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203화 (203/207)

# 차장 #

마치 세상을 가득 채울 것만 같은 두 기술이 대치한다. 물론 그 힘의 차이는 무척 크다. 비교하자면 태양과 달의 수준이다. 내가 태양이고, 도칸이 달. 둘 다 어마어마한 파괴를 실현할 힘이었지만, 그야말로 하늘과 땅 같은 차이였다.

그러나 도칸은 웃었다.

“이 충돌로 우리는 한층 더 나아갈 것이오!”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나와 도칸의 기술이 충돌했다. 너무나 거대한 힘은 순식간에 결판을 내지 못했고, 주변에 영향을 주었다.

대기가 찢어진다. 땅이 울부짖는다. 그런 와중에 나는 두 기술의 충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반응하여 어떠한 현상이 벌어지는지 살폈다.

그곳에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었던 탓이다.

‘아아.’

머릿속의 지식이 퍼즐 조각처럼 연결된다. 뇌가 타버릴 것 같은 열기를 동반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근본이 되는 것. 세상의 규칙. 알게 된다면 만물을 창조하며 파괴할 수 있는 그것이 내게 들어온다.

‘조금만 더.’

이제 한걸음. 나는 기술의 충동이 퍼지는 여파를 바라보았다. 공기의 성분이 얽혀 들어간다. 그것은 독이 되었다가도 더할 나위 없는 향을 피우기도 한다. 대지는 갈라졌다. 어느 부분은 솟았으며, 어딘가는 꺼졌다. 일부분은 생명이 싹트고, 물이 솟으며, 양질의 토양이 되었다. 한편으로 다른 곳은 생명이 사라지고, 사막처럼 말라갔으며, 대지마저 녹여버릴 용암이 치솟았다.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이 눈앞에 드러난다. 여기에 내가 알고 싶은 지식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명체가 보였다.

“끄르륵!”

“크아아···”

“퀘에에엑!”

죽음. 오로지 죽음만이 그곳에 가득했다.

“···아?”

세상의 모든 것이 펼쳐지는 가운데, 그곳에만 죽음이 펼쳐져 있었다. 적응하지 못한. 아니, 이걸 적응이라 해야 할까. 그저 파괴의 여파에 휩쓸린 존재들이 죽어가는 게 보였다.

지금 당장은 키메라들만 보인다. 하지만 저쪽 한 편에서 마룡들이 안간힘으로 지키고 있는 회사의 존재들도 있었다. 풍전등화다. 지금이야 막아냈지만, 곧 무너질 성벽이다. 최전방에 있던 보안의 탑은 이미 무너졌다. 마룡들이 추가로 도착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가 아는 존재들. 사랑하며 지키고 싶은 존재도 있었다.

‘나는 무슨 짓을 한 거지?’

머리가 식는다. 앞으로 한 발짝만 올라서면 세상의 지식을 얻을 수 있건만, 그것을 버린다. 그리곤 반대로 해석해 들어갔다. 충돌하고 있는 두 기운이 사라지게끔, 파기 주문을 만든다.

“무슨 짓이오?! 역사를! 신화를 망치려 하는 것이오?! 다시 생각하시오. 우린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는 거요!”

도칸이 말렸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이건 내 방식이 아니에요.”

“세상 어떤 존재도 다른 방식을 쓸 순 있소!”

“신념에 어긋납니다.”

“신념은 바뀌기도 하오!”

“다른 존재들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시오!”

“도칸, 난 말이죠.”

파기주문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앞으로 한 발짝 앞이었을 뿐이다. 지금 눈앞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 대부분 알고 있다. 본디 마법만 가능한 일이지만, 상관없었다. 저것은 마법과 엮인 것이니까. 귀찮은 점이 있다면 일부만 알아도 파기할 수 있는 일반 마법과 달리, 80% 이상을 해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안 그러면 모인 힘이 물리적으로 퍼져버린다. 대 폭발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피해 없이 파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해석이 필요했다. 시간도 좀 있어야 했고, 파기하는데도 절차가 있었다. 나는 바람과 땅을 조종하여 부글부글 끓고 있는 기운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신의 손으로 그 위에 문자를 써 내려갔다.

“그만두시오!”

도칸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공격에는 힘이 없었다. 어느새 검은 비늘은 하얗게 새버리고 피부가 축축 늘어난 모습이 보인다. 한눈에 봐도 ‘늙었다’, 혹은 ‘생기가 빨렸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나 역시 지친 상태였지만, 그와 같이 산송장 상태는 아니었다. 도칸은 울부짖으며 무기를 던지고 기술을 펼쳤다. 하지만 그것들은 튕겨 나갔다.

“···멜드멜, 아직 있었어요?”

-호위 대상을 두고 도망칠 슬라임은 아닙니다. 다만, 죽을 뻔한 것은 사실이니, 나중에 생명수당을 좀 챙겨주셨으면 합니다.

“많이 드릴게요.”

멜드멜과 핸드의 영혼 장벽, 그리고 코트의 힘을 도칸이 뚫어내진 못했다. 나는 충돌하는 힘을 조금씩 풀어 헤쳐갔다. 마법 문자가 써지는 곳이 조금씩 자연으로 흩어진다. 거대한 기운은 무너진 이 땅을 원래대로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아아! 이럴 순 없소! 진화의 실마리가! 어째서! 이번 일을 놓치면 다시 오르지 못할지도 모르는 데!”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무책임한 발언이었지만, 사실 속으론 자신 있었다. 이런 일 벌이지 않아도 상위 존재에 오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도칸은 내 말을 부정했다.

“거짓이오! 그런 일은 없소! 투쟁으로 인한 발전! 진화! 이것 말고 다른 길은 없단 말이오! 만약··· 만약 마법사 하연성이 그 길을 책하지 않겠다면!”

발작하듯 외치던 그는 이윽고 기술을 펼친다. 빠르고 강력한 것. 목표는.

“강제로 깨닫게 해주겠소!”

두 기운의 사이로 도칸이 다시 한번 힘을 쏟아부었다. 서로 충돌하며 세상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던 기운들은 거대한 충격에 지금이라도 터질 듯이 가속했다. 나는 더 이상 기운을 하나씩 잘라낼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1/10 밖에 못 줄였는데!’

이대로는 안 된다. 방법을 바꿔야 했다. 나는 완전히 취소하는 것보다 규모를 줄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이내 그것도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곤 이를 악물었다.

‘···안 되는 건가?’

짧은 시간. 많은 방해 요소. 가진 물품의 부족. 머릿속에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나마 떠오르는 건 하나. 회사의 반대 방향으로 힘을 분출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원들 중 강한 존재들은 살 수 있다. 마룡들과 사장, 이사진 중에 방어 기술이 있는 존재들은 살아남으리라. 하지만 나머지는 여파에 사라질 것이다.

거기엔 힘의 방향을 유도할 나도 포함되어 있었고, 지아도 껴 있었다.

‘하지만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내가 저지른 잘못이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높은 방향으로 걸어야 한다. 그렇게 합리화를 끝냈을 때.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정말 오랜만에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하···”

회사 초창기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정말 이 목소리에 많이 의존했는데. 강해지고 자신감이 붙으면서 어느 순간 듣지 못했던 목소리다.

덕분에 긴장이 쑥 풀렸다. 그 목소리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과 같았다. 언제나 더 나은 방법이 있을 때면 들려왔으니까. 나는 가벼운 심호흡을 하며 방법을 고민했다. 시간은 없었지만, 머릿속도 빠르게 돌아갔다. 방법을 떠올릴 때마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릴 테니까.

그렇기에 가장 최선의 방법부터 떠올렸다. 모두가 상처 없이, 파괴된 장소마저 되돌리는 수준을 목표로 잡았다.

그리고 생각해 내었다.

“후우···”

신의 손을 꽉 쥐고 움직였다. 도칸은 또다시 움직이는 나를 보며 소리쳤다.

“이미 끝났소! 더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소!”

“그건 모르는 일이죠.”

상점창을 열었다. 마법펜과 잉크를 검색해 몽땅 사들였다. 바람을 움직여 펜들을 조종한다. 섬세한 부분은 인형술과 염동력을 썼다. 그러자 300여 자루의 펜이 허공을 날아다녔다.

“그, 그걸 전부 다룰 수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죠!”

300여 자루의 펜을 지휘한다. 신의 손으로 굵은 중심선을 그리면 작은 펜들로 실선같이 기운을 퍼트렷다. 두 기운의 충돌이 거세지는 와중에도 작업은 빠르고 정확했다. 그리고 터지기 직전에 완성해냈다.

[-세상 만물은 내 손아귀에 있다-]

짧은 시동어와 함께, 기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저건 내가 해석하지 못한 부분. 약 20%에 해당된다. 물론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저 정도는 감당할만한 마룡이 모여 있었다.

나는 남은 80%에 집중한다. 바깥으로 나가려는 기운을 회전시킨다. 안으로, 안으로. 그것은 곧 하나의 흐름이 되며, 규칙으로 완성된다. 그것은 다시 작게 압축했다.

쳐다도 볼 수 없는 크기에서 윤곽의 일부가 보이는 모습이 되고, 전체가 보일 정도로 줄어든 뒤, 이윽고 사람의 머리만 한 구슬이 되었다.

끊임없이 힘이 순환하며 숨 쉬듯 내뱉고, 빨아들인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 같았다.

나는 그것을 신의 손 세 번째 부분에 끼워 넣었다. 허공에 문자를 써 내려갔다.

아름다운 문자가 허공에 수를 놓는다. 마법 문자가 완성될 때마다 주변 환경이 회복되었다. 갈라진 땅이 도로 붙었으며, 공기는 정화되고, 물은 원래 자리를 되찾았으며, 무너진 보안의 탑도 다시 세워졌다.

다만, 이미 쓰러진 생명만은 되살릴 수 없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신이 오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이다.

“···하하하하···.”

도칸은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에겐 더 이상 어떤 힘도 남아 있지 않아 보였다. 두 기운을 폭발시키기 위해 그야말로 온 힘을 다 썼을 테니까.

“어째서··· 어째서 진화의 가능성을 포기한 것이오?”

“내가 원한 방향이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마법사 하연성이 바라는 방식은 무엇이오?”

나는 웃으며 말해주었다.

“그냥 조용히 혼자서 달성하는 거요.”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것참 마법사 하연성 다운 일이로구려.”

도칸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나는 아직도 그가 어떤 경유로 인해 이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 이 부분은 내가 상위 종족에 올라서야 할 수 있는 요소이리라. 그렇기에 어떠한 말도 해주지 못했다. 그가 스스로 그런 상태가 된 걸 수도 있었으니, 복수를 약속하지도 못했다. 흩어지는 그를 바라만 보는 게 전부였다.

****

“끝났네.”

협회장은 창밖의 상황을 보며 아쉽다는 듯 내뱉었다. 하연성의 상황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가 이번 전투로 상위 종족에 올라섰다면 투귀(鬪鬼) 같은 것으로 변화하여 끊임없이 싸움을 탐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연성이 지식을 탐했던 것보다 심하게.

그러나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차원에 입힌 피해는 원래대로 돌아갔으며, 보안의 탑도 거의 멀쩡하게 원상 복귀되었다. 소실된 게 있긴 할 테지만, 다른 탑이 있으니 복원은 어렵지 않다. 마룡들은 하연성이 처리 못 한 20%를 치워냈다.

키메라와 조종사들은 도칸과 연성의 싸움으로 전부 죽었다. 악마들은 도망쳤지만, 상위의 존재들이 대폭 소멸했다. 아마 당분간은 다른 걸 할 새도 없이 내부 다툼이 지속되리라.

협회가 이번 공격으로 얻어 낸 것은 겨우 사원이 좀 죽은 게 전부였다. 커다란 투자를 했지만, 결국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이다. 한 세력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건만, 그녀의 표정은 평안했다.

반대로 사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에겐 이 싸움의 여타가 눈에 보인 탓이다.

‘그녀의 주장이 힘을 얻을 것이다.’

투쟁으로 인한 발전. 회사는 이 침공 결과로 인해 점점 더 과격해질 것이다. 힘을 원하고, 힘의 발전이 모든 것의 기초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에 회사가 입은 가장 큰 손해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하연성이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 그러면 정말로 회사가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칭찬이나 포상을 해 줄 수도 없다.’

이번 일을 해결했다고는 하나, 그는 원인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사원들이 죽었으며, 한때나마 회사의 중추 파괴를 시도한 점을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판단할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어려우리라.

사장은 아픈 머리를 문지르며, 어느새 사라져 버린 협회장의 자리를 정리했다.

이젠 이 자리처럼 뒤처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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