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장 #
인형술이란 상대방의 정신을 침투하는 방식으로도 쓸 수 있지만, 본래는 말 그대로 인형을 조종하는 기술이다.
작고 귀여운 것부터, 사람과 똑같이 생긴 것까지. 다양한 방식의 공격 방법으로 상대방을 교란시키며, 죽지 않는 병사들로 무모한 전략도 서슴지 않게 쓰는 기술. 그게 인형술의 묘리다.
그러나 이런 인형술에도 당연히 단점은 있었다.
손을 쓰다 보니 시전자는 무방비한 경우가 많고, 실을 들켜서 연결이 끊어지면 무력화된다. 정신 침투는 잠시 움찔거리게 하거나, 머리를 하얗게 물들 정도의 충격이 동반되지 않으면 몸을 강탈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인형이 시전자의 명령에만 반응한다는 것이다.
알아차리지 못한 기습에는 대응을 못 한다. 적이 다수라면 신경 쓰지 못한 인형들이 파괴당한다. 이러한 부분들은 인형술을 마이너한 기술로 끌어내리는 데 일조하는 부분이었다.
인공지능을 부탁한 건 그 때문이다. 기계로 인형을 만들고, 영화 속 로봇들처럼 일정 수준의 판단이 가능하다면 대부분 단점을 무마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거기에 완벽히 독립된 수준의 인공 지능은 필요 없었다. 아니, 잘못하면 인형술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런 인공지능을 한 번쯤 보거나 연구할 필요는 있었지만, 제가 원했던 건 아니에요. 보여주신 건 감사한데, 혹시 조금 낮은 버전은 없을까요?”
“···.”
펌프치는 침묵했다. 아마도 이게 당황할 때의 반응 같았다. 나는 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그가 이런 착각을 하게 된 것에는 내가 저질러온 일들이 있던 탓이다. 선천적 마법사에 인공적인 생명체까지 만드는 사람이 그냥 조금 발전된 프로그램을 찾으리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던 것이다.
-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
그가 당황한 모습이 즐거웠는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모니터에 연신 놀리는 말을 써 내려갔다. 그걸 본 펌프치는 모니터를 내려쳤다.
쾅! 파지직!
모니터는 작고 오래된 느낌을 준 만큼, 단번에 작살났다. 그러자 벽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작게 열리더니, 기계 팔과 함께 또 다른 작음 모니터를 꺼내며 글자를 보여줬다.
-바보멍청이. 혼자 멋대로 착각하고 회사의 최고 기밀 중 하나를 보여주는 머리 나쁜 관리자 인증. 회사의 역사 기록에 박제. 수정. 본 기계의 정면에 장식.
“지금 당장 지워주마.”
연결선을 꺼내는 펌프치를 말렸다. 나는 영혼과 기계의 조합을 위해 이런 타입도 조사해야 했다며, 어차피 보여줬을 거라는 말로 설득했다. 그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녀석 편을 들어주진 마세요. 자기편 들어주는 건 기가 막히게 알아서 순식간에 기어오르니까요.”
-부정. 본 기계는 인간에게 기어오를 수 없음. 그저 인간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농락. 수정. 자극할 뿐임.
“···이런 녀석입니다.”
나는 다시 한번 선을 꺼내는 그를 막으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혹시 영혼이 있나요?”
-부정. 자가발전으로 인간과 유사한 사고패턴을 가졌을 뿐, 영혼이라는 에너지는 소유하지 않음. 내 육체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므로, 그러한 형태의 에너지는 필요하지 않음. 오히려 내부에 들어오면 치명적.
이러한 부분은 기계가 영적인 부분에 취약한 것과 꼭 닮아 있었다. 내가 영혼과 기계를 연결하지 못하는 것도 순전히 이 때문인데, 최고의 인공지능이라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인가 보다.
‘완전히 다른 방식을 생각해 봐야겠네.’
궁금증을 해결한 나는 폭발할 것만 같은 펌프치를 데리고 그 장소를 떠났다. 그리고 내가 원한 형태의 인공 지능에 대해서 물어봤다.
“···일반적으로 발전된 인공지능은 두 가지 패턴을 보입니다. 하나는 기록을 계속 쌓아가는 성장형 인공지능이고, 다른 건 모든 상황에 대해 저장된 방식으로 움직이는 거죠. 이 두 가지 요소를 적절히 섞으면 하연성씨가 원하는 인공지능이 나올 겁니다. ···원하시면 만들어 드릴까요?”
“가능한가요?!”
“물론이죠. 대신 일을 하나만 더 해주세요.”
고민에 빠진다. 회사의 임원인 그가 만들어 준다고 했으니, 품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일하는 걸 싫어하는 것과 능력은 별개의 문제니까. 하지만 아직 첫 번째 일도 듣지 못했는데, 두 가지를 하기로 약속하는 건 쉽지 않았다. 회사에 의뢰를 낼 수도 있었으니 더더욱. 하지만 그 경우 시간과 질은 보장할 수 없다.
이러한 선택의 갈래 속에서 결국 고른 것은 그에게 의뢰하는 거였다. 내가 하지 못 할 일은 안 시키기로 했으니, 이 약속을 핑계로 너무 어려운 의뢰는 거절할 생각이었다.
“좋은 선택이에요. 솔직히 당신에게 어려운 일을 맡길 생각은 없으니까요. 다만 귀찮은 일들을 맡길 뿐이죠.”
이사진이 필요한 수준의 의뢰를 대신 보내면 징계가 크다는 말과 함께, 그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펌프치는 곧장 책상 위에 있는 의뢰 두 개를 넘겨주었다.
의뢰는 각각 수집과 정보 수집으로 성질이 달랐다. 내용을 확인해 보니, 수집은 대상이 기계라는 게 독특했고, 정보 수집은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둘 다 귀찮을 만한 것들이긴 하네.’
그러나 못할만한 난이도는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기간을 물었다.
“첫 번째는 일주일 정도, 두 번째는 1개월 정도에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애매하다. 굳이 미뤄서 잘못되기보다는 빨리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일 처리하면 어떻게 알려드릴까요?”
“수집은 가져오셔야 하고, 정보 수집은 메시지로 보내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다음에 뵙죠.”
그와 작별을 한 뒤 집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준비를 하고, 곧장 수집 의뢰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위치는 낡은 가택 속. 문을 열고 나가보니 외딴 숲속에 만들어진 거였다. 안에 있는 물품이라곤 낡은 책상과 놓인 종이 한 장이 전부. 종이를 펼쳐보니, 이 가택이 회사의 이동 지점으로 쓰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만약 실력자가 온다면 보안을 강화해도 좋다라···.’
펌프치가 준 의뢰의 정보에 따르면 이곳 차원은 아직 회사의 영향력이 적다. 그러니 집이 들키지 않기 위해, 각종 보안 장치가 되어 있었는데, 실력이 있다면 임의고 강화해도 되는 모양이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마법적 보안을 살짝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상당히 괜찮은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보안이 심하게 필요한 장소이다 보니, 마룡이 와서 해 놓은 모양이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약간의 개조와 최적화가 전부였기 때문에, 30분 만에 후딱 해주고 은신 마법을 사용한 채 이동했다.
‘목표가 있는 장소는···.’
당연하겠지만 펌프치가 준 의뢰 내용에는 목표 위치도 적혀 있었다. 이곳에서 약 100km는 떨어진 장소. 다행히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단다. 은신 마법을 다시 수정한 다음, 데드하울을 타고 움직였다.
100km를 이동한 다음 착륙해서 주변을 살폈다. 자료에는 지하에 있다고 적혀있었다. 들어가는 길 또한 표시되어 있었는데, 바뀔 가능성이 높다며 기대하지 말라는 내용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표시된 부분을 찾았지만, 이미 막혀 있었다. 혀를 차면서 탐색 마법으로 수색했다. 무려 2시간을 주변에서 헤맨 뒤에야, 기계로 막힌 문을 찾아내었다.
“···아니 이건 어쩌라고요.”
기계는 모르는 데. 머리를 좀 굴려 봤지만, 좋은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범프치는 왜 이런 일을 나한테 맡긴 걸까. 잠시 고민해보니, 리브뤼엣을 구출할 때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걸 깨닫고, 의뢰 내용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파괴에 대한 제한점이 없다. 나는 실소를 터트리며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어차피 들킬 거라면 이번에 새로 만든 마검무를 시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접사창법에 맞춰 허공에 신의 손을 휘두른다. 구복비엽과 고습지격을 연달아 펼치니 검무의 조건이 완성되었다. 나는 철문 위로 발을 세게 굴렀다.
쯔어어엉! 콰광!
상대를 발로 내려찍는 검무와 충격을 냉기의 형태로 바꾸는 마법이 펼쳐졌다. 철문은 안쪽에서 얼어붙으며, 거대한 충격을 받아야 했다. 그 결과 발자국 형태로 크게 찌그러들었지만, 원하는 만큼 열 순 없었다.
‘쩝. 마법을 잘못 골랐나.’
완전히 검무랑 하나가 된 기술인 탓에 선천적 마법사의 재능으로도 완벽한 계산이 불가능한 일격.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나중에 판단하기로 하면서 데드하울과 힘을 합쳐 문을 강제로 열어 버렸다.
그러자 안쪽에서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계들이 쏟아져 나온다. 계란 같은 몸체에 기관총을 달고 있는 녀석들. 나는 살짝 후퇴한 다음 마법진을 그렸다.
[-날뛰는 전격-]
빨리 끝내기 위해, 상점에서 토파즈와 배터리까지 촉매로 사용한 뒤, 노랗게 일렁이는 뇌구(雷球)를 안쪽으로 던졌다. 그러자 커다란 스파크와 전격이 번쩍이고, 이내 조용해진다. 나는 뇌관이 타버린 기계들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비슷한 저항을 두 번 정도 더 겪은 뒤, 목표한 장소에 도착. 무슨 유리 안에 칩셋처럼 생긴 물건을 발견했다. 주변에서 마지막 반항을 하듯 여러 가지 공격이 있었지만, 가볍게 치워버리고 칩셋을 확보했다.
그러자 지하 시설의 전체적인 기능이 꺼지며 침묵했다. 회사의 이동 기능이 역할을 했음으로, 곧장 펌프치에게 가져다주었다.
“아아. 역시 무력 제한이 없는 일은 그냥 때려 부수는 게 빠르다니까요.”
채 6시간이 넘지 않아 일을 끝낸 나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펌프치. 이걸로 약 하루는 쉴 수 있단다. 가볍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며, 다음 일 처리를 위해 움직였다.
이번 장소는 꽤 위험한 곳이었다. 협회나 회사 어느 쪽도 영향력 있는 곳이 아닌 대신, 기계가 동물을 무작정 살해하는 모양이다. 어이가 없는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가보니 우거진 숲에 작은 동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우스운 것은 곤충은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덕분에 이 차원은 다양하고 거대한 곤충들로 가득 차 있었다.
회사가 원하는 곳은 여기에 지성체가 살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 처음 펌프치가 이 의뢰를 받았을 때는 쉬울 거라 생각했단다. 기계들끼리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을 거란 추측에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계들은 고정된 프로그램으로 양산되는 중이었다. 일이 오래 걸릴 걸 직감한 펌프치는 다른 이들에게 인계를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건 증원뿐. 그것도 공격적인 곤충에게서 몸을 지켜줄 차장급 인재가 전부였다.
이대로라면 며칠을 이곳에 묶여 있어야 하는 걸 느낀 그가, 지원된 차장을 나로 바꿔 치면서 일이 돌아온 것이다.
‘진짜 귀찮은 일 주셨네.’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상점에서 적당한 물건을 구매했다. 당연하지만 천천히 이동하면서 찾을 생각 따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