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장 #
사실 마룡들의 파업 자체가 당장 회사에 커다란 타격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일단 그들의 업무량 자체가 많지 않고, 단순한 일만 시켜온 탓이다. 정말 필요한 일은 남아 있는 마룡들이 돌아가면서 하면 문제는 없다.
그러니 이 파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회사의 방어력이 낮아지는 건 좋지 못한 현상이다.”
회사의 어느 장소. 기다란 회의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어떤 존재가 불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동감이야. 그들은 스펠 이터와 검갑룡이 사라졌다고 모든 위협이 사라진 거라 생각하는 데, 기실 그렇지도 않잖아?”
“그들의 위협은 ‘높은 성장률’과 회사 직원과의 충돌이었지. 아랫놈들이 득실대는 이상, 아직 피할 수 없는 위협이다.”
“회사 자체의 공격도 인식해 두시길. 협회의 목적이 회사의 변질이라면 우리 이사진의 변질도 생각해 봄 직하니까요.”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마룡의 파업 자체를 그냥 둘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쉬고 싶을 때 파업 하면 된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으니까. 남겨선 안 되는 전례이고, 바로 고쳐야 하는 사례이다.”
“일부라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전체가 파업하는 건 문제가 심각하죠.”
종족을 한데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존재들이 의견을 밝혀 간다. 전부 이번 파업으로 인한 나비효과를 걱정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마룡의 파업에는 이러한 효과가 있었다. 도미노처럼 다른 상황이 줄줄이 벌어지는 것이다.
회사가 아무리 마룡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쓸 수밖에 없는 이유. 어찌 됐든 간에 그들이 없으면 회사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해서든 타개할 필요성이 있었다. 거기에 불린 존재가.
“그래서··· 하연성.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바로 나였다.
‘하운드 씨. 적당히 생각하고 와도 괜찮다면서요!’
현재 회의장 분위기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게으름을 탈피한 선천적 마법사. 거기에 기대를 걸고 파훼법을 듣기 위해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입을 열었다.
“우선 명확한 상황을 들을 수 있을까요? 일단 ‘파업’이라고 한다면 요구사항이 있었을 텐데요?”
“으음. 타당한 의견이다. 그들에게선 ‘휴가를 달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휴가···.”
앞에 놓인 마룡의 평균 근무 일수를 확인하곤 얼이 빠져 버렸다. 거의 한 달 내내 놀면서 휴가를 논하다니. 솔직히 너무해 보인다. 뭐, 게을러지려는 입장에서야 뭔들 못 하겠느냐마는, 이래서야 마룡을 고용한 이유가 없을 정도.
“그것 말고 공식적인 주장은 없나요?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라던지···.”
“일단 있기는 하다만, 시종이 작성했을 게 뻔하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군.”
어떤 존재가 사장을 바라보자, 상석의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장의 손짓 하나에 놓인 서류를 읽어 보았다.
‘마룡의 불공평한 근무 조건에 대하여.’
거기에는 몇몇 적당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마룡의 보호를 명목으로 일의 대가를 주지 않는다는 것. 또한 단 한 번도 휴가를 주지 않은 악덕 행위에 대하여 올바른 처우를 바란다는 것 등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마룡들이 일한 대가는 주지 않은 게 아니다. 그들이 일부러 받지 않았으며, 그 대신 회사에서는 무리한 일을 시키지 않는다는 거래가 있었다.
또한 휴가라는 단어는 회사에 없는 말이다. 일단 직원들은 일하기 싫으면 쉬면 되는 거고, 하는 만큼 번다. 그리고 사장 직속의 경우, 휴가 없이 일하다가 원하는 만큼 재산을 쌓고 몇십 년을 푹 쉬어버리는 게 보통이었다.
즉, 마룡처럼 보호받으면서 주기적으로 일하고, 대가도 없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따로 합의를 봐야한다는 건데, 그 합의를 본 게 현재의 계약. 그걸 어기려는 게 마룡 쪽이다.
여기까지 상황파악을 끝낸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 가지 방안을 내뱉었다.
“그냥 파업한 마룡의 보호를 포기한다고 선언하죠.”
“음? 이봐 마법사. 아직 잘 모르나 본데, 우리가 마룡을 보호하는 이유에는 협회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기 위함이기도 하다.”
“알아요. 아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과거, 다 자란 마룡이 한번 협회 쪽으로 넘어간 적이 있었다. 넘어간 이유는 모른다. 스펠 이터 같은 존재에게 기습당하는 등 방법은 무수히 많았다.
문제는 그렇게 넘어간 마룡이 미친 듯이 파괴 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딱 ‘적당한’ 수준의 힘만 써가면서 말이다. 마룡이 정말로 온 힘을 다하면 행성이 위험하지만, 그런 것 없이 지상에 사는 생명체에게만 위협이 될 정도였으며, 결국 그 지상의 존재들에게 죽었다.
마치 실험 도구처럼 적당한 수준으로 쓰인 것과 같은 모양새. 회사와 마룡은 충격받았다. 회사는 차원의 생명체가 거의 멸망 직전까지 갔다는 것에, 마룡들은 채 10분도 쉬지 못하고 장장 5년을 움직인 마룡의 모습에서 말이다.
협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죽은 마룡을 강령술로 부활시켜 써먹었다. 그야말로 죽어서도 부려먹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마룡들에게 있어서 어마어마한 공포로 다가왔다.
회사와 마룡들의 공조는 이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 이후로 마룡들은 협회로 오라는 소리만 들어도 상대를 죽였다.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몇 년간 쉬지도 않고 부려 먹힐 가능성이 0.1%라도 있는 이상, 그들은 결코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이번일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의 가호가 없다면 협회의 위협에 노출되는 것은 당연하니, 한발 굽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다가 진짜로 나가버리면?”
“···솔직히 리스크가 없는 방안이라면 저도 생각이 나질 않네요. 원인이 마룡들의 ‘게으름’이니 만큼, 회사에서 강제적으로 일이라도 시키지 않는 이상은 어려워요.”
강제는 회사의 이미지가 나빠지니 오히려 역효과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잠시만요. 이번 일에 이번 일에 협력한 마룡들은 젊고 숫자도 적다고 했죠?”
“맞습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나는 회의실 안쪽의 이사진들에게 떠오른 아이디어를 설명해 주었다.
****
오리안느는 방에서 열심히 뒹굴거리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행복한 나날. 자신이 일해야 할 날 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벌인 파업이라서, 더더욱 꿀맛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저, 저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비켜라. 죽고 싶지 않으면.”
‘···누가 왔나?’
회사에서 사정이라도 하러 온 걸까? 그럼 말하기도 전에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어떤 유혹과 제안을 하더라도 일단 못해도 1개월 이상은 파업할 거다. 그렇게 정했기에 그녀는 여유롭게 상대를 기다렸다.
“오리안느. 이곳에 있겠지? 들어간다.”
하지만 들어온 존재는 사원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원이지만 오리안느도 무시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어르신들께서 여긴 어쩐 일이신지?”
어르신. 말하자면 나이와 경험이 많은 고룡들이다. 몇백 년만 더 있으면 용으로서의 긴 수명도 끝날 존재들. 이들은 젊은 마룡들보다 더 게으름이 심한데, 오리안느가 있는 곳에 집적 행차한 것이다.
그런 존재들이 여럿 있으니, 아무리 마룡인 오리안느라도 일단 저자세로 나갔다. 그리고 바짝 긴장했다. 하인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무력적으로 제압할 의사가 있다는 신호이기도 한 탓이다.
굳어 있는 그녀에게 나이든 형태로 변한 마룡들이 외쳤다.
“모두 들었다!”
“뭐, 뭘 말씀이신지?”
“놈! 파업했다는 소리 말이다!”
오리안느는 혼란에 빠졌다. 확실히 그녀는 회사 일을 빼먹었다. 이 일이 알려지면 나이든 마룡들에게 혼날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하인을 통한 꾸중 정도지, 이렇게 직접적인 질타가 아니었다. 혼내는 것도 귀찮아 넘어가는 용들도 수두룩한 마당에 행차라니. 오리안느의 상식으로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그렇긴 합니다만, 그게 어르신들에게 폐가 될 일은···.”
“회사에서 우리에게 일을 더 주겠다는 통보가 들어왔다!”
“···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녀는 속으로 경악했다. 자칫 잘못하면 마룡 전 종족이 파업에 들어설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뒷배(?)가 있었기에 이런 일을 저지른 게 아니던가. 설령 이게 사실이라고 해도 어르신들이 직접 올 일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사과하고 보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잘못은 사실이니까. 오리안느는 침대 바깥으로 나와 깊숙이 고개 숙였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파업은 그만두겠습니다.”
“사과 따윈 필요 없다!”
“···네?”
다시 한번 얼빠진 소리를 낸다. 이젠 어르신들이 온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모여 있는 어르신들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잘못을 했다면 뉘우치는 행동이 필요한 법이야!”
“암, 그렇고말고!”
“이번 사태로 일을 더 한 용들이 있는데,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앞으로 같은 상황이 나오게 할 수도 없네!”
이상하다. 오리안느는 불길함을 느꼈다. 마룡들은 결코 수다를 즐기는 존재가 아니다. 별것 아닌 일로 이곳에 오는 것부터가 수상하다 생각했던 심정은 더할 나위 없이 커져간다. 수상하다. 음모의 냄새가 난다.
그런 직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그러니 이번에 파업한 마룡들에게 열심히 일한 마룡들의 10년 치 분의 일을 맡기기로 하지.”
“그게 좋겠군.”
“아주 훌륭한 판단이야.”
“네엣!?”
그녀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겨우 며칠 파업하고 10년간 근 9배 가까운 일이 늘어나다니?! 불공평한 처사다. 그러나 막을 수 없다. 상대가 마룡이니 만큼, 억지로 일을 시킬 가능성도 높았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 한 달에 10일을 일한다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처사였다.
“자, 잠시만요 어르신들! 한 달은 감수하겠지만, 10년은 너무 많아요!”
“그렇게 말한들.”
“회사에서 그러라고 했는걸.”
어르신들은 떠날 채비를 갖췄다. 정확히는 자신들의 하인을 불러들였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몸을 움직일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여기서 만약 오리안느가 반항을 하면 강제적으로 끌고 갈 것이다. 그녀가 일해야 그들이 쉴 수 있으니 노력을 아끼지 않으리라.
“아아···”
오리안느는 털썩 주저앉았다. 상황을 깨달은 시종들은 재빠르게 이동 준비를 했다. 평소보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았기에 짐이 좀 늘어났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 봤자 3일을 넘지 못할 테니까.
‘딱 한 달만 놀려고 했는데에···.’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나온다.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본 듯, 한 마룡이 한마디 해주었다.
“너도 나중에 하면 되잖아.”
정신이 번쩍 든다. 그렇다. 지금 이 상황은 자신이 파업을 벌였기에 일어난 사태. 그럼 나중에 다른 용들을 파업시켜서 떠맡기면 되는 것이다.
‘10년. 10년이다. 10년만 참고 기다리자. 그 후에 더 어린 마룡들을 설득하는 거야.’
오리안느는 회사로 끌려가면서 다짐했다. 결코 자신만 당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 모인 파업룡들을 끌어모아 또 다른 파업을 만들고, 일을 떠맡길 것이다. 종종 숫자가 적으면 휴식기도 있겠지만, 이 일이 끊어지게 하지 않을 거라고, 오리안느는 굳게 맹세했다.
차후, 이것이 어린 마용들의 신고식이 되리란 것을 알지 못한 채.
****
“일을 잘되셨습니까?”
라비린토의 물음에 협회장은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영체로 돌아다니며 마룡들을 홀린다. 그 작전 자체는 예상대로 성공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이 원한 결과가 되리라. 마룡의 파업은 그럴만한 사항이었다. 언제가 한번 터졌어야 할 폭탄. 언제든 불을 붙이는 게 가능했지만, 딱히 써먹을 데가 없어서 내버려 둔 일이다.
아마 불은 금방 진화되고,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마룡들의 움직임을 제어하리라. 회사에는 그럴만한 여력이 있었다. 다만 짧아도 2주. 길면 한 달 정도 걸리기에, 그동안 낮아질 회사의 방어력을 노린 것이다.
만약 해결되었다 해도, 당분간은 문제가 생기리라. 어떤 것이든 트러블 없는 해결법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회사처럼 다 같이 가자는 모토의 그룹이라면 그러한 부분은 더더욱 심하다.
그 틈에 회사로 진격한다.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재미있는 건 많이 준비했니?”
“회사에서 많이 좋아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라비린토의 뒤에는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협회의 간부들은 물론, 외세의 세력과 다른 차원에서 이름 떨치던 존재들. 모인 이유는 각자 달랐기에 필사적인 전투를 기대할 순 없었지만, 나름에 전력이 되는 건 확실한 존재들이었다.
“그래. 그럼 역사를 써보자꾸나.”
그들은 회사의 중추. 문명의 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