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190화 (190/207)

# 차장 #

쿠우웅!

거대한 거체이니 만큼, 녀석이 쓰러지는 소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일부러 바닥에 내려선 것과는 또 다른 충격. 그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은 검갑룡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화의 한 장면 같았다.

바닥으로 착지한 나 또한 마찬가지. 검갑룡의 입 앞에 서 있나니, 금방이라고 깨어나 잡아먹힐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녀석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빛도 없었다. 정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인형으로 마무리를 확인한 다음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위험했다.’

처음 참전했을 때만 해도 다 죽어가는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마지막 발악을 나한테 할 줄이야. 솔직히 생각 못 한 전개였다. 짧은 시간에 갑작스러운 피로감을 느낀다. 하지만 언제까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법. 나는 인형을 회수하고 데드하울을 살폈다.

-크롸라.

양쪽 날개와 앞발 하나가 부서지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녀석은 생존해 있었다. 주변에 커다란 파편들도 떨어져 있었으니, 주워서 수리하면 약간의 내구도가 떨어지는 것 외에 피해는 없을 듯했다.

“고생했어. 일단 잠시만 더 버텨줘.”

-크롸아.

당장 집에 데려가서 수리해 주고 싶었지만, 아직 뒤처리가 남아 있었다. 주변에서 커다란 파편을 주운 나는, 조금 뒤늦게 찾아온 다른 일행들과 합류했다. 그리고 검갑룡에 대한 처분을 논의했다.

“처리반을 따로 고용하겠습니다. 그때까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경계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운드는 우리에게 뒤처리까지 맡기는 일을 시키진 않았다. 대신, 검갑룡과의 전투가 두려워서 사렸던 이들과 남아 있었던 제작반 등을 불러서 뒤처리를 시켰다. 지쳐 있던 전투조는 도착까지 휴식에 들어갔고, 조금 쌩쌩한 지원조가 경계를 서기로 했다.

결정적인 마무리를 지었던 나는 전투조에 포함되어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쉬라고 해도 정신과 물질적 피해가 전부였던지라, 팔다리 뻗고 쉬기보다는 아는 존재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청전 씨. 둘 다 괜찮으신가요?”

“오랜만이로군. 뭐, 나는 보는 대로 그냥그냥 있을 만하네. 제자는 곯아떨어졌지만.”

“···.”

청전과 휘아는 모닥불 같은 것을 피워 놓고, 앉아 있었다. 얼굴에 피로가 좀 묻어난 게 보인 청전이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쌩쌩했다. 지쳤지만 정신줄까지 놓고 뻗을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반대로 휘아는 청전의 어깨에 기대어 자면서 일어나질 않았다. 이 정도면 거의 기절한 수준이다. 그녀에 대해 신경을 쓰고 옆에 적당히 자리를 잡아 청전에게 물었다.

“제가 만들어드린 마법 도구는 어땠나요?”

“마법 도구? 아아. 이것 말이로군.”

그는 대형화 마법 도구를 꺼냈다. 한순간이나마 거인이 되어 움직이게 해주는 도구. 무공 쪽의 대표적인 이사진으로 예측되는 이에게 사용 소감을 좀 들어보고 싶었다.

“몸에 엄청 부담 가는 마법이더군. 다른 건 몰라도 내공이 비대해진다는 기분이란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감각이었다네.”

“불쾌했나요?”

“불쾌라는 한마디로 정의하기엔 어렵겠군. 일단 내가 가진 것이 갑자기 커지니, 처음에는 기쁘면서 당황했다네. 힘이란 게 이렇게 쉽게 얻는 것인가 순간 고민도 들었고. 하지만 막상 사용하고 보니 그냥 크기에 맞게 불렸을 뿐이란 걸 알고는 놀랐지. 내공이 이렇게 늘어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거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내 경지는 아직 일류에 닿지도 못했지만, 내공이라는 기운에 대한 이해는 굉장히 높은 편이다. 막말로 여태까지 무공의 증진에 필요했던 것은 내공의 양과 다루는 방법이 전부였을 정도. 한번 깨우치면 잃어버리거나 헷갈린 적이 없었다.

수준 낮은 내가 알았던 사실이니만큼, 천인(天人)으로 진화까지 한 그라면 당연히 알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무기로서의 성능은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그 부분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더군. 솔직하게 커다래진 몸으로 무공을 펼치는 건 정말 독특한 기분이 들더군. 장기전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단기전에서는 비장의 한 수라 물려도 무방하겠지.”

듣기 좋은 평가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었다.

“이거 팔면 얼마쯤 할까요?”

“···거기까진 잘 모르겠군. 나는 장사치가 아니어서.”

그는 정확한 평가를 피하면서도 낮은 가격은 아닐 거란 말을 덧붙였다. 오히려 잠시 생각해보더니 될 수 있으면 비싸게 팔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런 물건이 너무 많이 돌아다녀도 문제네. 어중이떠중이들이 실력도 없이 물건만 가지고 날뛸 수 있으니까.”

“그 부분은 확실하게 조정할게요.”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쯤, 교대 인원들이 도착했다. 그들이 검갑룡의 죽음을 확인하고, 뒤처리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가 오갈 때쯤에야, 우리는 진정으로 토벌 작전이 끝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검갑룡의 토벌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지아에게 혼났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마디도 안 했는데, 데드하울이 부서진 것만 봐도 커다란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죽을 뻔했으니, 할 말은 없었다.

“우와. 무진장 부서졌네. 난 안 불려가서 다행이다.”

실없는 소리를 하는 위시에게 꿀밤 한 대를 그날은 휴식과 데드하울의 수리를 했다. 다행히 뼛조각 대부분을 가져올 수 있었던 덕분에 재료가 모자라는 일은 없었다.

다음날에는 검갑룡에게 마무리 일격을 먹인 인형들을 확인했다. 원래는 단환을 먹어 내공 훈련을 하고 싶었지만, 인형에게 변형이 일어난 탓이다.

나는 손에 열 개의 인형을 들어 마당에 늘어놓았다. 지금은 작아진 상태라지만, 본래의 크기로 되돌리면 제작했을 때보다 체적이 4~50배가량 불어나 버린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거대 인형이 되어 버린 것이다.

뭐, 그렇지 않으면 검갑룡의 피부를 뚫고 나올 리 없으니,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녀석들에게 걸어 놓은 마법과 저주가 엉켜버린 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인데···.’

인형 하나를 들어보며 떨떠름한 미소를 짓는다. 원래 이 인형은 이 크기만큼 줄어들 수 없다. 본래 크기의 4~50배. 즉, 40~50개의 인형을 합쳐놓은 수준이라면 근 10m가 넘는 거체다. 이 인형에게 쓴 마법은 그렇게까지 차이 나는 몸을 줄일 수 없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마법적인 문제가 아닌 출력의 문제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성공했다. 나는 단순히 검갑룡의 입에서 인형을 회수하기 위해 줄였던 것뿐인데, 원래 계획한 크기만큼 줄어든 것이다.

내가 알 수 없는 마법적인 요소가 포함된 일이다. 무공보다 더 중요시하는 건 당연했다. 나는 집에 걸린 은신 마법을 믿고 인형을 원래 크기로 돌려보았다.

그러자 마당이 꽉 찰 정도의 거인이 등장한다. 나는 인형에 새겨진 마법진을 관찰했다.

‘···마법이 저주랑 엉킨 건 확실해 보이는데.’

해석할 수 없던 것 중에 하나 더. 내가 마지막에 쓴 마법은 저주의 개조 버전이며, 동시에 지속형이 아니었다. 즉, 불가사리 마법은 효과가 사라졌어야 마땅하다는 것. 그런데 이것 또한 유지되고 있다. 이 부분을 확인해 보기 위해, 인형을 꼼꼼히 조사해 본다. 우선은 마법진의 변화를 살폈다.

‘···물들었네.’

마법진에는 검붉은 색. 그러니까 검갑룡이 흘렸던 피와 매우 흡사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예상치 못한 변화. 이게 이 이상 사태의 원인일 수도 있기에, 확인해 본다. 탐색 마법 등을 펼쳐가며 성분을 검색해보니, 신의 손으로 그린 마법진에 검갑룡의 피가 흡수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신의 손이 가진 마법과 불가사리 마법이 합쳐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즉, 봉황 촉매가 금속성으로 물들였을 때 쓰인 마법 문자가, 외형을 변화시키는 마법의 영향으로 금속성이 포함된 액체인 검갑룡의 피를 받아들인 것이다.

내 마법적 지식으로서도 무척이나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하긴, 애초에 봉황 촉매나 피가 쇳물과 다름없는 검갑룡, 상대방을 먹어 몸집을 키우는 저주 마법이 합쳐지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 사항이다. 하나도 모이기 어려운 조건이니, 일반적인 게 더 이상했다.

문제는 이렇게 받아들인 검갑룡의 피가 마법진과 인형에 변화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현상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알고 있었다.

“우상숭배···”

주술의 근본. 이해할 수 있었던 확대 해석과 달리, 제대로 감을 잡지 못했던 우상숭배의 부분. 그것이 지금 이 인형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인형의 해석에 빠져들었다. 정확히 알지 못했던 지식이 우연스럽게 내 앞에 섰다. 그것도 마법과 저주, 기계가 하나 된 형태로 모인 것이다. 이걸 그냥 넘어가서야 게으름 대신 지식을 탐하게 된 자의 이름이 운다.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겠다는 기세로 인형에 파고들었다.

약 1시간의 조사 결과, 검갑룡의 피가 우상숭배의 기원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검갑룡은 분명 악이고, 숭배할만한 대상이 아니거늘 어째서 우상숭배가 성립하는지 모르겠다. 이 부분을 알아보기 위해, 지구의 전설 쪽을 뒤져봤다. 옛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설화나 신화 같은 것을 살펴본 것이다. 그러자 당연한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옛사람들은 무조건 선한 신만 섬기지 않았다는 것. 즉, 악신이나 재앙신 역시 ‘오지 말아달라’는 형태로 숭배되어온 것이다. 레둘라둘의 ‘우리 편 강자=숭배’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착각한 부분이었다.

또한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열 개의 인형. 검갑룡의 신체를 먹어 치우며 성장하고, 그 살을 뚫고 나온 것 등등. 일반적인 존재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재앙신’ 위치의 검갑룡을 해치운 것도 영향이 있었다.

여기까지 깨닫는데 걸린 시간은 13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크게 착각한 마지막 한 가지 조건. 우상숭배라고 해서, 많은 사람이 알거나 보아야지만 성립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역사나 신화에 어울리는 사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범접하기 어려운 일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목격한 사람들의 수준도 어느 정도 중요한 요소다. 나 역시 이 인형들 못지않게 많은 일을 벌여 왔지만,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은 목격자가 그만큼 아는 것이 많았던 탓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 나는 용을 이긴 마법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와 동시에 선천적 마법사라는 사실 또한 어느 정도 알려졌다. 즉, 용과 같은 수준의 재능이 있다는 걸 회사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내 행위는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으로 변한다. 여태 동안 은신 마법을 주로 사용한 것이나, 커다란 마법보다 작은 것을 연결한 게 독이 된 것이다.

이렇게 우상숭배에 대한 명확한 정리까지 끝나자, 머릿속에 주술이란 기술의 기틀이 세워진다. 그것은 여태까지 봐왔던 것들과 마법, 저주의 관점에서 생각한 이견을 살로써 덧붙이며 점점 더 높이 세워졌다.

그것은 곧 저주와 마법 사이를 파고들어 다리를 완성했다. 그 둘 사이에 억지로 연결해둔 진리의 파편을 주술이 완벽하게 메운 것이다.

나는 이 세 가지 기술이 연동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마법으로 세상의 규칙을 비틀고, 주술로 그것을 우상화하며, 저주로 세상의 법칙을 완전히 벗어난다. 새로운 충격이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세상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한순간 발아래 대지가 썩어빠진 나무다리처럼 보인다. 흔들흔들 삐걱대는 그것은 발을 크게 구르기라도 하면 무너질 것 같았다.

“아아··· 아아···”

아니.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세 가지 기술을 연동시키면, 지구 정도 파괴하는 정도야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규칙이란 생각보다 훨씬 더 연약했다. 그저 하나의 생명체가 마음만 먹고 실행하면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느끼자 두려움이 몰려온다. 모든 것이 유리 조각 같아 무언가 하기가 무서웠다. 누군가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쾌감을 느낀다 하였다. 하지만 실상은 무한한 공포일뿐이다.

“으으···”

이런 세상으로 괜찮은 걸까? 불안감이 몰려온다. 내 가족은 모를 것이다. 지구란 것이 이렇게 불완전한 것임을. 그렇다면 아예 부숴서 새로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 그게 옳을지도 모른다. 훨씬 더 튼튼하고 간섭하기 어려운 법칙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부수자. 부숴서 다시 만들자.

나는 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다리에 마법 문자를 새겨 나간다. 규칙을 비트는 문자를 쓰고, 그것을 확대해석하며 숭배할만한 대상으로 끌어 올린다.

생명체? 필요 없다. 내 눈앞에 인형이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능했다. 확대 해석은 ‘人形’을 인간처럼 인식시키는 게 가능하다. 이 비틀어진 규칙 사이로 법칙을 변화시키는 저주를 시도한다. 좀 까다로운 부분이다. 본래 저주는 마녀가 쓰는 기술이니까. 그러니 마법으로 돌려쓰는 방법을 시도하면 된다.

그렇게 손을 움직이려는 찰라.

“연성 씨. 괜찮으셔요?”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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