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196화 (196/207)

# 차장 #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 나는 다시금 스펠북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간에 대한 해결책이 나오질 않는다. 이제 세 번째 제작인 인공 영혼도 완성에 다 닿아가는 참에,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 건 골치 아팠다.

‘영혼과 기계의 조합 문제도 남아 있는데···.’

이래서야 언제 완성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내 인생을 둘러보면 조급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본래 벽이라는 게 한번 부수지 못하면 그 앞에서 무너지기도 하는 법. 될 것 같으면서도 안 되는 게 약 오르고 분하다.

그렇다고 다른 존재들에게 이야기해봤자 제대로 된 답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나는 답답한 심정 속에서 사장이 준 쪽지를 펼쳤다.

‘다른 선천적 마법사라.’

실은 용이었습니다, 라는 반전은 없을 것이다. 행성 파괴자라 했는데, 용이 그런 귀찮은 일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회사의 창립에 관여되어 있으며, 차원 이동을 만드는 데 어느 정도 관여까지 했으니, 나처럼 게으름을 탈피한 존재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 존재에게 공간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사장은 상담용으로 준 쪽지였지만, 이쪽으로 쓰는 게 더 좋아 보인다. 그리고 잘만 행동한다면 몇 번 더 볼 수도 있으니, 상담 건도 문제가 되진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나는 무작정 쪽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회사 단말기를 쓴 방식이었다. 솔직히 이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다. 회사의 이동 방식은 안전이 확인되지 않으면, 사측의 허락이 필요한 방식이었으니까.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동은 부드럽게 되었다. 사장의 배려인지, 안전하다고 확인된 지역이라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좌표를 넣어서 버튼을 눌렀고, 어떠한 거절 문구 없이 이동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시야가 일그러졌다가 돌아온다. 과연, 회사의 시스템은 안전 위주였다. 주변은 위협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농가 한 채만 덜렁 있는 땅이었다. 논밭 한가운데. 한창 수확을 앞둔 듯, 농작물이 크게 자라있는 그곳에서 고개를 기울였다.

이곳에 선천적 마법사가 있는 걸까?

그러기엔 어울리지 않는 장소다. 어딜 어떻게 보든 농장으로밖에 안 보인다. 그것도 집이라고는 한 채뿐. 그냥 소작농 한 가구가 자기 먹고 살 만큼 농사지으면서 평화롭게 사는 거로 밖에는 안보였다.

선천적 마법사가 사는 곳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곳.

게으름을 탈피하든, 하지 않았든 간에 어울리지 않는 장소다. 그래도 주변에 있는 건 나무집 한 채 밖에 없었으니, 그곳으로 향했다.

똑똑.

“네에! 누구세요?”

문을 두드리니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천적 마법사가 여자였나. 성별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음으로,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며 내 소개를 했다.

“다차원 파견회사에 다니고 있는 하연성이라고 합니다. 마법사 그론드님을 좀 뵙고 싶어서 왔는데요.”

“아, 남편의 손님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몇 번 있었던 일인 듯 회사와 이름을 듣곤, 곧장 문을 열어준다.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성이 보였다.

“남편은 2층에 있어요. 지금 깨워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식탁을 가리킨 채 대답을 듣지도 않고 2층으로 올라가는 여성. 나는 잠시 멍하니 그 자리에 있다가 결국 식탁에 앉았다. 위층에서 희미하게 소리가 들렸다.

“여보, 손님이 왔어요.”

“손님···? 오늘 올 사람은 없는데.”

“그런가요? 하지만 회사에서 왔고, 당신을 마법사라 부르던걸요?”

“그래? 알았어···.”

기척과 함께 위층에서 두 사람이 내려왔다. 남자는 그야말로 시골의 농사꾼 같았다. 수염은 잘 깎지 않아서 덥수룩했고, 헐렁하며 오래된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옆에 있는 깔끔한 여성과 합쳐지니, 그야말로 농촌의 시골 부녀 같았다.

그는 식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

“다차원 파견회사의 차장 하연성이라고 합니다.”

“차장? 그 나이에? 어마어마한 출세로군. 그래. 엘리트께서 은퇴한 나는 어떻게, 왜 찾아온 건가?”

“으음. 사장님께서 위치를 알려주신 건 상담을 받아보라는 이유에서였지만···. 지금은 선배에게 질문드릴 게 있어서입니다.”

그론드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선천적?”

“네.”

그는 내 코트를 보곤 식탁에 앉았다. 그곳에 더 이상 농가의 아저씨는 없었다. 전설급 물품을 보고, 그것이 회사에서 만들어낸 적 없는 물건이란 걸 확인한 마법사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나이 먹고서 후배를 볼 줄은 몰랐군. 그리고 질문이 있다고 찾아올 존재가 있으리라고도.”

“···방해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급하신 용무가 있다면 나중에 올까요?”

“됐네. 이런 곳에서 급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질문이 뭔가.”

“···공간을 다루는 마법에 대해서 의견을 들고 싶어요.”

사실 정말 하고 싶었던 질문은 상위의 존재가 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속 보이는 질문이었기에, 조금은 둘러서 이야기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같은 선천적 마법사라면 배울 게 조금은 있지만, 자네 실력엔 그게 필요 없어 보이는 데. 마법 문자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나보다 뛰어나 보이고. 대체 뭘 원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는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전부 이야기해도 되는가. 그러나 도움을 받으러 온 것이니만큼, 감추는 건 좋지 않았다.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알아야 병명을 아는 것처럼, 도와주는 사람도 문제를 알아야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따라서 모든 걸 알려주었다. 인간을 넘어선 존재가 되는 게 목적이며, 그걸 위해서 세상 모든 지식을 담은 스펠북을 만들려고 한다. 그론드는 전부 듣고 한마디 했다.

“나는 도와줄 수 없겠군.”

“···무슨 말씀이신가요?”

“말 그대로야. 능력 밖의 일이란 말이지.”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납득이 안 되어서요. 선배님은 저보다 훨씬 더 빨리 인간을 넘어선 존재이지 않나요?”

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틀렸네.”

그리고 후회와 한탄으로 찌든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실패자이자 행성 파괴자일 뿐이야. 자네에게 조언을 해줄 만한 존재가 아니란 거지.”

여전히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행성 파괴자? 그게 돌이킬 수 없는 범죄란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마법사로서의 끝을 보는 것과 그 일은 관계가 없다. 나는 거기에 대한 조언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런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그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보게. 무엇이 보이나?”

거기엔 그의 아내가 있었다. 처음에 봤던 것과 같이 상큼한 미소를 보내는 여성. 이상한 점은 없었다. 모르겠다고 하자, 그론드는 한 번 더 자조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는 따듯한 사람이군. 근본적으로 생명을 소중히 하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좀 더 본질을 보게나.”

아까부터 계속 이해 못 할 말만 하는 그가 불만스러웠지만, 이윽고 다시 그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근본을 바라보라는 뜻이 뭔지는 몰랐기에, 그냥 조금 더 상세히 보기로 했다.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건 좀 그래서, 손을 바라본다. 손톱부터 주름까지 세밀하게. 딱히 특별한 점은 없었다. 평범한 손에 금이 가 있는 게 전부였다.

‘···금이 가 있다고?’

화들짝 놀라며 여인을 살폈다. 몸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거미줄처럼 그어진 실선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깨질 것 같은. 아니, 깨진 물건을 억지로 이어붙인 모습이다.

“우욱!”

순간 헛구역질이 나왔다. 이제는 괜찮아진 사고방식. 세계가 너무나도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자각한다. 내 가족이, 연인이 저렇게 부서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그론드를 돌아보고 더욱 경악한다. 그 역시 몸에 금이 가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급히 내 손을 쳐다본다. 건드리면 깨져버릴 듯한 것들을 보고, 나도 같은 상황이 아닌가 살폈다.

그러나 다행히 손에는 문제가 없었다. 팔뚝까지 걷어 보았지만, 어디에도 금이 가진 않았다. 다시 한번 그론드에게 시선을 주었다. 금이 가있는, 풀로 붙여놓은 깨진 도자기 같은 그를 보며 확신했다.

“···행성 파괴자란 건 그런 건가요?”

“맞네. 나는 죽은 아내를 살리고 영원히 살아가기 위해, 행성 하나를 촉매로 사용했다네.”

선천적 마법사는 바란다면 길을 보여준다. 그것이 얼마나 억지스럽고 가능성 0%에 가까운 일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보여준다.

그러니까 나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완전한 부활. 한 생명을 온전히 되살리기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사실 부활에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은 만족하기 쉽다. 육체와 정신은 떼어지지 않은 것이라, 죽은 뒤 마법으로 유지해도 되고, 뇌가 멀쩡하다면 다시 만들어도 된다.

하지만 흩어진 에너지인 영혼은 문제가 심각하다. 영혼은 온전히 에너지지만, 사람마다 특징이 있다. 마치 지문처럼 그 사람의 영혼이란 것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런 영혼은 죽자마자 곧장 흩어져 버린다. 강령술로 다루는 것도 자신의 영혼, 아니면 원혼이니 온전한 영혼이라 할 수 없다. 부활을 위해서라면 이 사라져 버린 영혼을 긁어모아야 한다.

그야말로 행성 하나에서.

물론 그게 쉬울 리 없었다. 행성 하나를 뒤지고 거기서 분자보다도 작은 단위로 찢겨나간 영혼을 끌어모아 연결해야 한다.

그나마 여기까지도 빠르게 대처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아니, 빠르게 대처한다는 말은 없다. 이미 영혼을 끌어모을 마법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간다. 흩어진 영혼은 이미 어딘가의 생명체에 흡수되어 그것과 하나 될 것이다.

그것마저 확인하고 찢어발겨 되돌려야 한다. 그야말로 세계를 분석하고 행성을 통째로 촉매 삼아 마법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 전 세계가 방해할 것이다. 막 태어난 어린아이도 시전자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한목숨 바쳐 죽이려 하리라.

내가 저번에 펼친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만한 대마법.

그리고.

그론드는 마법에 실패했다. 그렇기에 그의 연인은 온전히 부활하지 못했으며, 깨지기 쉬운 유리 조각 같은 모습이 되었다.

시전자였던 그론드 역시 마찬가지. 그는 더 이상 마법을 쓸 수조차 없을 것이다. 비록 육체가 고정되어 불로불사의 삶을 살게 되긴 했지만, 다른 존재의 도움 없이는 오래 살아갈 수 없다. 그런 몸이었다.

그가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표현한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선천적 마법사이자 불로불사이지만, 내 선구자라고 부를 수는 없는 존재였으니까.

사장이 상담역으로만 추천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셨을 텐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나야말로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둘을 보고 있기가 무척 어려웠다. 다른 존재에게 이 좌표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뒤,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에 드러누워 생각했다.

‘나도 잘못하면 그렇게 되는 걸까?’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론드와 나는 상황이 달랐다. 일단 지아부터 나보다 월등한 수명을 자랑하는 탓이다.

상위 존재에 오르고 싶다. 하지만 잘못하면 그론드와 같은 상황이 되어 버린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뒤엎어 버리자.’

여태껏 세워온 계획을 싹 다 갈아버린다. 누군가 보면 과감을 넘어 무모하다고도 볼 수 있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까워하지 않았다. 난 아직 20대 중반이다. 이 방법이 안 통한다면 싹 한번 갈아엎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완전히 버리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다른 방법을 세워보는 것일 뿐이다. 공간 마법을 쓸 수 없는 형식으로. 예를 들면.

‘필요할 때, 원하는 지식을 끌어올리는 방식처럼.’

말하자면 컴퓨터 같은 느낌이다. 세계의 규칙은 거대한 하드디스크고, 내 스펠북은 모니터가 된다. 정보를 끌어오는 것과 정리는 인공영혼이 검무를 쓰는 방식으로 가져올 것이다. CPU처럼 말이다.

이건 어찌 보면 내 목표와 조금 더 뒤처진 방식이다. 전에는 모든 지식을 끌어다 담는 거였고, 이제는 필요할 때만 조금씩 보는 거니까. 하지만 세계의 규칙을 볼 수 있는 건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적이었다.

‘그래. 이게 내 방식이지.’

무리하지 않고 실현 가능한 부분에서 이론과 실적을 끌어오는 것. 내가 해온 건 이것의 연장이다. 곧장 스펠북 설계에 들어간다. 공간 마법은 쓰지 않는다. 대신 스펠북에 마법이 써졌다가 지워지는 방식을 택한다.

이러한 방식을 위해 필요한 물건들은 많았다. 우선 일반적으로 스펠북에 마법진이 바뀌는 게 불가능한 만큼, 이 부분을 촉매로 대체한다. 마법 종이 위에 얇은 촉매 코팅을 해서 촉매 자체를 벗겨 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은 한번 쓸 때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보석을 소모할 것이다. 하지만 공간 마법을 넣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1m의 정육면체 공간 하나만 연동되게 만들어도 보석은 꽤 많은 양을 넣을 수 있을 테니까.

그다음은 영혼과 스펠북의 연결···

삐빅! 삐빅! 삐빅!

“윽?!”

설계를 이어가려는 찰라, 시끄러운 알람이 들려온다. 머릿속을 직접 때리는 듯한 소리. 나는 원흉인 스마트 워치를 거칠게 켰다.

“뭔데 남이 하는 일을 방해하는···.”

짜증을 내면서 확인한 단말기에 들어온 것은 의뢰.

회사를 지키는 데 도와달라는 긴급 의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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