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176화 (176/207)

# 차장 #

검무를 마법에 입각시켜 해석해보았지만, 아직 의문점은 남아 있었다. 그중 가장 커다란 것은 다른 존재들과 느낀 게 다르다는 점. 이 차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뭐가 다른 걸까.’

도칸과 나를 비교해본다. 그는 검무 하나만을 파고든 기사이며, 나는 다양한 것을 배운 존재이다. 하지만 겨우 그런 점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 세상에 수많은 존재가 있는데? 나와 비슷하게 다양한 기술을 익힌 존재가 없진 않을 거다. 검은 양복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그러니 기술을 많이 배운 게 원인은 아닐 터.

그렇다면 의심 가는 부분은 내 성취 쪽이다.

‘너무 깊게 알아서 문제가 되었다?’

다른 존재들과 차이점이라면 그게 가장 커다란 부분이다. 이 가설을 검토해보기 위해, 머릿속에서 약간의 상상을 해봤다. 선천적 마법사가 스스로를 마법 문자로 만드는 실험이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마법사는 스스로 마법 문자가 되어 몇몇 소수의 마법을 아무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세계의 근원과 접촉함으로써 미쳐버렸다. 너무 많은 지식과 감각에 머리가 한계치를 넘어 버린 것이다.

이 계산된 결과를 두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마법 문자가 너무 많은 지식과 감각에 노출되는 건 지극히 정상이다. 세계의 규칙을 일그러트리게 하는 문자다. 얼마나 많은 지식과 힘이 그것을 거쳐 가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걸 사람으로 대체 한다면? 미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사는 멀쩡하다. 아니. 오히려 상쾌하다고 했으니, 마법 문자와는 다르다는 결론이 나온다.

‘완벽하게 같지 않은 건 예상된 일이야. 그럼 기사의 검무는 뭘까.’

검무에 대한 근본을 생각해본다. 하지만 이건 이미 배워봐야 알겠다는 결론을 내린 뒤였다. 생각이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머리를 거칠게 긁고, 방향을 바꿨다.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기보다는 검무를 배우기 위해 임시방편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몇 개의 마법 도구를 만든 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물건을 가져와 몽땅 발동시키곤 수련할 준비를 했다.

“···그건 다 무엇이오?”

“어제와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가져온 거예요. 보호 마법이 걸렸는데, 일부러 나눠서 했죠. 하나씩 꺼보면서 실험할 거예요.”

마법사의 실험 정신에 도칸이 입술을 삐뚤게 하며 혀를 날름거렸다. 뭐라 말해야 할지 난감한 모양이다. 내 움직임을 막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어제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 만큼, 검무를 익힐 방법이 사라진 탓이다.

결국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원인을 찾겠다는 내 의지를 꺾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실험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우웩.”

명확한 시작 자세를 취한 순간, 맹렬한 구역질이 찾아왔다. 내가 만들어온 마법 물품들은 정신과 육체, 감각을 통제하거나 축소하는 거였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다.

원인이 육체에 느껴지는 감각이라 생각했던 나로선 꽤 충격적인 결과다. 원인을 고민해 보았다.

‘육체와 정신은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어서, 한쪽에만 영향을 줘도 충분히 변화가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어. 그렇다면 다른 요소가 있다는 건데.’

그런 게 있을까? 나는 머리를 기울이며 고민해 보았다. 혼자서는 결론이 나질 않았기에, 도칸과 멜드멜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러자 똑똑한 슬라임이 답을 주었다.

-몸에 영향을 주는 요소 중엔 영혼도 있습니다.

천재적인 답변에 감탄하며 인공 영혼 핸드에게 영혼 장벽을 부탁하고 시작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이질적인 감각에 기절하고 말았다.

다시 눈을 뜬 것은 그날 저녁이 늦었을 때였다. 나는 이질적인 감각에 계속 헛구역질을 하며 간단하게 죽 같은 거로 저녁을 대신했다. 이 모습을 계속 보고 있던 도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법사 하연성. 이건 내 판단이오만, 이 정도만 하는 것이 어떻겠소? 검무를 익히며 몇몇 증상들을 보긴 했는데, 기절한 것은 처음이오. 어쩌면··· 믿기지 않지만, 검무에 재능이 없을 수도 있소.”

조심스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말. 그것은 경험 많은 어른의 이야기였다. 세상에는 재능이 있으며, 이것이 부족하면 살아가는 데 지극히 어렵다는 충고. 꿈을 취미로 두고 다른 것에 뜻을 둔다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충고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오히려 기절까지 했기 때문에 가능성을 봤어요.”

원래 기초 자세만으론 기절까지 안 갔다. 전에는 감각이 뒤바뀌어도 하나씩 차근차근 진행된 반면에 이번에는 둘, 셋씩 한꺼번에 진행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전과 달라진 점이다. 즉, 영혼으로 장벽을 친 것이 역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하는 게 좋았다.

“더 연구과 실험을 하면 원인을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알겠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더는 막지 않을 것이오.”

도칸과 이야기를 끝내고 손님방에 돌아와 혼자 차분히 생각해보았다. 문제점이 영혼이란 것은 알았다. 그렇다면 이제 해결법을 찾기 위한 실험을 할 차례. 나는 핸드에게 말했다.

“영혼에 대한 통제권을 대폭 늘려줄게. 내 영혼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줄래?”

-알겠습니다.

딱딱한 말투의 핸드에게 명령을 내리고 방안에서 조용히 연습해 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예 느낌이 없어졌다. 혼란을 느낀 내가 핸드에게 물었다.

“핸드, 내 영혼에서 어떤 반응 없었어?”

-없었습니다.

고개를 기울인다. 다시 한번 기초 자세를 잡아보지만 똑같이 반응이 없는 모습에, 핸드에게 어떤 식으로 영혼을 조종했는지 알려 달라 했다.

-영혼을 고정시킨다는 말씀에 대하여, 영혼을 육체에 묶어두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몸속을 돌아다니며 역할을 하는 기운. 현실적으로 묶어두는 건 불가능하기에 다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게 어떤 거야?”

-연성 님의 영혼을 대부분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단, 내부에 피해가 없도록 유연하게 만들었습니다.

내 영혼은 외부로 표출될 때, 딱딱한 방어막 형태를 보인다. 그 때문에 본래 몸 내부에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또한 피부에 바짝 붙일 수도 없다. 그러니 핸드는 의미가 없는 방어막. 즉, 몸의 혈관처럼 유연하게 만들면서 방어력을 완전히 삭제시키는 방식으로 영혼을 붙잡아 놓은 것이다. 그 결과 검무를 쓸 수 없게 되었다.

꽤 흥미로운 결과다. 나는 핸드에게 방어막 일부분만 원래대로 돌려놓게 한 뒤, 다시 한번 기초 자세를 취했다.

‘오! 느껴진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나는 몸에서 영혼의 일부분이 진동하는 느낌과 함께, 날아오를 듯한 감각을 맛보았다. 계속해서 검무에 실패했던 원인은 영혼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는 자세를 다시 돌려놓은 뒤, 명확한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사실 어렵진 않았다. 이상한 감각이 몰아쳤을 때야 몸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이 불가능했지만, 극적인 변화가 없었을 때는 영혼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영혼이 마구 떨렸어.’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다만 짐작되는 바론 세상의 근원에 영혼이 공명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 공명이다. 가벼운 바람이 커다란 다리를 폭풍 맞은 모양새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생명이 특정한 자세로 있을 때, 세상의 근원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나는 검무에 대해 호기심이 끓어올랐다. 지식에 대한 갈망. 그게 오랜만에 목마름을 드러낸다. 가설이 맞아떨어진다면 검무는 마법 문자와 매우 흡사하다. 발동 원리와 재료, 현상은 완전히 다르지만, 잘만 한다면 상상 속의 마검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그전에.’

지금은 이 영혼 공명에 대해 조사해야 했다. 나는 당장 실험을 해보려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어느새 밤이 꽤 늦어 있었다.

‘본격적인 실험은 내일부터 할까.’

시작하면 멈추지 못 할 테고, 밤을 새우면 지아가 걱정한다. 다시는 같은 일이 없도록 약속했으니, 억지로 갈망을 억누른 채 그날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도칸에게 며칠간 다른 방식의 수련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무척 놀라워했지만, 막지는 않았다. 내가 일반적인 존재들과 달랐고, 여전히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은 탓이었다.

그 후 나는 수련장 한구석에서 기본자세를 반복하며 영혼에 변화를 주었다. 주된 방식은 핸드가 붙잡고 있는 영혼의 양에 따라 변화가 커지는가에 대해서였다.

그 결과, 영혼이 크게 공명할수록 정신에 영향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아무래도 영혼이란 것이 정신과 나름 밀접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반대로 육체에는 큰 영향이 없었는데, 정신이라는 완충재 덕분인 듯하다. 그러나 반대로 육체의 영향은 검무를 펼치는 데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불가능한 동작을 펼치기 위해 최소한의 내구도는 필요한 것 같았다.

다른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영혼으로 방벽을 펼쳤을 때, 방벽 전체가 공명해 버렸다는 점이다. 육체 바깥으로 드러난 혼의 생각지 못한 약점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실험이 끝난 게 일주일. 나는 본격적인 검무를 펼치는 것에 집중했다. 영혼의 공명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고 싶었던 탓이다.

내가 한 동작을 펼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한 달이었다. 도칸이 그동안 세 개의 동작을 익힌 것에 비교하면 느린 속도. 그러나 초조해하지 않고 정확한 한 동작과 영혼의 움직임을 살핀 결과, 공명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다른 것의 특징을 흉내 내는 거구나.’

세계의 근원으로부터 공명한 영혼은 일순간 다른 것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다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명한 영혼이 바위와 같이 변한다면, 순간적으로 바위처럼 튼튼한 육체가 되고, 바람이라면 몸이 빨리지는 거다.

자세와 연결 동작에 따라서, 마치 활화산처럼 변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러긴 쉽지 않다. 효과가 강력한 것일수록 세계와 많은 공명이 필요한 탓이다. 도칸이 보여준 정도가 실용성의 한계가 아닐까 싶었다.

“으음. 처음에 어떻게 될까 생각했소만 훌륭하오. 첫 동작을 완벽하게 해냈으니, 다음 동작부터는 꽤 쉬워질 것이오.”

도칸은 한 발짝 전진으로 순식간에 네발을 후퇴하는 첫 번째 기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처음에 내 모습이 많이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도칸, 나는 이 검무서를 더 이상 익힐 생각이 없어요.”

“음? 그게 무슨 뜻이오? 설마 한 가지만 익히고 포기할 생각이오?”

“그건 말도 안 되죠. 제가 바라는 건 좀 더 높은 거예요.”

“좀 더 높은 것?”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검무 한 동작을 완성하며 느낀 것이 있었다. 이건 분명히 마법과 같이 쓸 수 있다는 확신. 거기에 다른 것들도 덧붙여서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 그 결과가 잘 나올까에 대한 궁금증과 높아지는 지식의 갈망.

그것을 도칸에게 말해주었다.

“검무와 마법을 기초로 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볼 생각이에요.”

그는 얼이 빠진 채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