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장 #
타격대들은 급조되었다. 또한 그 수준도 각양각색으로 맞춰졌는데, 이는 전적으로 개개인의 무력과 조합, 그리고 이사진이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적의 머리를 타격하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 우리의 목표는 탑을 보호해야 하는 걸세.”
“가장 강한 전력은 움직이지 않는 게 맞다.”
과연, 무수한 경험을 쌓아온 존재들은 달랐다. 매력적인 타깃에 현혹되지 않고, 중심 목표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그렇게 경험 많은 이사진과 전사들 각각의 조합을 통해, 최소한의 약점을 보완한다. 장점을 늘리는 것도 가능했지만, 될 수 있으면 단점을 줄이는 방향으로 했다. 적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었고, 피해가 적은 것을 목표로 한 탓이다.
덕분에 각자 타격 목표를 정하긴 했어도, 위험하면 후퇴하거나 여력이 남으면 도움을 주는 등, 리더에게 각자 재량권을 주었다.
그리고 리더 중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존재들이 섞여 있었다.
도칸, 그리고 휘아. 열 몇 개의 타격조 중에서 이 둘이 각각 하나의 조를 잡아 리더를 맡게 되었다.
휘아야 실력이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도칸은 조금 의외였다. 나름 강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부장급들을 이끌만한 수준인지는 의문이 들은 탓이다.
‘뭐, 문제는 없겠지.’
그들 스스로 정한 일이다. 토 달지 않고, 할 일을 준비했다.
나는 개인으로 타격대를 맡아 움직이기로 했다. 마법사는 아직 손이 남았고, 전사로서는 이사진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격대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출발했다.
****
적의 머리를 날려버리기 위한 타격대. 도칸은 그들을 이끌면서 끓는 속을 달랬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본래 이 싸움은 부장급의 전투력을 가진 존재만 모인 상황이다. 도칸의 수준이 과장 정도라는 걸 생각해 봤을 때, 그는 참여할 자격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야기가 달라졌다.
하연성이 검무와 마법을 합쳐준 기술로 인해, 그의 무력이 재평가된 것이다.
덕분에 이 싸움에 불려 나왔고, 전격 계열의 마법을 써서 적의 명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로 타격대의 리더가 되었다.
그에게 강자들을 이끈다는 건 생소한 경험이었다. 자기 차원에서야 손에 꼽히는 강자이니, 다른 존재들의 경외심을 받아왔지만, 회사에서는 이사진을 빼고도 간신히 중간 정도의 수준이다. 그는 이끄는 존재가 아닌, 이끌리는 존재였다.
이 상황에 얼떨떨해하면서도 키메라들을 뚫고 나아갔다.
위치는 아이자드가 냉기를 뿌린 곳과는 반대 방향. 변온동물이라 차가운 곳에 가지 못하는 걸 배려받았다. 이건 그의 일행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냉기가 취약점이 있는 존재들이 몰려가는 것이다.
덕분에 키메라들은 더 많았지만, 뚫는 데 문제는 없었다. 그만큼 강자들이 많았고, 그가 익힌 마검무는 상당히 강력했다.
“도칸, 언제 그런 기술을 익힌 건가?”
“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요? 검무하고 마법을 같이 쓰는 건가요?”
“하지만 도칸은 마법에 마자도 모르는 외골수인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소.”
주변에 그를 아는 소수는 파격적인 변신에 강한 흥미를 보여 왔다. 도칸은 이쯤 돼서야 자신이 배운 마검무의 가치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세상에 단 둘밖에 쓸 수 없는 기술. 게다가 검무와 연계시키는 마법이란, 상대방에게 기습적인 피해를 줄 수 있기도 했다.
실제 그 위력은 타격대의 목표를 만났을 때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크아악!? 마법 도구를 감추고 있었는가!?”
그들이 맞닥뜨린 적은 꽤나 강력한 인형술사이자 염동력을 가진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존재도 마검무의 앞에서는 맥을 추기 어려웠다. 일단 검무 하나를 완성하면, 검무, 마법, 검무, 마법의 연속적인 공격이 가능한 탓이다.
도칸은 강한 마법 도구에 대한 위력을 깨달았다. 그는 두 번째 타격지점으로 이동하며 생각했다.
‘무서운 힘이구려.’
마검무를 익히기 전과 후의 차이가 엄청나다. 비록 마검무에 적응하는 시간이 있었다곤 하지만, 검무를 통째로 익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적은 노력으로 더 커다란 힘을 내게 된 것이다.
마치 사람들의 무기가 검에서 총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처럼.
‘이게 바로 발전이구려.’
자신이 한 것은 너무나도 적다. 그저 기술자. 하연성이 계발한 것을 사용하는 것으로 평생을 바쳐온 것보다 커다란 힘을 낼 수 있었다. 물론 이 기술에는 검무가 기본으로 깔린 것이다. 하지만 도칸은 확신했다.
검무만 익힌 존재와 마검무를 익힌 존재의 차이를.
둘의 시작지점이 같아도 결과는 다를 것이다. 검무를 익힌 존재가 재능이 더 높아도 마검무와 싸우기 어려울 것이다. 약 두 수에서 세 수. 그 정도 차이가 있어야 간신히 호각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그것을 명확하게 깨달은 도칸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발전이란 것은 다툼에서 오는 모양이구려.’
적을 더 많이 죽이려는 것. 더 강한 힘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발전이라는 생각. 그러자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려왔다.
-역사는 전쟁의 기록.
-피가 흐르고, 시체가 쌓일수록 발전하는 것이 생명체.
-세상 모든 존재는 약육강식. 따라서 모든 존재는 강하게 먹는 것을 추구하리라.
-그것이 발전.
-그것이 진화.
-그것이 생명체의 근본.
그는 어느새 검은 공간에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다음 장소로 이동 중이던 도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뜀박질했다. 그러면서 수긍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구려.’
진화를 꿈꾼다. 발전하려 한다. 생명체로서 살아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일. 유전자 속에 각인된 본능. 도칸은 반박하지 않았다.
-선택하라.
-강함의 갈림길.
-성과 낮은 노력과.
-발전된 기술.
-무엇을 원하는가?
‘본인은···.’
도칸은 손을 뻗었다. 검은 과실이 그 위에 떨어진다. 그는 이것이 기술의 결정체라는 것을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 회사에서 기술서를 팔고 있듯이, 이 검은 과실 속에는 지식이 가득 들어 있다.
더군다나 그 내용물은 검무와 연관되어 있었다. 검무가 펼쳐지는 이유. 방법. 원리. 이것을 먹으면 모든 걸 깨우칠 수 있으리라. 세상에 모든 검무를 자유롭게, 상황에 맞춰서 쓸 수 있을 것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목소리는 검은 과실을 더 떨어트렸다. 각종 지식이 그의 손에 흘러내렸다. 이것을 먹는다면 새로운 경지에 오를 수 있다. 그야말로 마검무 이상의 기술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마치.
‘마법사 하연성처럼 말이오.’
그것은 너무나 매력적인 유혹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를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많은 재능을 가진 인간. 그와 같이 될 수 있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도칸은 과실을 삼켰다.
입을 크게 열고 한입에 수많은 과실들을 넣어 씹었다.
역겹고 냄새나는 그것을 삼키며 그는 말했다.
“이것이 바로 진화로구려.”
****
휘아는 검을 휘둘렀다. 눈앞을 가로막는 키메라들은 검기에 버티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사진이 되지 못한 존재 중, 무공에 한에서라면 거의 최강자에 가까운 존재. 그녀는 다가오는 키메라들의 움직임과 수준에 맞춰, 무공을 사용한다.
스승에게 배운 수없이 많은 무공들. 그것을 적재적소에 적당한 힘을 쓸 수 있는 방향으로 쓰는 것이다.
무공 실력과 거의 완벽한 최적화가 되어 있다고 말할 만한 그녀의 칼 놀림은, 주변 실력자들에게도 감탄을 자아낼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끝없는 불안감에 빠져 있었다.
‘나아갈 수 없다.’
그건 언제부터였을까. 무수히 노력해도 조금도 발전하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던 때는. 물론 발전이 멈췄던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경지가 성장하기 전에 막히는 기분은 분명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무언가가 막혔을 때, 그렇게 되면 멈추는 것이 아닌 제자리걸음이 된다. 뒤로도 갔다가 뛰어보고, 돌아도 보며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막힌 것을 뚫으려 한다.
그러나 지금은 무언가에 붙잡힌 기분이었다. 수련을 해도 나아가지 않고, 안 해도 후퇴하지 않는다. 이걸 정확하게 깨달은 것은 검갑룡 토벌에서 몸을 다치고 쉬었을 때였다. 회복을 위해 검을 잠시 놓았는데도, 실력이 퇴보하지 않았다.
스승인 청전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는 말해주는 것이 없었다. 예상한 반응이기에 실망하진 않았다. 그는 무공 자체에 대한 질문은 받아줄지언정 고민에 대해서는 답해주지 않았으니까. 그게 경지의 성장에 도움이 된 적도 많았으므로, 그녀는 크게 신경 쓴 적이 없었다.
다만 지금은 다르다. 혹시나 스승이 자신의 재능으론 여기까지라는 말을 아낀 건 아닐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헛된 망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휘아는 자신이 없었다. 하연성이라는 터무니없는 재능을 가진 마법사와 최근에 무섭도록 성장하고 있는 제자 마도비를 보며 속으로 조바심을 느꼈다.
나는 끝인가.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게 된 나는 외통수에 몰린 게 아닐까. 이러다가 언젠가 마법사에게 무공으로 밀리고, 제자에게 따라잡히진 않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잡념과 망설임. 그것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오호. 아무래도 기계의 용도가 다 된듯하군.
리치. 약 30개의 장소 중에서 하나. 많아야 둘일 거라는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운이 나쁘다. 전사들만 있는 파티는 약점을 최대한 보완해도 한계가 있다. 강력한 마법사나 신관이 필요했다.
그러나 휘아는 오히려 행운이라 생각했다.
“연성은 리치를 잡아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하연성이 혼자 잡지 않은 건 알고 있었다. 다양한 존재들의 도움을 받고, 거의 마법의 힘으로 이겨낸 것도. 하지만 그녀는 하연성이 겪은 일과 비슷한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승패란 중요치 않았다. 필요한 것은 경험. 지금의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원했다.
따라서 상대는 강력한 리치였지만, 물러서지 않고 검을 들었다. 리더인 그녀가 검을 든 것으로 인해, 전사들도 각자 검을 고쳐잡았다.
그리고 충돌. 검과 마법의 정수가 부딪혔다. 리치는 원념과 강령술을 부렸으며, 휘아가 이끄는 전사들은 각종 신성한 물건들을 이용해 그것들을 물리쳤다. 전투는 치열했다. 검기를 쓰는 자가, 검무 수십 다룰 줄 아는 전사가 죽었다.
리치도 멀쩡하진 않았다. 부장급 존재가 열에 가까운 것이다. 상성이 좋지 않아도 피해 없이 물리치는 건 불가능했다.
싸움의 끝은 전사들의 승리였다. 비록 몇이 죽었지만, 강적에게 승리한 기쁨이 그들을 감쌌다.
다만 휘아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녀는 지독한 감각에 몸서리쳤다. 어떠한 발전도 후퇴도 없다. 리치라는 독특한 존재와 생사를 다투는 경험 속에서도 제자리걸음이었다. 두려움이 몰려온다. 10년 뒤, 100년 뒤에도 같은 자리에 있을 거라는 불안감이 그녀를 덮쳤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노력에는 끝이 있다.
-결과는 항상 보답받는 것이 아니다.
귀를 뜯어 버리고 싶은 말이었다. 지금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마음속에 생각하면서도 인정 못 할 이야기였다.
-모든 존재는 영원히 살지 못한다.
-고로 모든 존재에게 끝은 있다.
-끝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니.
-지금의 너는 끝인가, 아닌가?
부정한다. 자신은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소리쳤다. 어느새 새카만 어둠 속에서 귀를 막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발전하고 싶은가.
-나아가고 싶은가.
-자신의 끝을 넘어서고 싶은가?
당연한 소리다. 누구든 이 자리에서 발전을 끝내고 싶은 존재는 없다. 아무리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라도 ‘조금 더 나아지면 좋겠다’라는 욕심 정도는 품고 있다. 하물며 휘아는 무공에 평생을 바쳐온 사람이다. 그것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목표였다. 그런 그녀에게 ‘끝’은 너무나 가혹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눈앞에 검은 과실이 떨어진다. 한눈에 보고 알았다. 이것은 세상에 다시없을 영약이며, 무학의 정수란 것을. 한 입만 베어 먹어도 그녀의 스승. 청전이 닿은 경지에 오를 거라고.
휘아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후··· 후후후후···.”
그리고 실소를 터트렸다.
“겨우··· 겨우 이런 걸로 가능한 건가···.”
그녀의 눈앞에 놓여 있는 과실. 그것을 보며 허무함에 빠진다. 20년이다. 아직 세상을 잘 알지도 못하는 나이부터 무공을 연마해왔다. 그러나 그 세월이 겨우 이런 과실 하나로 추월당할 수 있다.
그 사실이 너무나 덧없이 느껴졌다. 너무나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과실을 집어 던졌다.
“이딴 것 필요 없어.”
저걸 먹어서 경지에 오른다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자신의 세월과 노력을 스스로 져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거부했다. 다시금 검을 잡았다.
비록 지금 자신의 위치가 끝일 수도 있다.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태까지 쌓아온 과거를 무너트리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지며,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
“하나라니 좀 아쉽군요.”
라비린토는 멀찍이서 중얼거렸다. 그는 연신 하연성과 해골용의 위치를 파악하며 눈에 띄지 않도록 행동했다. 각성이란 것은 단순히 싸운다고 해서 일어나는 게 아닌 탓이다.
덕분에 협회장에게 받은 물건까지 사용했다. 사실 더 많이 가져왔지만, 후보가 없었다. 강력한 저주와 주술, 악마의 힘까지 더해진 기술이었지만, 정신을 뚫는 공격이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때문에 나온 변수는 하나. 라비린토는 그 변수가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관찰해 나아갔다.
그것을 토대로 하연성을 흔들 필요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