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192화 (192/207)

# 차장 #

일류. 무공에서 이 경지에 닿는 것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증표라고 한다. 나름대로 고수 반열에 들어가는 수준이며, 주변으로부터 경외 받기 시작하는 단계.

이렇게 대접받는 이유에 대해서 묻는다면, 당연히 검기라는 이유를 들 수 있다. 그것이 이류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증거인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검기를 뿜을 수 없는 존재는 일류로써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 해볼까.’

짧은 심호흡을 한다. 온몸에 흐르는 내공이 느껴지는 지금. 실패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부족한 내공으로 만들어봤는데, 그 이후에는 못했으니까.

어쩌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요소가 있을 수도 있다고, 실패에 대한 정신적 안전장치를 둔 후에 내공을 움직였다.

근 50년에 가까운 내공은 내 의지에 따라 온몸을 타고 흘렀다. 온몸의 혈류에 맞춰 흐르는 막대한 기운. 거기에 남은 기운은 신의 손으로 타고 들어간다.

내공은 신의 손에 들어가서도 그 움직임의 방식을 달리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신체의 일부라도 되는 양, 구석구석 거미줄처럼 파고든다.

이것이 올바른 검기에 대한 사용방식. 몸과 무기를 하나처럼 여길 수 있는 신검합일(身劍合一)에 닿아, 무기에 자신의 몸처럼 기를 불어 넣을 수 있어야 검기가 발현되는 것이다.

지속성. 그게 여태까지의 무공과는 다른 점이다. 몸과 같은 수준의 내공을 흘려야 하므로 당연히 막대한 양이 필요한 기술. 예전에 펼쳤을 때야 팔에만 둘러서 임시로 발현한 것이지만, 명확한 발현의 형태로는 이게 맞았다.

치링.

신의 손에 갈색과 비슷한 빛이 맺힌다. 검기는 내공의 성질에 따라 발현되는 색을 달리한다. 갈색은 흙(土)과 나무(木)의 성질을 가져왔다는 뜻이다.

자칫 칙칙해 보일 수 있는 색이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검기는 깨끗하고 맑은 기운으로 오히려 예쁘다는 감각을 받을 수 있었다. 모든 색이 저마다의 특징이 있는 것처럼, 무형의 기운인 검기는 빛과 가장 닮았기에 부정적인 기분은 들지 않았다.

‘됐다.’

신의 손 전체에 일렁이는 기를 보며. 속으로 작은 숨을 내뱉곤, 흐름을 끊었다.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2층의 연습장 내구도가 검기를 버틸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곳은 몸을 수련하는 곳이지, 파괴적인 기술을 실험하기 위한 장소가 아닌 탓이다.

‘으음. 어디 잠깐 실험해 볼 곳 좀 찾아볼까.’

몸이 근질근질하다. 검기의 위력이야 익히 알고 있지만, 한번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적당히 이동할만한 차원을 찾아보다가, 휘아가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검갑룡을 잡은 직후엔 기절하듯 자고 있어 제대로 보질 못했다. 그녀에게 대련도 부탁할 겸, 안부를 묻기 위해 연락을 넣었다.

답장은 금세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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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발신자 : 휘아

내용 : 마법을 쓴 후유증이 좀 있어서 요양 중이었습니다. 마침 회복도 끝났으니, 대련이라면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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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와 대련을 위해 보낸 메시지였건만, 후유증이라는 말이 더 신경 쓰인다. 그녀와 이야기를 조정한 뒤, 곧장 이동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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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많은 세력이 있다. 그중 다차원파견회사는 전 차원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최초로 만들어진 다종족 세력이다. 그 역사는 길고 깊으며, 영향력은 넓다. 사실 협회가 쫓아가고 있다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 일정 계급 이상은 되어야 존재를 알려주는 걸 생각하면 수준의 차이가 있다.

그런 협회가 회사와 맞설 수 있었던 건, 협회장과 협회의 간부들 덕분이었다.

이러한 간부들 중에서도 라비린토는 꽤 특수한 위치에 있었다. 본디 악마란 다른 세력에 포함되기 어려운 탓이다.

악마라는 존재가 다른 세력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 거기에는 몇 가지가 있었지만, 역시 가장 커다란 이유라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악마’라는 세력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정령과 더불어 단일 종족으로선 무척 드물게 힘과 이름을 떨치고 있는 세력인 악마. 라비린토는 지금 그 악마의 세력권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더러운 녀석이 왔군.

-쉬잇. 조용히 해. 입조심하지 않으면 소멸당할 거야.

-힘만 없다면 지금 당장 찢어 버렸을 텐데.

악마로서의 본질을 져버리고 다른 세력에 포함된 그는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격당하진 않는다. 당연하게도 그가 강한 탓이다. 2좌 중에서도 이름을 날렸던 라비린토에게 덤빌 수 있는 악마란 매우 드물었다.

따라서 그는 한껏 주목을 모으면서도 아무런 방해 없이 나아갔다. 척박한 땅. 생명체라곤 일절 살아갈 수 없는 죽음의 땅이지만, 악마들에게는 딱히 상관없는 세상을 걸어간다. 그리고 따분하다는 듯, 앉아 있는 존재에게 이르렀다.

-무슨 일이냐.

그는 라비린토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주변 악마들이 소란스러운 것으로 누가 왔는지 알기엔 충분한 탓이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도 않았다. 그와 라비린토는 어떠한 사이도 아니었으며, 감정을 드러낼 만한 일도 없었던 탓이다.

“제안을 드리러 왔습니다.”

그렇기에 라비린토 역시 말을 늘이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 악마다. 상대방을 속이기란 지극히 어려우면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가능성도 적은 상대. 감정의 골이 있다면 서로 씹어 삼키려 들겠지만, 그렇지도 않다면 전투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칫 제 3자에게 돌아갈 이득을 경계하는 탓이다.

즉, 둘의 모습은 악마로서 매우 자연스러운 거래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다른 점이 있다면, 라비린토는 눈앞의 존재. 1좌의 마신(魔神)에게만 원한 관계가 없었을 뿐, 다른 2좌의 극마(極魔)들에게는 꽤 많은 원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하는 둘의 주변으로 다른 악마들이 몰려든다. 그러나 라비린토는 신경 쓰지 않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랜만에 다른 차원으로 나들이나 가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참 꿍꿍이가 훤히 보이는 제안이로군. 나를 누군가에게 싸움 붙이고 싶나 보지?

어린아이도 눈치챌만한 이야기에 마신은 흥미를 보였다. 사실 그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소환해주는 존재가 없어서이지, 나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렇게 척박한 땅. 머물고 싶은 존재란 거의 없었다. 이곳이 정신계 차원이며, 악마들의 탄생지이자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는 장소이기 때문에 머무는 것뿐이다.

물론, 세상에 악마를 소환하려는 존재란 무수히 많다. 호기심, 힘, 생존 본능, 욕심 등의 각가지 이유로 악마를 소환하려는 존재가 넘치는 탓이다.

하지만 그것은 힘이 약한 존재일수록 쉽다. 당연하지만 소환술에는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마신 역시 그 법칙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힘이 약했을 때는 몇 번 소환된 적이 있었지만, 3좌에 올라선 뒤론 같은 악마들을 잡아먹으며 성장했다.

모든 악마는 다른 차원에 가는 것을 원하는 근본적 욕망이 있는 것이다.

마신이 흥미를 느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네놈이 날 이용하고 싶어 하는 거라면 상대는 회사 쪽이겠군. 그래. 어디 무슨 짓을 하려는지 들어나 보실까.

“별건 없습니다. 그저 회사의 중추를 좀 치려는 것뿐이지요.”

-그것참 재미있겠군. 마룡들한테 전멸당하는 모습이 눈에 훤해. 아니면 손발을 묶을 방법이라도 찾은 건가?

마룡. 특유의 게으름 때문에 그렇지, 힘 자체만 보자면 더할 나위 없는 존재들이다. 회사가 설립된 지 무수한 세월이 흘렀지만, 제대로 된 침공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이 마룡들 탓이 컸다.

특히 기다리다 요격하거나 방어하는 것에 있어서 이 종족을 따라갈 이들이 없었다. 마신은 이 사실을 아주 잘 알았다.

-말해준 적이 없었던가. 한번 마룡을 상대한 적이 있다고 말이지.

지금보다 훨씬 약했던 때. 당시에 마신은 인간을 속여 유리한 계약을 체결한 때였다. 그 세계를 즐기고 있던 그는, 주변에 조용히 있던 마룡을 건드려 보기로 했다. 특유의 게으름을 이용하면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만약 마룡을 잡는다면, 수많은 일이 가능해진다. 그런 욕심을 품으며 소수의 부대를 대량으로 만들어 게릴라 같은 공격을 시도했다.

첫 공격은 0.3초 만에 전멸이었다. 마룡이 힐끗 보고 ‘사라져’라고 외친 것만으로 해골 부대가 사라졌다. 하지만 익히 예상된 일. 그는 차례로 공격을 보냈다.

세 번까지 공격해 들어가자 마룡이 짜증을 냈다. 그리고 네 번째 공격에 들어갔을 때, 계약자가 저격이 걸린 마법을 맞고 죽었다.

마신은 그 경험을 통해, 그들의 게으름이 근본적으로 육체의 움직임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나도 게을러서 입을 움직이는 것, 손을 까딱하는 것도 싫어하지만, 까딱해서 근본을 제거할 수 있다면 한다.

검갑룡의 경우야 근본이 제거가 안 되니 자살을 고민한 것이지, 가능하다면 해결하겠다는 의지 자체는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방어가 아닌 공격을 시도한다? 어마어마한 출혈을 감소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마신은 이죽거리며 라비린토에게 물었다.

-악마 전체가 달려들어도 수 초면 끝난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계획했는지 궁금하군.

“맞는 말씀이시죠. 그럼 이쪽에서 방패막이를 준비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방패?

“예. 신비 포식자를 준비하지요.”

-···스펠 이터인가?

“아뇨. 안타깝게도 그는 죽어서 말이지요.”

-말이 되질 않는군.

확실히 신비 포식자는 마룡의 천적이다. 그들은 마법을 먹어치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무한히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계 용량이란 건 분명히 존재했고, 그 수준은 한 마리당 마룡의 마법을 몇 번 감당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협회의 존재했던 전설적인 신비 포식자, 스펠 이터라면 마룡을 잡아서 사육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나머지는 그 정도에 닿진 못한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던 그에게 라비린토가 마지막 제안을 던졌다.

“이번 일을 마무리해 주시면 ‘육체’를 드리겠습니다.”

-이건 또 참신한 미친 소리로군. 악마가 육체를 입는다고 말했나?

악마는 어디까지나 정신체. 따라서 다른 차원을 이동하려면 소환과 계약이 필요하다. 정령계의 정령들이 바깥에 돌아다니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 육체를 얻는다면 차원 이동의 수단만 구해진다면, 개별적으로 돌아다니는 게 가능해진다.

“네. 육체입니다. 본래는 계약자를 소개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저희 협회장님께서 화가 많이 나셔서 말이지요. 드릴 수 있는 것이 늘어났습니다. 약 50체. 악마가 입을 수 있는 육체와 차원을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드리지요.”

-···신뢰가 안가는 군.

예측된 일에 라비린토는 어깨를 으쓱하며 품에서 물건을 꺼내 들었다. 신성함이 깃든 물품. 주변에 있던 모든 악마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흩어진다. 그것을 악마인 라비린토는 적은 피해를 집으면서 들고 있었다.

마신에겐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네놈. 육체를 입고 있군.

악마가 신관술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은 정신체이기 때문인 게 가장 크다. 그것을 버틸 수 있다는 건 육체를 얻었다는 증거. 협회에 들어가기 전까지 평범한 악마였음을 기억하는 마신에게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다행히 신뢰는 얻을 수 있었던 것 같군요. 그럼 결과를 들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협조하지. 대신, 선불이다.

“좋습니다. 준비가 조금 필요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다만, 계약서를 작성해 주시죠.”

둘은 악마의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같은 악마들이기에 사기는 불가능하고, 절대적인 신뢰로 묶이는 계약. 내용을 신중히 살피며 항목들을 적은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적는 것으로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바야흐로 악마가 회사의 침공을 결정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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