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장 #
회의장은 침울했다. 목표대상이 싸워보지도 않고 도주한 것은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쾅!
“제길. 덩치도 커다란 녀석이 쥐새끼처럼 내빼다니!”
보라디옷은 탁자를 내리쳤다. 다들 아무 말 없었지만, 속으로는 그와 동조하고 있었다.
이쪽이 어떤 마음으로 검갑룡을 처리하러 갔단 말인가. 전투조는 목숨을 걸고, 제작자는 조금이라도 가능성과 희생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 모든 게 녀석이 다른 곳에서 날뛰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당사자는 마치 게릴라처럼 한 대 치고 도망을 쳤으니, 우리 쪽에서는 분통 터지고도 남을 노릇이었다.
“이상한 구멍으로 도망쳤다고 했던가? 그게 뭔지 아는 존재 있나?”
“도약룡이라는 괴룡의 비늘인데, 차원과 차원 사이를 연결해주는 거예요. 회사의 이동 시스템처럼 단번에 움직이거나 안전을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마구잡이로 넘어간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없겠죠. 물론, 이동 중에 공격받는 것과 무방비해지는 건 어느 정도 같아요.”
“···협회가 쓰는 차원 이동이란 건가. 용케도 정보를 알고 있군그래.”
“하하. 그러게요.”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다. 내통자가 아닌 이상 정보의 출처는 중요한 게 아니었던 탓이다. 회의가 진행되었고, 전투 팀장 중 하나가 하운드에게 말을 걸었다.
“하운드 씨. 당신은 검갑룡이 도망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모르고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과거에 검갑룡이 몇 차례 도망간 기록이 있었으니, 가능성 자체는 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홀로그램 하나를 띄우며 이어나갔다.
“이만한 규모의 토벌대와 싸우지도 않고 도망간 것은 처음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예전에는 4~5배 수준의 병력이 몰려갔으니까요.”
“으음. 오히려 숫자가 줄어서 도망갔을 수도 있겠군.”
머릿수는 줄었지만, 그만큼 질은 늘어났다. 따라서 전체적인 전력 차이는 거의 없었다. 아니, 검갑룡의 공격을 몇 번씩 버틸 정도로 질이 늘어난 만큼, 오히려 더 강해졌다.
어쩌면 상대하기 껄끄러워서 도주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 신빙성을 얻는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뚜렷한 대책은 없었다. 그렇다고 약한 존재들을 미끼로 투하할 순 없는 탓이다.
‘일반적인 군대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회사라면 안 되겠지.’
팀장급들을 시끄러운 회의를 이어갔다. 조용히 침묵할 때보다는 훨씬 좋았지만, 딱히 생산성 없는 말들이 이어진다는 면에서 좀 전과 다를 게 없었다. 나는 헛기침으로 이목을 끌어모은 다음, 한마디를 했다.
“저희 하나씩 따져보는 건 어떨까요?”
“그건 무슨 소리요?”
“곧장 검갑룡을 잡는 걸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하나씩 하자는 거죠. 예를 들면, 검갑룡은 어떻게 도망칠 수 있었던 걸까요?”
잠시 회의실이 침묵했다. 그러다 누군가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분명 소개 때 마룡들의 대표로 나온 존재였다. 물론, 마룡은 아니었고, 그들을 모시는 존재들 중의 하나였지만, 확실히 마룡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발언권을 얻은 그는 장내의 이목을 받으며 말했다.
“이번에 작전을 가면서 마룡님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 내용 중 하나로 ‘우리 기척 좀 숨겨야 하나? 가면 바로 들킬 것 같은데?’ ‘에이, 괜찮겠지 뭐.’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모인 존재들이 침음성을 낸다. 당장 마룡들에게 찾아가 따지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검갑룡이 쏘아 보낸 비늘검을 피해 없이 막은 게 전부 마룡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어험. 그럼 마룡들이 존재감을 감추고, 몰래 가면 해결할 수 있는 일 아니요?”
회의장의 누군가 말했지만, 장내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특히 마룡에 대해서 아는 이들은 기대도 안 한다는 표정.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룡의 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귀찮은 일은 수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건 마법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존재감’이란 말로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다른 존재들은 느껴보지도 못한 감각인 탓이다. 실제로 나 역시 마룡인 오리안느를 만났지만, 멀리서 느낄 정도의 압도적인 무언가는 느끼지 못했다.
아마 이 부분을 정리하자면 용들만 느낄 수 있는 냄새 비슷한 거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막기 위해서는 꽤 오랜 연구가 필요할 거다.
그럴 시간은 없으니, 우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원인 중 한 가지를 알았으므로 회의에 활기가 돌아왔다.
“마룡들과 다른 존재들을 따로 출격시켜야겠군. 바짝 긴장해야겠어.”
“찾으면 기습을 시도해보지. 어찌 되었든 충돌할 수만 있다면, 차원 이동도 쉽진 않을 거야.”
“미끼로 끌어들이는 건 어떤가?”
“그것도 괜찮군. 하지만 그러려면 미끼의 준비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존재들을 두고, 나는 조심스럽게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생각하는 전제. 그러니까 전투가 벌어지면 차원 이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정말로 전투가 벌어지면 얌전히 싸울까?’
가능성 높은 생각이다. 아니, 상식적으로는 그게 정상이었다. 차원 이동 중에 무방비해지는 것은 용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이동한다면? 검갑룡은 상처를 회복할 때까지 숨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회사를 더욱 경계할 테고. 훌륭한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아예 퇴로를 막아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것만큼은 나도 쉽지 않았다. 공간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이론상으로 마법을 통해 다룰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실전에서 펼치는 것과 다른 존재의 이동을 막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게다가 하필이면 도약용의 비늘을 쓴 이동이란 말이지.’
회사의 차원 이동은 마법과 기계의 합작이다. 그만큼 내가 관여할 여지가 넓은 데 반해, 도약룡의 비늘은 원리를 알 수 없었다. 마법과 다른 힘. 때문에 내가 방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마 기껏 해봐야 차원의 구멍이 넓어지는 시간을 늦추는 정도리라.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보라디옷이 내 어깨를 흔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아, 검갑룡이 도망가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방법이 있나?”
아차, 실수했다. 순식간에 이목이 쏠린 걸 보며, 난감한 미소를 띄웠다. 아직 완벽한 게 아니니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이거라도 말할 수밖에.
“검갑룡이 도망갈 방법은 결국 차원 이동뿐이잖아요? 그 커다란 몸을 감출 수도 없고, 어딜 가든 보일 테니까요.”
“그렇지.”
“그러니 차원 이동을 막을 방법을 생각해 봤어요.”
“가능한가?!”
보라디옷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날 정도로 효과적인 퇴로 차단.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거기까지는. 검은 구멍이 열리는 속도를 줄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얼마나?”
“한 30배 정도요.”
“30분 정도인가. 완벽하게 막는 건 아니로군.”
“전투에 들어간 뒤에 30분은 큽니다. 혹시나 적이 목숨만이라도 붙여 달아나려 한다면 효과적일 수 있겠군요.”
“그건 그렇겠어. 좋아. 그 부분은 전적으로 너한테 맡기마.”
내가 어설픈 미소로 수락하는 걸 끝으로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나올만한 방법은 거의 다 나왔고, 이젠 실행밖에 남지 않은 탓이다.
그렇게 검갑룡을 잡기 위한 2차 준비가 시작되었다. 이 기간은 수색팀과 제작팀이 활약할 때였다. 수색팀은 검갑룡의 꼬리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워낙 거대한 녀석이니만큼, 쉽게 발견될 것 같았지만, 회사의 영향력이 매우 낮은 차원으로 도망치면 우리도 방법이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미지의 차원을 발로 뛰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시간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우리 제작팀은 미끼와 매복을 위한 준비물을 만들었다. 기계, 환영 마법, 시체를 이용한 분장 등등. 인도적 차원의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들며 작전을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회사의 지원을 한가득 받아 차원 이동에 간섭하는 물건을 만들었다. 소모된 보석량은 예전 레비아탄을 만들 정도와 비슷한 수준. 어마어마한 양의 보석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이동을 지체하는 게 고작 이라니. 언젠가 한 번 이 도약룡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하루 뒤. 검갑룡의 위치가 파악되고 토벌대가 움직였다.
****
“목표는 알고 있겠지?”
어느 차원의 한구석. 옹기종기 모인 이사진과 사원들은 대표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사이에 마룡은 없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은 작전이 시작되고 10분 뒤에 도착한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 있는 선행 부대는 마룡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과 비밀 병기의 조림 시간 동안 이목을 끄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그건 부차적인 목적에 불과했다.
“우린··· 마룡을 처리한다.”
패기 넘치는 발언. 그러나 그 발언을 부정할 존재는 없다. 애초에 그런 이들만 모인 것이다. 분명 그들도 목숨을 아까워한다. 그러나 목숨을 아끼기 위해서 이길 수 있는 전투를 피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본래라면 시간만 끌게 된 이들. 그들은 어떤 천재적인 마법사에 의해 기회를 얻었다. 작은 가시 밖에 안 되는 그들의 무기와 힘을 대폭 증감시킬 방법이 생긴 것이다.
전사로써의 자존심이 있는 그들에게 이 기회는 하늘이 준 것과 다름없었다. 시간을 끄는 건 당연했다. 그 이상을 노리는 게 목적이다. 각각 실력과 자신감이 팽배한 전사들은 각오를 다졌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저 괴물을 잡겠다는 일념을 바로 잡았다.
“좋아. 그럼 출발한다.”
그렇게 검갑룡의 기습 부대가 움직였다.
****
검갑룡은 느긋했다. 회사의 존재가 추적한다고 한들, 영향력이 강한 차원만 아니면 들킬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걸 믿고 이 주 정도 시간을 뒀다가 움직일 생각이었다.
특별히 회사를 피하려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그냥 원래 그가 학살을 즐기는 주기가 그러했다. 몸이 달아올라서 한 달이었던 휴식 주기가 줄어들었지만, 사소한 일이다. 검갑룡은 어떻게 학살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가며 유유히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의 평화는 돌연 끝을 맞이했다.
퓨우우웅! 콰과과과광!
-···으음?
지상에서의 갑작스러운 포격음. 그리고 따끔한 감각을 느낀 검갑룡이 상념에서 깨어 아래쪽을 바라본다. 그러자 회사의 인원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들이 아래에서 대형 화기로 공격한 것이다.
-하하하···
검갑룡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위치가 발각되고 기습당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며 외쳤다.
-네놈들이 오래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는 오래 살아온 존재이며 회사와 충돌해 왔다. 그 몇 번의 경험 속에 기습은 꽤 흔한 일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기습한 이들의 구성은 나름 잘 아는 편이었다.
‘이곳에 마룡은 없다.’
게으름에 골수까지 절여진 존재들. 기척을 감추는 기습에 용이 포함될 일은 절대 없었다. 그 말인 즉, 아래 있는 녀석들은 대번에 학살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단번에 모두 처리해주마.
비늘검이 호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돋아나는 데엔 시간이 걸리지만, 검갑룡이 몸을 한 바퀴 뒤집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그의 거대한 몸집은 고작 1km²의 공간에 검우(劍雨)를 뿌리는 것 따윈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카가가가가강!
아래에서 불똥이 튄다. 비늘검을 튕겨내는 것이다. 검갑룡은 감탄했다.
‘고작 기습부대 주제에 힘을 썼군.’
그러나 역사상 기습 부대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받은 적이 없는 몸이다. 그는 계속해서 검우를 뿌리며 몸의 회전 속도를 올렸다. 조금만 더 속도가 붙으면 몸소 바닥을 긁어서 모조리 고기 파편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때, 기습 부대에 이변이 벌어졌다.
“1열! 시작해라!”
-음?
거대한 호령 소리와 함께, 기습 부대 열이 부풀어 올랐다. 그중 셋은 여전히 검우를 막았지만, 일곱은 공격을 준비했다.
검갑룡은 코웃음을 쳤다. 그의 입장에선 벌레만 한 녀석들이 작은 쥐새끼만 한 수준으로 커진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거대화 마법은 그냥 크기만 불린 것. 일반적인 생명체에게야 나름대로 쓸모가 있겠지만, 회사의 존재들에겐 오히려 기술을 봉인하는 거였다. 오히려 전투력을 떨어트리는 것이다.
‘가시가 바늘이 됐군.’
하지만 바늘로 생명체를 죽이는 건 지난한 일.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몸을 계속 회전시켰다. 그리고 일곱의 존재가 뛰어오른 순간, 커다란 고통을 느껴야 했다.
-으음?!
비명은 없었다. 본디 비명과 같은 소리란 살려달라는 구조 신호다. 용은 세계 최강의 생명체로서, 온전히 자란 이후 비명을 내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감(無感)한 건 아니었다. 그는 다급히 몸을 꼬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검무를 펼친 일곱의 존재가 있었다.
-거대화를 하고 검무를 썼다고?
불가능한 일이다. 본디 검무란 크기와도 관련이 있는 기술. 몸이 커진다면 당연히 동작 또한 달라져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저건 이미 거대화 마법이 아니었다.
-꽤나 재미있는 재주를 보여줬다만.
검갑룡은 피를 흘렸다. 검고 찐득한, 마치 쇳물과 같은 액체. 그것을 홍수처럼 흘려댔다. 그러나 그것은 검갑룡의 전체와 비교했을 때, 손으로 받아낼 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헛된 짓이다.
그는 상처를 무시하고 움직였다. 기습 부대의 머리 위로 거대한 회전 칼날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