다.

“보자마자 그 아이부터 노리다니 너무한걸. 무력은 뒤로 미뤄두는 게 어떨까? 지금 나는 이야기를 하러 온 건데.”

하지만 그 시도는 준비단계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협회장 또한 기운을 발휘할 준비를 끝마쳤고, 둘이 충돌하면 지아나 다른 이들이 위험해지는 탓이다. 나는 가볍게 으름장을 놓으며 스펠북을 축소화시켜 소매 속에 넣었다.

“헛짓거리하면 그 용부터 찢어 죽일 겁니다.”

“그래 알았어. 너 생각보다 험한 아이구나.”

“그렇게 만든 존재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죠.”

여유로운 모습으로 소파에 앉는 협회장. 그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서 기가 찬다. 나는 지아에게 떨어져 있으라고 말하며 마주 앉았다.

“뭔가 음료 같은 건 안 나오는 걸까? 대접이 형편없는걸.”

“너무 많은 걸 바라시네요. 용건이나 들려주시죠.”

“좋아.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이니, 바로 말하고 떠나겠어. 협회에 들어올 생각 없니?”

사장과 같은 제안. 당연히 대답도 같았다. 다만 그녀와 사장의 차이가 있었다면,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간부는 당연한 거고, 원한다면 내 자리를 줄 수도 있어.”

“회사보다 적지만 꽤 많은 차원을 관리하는 집단이야. 원하는 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거야. 필요 없다고는 하지 마. 강한 힘을 가졌다고 해서 욕구에 초월해지는 건 아니란 건 잘 알잖아. 우린 성자(聖者)가 아니야. 당장 너만 해도 저 여우와 함께 있고 싶은 것처럼.”

“실력을 높이고 싶거나, 다른 원대한 일을 하고 싶을 때도 세력은 꼭 필요할 거야. 어때?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는 데.”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녀가 하는 말이 틀리진 않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협회라는 조직 자체가 불호(不好)였다.

“협회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그래? 그럼 어떤 걸 하고 싶은 건데?”

잠시 말문이 막힌다. 그녀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하고 싶은 게 없다면 힘을 갖는 게 맞는 거야. 나중에 원하는 게 생겼을 때, 할 수 있도록.”

다르다고 생각한다. 기준 없이 힘을 쥐면, 그 힘에 휘둘릴 것이다. 물론 내 힘이면 협회 전체를 제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제압한다는 행위 자체가 협회장이 노리는 바일 것이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그렇다면 더 이상 권하지 않겠어.”

설득은 여기까지였다. 나는 좀 더 끈끈하게 달라붙을 줄 알았던지라 조금 놀랐다. 그런 내 표정을 보며 그녀는 작게 미소지었다.

“너는 투쟁의 결과야.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것은 변함이 없어. 언젠가 나를 찾아오게 될 거야. 그때를 기다리겠어.”

그리곤 도약룡이 뚫은 구멍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고민했다.

‘나는 뭘 하고 싶었던 거지?’

지식을 얻고 싶었다. 지아와 오랫동안 사는 데 필요했다. 이런 내게는 그들처럼 커다란 동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둘 중 하나를 골라 활동하는 게 더 좋은 생활일지도 몰랐다. 사고(思考)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때 지아가 간단한 음료와 함께 물었다.

“괜찮으셔요?”

걱정스러운 얼굴. 내가 목표로 했던 건 이런 표정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네. 살짝 고민이 있어서. 아, 그보다 나 회사 나왔는데, 지아 씨는 어떻게 할래요? 원하신다면 계속 다녀도 상관없어요.”

“아뇨. 연성 씨 때문에 들어온 거니, 저도 같이 관둘래요. 으음··· 회사를 나왔다면 당분간은 시간이 남는 건가요?”

“그렇죠.”

“그럼 데이트가요. 최근에 여러 가지 일이 터져서 같이 돌아다닌 시간도 적었잖아요.”

“우와. 그 말을 들으니 죄책감이 몰려오네요.”

“다행이네요. 마음껏 돌아다녀도 문제없겠어요. 오랜만에 둘이서 즐겁게 놀아 봐요.”

“그래요. 둘이서 즐겁게··· 아.”

저도 모르게 따라 뱉은 단어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즐겁다’라는 단어에 여태까지의 일을 떠 올린다. 그래. 내가 회사에 들어와서 움직인 이유는 많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단 하나의 목표를 두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 상황을 즐겼던 것이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고, 짜릿한 장면이나 가슴 뻥 뚫리는 성장도 경험했다. 그게 다 좋았다. 냥트이족을 돕고, 아이자드의 소원을 들어주며, 필요한 존재들에게 마법 물품을 만들어도 줬다. 그 과정이 재미있었다. 그러자 동시에 회사에서 나오고자 했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전투만 벌어졌지.’

협회와의 충돌이 과열되면서 싸우고 발전하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두고 보니, 협회장이 나를 투쟁에 결과라 했던 말이 실감 난다. 그리고 내가 그 말을 싫어한 이유도.

“연성 씨?”

목표가 생겼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지아의 허리춤에 손을 감았다. 조금 놀라는 그녀를 보며 외쳤다.

“지금 당장 데이트하죠! 그게 가장 즐거울 것 같아요!”

내 목표는 크지 않다. 즐기는 것. 재미있을 거 같은 일을 찾아다니며 움직이는 거다. 물론 언제나 즐겁진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없이 추구할 순 있으리라. 그것을 목표로 한 내가 이 자리에 오른 만큼, 이것이 진화의 방향이라 믿을 것이다.

자, 그러니 지금은.

내 사랑스러운 연인과 함께 놀러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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