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장 #
병과를 따지자면 나는 마법사다. 본신의 무력이 있긴 했지만, 가장 힘을 잘 쓸 수 있는 부분이라면 역시 마법이었다.
따라서 회사 방어를 위해 이동된 장소는 당연히 마법을 쓰기 좋은 장소였다.
“보호 인원이 있으신 분들은 위쪽으로, 없으신 분들은 근처 아무 곳에나 자리 잡아 주십시오.”
“적들은 많습니다. 방향도 가릴 것 없습니다. 근처에는 아군도 없으니, 보이는 대로 갈겨주시길 바랍니다.”
얌전한 복장으로 오는 마법사들을 척척 안내해서 포대로 삼는 다수의 존재들이 보인다. 한 4~5 종족으로 구성된 그들을 보며, 대충 무슨 일을 하는 존재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마룡의 시종들.’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근처에 마룡이 있다는 말과도 같다. 나는 위층으로 안내하는 이를 붙잡고 물었다.
“상황을 대충 설명해 주세요.”
“그러기엔 시간과 인원이 부족하니, 저희 말씀을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매뉴얼대로의 행동에 하는 수 없이 위쪽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군데군데 부서진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으로 날아다니는 적들이 파고들어 온다. 보호 인원과 같이 온 마법사는 그런 공간에 서서 마법을 날려댔다.
위층에 대기하고 있던 시종은 내 일행들. 지아와 위시, 아이자드를 보곤 한 곳을 가리켰다.
“저쪽을 부탁드립니다.”
구멍이 적게 뚫린 장소였다. 일행 자체는 많이 데려왔지만, 그리 강하다고 생각하진 않은 모양이다. 좀 더 위험한 곳을 배정해도 괜찮다고 하려다가, 매뉴얼 대응이 돌아올 것 같아서 관뒀다. 나는 적게 뚫린 구멍에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많은 적이 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끝이 없는 수준의 적들. 그러나 약점이 없는 집단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소환체나 창조체인가.’
망자들과 원념, 가고일이나 약해 보이는 골렘들이 전력의 대부분이다. 다른 무엇보다 전쟁에 최적화된 존재들. 이번 일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한 게 눈에 보였다.
다만 그렇기에 보이는 약점도 있었다.
‘망자들과 원념이면 모를까, 창조체는 쉽게 처리할 방법이 있지.’
그것도 일거양득의 방법이다. 나는 망원경을 꺼내서 골렘 하나의 구조를 살폈다. 분석에는 채 1분이 넘지 않는다. 원리를 파악한 다음 곧장 신의 손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배신하라. 반란을 일으켜라. 주인의 손을 걷어차고 내 손아귀로 오라! -주종변경-]
골렘 하나가 손아귀에 들어온다. 본디 창조체와 조종자는 연결되어 있어야 마땅하지만, 마법으로 그것을 끊어서 나한테로 연결시킨다. 물론 이것 하나만으론 의미가 없었다.
[속삭여라. 동료를 끌어들여라. 반란은 하나가 아닌 여럿일 때 더 의미가 클 지여니! -변질자의 외침-]
내가 지배한 골렘을 기준으로 무형의 파동이 뻗어 나갔다. 녀석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골렘들만 영향을 받는 마법적 파동. 조종자와의 연결을 끊고, 그 실을 내가 지배한 골렘에게 연결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같은 마법을 쓰자, 더 멀리 파동이 퍼져 나간다.
마치 다단계라도 되는 양, 뻗어 나간 마법은 곧 같은 형식의 모든 골렘을 지배하게 해주었다. 나는 첫 번째 골렘에게 명령을 내렸다. 주변의 망자들을 처치하라고. 녀석이 울음을 뱉으며 움직였고, 하위의 골렘들은 한 발짝 늦게 움직였다.
기민한 명령을 내릴 순 없는 방식이지만, 지금 이 상황이라면 충분하다. 내가 일일이 찾아서 지배할 수도 없고, 상대하는 적이 줄어든 것만 해도 나름 도움이 되었으니까.
사실 마법 형식을 바꿔서 한꺼번에 지배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일부러 하지 않았다. 이유는 겨우 골렘 한 종류만 지배하고 끝낼 생각이 없었던 탓이다.
[배신하라. 반란을 일으켜라. 주인의 손을 걷어차고 내 손아귀로 오라! -주종변경-]
[속삭여라. 동료를 끌어들여라. 반란은 하나가 아닌 여럿일 때 더 의미가 클지어다! -변질자의 외침-]
같은 형식의 마법이 펼쳐지고, 이번에는 가고일이 손아귀에 들어왔다. 공중 병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녀석들이었던 만큼,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좋아. 전황이 바뀌었어.’
그냥 처리하는 것과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비슷한 양식의 창조체는 지속으로 지배권을 획득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덕분에 물량에서 밀리고 있던 정황이 한시적으로나마 난전 상태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준비하고 있었던 전사들이 각각의 방향에서 튀어나왔다. 피아를 구분할 수 있는 거라곤 생명체이냐 아니냐 수준 밖에 안 되어서 내가 지배한 창조체들도 쓰러졌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적들의 중심을 부수는 게 더 우선이었다.
‘···여기선 안 보이네.’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이곳에선 눈에 띄지 않았다. 마룡들도 있으니,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서 몸을 감추고 있으리라. 내가 찾아서 처리하는 건 썩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러니 서포터를 위해 가고일들을 움직였다.
-캬아악! 이 빌어먹을 것들이!
-조종을 어떻게 하는 거야!
공중에 떠 있던 신비 포식자들을 습격한다. 비록 그들에게 꽤 많은 호위가 붙어 있어, 겨우 한두 마리 틈을 만드는 게 한계였지만, 그 약간의 틈만으로도 충분했다.
“짜증 나는 놈들! 이거나 처먹어라!”
아래쪽에서 거대한 열선이 수 가닥 뻗어 올랐다. 스펠 이터들은 막아보려 했지만, 한두 마리가 틈을 보였다는 이유로 열선 한 가닥을 막지 못했고, 순식간에 세 녀석이 타들어 갔다. 남은 숫자로는 마룡의 공격조차 상쇄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녀석들은 빠르게 후퇴했다. 아마 이제부터는 방어를 위해서만 몰래몰래 움직일 것이다.
‘공격이 소강 사태로 접어들고 있어.’
회사의 가장 커다란 패인 마룡을 막아내던 스펠 이터들을 물러나게 했다. 거기에 창조체의 지배권마저 나에게 빼앗기자, 공격의 기세가 줄어들었다. 더 이상의 병력이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주변에 있던 존재들은 각자 탄성을 지르며 정리에 박차를 가했다.
아무래도 물리쳤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건 너무 이른 생각이지.’
공격은 계산된 형태였다. 분명 막힌 이후에도 작전이 있을 것이다. 나는 다음 공격을 위해 대비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악마들을 선두로 한 2차 공격이 시작되었다.
****
루디브렉은 적들을 보며 투지를 다졌다.
‘오랜만의 대규모 전투로군.’
고향 차원에선 한동안 전쟁이 없었다. 평화는 좋았지만, 그는 가끔 심장이 뛰는 전장에 서고 싶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태생적으로 싸움을 좋아한다고밖에 할 수 없으리라. 그렇지 않다면 인간으로서 한계에 닿은 나이까지 이런 거대한 지팡이를 잡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의 눈앞에 몰려오는 악마들은 가슴 설레게 하는 상대였다. 특히 가장 선두에 날아오는 악마의 존재감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좋군. 아주 좋아.’
그는 전에 만들었던 기적의 한 구절을 준비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용이 땅에 떨어질 것이라 하였다’라는 문장에서 용을 지우고 악마를 넣는다. 그리곤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크로이아님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악마가 땅에 떨어질 것이라 하였다!”
하늘을 가득 메운 악마들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무언가가 콱 누르듯이 떨어진 그들은 다시 날지 못했다. 바닥을 돌아다니던 키메라들과 악마들이 부딪친다. 커다란 피해는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놀라운 장면이었다.
‘음. 역시 악마들은 쉽군.’
전에 했던 용보다 훨씬 찍어 누르기 쉬웠다. 실체로 날아오르는 용과 정신체로서 날아오르는 악마들의 차이였지만, 그는 그냥 악마라서 그렇다고 믿었다.
‘자. 그럼 이제 반응이 올 텐데.’
싸우고 싶은 존재는 하나였으나, 악마 전체에게 시비를 건 건 대장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악마의 장점 중 하나인 비행을 묶어버리자, 선두의 다섯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부러 바닥으로 끌어들이지 않은 다섯의 악마들. 루디브렉은 그들에게 손을 까닥였다.
“들어와. 애송이들아.”
그의 입술을 본 것일까. 시끄러운 공간에서 눈썹을 찌푸리는 악마의 모습이 보인다. 1좌의 악마. 마신은 루디브렉을 향해 날아갔다. 본디 악마인 그에게 있어 도발은 먹히지 않는 수단이었지만, 힘의 표출은 유효했다.
‘내버려 두면 골치 아프겠군.’
2좌의 악마들로는 잡지 못한다. 그렇게 판단한 그는, 루디브렉과 충돌했다.
악마와 신관술의 충돌. 상성상 신관술이 이겨야할 장면이지만, 힘의 차이로는 마신이 유리했다. 그 결과 충돌의 결과는 무승부로 이어졌다.
마신은 날아가 버린 팔을 재생하며 물었다.
-인간, 이름이 뭐냐.
“하하핫! 평생 악마에게 이름을 묻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군! ···크로이아님을 섬기는 종, 루디브렉일세!”
-네놈의 이름을 머리에 새겨 장신구로 삼아주마. 영광으로 알아라. 망상증 환자여.
“그거 불공평하군! 악마는 죽어서 가루가 되니, 난 증표로 삼을 게 없지 않은가! 이거 안 되겠군. 이름이라도 들어야겠어!”
-1좌 마신 제위(帝位) 471년의 악마. 포르데온이다. 죽음으로 흩어질 영혼의 선물로 받아두어라.
“그럼 내가 이기면 지팡이에 이름이라도 새겨주지. 그럼···.”
루디브렉은 마신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어디 한번 신나게 싸워보세!”
****
“이하하핫! 다들 신나게 즐기는데!”
문명의 탑과는 꽤 떨어진 장소. 곱추의 남성이 화려하게 벌어지는 전투를 바라보았다. 끝도 없는 적과 악마라는 새로운 변수의 출현에 마룡들은 더는 못 싸우겠다고 난동을 부리고, 지원 온 사원들이 필사적인 전투를 하고 있다.
싸움은 백중세. 무려 마룡이 거의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병력은 밀리지 않았다. 악마들은 제압하기 위해 신관들이 연신 움직였고, 전사들의 무기에 신관술을 걸어준다. 협회의 병력에는 각종 악독한 키메라가 있었지만, 회사에는 각종 방식에 능통한 사냥꾼도 존재했다.
각자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여 균형을 맞추고 있는 모습. 곱추는 거기에 찬물을 끼얹을 자신에게 흥분했다.
“역시 싸움은 쌍방전멸이 제맛이지!”
그는 왼손 엄지손가락을 오른손으로 눌렀다. 회사의 방어를 뚫는 것만 생각하며 만든 작품. 차원간 탄도 미사일을 쏘아내는 버튼이었다. 도약룡의 비늘을 대량으로 사용한 이 물건은 차원을 넘어 기습하는 전략 병기였다.
그러나 버튼은 작동하지 않았다. 곱추는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커넥터 몇 개가 꽂혀 있었다.
“하아. 아슬아슬했네.”
곱추의 뒤. 펌프치가 있었다. 단말로 곱추의 외부 접속 신호를 끊어버린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손을 흔든다.
“여. 동기. 오래간만이야.”
“캬하하핫! 정말~ 오래간만이군그래! 캬하하핫!”
곱추는 즐겁게 웃었다. 자신의 계획이 흐트러진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건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다시 나중에 쓰면 되는 일이니까. 아니면 당장 해킹당한 것을 돌려놓기만 해도 된다. 곱추는 웃으면서 자신의 오른손을 한 바퀴 비틀었다.
쿠궁! 콰과앙!
대지가 무너진다. 몰래 조금씩 감춰 가져왔던 부품들을 몸에 설치한다. 곱추의 몸에 무수한 파이프라인이 연결되고, 각종 두뇌가 담긴 용기가 드러난다.
자신의 뇌 용량과 지식, 계산 속도를 위해 77개의 다른 뇌와 연결한 존재. 곱추는 가느다란 파이프라인을 드러내며 웃었다.
“동료가 없나? 왜 안 데려왔지? 혼자서는 연결로를 부수지 못한다고? 네 특기는 해킹이지만, 내 특기도 해킹이야. 이길 거라 생각한 건가? 혼자서 싸우려고 생각한 거야? 그거 정말 아주 좋은 생각인걸!”
“아아. 미안하지만 그럴 리 없잖아. 괴물이랑 싸우는 데, 무기도 없이 싸울 순 없다고.”
-동의. 관리자는 머리가 좋지 않음으로 혼자서 싸울 수 없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그의 단말기 위로 글자가 떠 오른다. 보고 싶지 않지만, 단말을 써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언어폭력에 펌프치는 발끈했다.
“···너 말고 다른 무기가 있었으면 싸울 수 있었어.”
-부정. 회사 최고 기밀을 착각으로 차장급 사원에게 열람시킨 기록이 있음. 바보 관리자 인증. 무기가 있어도 다루지 못함.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기간과 상관없음. 기록은 영원함.
“그러니까 당장 지루라고··· 읏!?”
곱추가 둘의 말싸움을 보기만 할 리는 없었다. 날아온 파이프라인을 굴러서 피한 펌프치는 소매에서 커넥터를 늘어놓았다.
“카하하하핫! 둘도 재미있겠군! 스승이 남긴 고철! 77개의 뇌를 감당하는지 보자고!”
“이 멍청한 기계는 감당 못 하겠지만, 내가 해주마.”
-부정. 관리자의 멍청함으로 본 기계의 성능을 하락시킴. 관리자는 단말기 역할이 어울림.
“싸우는 데 음성 넣지 마!”
그렇게 한쪽 구석에서 다른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