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장 #
벌레는 무척 수상한 일이었지만, 더 이상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그저 혹시 모르니 하운드에게만 그런 일이 있었다며 알려 준 뒤, 나는 곧장 도칸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늪지네.’
도칸의 고향. 네루룻이라는 차원에 도착하자마자 보인 것은 눅눅한 공기와 푹푹 빠지는 바닥이었다. 발바닥에 물갈퀴가 있는 리저드맨들에겐 문제가 없지만, 다른 존재들에겐 방해가 되는 지형. 거기에 공기까지 따듯하니, 그들에겐 천혜의 지형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런 지형이라면 검무를 익히기엔 어려운 것 아닐까? 속으로 걱정되었지만, 일단 도칸에게 해결책이 있다고 믿으며 메시지를 보냈다. 도착 소식과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알려주니, 곧 안내원을 보내겠다는 답장이 온다. 그 말에 주변을 살피며 기다리자, 리자드맨 몇몇이 나를 찾아왔다.
“이름을 말해라. 인간.”
“하연성입니다. 도칸 씨에게 초대받았어요.”
“···손님을 환영한다.”
그들은 인상착의와 이름을 확인하곤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마을로 안내했다. 그렇게 도착한 리자드맨의 마을은 예상 밖에 목조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인적으로 늪지에 원시적인 움막을 짓고 살거라 생각했던 내게는 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음··· 그대가 도칸이 말한 손님인가? 환영하지. 우리 적갈퀴 부족은 가능하면 자네의 편의를 돌봐줄 걸세.”
문 앞에 있던 늙은 리자드맨이 손을 잡아주며 환영했다. 뭐, 말을 들어보니 성대한 환영까진 아닌 것 같지만, 어느 정도 필요한 것들은 제공해줄 모양이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도칸이 있는 장소를 물었다.
“수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네. 아. 아닌가. 기다린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군. 수련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네.”
어제 준 검무서를 익히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리자드맨 중 하나의 안내를 받아 수련장이란 곳에 향했다.
“흐아아앗!”
부웅!
얕은 늪지에 커다란 석재를 깔아 만든 장소. 그곳엔 기합을 지르며 열심히 수련하는 도칸이 있었다.
몸을 가릴 만큼 커다란 방패를 휘두르고, 한손 검. 아밍 소드(arming sword)를 움직인다. 패기와 정교함이 묻어나는 모습. 나는 도칸을 부르려는 리자드맨을 막았다.
“성이 찰 때까지 놔두죠.”
“그럼 하루 종일 휘두를 수도 있다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겠죠.”
그러나 대답과 달리 나는 그가 곧 수련을 멈출 거라 확신했다. 왜냐하면 내가 보았던 검무서의 삽화와 설명에 아주 꼭 맞는 움직임을 보였던 탓이다.
곧 있으면 검무 중 한 동작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막는 것보다 그 완성의 순간을 한번 보고 싶었다.
“흐아아앗!”
그는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지루하고 지칠만한 작업이었지만, 전혀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확신을 가지고 아주 미세한 차이를 잡아내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키잉-!
이내 그것은 노력을 결실을 맺는다. 그는 몸놀림이 미세하게 흔들리자 눈을 빛내었다. 다시 한번 같은 동작을 펼치며, 힘의 균형을 바꿔본다. 근육의 움직임을 점검해본다. 그러자 몸의 흔들림이 점점 커지며, 도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13번째의 시도가 되었을 때. 검무가 완성되었다.
취리리릭!
도칸이 팔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방패와 칼도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사라진 것은 일순간. 아마도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였기에, 쫓아가지 못한 것이리라. 그리고 검무가 끝나자 팔이 움직였을 방향의 공기가 터졌다.
뻐엉!
커다란 소리와 3m 떨어진 장소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강한 바람. 옆에 있던 리자드맨은 그 기습적인 습격에 뒤로 넘어졌을 정도로 그 기세가 맹렬했다. 아마 이것은 앞의 적을 떨어트리거나 둘러싸였을 때, 틈을 만들기 위한 용도로 생각되었다. 단순히 공격하고 방어하는 기술밖에 없던 도칸에게는 꽤나 유용할 게 틀림없는 기술. 나는 검무서의 동작을 하나 완성한 것과 어느 정도 약점을 메울 수 있는 기술을 배운 축하의 의미로 박수를 쳐주었다.
짝짝짝.
“음? 이런, 언제 도착했소?”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을 때부터요.”
“근 20분 전 아니오? 말을 걸어줬으면 그만했을 텐데···.”
“중요해 보이는 순간이라 기다렸어요. 덕분에 하나 완성했잖아요. 축하드릴게요.”
“하하! 고맙소. 이것 참, 어떻게든 대접을 해야겠구려. 집으로 와주겠소?”
당장에 검무를 배우기 전에 이야기할 것도 있었으므로 흔쾌히 초대에 응했다. 그곳에서 그의 아내라는 리자드맨에게 물고기구이를 대접받으며 몇몇 궁금한 것들을 조금 물어보았다.
“마을에 처음 오고 놀랐어요. 솔직히 늪지대 위에서 그냥 살 것 같았거든요.”
“하핫. 우리 부족이 늪지대에 살기 편한 건 맞지만, 바닥과 안 맞는 것은 아니라오!”
처음에는 이런 식의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서히 화제를 검무서로 돌렸다. 그는 검무서가 무척 뛰어나며 자세해서 익히기 쉽다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는 도칸이 웃는 모습을 보며,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물었다.
“제가 가장 익히기 좋은 건 어떤 것 같나요?”
“으음. 솔직히 마법과 무공에 일가견이 있는 마법사 하연성이 왜 검무를 익히려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꺼내놓은 검무서 중에 하나를 뽑았다.
“만약 익히려고 한다면 이게 가장 좋을 것이오.”
“이건··· 각(脚)이군요.”
검무서의 무더기 속에는 창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걸 선택하지 않고 도칸에게 물었다. 비전문가인 나와 전문가인 그는 보는 시각이 다를 거란 의견에 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도칸이 추천해 준 것은 다리가 중심인 검무서. 그것도 권을 극단적으로 제외한 서적이었다.
나는 이유를 물었다.
“무공과 검무, 두 가지를 익히려던 이들을 몇 본적이 있소. 대부분 자신이 주로 쓰던 무기를 사용하려 하던데, 몸이 꼬이는 경우가 많더구려.”
무공과 검무. 둘 다 육체를 무수히 수련해야 하는 기술들이다. 그만큼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근육이 단련되었고, 그걸 다른 방식으로 발달시키려니 고이는 건 당연했다.
제대로 하려면 처음부터 무공과 검무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가. 하나만 익히기도 어려운 기술들이다 보니, 그런 존재는 손에 꼽을 지경이라는 모양이다. 게다가 그나마도 질 낮은 것들을 역은 게 대부분이고.
그렇다 보니 본래 무공과 검무는 동시에 익히는 걸 추천하지 않지만, 만약 한다고 하면 다리로 하는 게 그나마 낫다고 한다.
“무공에는 보법이란 게 있지만, 그것을 매번 쓰는 건 아니지 않소? 거의 대부분은 빠른 속도나 무기를 다루는 움직임에 포함되어 있고. 덕분에 그나마 다른 기술을 받아들이기 수월한 편이라 하오.”
도칸이 각술을 추천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그 말대로 다리로 펼치는 검무서를 배우기로 했다.
“그럼 가볍게 배도 채웠으니, 곧장 시작하는 게 어떻겠소?”
리자드맨에겐 가벼운 정도. 인간에겐 배가 빵빵해질 크기의 생선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수련장으로 향해 기초 자세를 배우는 것으로 수련이 시작되었다.
“우선은 기본자세요. 익히는 존재마다 자세가 미세하게 다르지만, 정확한 자세를 취하면 알 수 있소.”
어떻게 알게 되는 걸까. 궁금해하며 서적에 있던 자세를 따라 한다. 기준이 인간이었기 때문에, 도칸은 책을 보면서 내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이, 이거 엄청 힘든데요?”
“원래 그런 거요.”
그런데 그 자세가 보통이 아니다. 다리로만 하는 기술이라 그런 건지 이상하게 비비 꼬인 형태다. 솔직히 전투 중에 자세를 취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일 정도. 그 부분에 대해서 물어보자, 익숙해지면 문제없다고 한다.
“본래 시작 자세는 순식간이오. 즉, 적과 충돌하기 전에 취하는 것이고, 어떤 것들은 움직이면서도 가능하오. 지금 마법사 하연성이 하는 자세도 꽤 편한 수준이오. 실전에서는 무기를 휘두르면서 상체를 한 바퀴 돌리기만 하면 완성할 수 있을 정도니 말이오.”
전문가의 평가가 그렇다면 내가 할 말은 없었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아예 사용 못 할 것 같지는 않다. 한 2~30번 정도 무기를 부딪치다 보면 한번은 기회가 생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비장의 한 수 같은 걸로 써먹을 순 있으리라. 나는 막 태어난 아기사슴처럼 떨리는 다리로 자세를 잡아갔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칸이 말한 정확한 자세의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음··· 도칸. 혹시 저는 검무에 재능이 없는 것 아닐까요?”
저녁을 먹고 쉬는 시간. 도칸에게 물어봤더니, 그는 껄껄 웃으며 하루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재능은 다리가 떨리지 않을 만큼 훈련한 다음에 말하시오. 사실 신체의 일부가 떨리면 제대로 펼쳐지지 않는 게 검무이니.”
“···그런 건 진작 말씀해 주셔야죠.”
다음날. 나는 올바른 자세를 포기했다. 그 대신 최대한 비슷한 모습을 취하면서 머리 위에 적당한 돌덩이 하나를 들었다. 도칸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건 무슨 방법이오?”
“이렇게 하면 다리의 근육이 빨리 생기니까요.”
국가대표 사격 선수들이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훈련을 한다. 총보다 무거운 덤벨 같은 걸 들고 가만히 사격 자세를 유지하는 훈련. 그러면 나중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총을 들었을 때 떨리지 않는다고 한다.
도칸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첫 자세를 잡는 것에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소.”
그러더니 그는 돌을 치우고 상체에 판금 갑옷을 씌워 주었다.
“이러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구려.”
“그런 것 같네요.”
확실히 팔이 자유로운 게 지속적인 유지에 좋았다. 그렇게 이틀 동안 갑옷을 유지한 결과, 나는 자세를 유지하며 떨림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하루 동안 자세를 교정한 지 이틀째.
‘어라?’
나는 이상한 감각에 빠졌다. 오감이 비틀어지고, 속은 텅 비었으며, 몸이 늘거나 줄어들면서 평소에 그냥 지나친 것들이 느껴졌다. 마치 다른 종족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 게다가 지속해서 변하고 있다. 지성체 뿐만 아니라 곤충, 물고기, 짐승 등의 생명체는 물론이고, 나무, 바위, 바람 같이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으로 변하기도 했다.
“윽···”
너무나도 강렬한 위화감에 힘이 풀린다. 자세가 흐트러진 순간, 내 감각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도칸은 나를 보며 물었다.
“어떻소? 내가 말한 대로지 않소?”
“네. 정말 그러네요. 그게 올바른 자세였군요.”
머리를 휘저어 방금 전까지의 감각을 떨쳐내 버린다. 그런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도칸이 물었다.
“기분이 안 좋으시오?”
“네. 엄청 어지럽네요. 뭔가 몸도 근질근질하고 속도 별로··· 우욱.”
헛구역질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서 보려 한다. 그러나 방금 겪었던 감각이 되살아나며 곧장 주저앉아 버렸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감각은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였다.
“···이상하구려. 본래 조금 어지럼증은 느끼더라도 그 정도는 아닐 텐데 말이오.”
도칸이 나를 부축하면서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다른 이들이 받은 느낌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내 경우는 상쾌한 기분이오. 바람이 된다고나 할까. 뭔가 억눌려 있던 게 확 풀리는 기분이었소.”
분명 바람이 된 듯한 기분은 있었지만, 그걸로 표현을 마무리할 순 없었다. 그에게 다른 생물이나 물체로 변한 것 같진 않았냐고 물어보자, 그런 감각은 없었다고 한다.
“저는 그랬는데요···.”
“그것참 신기하구려. 혹시 모르니 주변에 좀 물어보겠소.”
도칸은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손님방에서 쉬게 했다. 자리에 눕자 돌침대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러나 어딘가 위화감이 있다. 방금 전 겪었던 경험 때문이다. 마치 한쪽 다리를 다쳐서 안 쓰다가, 다 나아서 걸어보니 예전에 기억하던 느낌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
나는 애써 그 기억을 지우려 노력하며 방금 일어난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도칸은 이런 느낌이 아니라고 했어. 그는 꽤 돌아다닌 경험이 많아 보이니, 이런 경우는 많이 없는 거겠지.’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나는 처음에 무공을 의심했다. 무공과 검무가 충돌한 결과라 추측한 것이다. 그러나 내공에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걸 생각해 봤을 때, 원인이라 보이게 부족했다.
나는 검무의 원리를 되짚어 보기로 했다. 이 기술은 몸을 움직이면서 신비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원리까지는 모른다. 그러니 여태까지의 기술들로 하여금 추측해보기로 했다.
‘대충 마법이랑 비교해 볼까.’
마법은 세계에 간섭하여 법칙을 일그러트리는 거다. 만약 검무가 이것과 비슷하다면, 그저 움직임이 마법 문자와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방금 내가 느낀 감각은 마법 문자가 느끼는 감각이 되는 건가?’
평소 써오던 문자가 느꼈던 것들을 내가 느꼈다고 생각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