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184화 (184/207)

# 차장 #

"멜드멜이 보기에는 어때요?“

완성된 산삼을 가지고 연금술사인 멜드멜에게 보여줬다. 많은 재료를 다뤄본 이 슬라임은 산삼을 꼼꼼히 확인하더니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솔직히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표현하자면 어린아이가 명검을 들었다고나 할까요. 약재의 나이 같은 것에 비해 터무니없는 양의 기운이 품고 있지요. 약재로서의 효능이나 가공했을 때의 손실 비율 등은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겠죠.”

그렇지 않아도 적지 않은 기운이 빠져나간 상황. 주변 식물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정도니, 어느 정도가 빠져나갔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여기서 더 힘을 잃는 건 뼈아픈 타격일 것이다.

하지만 투정을 부릴 순 없었다. 영약을 단환으로 만드는 것은 흡수율을 높여주기 위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지금 내가 이 산삼을 먹어도 30년 내공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순 없다는 소리다. 영약이라고는 해도 결국엔 다른 존재의 기운이기에, 받아들이는 데엔 각종 절차나 장애물이 있는 탓이다.

그 장벽을 낮춰주는 것이 단환으로 만드는 거다. 이 과정에서 손실되는 기운이 있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한 일. 그걸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경험 많은 멜드멜에게 가공을 부탁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런 기회도 드무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멜드멜은 연금술사다. 당연히 연금술로 포인트를 버는 경우가 많았고, 가공 의뢰를 받기도 했다. 거기에는 하급 영약을 만드는 것도 포함되었다. 무공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영약이 돈처럼 사용되기도 함으로, 거래량이 꽤 많았던 탓이다.

그러나 경험 많은 그라도 이런 약재를 다뤄본 적은 없었다. 그 때문에 신중하게 작업하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약 2주간의 시간을 달라 했다. 얼핏 긴 시간처럼 들리지만, 이해해야 할 사항이다. 뭐든 1주일 만에 끝내버리는 내가 이상하다는 건 최근에 자각 중이었으니까.

따라서 2주 동안 가벼운 마음으로 수련을 이어나갔다. 할 건 많았다. 무엇보다 검무를 가지고 이리저리 해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금방 갔다.

기계와 영혼을 조합하는 것도 계속 생각은 했으나,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진 않았다.

남는 시간을 짜내서 리보라의 다른 차원 지부와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때 여자 친구가 있다는 걸 밝혔다. 가족 모두 호기심만 좀 보였을 뿐, 크게 소란스럽진 않았다. 아직 결혼 같은 건 생각할 수 없었던 탓이다. 나중에 사정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 좀 무서웠다.

그렇게 평범하지만 일이 좀 있었던 2주가 지나고, 멜드멜이 영약을 만드는 데 성공해 가져왔을 때. 하운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타이밍 완전 별로네.’

단환을 먹으면 최소 며칠은 운기조식만 해야 할 거다. 그 시간 동안 무시하기도 애매하니, 하운드가 부른 일부터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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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발신자 : 하운드

내용 : 회사에서의 공식 대단위 의뢰입니다. 자세한 것은 한꺼번에 설명드릴 예정입니다. 몸이 위험한 일을 맡기지 않을 거고, 설명을 들으신 후에 거절하셔도 되니 꼭 참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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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엔 단출한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왠지 골치 아픈 일이 생긴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일단 내용만은 들어보기로 하며, 하운드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러자 눈 앞에 펼쳐진 장소는 평소에 이야기하던 하운드의 방이 아니었다.

‘어라?’

다양한 존재가 몰려 있는 방. 어딘가 묘하게 익숙한 얼굴들이 많다. 자주 알고 이야기 한 존재들이 아닌, 어쩌다 한 번씩 지나가면서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에 대해선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존재의 비율들과 단상 앞의 존재들을 확인한 덕분이다.

‘···장인들을 모아 놓은 것 같은데.’

종족의 비율은 난쟁이가 월등히 높았다.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보라디옷과 펌프치와 마법과 기계를 합치는 것에 전문가인 오르논도 보였다.

즉, 이 자리는 제작자나 설계자로서 이름 날린 이들이 모인 것 같았다.

“아. 하연성 씨도 오셨군요.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사회자의 위치에 있던 하운드가 나를 단상 위로 불렀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올라가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한꺼번에 설명하겠다는 대답밖에 받지 못했다. 단위의 펌프치에게 물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요?”

“그럴만한 사고가 생겼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운드가 설명해 줄 겁니다. 제가 아는 정보는 단편적이라서요.”

이사진인 펌프치가 단편적인 이야기밖에 듣지 못했다니. 아무래도 보통 사고가 아닌 것 같다. 하필이면 단환을 만들어 놓고 이런 일이 벌어졌기에, 속으로 크게 아쉬워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일.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려는 하운드에게 집중했다.

“오실 분들은 거의 다 오신 것 같군요. 그럼 설명을 하겠습니다.”

그는 홀로그램 하나를 띄웠다. 단상에 있는 우리와 아래 있는 존재들 사이의 위치라 양쪽 다 잘 보이는 곳이었다.

홀로그램의 형체는 기다란 동양의 용과 흡사한 형체였다. 그러나 천룡과 다른 점이 있다면, 비늘 대신 빼곡하게 검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가시 대신 검을 사용한 고슴도치 같은 모습이다.

“저건··· 검갑룡이잖아?”

“죽은 게 아니었나?”

“뭐, 괴룡이니까 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왜 저걸 보여주는 거지”

홀로그램이 떠오르자 장내가 술렁인다. 대부분은 이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처럼 잘 모르는 이들도 소수나마 있었다.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테니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이 개체의 이름은 검갑룡(劍鉀龍). 보시는 바와 같이 비늘 대신 검신을 몸에 두르고 있는 존재입니다. 크기는 정확히 측정된 적이 없지만, 대략 5km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뱀이 몸길이 약 16m라고 한다. 이 뱀의 경우 약어를 잡아먹고 살았을 정도라고 하니, 그 크기가 익히 짐작될 것이다.

그럼 5km면 어느 정도일까. 짐작도 안가지만 적어도 작은 마을쯤은 한 번에 삼킬 정도의 초거대 괴물임에는 확실할 것이다.

‘그 정도면 멀리서 봐도 보이지 않겠는걸.’

그런데 그런 괴물을 왜 보여주는 걸까. 의문을 품는 순간, 홀로그램이 영상으로 바뀌었다.

처참하게 파괴된 장소가 보인다. 위치나 상황은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커다란 대지가 갈가리 찢겨 있다는 거다. 자세히 보니 커다란 건물이나 군대 비슷한 존재가 보이기도 했다. 물론, 결론은 다르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다차원 시간 기준 19시간 전. 메우라차라는 차원을 검갑룡이 습격했습니다. 그 결과 1시간 만에 150만의 존재가 학살당하고 말았습니다.”

1시간 만에 150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수치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져야 그렇게 되는 걸까. 전쟁이나 재앙이 떨어져도 이렇진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결과였다.

“이 메우라차라는 차원은 저희 회사와 큰 접점이 없습니다. 또한, 검갑룡이 학살을 좋아하고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거로 생각할 때, 회사와 관계있는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홀로그램이 꺼졌다. 모인 존재들은 자연스럽게 하운드를 바라보았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한다.

“검갑룡은 회사의 토벌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관련된 차원을 습격할지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저희 회사는 전력을 다해, 이 존재를 토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시 한번 장내가 수근거린다. 쏟아지는 말은 다양했다. 당연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존재, 말도 안 된다며 부정하는 존재, 토벌에서 제작자들을 끌어모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존재 등등. 각자의 생각과 이견이 충돌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의견은 하운드의 말 한마디에 침묵했다.

“그럼, 제가 여러분들을 모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회사는 여러분들에게 토벌대가 사용할 물품 제작을 부탁드릴 예정입니다.”

완벽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한마디였다. 어떤 존재도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까지 거부하는 건 쉽지 않았다. 또한 토벌대가 있다는 데 흥분에서 참여하겠다는 이도 없었으며, 불린 이유도 해결되었다.

그 후로도 하운드는 모인 존재들을 차분히 정리해 나갔다.

가장 먼저 의뢰를 수락할 존재들부터 뽑았다. 대부분이 눈치 볼 것 없이 손을 들었으며, 몇몇 소심한 이들만 상황을 보다 참여 의사를 밝혔다. 불참자는 극소수. 대부분은 가족이 위독하거나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하는 존재들뿐이었다.

나는 살짝 고민하다 수락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거절할 일도 아닌 탓이다. 목숨이 위험하지 않은 일에 다른 존재들의 기술도 볼 수 있고, 희박한 확률이나마 지구로 쳐들어올지도 모를 놈을 잡는 일이다. 회사의 공식 의뢰니 기꺼이 받기로 했다.

인원이 정해지자, 분야별로 인원을 갈랐다. 각각 계발, 제작, 마법으로 나뉘었으며, 이것들은 다시 각각 세 가지 분야로 나뉘어 부팀장을 두었다.

그렇게 얼추 직책이 정해지자, 검갑룡을 효과적으로 잡기 위한 팀장 부팀장 회의가 시작되었다.

“우선 검갑룡의 특징과 저희 측 공격 인원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운드는 서류 뭉치를 돌렸다. 마법 팀장이라는 높은 직책을 받게 된 나 역시 포함이었다. 높은 직책 때문에 위가 살짝 아파지는 상황에서 서류 뭉치를 살폈다. 첫 부분에 나와 있는 것은 검갑룡의 공격 방식. 그걸 보곤 침음성을 흘렸다.

“검처럼 달린 비늘을 뻗어서 몸을 회전, 적을 갈아버린다니···”

믹서기 칼날이나 얼음 뚫는 드릴도 아니고, 이런 무식한 공격을 벌일 줄이야. 그러나 문제는 이 공격에 버틸 수 있는 존재가 몇 없다는 거다. 달린 검신 하나하나의 길이가 무려 10m다. 어지간한 존재들은 회전하는 칼날에 빨려가 조각도 남기지 못하리라.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류상에는 두 가지 공격 방식이 더 쓰여 있었다.

녀석의 검은 비늘 같지만, 정말 비늘은 아니라서 화살처럼 사출도 가능한 모양이다. 게다가 뽑혀도 수 초 내에 다시 자라는 게, 절망 수준이다. 몸을 돌리면서 검을 뿌리면, 정말 비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공격은 목덜미에 달린 7개의 검을 마음껏 부리는 것이다. 서류에 적혀 있는 바로는 어지간한 명검 뺨치는 수준이며, 염동력으로 다루기에 3차원적인 공격이 가능하단다.

기본적인 것들. 몸으로 후려치거나 깨무는 것은 쓰여 있지도 않았건만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

모두가 나와 같이 침음성을 흘렸다. 홀로그램으로 자료를 읽고 있던 다른 존재들도 마찬가지. 다들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나는 머리를 쥐어 짜내어 방법을 떠올렸다.

“일단 이 검에 대한 재생 기준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건 무슨 말씀이신가요?”

오르논이 이야기를 받자, 다들 이목을 집중한다. 나는 서류상에 쓰여 있는 ‘검을 사출한다’는 부분을 가리켰다.

“검을 사출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 후에 재생되는 데 수 초가 필요하고요. 그렇다면 검이 ‘나오는’ 부분이 있으며, 그곳에서밖에 뽑을 수 없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일리 있는 말이군. 그곳을 막으면 새로운 검을 뽑아내지 못할 거야.”

보라디옷이 턱을 쓰다듬으며 동의했다. 동시에 검갑룡의 신체를 유심히 살피며 하운드에게 물었다.

“검갑룡의 피부···. 그러니까 검 안쪽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알고 있는 정보가 있나?”

“아마 사장님이 알고 계실 겁니다. 물어보겠습니다.”

“좋아. 잘하면 최대의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겠군.”

“그럼 사출구를 막을 방법과 도구를 사용할 존재들을 확인하죠.”

연락을 시작한 하운드는 잠시 내버려 둔 채, 서류를 넘긴다. 그곳에는 여러 존재의 목록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역시 마룡이었다.

“마룡이 일곱 있군! 어느 정도까지 힘을 써주겠다고 하던가?!”

“협력은 하겠지만, 본능에 거스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에잉. 하나당 기껏해야 한두 번이겠군. 검갑룡을 단번에 소멸시키진 못하겠지?”

“그 정도 존재와 질량이면 마룡이 열은 더 필요할 겁니다.”

그리고 회사의 본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만한 숫자를 대동할 순 없었다. 마룡이 일곱이나 지원 올 수 있었던 것도 최근 내가 협회 간부들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결과를 들은 보라디옷은 마룡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말라고 했다.

“마룡들이 도와준다면 일이 훨씬 쉬운 것 아닌가요?”

“전력을 다해 돕는다면 그렇겠지. 두 마리만 모여도 검갑룡 따위 잡을 수 있어.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놀랐다. 내가 아는 유일한 마룡인 오리안느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 의견이 특별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힘을 쓸 바에야 죽겠다고 하는 녀석들이니까 그렇지. 객체 당 힘쓰는 건 1분 정도라고 생각해. 그것도 거의 방어로만.”

맙소사. 두 마리면 해치울 수 있는데, 일곱 마리서 7분간 움직이는 게 전부란 말인가! 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내가 예전에 느꼈던 게으름보다도 심한 느낌이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회의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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