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장 #
협회가 물러났다. 나와 도칸의 전투가 끝났을 뿐이지만, 그들은 더 이상 전투를 하려고 들지 않았다. 사원들의 입장에서는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결말이었다. 표면상 그들이 얻은 게 거의 없었으니까.
그러나 싸움은 끝났다. 회사가 설립되고 최초로 생긴 거대 침공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다만, 싸움의 끝이 애매했기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앙금이 남아버렸다.
“···.”
“···.”
나와 사원들의 사이에 뭐라 말하기 어려운 공기가 흘렀다.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어쩌면 그들을 죽일지도 몰랐을 존재였으니까. 마지막에 정신 차리고 어느 정도 무마했다고 한들,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순간 미쳐서 저지른 일이라곤 하나, 자신을 죽이려 했던 존재에게 호감을 표할 존재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아직 힘을 가진 강자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선 것이 사장이었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그는 일부러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어 이목을 끌고, 깊숙이 고개 숙였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회사가 이러한 공격을 받게 된 것에는 제 책임이 너무나도 큽니다.”
“···아닙니다, 사장님. 사장님은 잘못 하신 게 없습니다. 쳐들어온 협회가 나쁜 것이죠.”
“맞습니다. 잘못된 건 협회입니다.”
“사장님이 사과하실 이유는 없어 보이는군요.”
어떤 심정으로 사과의 말을 했는지 알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여기 있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 상황의 원인이 그가 아님을 주장했다. 사장은 작은 감사를 표하며 고개를 들었다.
“본래 전투가 끝난 뒤라면 응당 뒤처리가 있겠지만, 다행히 지금 물적 피해는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움직이실 필요까지는 없겠군요. 지금은 각자의 공간에서 휴식과 치유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보상은 수일 내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내 쪽을 보며 말했다.
“하연성 차장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는 따로 회사에서 입장을 발표하겠습니다.”
그것으로 대부분의 사원들은 납득한 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여태까지 이상한 논리를 펼친 적이 없고 스스로 판단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다들 두고 보겠다는 입장인 듯하다.
그 후 사장은 회의의 참가가 가능한 이사진을 이끌고 탑 안으로 들어갔다. 나한테 딱히 말이 없는 걸 보면, 나중에 통보하거나 내부 회의가 끝난 뒤에 부를 모양이다.
이번에는 그만한 사고를 쳤으니, 내 의사를 묻지 않는 것에 대해 이견은 없었다. 따라서 나 역시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은 채, 지아를 찾았다.
“지아 씨.”
“···연성 씨.”
그녀가 있는 장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데드하울과 아이자드가 붙어 있었기에,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었으니까.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돌린다. 항상 살랑이던 여우 꼬리는 축 처져 바닥에 닿아 있었다. 나는 쓰게 웃었다.
‘그럴 만도 하지.’
무서웠을 것이다. 그녀는 요괴라서 힘에 대한 부분을 더 격렬하게 느꼈을 것이다. 본능에 가까운 일이다. 인간과 다른 종족이니만큼 이해해줘야 한다.
대신 마음만은 확인하고 싶었다.
“···집으로 갈까요?”
손을 내민다. 이것을 붙잡으면. 아니, 같이 집에 가자는 말만 수락해줘도 나는 괜찮았다. 그러나 거부한다면 상처받을 것 같았다.
“네.”
다행히 그녀는 망설임 없이 손을 잡아 주었다.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진 건 아니구나.’
마음 한구석에서 완전히 나를 피하면 어떻게 할까 싶었기에 적잖이 안심되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먼저 좀 쉴게요.”
지아는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레고드와 애들리 커플이 나간 뒤로 방이 하나 남았기에, 각방을 쓸 수 있었다. 그녀가 향한 곳은 그들이 쓰다 남은 빈방이었다.
나는 붙잡거나 말리지 않았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끈질기게 달라붙기보다는 나 역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다만, 생각을 정리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건 도칸과 싸울 때, 명확하게 정리를 끝낸 상태였다. 이 시간에 할 건 상위 존재에 오르는 문제였다.
‘···시작해 볼까.’
도칸과의 싸움에서 많은 걸 얻었다. 그 전투에서 더욱 지식을 받아들여 상위 존재에 오를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내가 갈 방향은 스스로 만들어낼 것이다.
이번 일이 벌어지기 전에 생각해두었던 스펠북의 구조를 떠올린다. 원할 때 필요한 방식을 끌어오는 구조. 이것에 변함은 없었다. 문제는 여태까지 골치를 앓았던 영혼과 기계의 혼합이다. 그런데 이 문제도 해결이 가능할 듯 싶었다.
‘기계가 굳이 철로 될 필요가 없었어.’
이번에 도칸과 싸우면서 얻은 지식에 그런 게 있었다. 기계라는 것에 대한 정의. 일반적으로 기계라고 함은 동력을 써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계는 꼭 철로 되어야 하는 걸까? 그런 의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아니다’라는 답을 얻었다. 그리고 대체할 것으로 아주 익숙한 것이 존재함을 알았다. 나는 멜드멜에게 말했다.
“멜드멜씨. 골렘을 만들 생각이에요.”
-···그렇다면 재료가 필요하겠군요. 제 연금술이 간만에 받은 값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멜드멜씨의 연금술은 언제나 필요해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뇨, 정말이에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예산을···
“자, 그럼 어서 내려가죠.”
나는 멜드멜과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
문명의 탑 내부. 그곳에선 이사진의 고민스러운 회의가 진행되었다.
“뭐라 말하기 힘든 안건이군요.”
이사진 중 누군가가 중얼거린 말에 모두가 무언으로 동의했다. 협회에 대한 전대미문의 습격도 그렇고, 그 습격은 가장 큰 피해를 줄 뻔한 것이 하연성이라는 점도 그랬다.
다들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비난이 두렵다기보다는 계산이 잘 서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그런 계산과 전혀 관계없는 집단도 있었다.
“다들 말씀이 없으시니, 저희 주인님과 동족의 의견을 먼저 전달해도 괜찮겠습니까?”
마룡. 그들은 시종을 대리인으로 보냈다. 본래라면 참석해야 할 만큼 중요한 안건이었지만, 이번에 정말로 열심히 일한 덕분에 다들 휴식을 막지 않은 탓이다.
따라서 그들은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의견을 정리했으며, 그것을 시종에게 전달해서 통보를 부탁한 상황이었다.
“···알려주시게.”
“네. 주인님을 포함한 마룡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며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죄를 책망하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회사의 방침이니, 잘못은 일로써 갚아야 한다. 그러나 하연성이 가진바 힘이 너무 강하니, 사장의 옆에서 일하길 소원한다. 고로, 그에게 문명의 탑 수호와 정비를 맡기는 걸 제안한다.’”
장황하며 꽤 타당해 보이는 연설이다. 물론 이건 마룡들이 짠 게 아니라, 그들의 잡담을 시종들이 그럴듯하게 조합한 것이다.
본래는 ‘회의 있대.’ ‘안건은?’ ‘하연성 처리.’ ‘알 게 뭐야.’ ‘귀찮아.’ ‘···잠깐. 이참에 그 마법사에게 우리 일을 떠맡길 수 있지 않을까?’ ‘오오! 좋은데! 그런데 어떻게?’ ‘회사는 벌보다 일을 주잖아. 그거 써먹자.’ ‘세니까 사장 옆에다 두라는 핑계도 주고.’ ‘너흰 천재야.’ 같은 대화였다.
이사진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럴듯한 포장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음을 부정하진 못했다.
다만, 이 결론으로 모든 사원이 납득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았다.
“머리가 아프구려. 좀 더 세세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데.”
“그럼 하연성의 행적을 하나하나 따져보죠.”
“그게 좋아 보이네요.”
도무지 명쾌한 판단이 서질 않자, 이사진은 명확한 논공행상을 따지기로 했다.
“우선 순수하게 이번 일만 따지고 보겠습니다. 그럼 하연성이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계신 분 있으십니까?”
“제가 알고 있습니다. 마법사로서 오셨기에, 신분 확인 없이 보안의 탑 상층부에 한 자리를 드렸습니다.”
“거기서 한 일은?”
“1차 공격의 창조생명체의 지배권 강탈입니다. 골렘과 가고일이 주 강탈요소였습니다.”
“아아. 그 일은 나고 기억나는군. 덕분에 공세로 이어갈 수 있었다.”
“그 후에는?”
“그건 내가 기억한다네. 해골용 위에 정령을 태워서 눈을 뿌렸지. 키메라를 막는 데 꽤 도움이 됐어.”
“그 후로 다시 주인님을 포함한 마룡님들께 다가와 조종자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거기서 조종자들의 위치를 파악하셨고요.”
“전사들에게 온 건 그다음이었군. 조종자들을 치기 위해 타격대를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꽤 처리했었지, 아마?”
“으음. 아마 그렇다고 생각은 되는데··· 문제는 그 이후로군.”
“타격대로 나간 전사들의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 검은 리자드맨··· 도칸과 하연성의 싸움에 휘말려서 보호를 받을 수 없었지.”
이사진과 문명의 탑이 버틸 수 있었던 건 마룡들의 힘이 컸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수호를 받지 못한 존재는 대부분 죽었다는 소리와 같았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되지?”
“서류상 173입니다.”
“크군.”
“부장급 수준이 그 정도면 1/3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건가.”
일반적으로 부장급이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쉽게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회사의 위기를 구하는 데 나름 역할이 컸다 해도 말이다.
“으음···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 것 같은데.”
이사 중 한 명이 조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애초에 도칸이란 리자드맨은 왜 그렇게 된 건가? 솔직히 그자가 그렇게 되지만 않았다면 우리가 머리 아프게 고민할 이유도 없었던 것 아닌가.”
“···그 부분은 제가 설명해 드리죠.”
사장이 끼어들었다. 그는 도칸이 변하게 된 것에는 협회의 소행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것이 사용하기 무척 까다로운 것이며, 사원 중 한 명은 같은 일을 당하고도 버텨냈다는 이야기를 추가했다.
이사진의 고민이 다시금 깊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는 없었다. 그들은 결론을 내렸다.
****
“됐다.”
집의 지하실. 나는 기계를 대신할 골렘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영혼 수정에 골렘의 뼈대를 집어넣고, 바깥까지 빠져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영혼과 기계의 일체를 이뤄낸 것이다.
더군다나 골렘은 행동원리와 저장 용량을 마법으로 쓰는 창조체다.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궁합이 맞는 녀석이었다.
“기분은 어때, 라이브러리(Library).”
도서관이란 이름을 붙여준 인공 영혼 골렘에게 묻자, 녀석은 거미 다리 같은 골렘의 뼈대를 움직여보며 말했다.
-훌륭합니다! 역시나 저를 창조하신 분! 몸에 위화감 하나 없이 잘 움직입니다!
“하하. 다행이네.”
뭔가 이름과 안 어울리는 성격이다. 하지만 이 일에 성격은 별로 상관없으니 내버려 두곤, 명령해보았다.
“그럼, 한번 검무를 써봐.”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라이브러리는 검무를 통해 세상의 규칙을 읽게 된다. 그 무수한 지식 속에서 버티는 게 이 작업의 목표였다. 이건 도칸과의 싸움으로 얻은 지식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 그 전투는 물탱크에 수도꼭지를 최대한 돌려놓는 것이라면, 이 작업은 그냥 바닷물을 통째로 쏟아 넣는 것에 가까웠다.
한 번에 들어오는 지식 량이 다르고 쉽게 끊을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영혼과 골렘의 특성을 가진 라이브러리라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러나 내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검무의 발현에 성공했습니다! 지식의 저장 공간이 부족함에 따라, 일부만 받아들였습니다!
“됐다!”
성공이었다. 라이브러리는 골렘의 특성으로 미치거나 이상한 존재로 변하지 않고 특정 지식을 받아들였다. 나는 곧장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스펠북을 만들어 라이브러리와 연동시킨다. 본래는 스펠북 안에 라이브러리를 넣으려고 했는데, 계획을 바꾸었다.
‘···가벼운 키를 만들어둘까.’
어차피 연동은 약간의 원거리에서도 가능하다. 그러니 혹시라도 스펠북을 빼앗겼을 때를 대비해 라이브러리를 신의 손에 박기로 했다. 마침 하나가 남아서 딱 좋아 보인 탓이다.
그렇게 신의 손에 라이브러리를 고정시키고, 스펠북과 연동시켜 손에 들었을 때.
나는 머릿속에 스위치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육체가 속으로부터 변해가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라고 바라온 상위종족으로 올라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