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장 #
-지구상 모든 벌레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로 정보를 원하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내 노파심일지 모르지만, 벌레를 이용한 첩자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 벌레를 조종하는 걸 수도 있고, 벌레 그 자체 일 수도 있어. 정확한 건 나도 아직 확신할 수가 없네.”
-으음. 침입자가 벌레라는 말씀이시군요.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확실히 벌레처럼 너무 작은 생명체는 확실하게 감시하지 않았습니다.
“···전에 들어온 기록이 있는 거야?”
다른 세계의 벌레가 들어온 적이 있다는 것 같은 말투. 내가 물어보자 레비아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 벌레가 직접 차원을 뛰어넘은 건 아니고, 이동하는 존재들의 옷이나 공간에 같이 휘말려온 경우입니다. 그 숫자가 무척 적고 대부분은 지구에 적응도 못하는 데다가, 환경 파괴나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지 않아서 내버려 둔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제가 탄생하기 전에 있었던 종도 있었던 터라···.
“아···. 그건 어쩔 수 없겠네.”
회사의 이동 시스템은 사용하는 존재를 기준으로 잡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더 넓거나 많은 존재를 데려가기도 한다. 내가 데드하울이나 위시, 지아 등을 데려갈 수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거기에 우연히 벌레가 휩쓸리는 것 정도는 흔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협회의 이동 방식은 구멍을 만드는 거다. 열려 있는 동안에 벌레 한두 마리 정도가 잘못 빨려가도 이상할 건 없었다. 게다가 특별하지도 않다면 굳이 레비아탄이 신경 쓰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런 것까지 전부 확인하려면 세균 단위로 확인해야 할 테니.’
그러나 지금은 그 융통성 있는 대처 때문에, 약간의 구멍이 뚫린 상태. 그걸 위해 레비아탄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벌레같이 작은 생명체도 부탁해. 음··· 세포나 질병같이 너무 파고드는 요소까지는 말고··· 생명체까지만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지구에 있는 벌레들을 수색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할게.”
그 말을 끝으로 해구를 빠져나왔다. 아무리 레비아탄이라고 한들, 모든 벌레를 조사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아마 못해도 하루 이틀 정도는 걸릴 거라 생각하며,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로드리오의 연락을 받았다. 저번에 말했던 이야기. 상점에 보석을 파는 회사. 리보라 세계 차원 지부라는 거창한 이름의 고문 일에 관한 거였다.
“말씀한 지 얼마 안 되신 것 같은데 빠르네요.”
-반쯤은 진행 중이었으니까. 자네가 거부하더라도 일 자체는 할 생각이었지.
포부가 크다. 회사 상점의 물품들이 전 차원에서 모이는 만큼 경쟁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나는 속으로 감탄하면서 연락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지부의 건설은 끝났고, 이제 곧 일차적인 생산에 들어간다. 그때 자네가 한번 와 줬으면 하는데.
“그건 언제쯤인가요?”
-지금부터 언제라도 괜찮네만··· 될 수 있으면 일주일 이내 한번 들려줬으면 하는군.
“으음. 그렇군요.”
사실 오늘부터는 도칸에게 검무를 배우며, 하운드에게 받은 목록의 인물들을 찾아 가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설계와 의뢰를 하다가 포인트가 떨어지면 저번에 소개받은 이사진의 물건을 만들어줄 계획도 있었다.
즉, 원래대로라면 로드리오의 회사에 들르는 건 한참 뒤가 되어야 하는 일. 하지만 그가 일주일 내에 들려줬으면 한다니, 한나절 정도 일정을 미뤄보기로 했다.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구체적인 약속이 잡혀 있던 도칸 뿐이었으니까. 그는 늦게 가는 걸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미리 수련하라며 검무서를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니,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며 쌍수를 들었을 정도. 역시 그는 나를 가르치는 것보다 자신이 검무를 익히는 게 더 좋았던 모양이다.
‘좋아. 그럼 이대로 하나씩 해결해 볼까.’
우선 로드리오의 일을 먼저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다. 회사의 이동 기능을 사용해서 그와 만난 뒤, 지부가 설립되어 있다는 차원으로 함께 넘어갔다.
“오오. 엄청 본격적인데요.”
거대한 크기의 건물과 부지. 생산도 겸하고 있는 듯 광산 시설까지 보인다. 아예 다른 차원에서 보석 매장량이 높은 곳을 사버린 모양이다. 내가 칭찬하자 그는 드물게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와 함께 장소를 소개했다.
“주인이 없는 차원의 땅에서 보석 채굴량이 높은 곳을 찾았다. 여기까지 하긴 좀 힘들었지. 보다시피 주변에 재료가 그리 많진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직접 발품을 판 모양이다. 정말 하루 이틀 생각하고 저지른 일은 아닌 것 같아, 여러모로 기대감이 들었다.
나는 로드리오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쪽으로 향했다. 광산에 관련된 일은 내 소임이 아닌 탓이다.
“어서 오십시오. 로드리오 사장님.”
“하연성의 사원증을 주게.”
“알겠습니다.”
입구에 있던 거구의 남자. 아마 경비와 서류 업무를 동시에 맡은 듯한 존재는 화려한 사원증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로 넘어오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저, 이분은?”
“하연성 지도 고문이다. 앞으로 신분 확인이 끝나면 깍듯이 대하게.”
“오오, 이분이 바로··· 알겠습니다!”
“하하하하···”
어째서인지 사장인 로드리오 보다 이쪽을 보며 더 흥분한다. 나는 특이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어설픈 미소로 그를 대해주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비슷한 상황이 나오자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목에 걸린 사원증을 눈치채기 전까지는 친절한 모습을 보이던 이들이, 이름을 알고는 딱딱하게, 혹은 기대감을 품은 모습으로 대해온다.
사장인 로드리오에게도 적당히 예의를 갖추는 게 전부인 직원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궁금해진 내가 로드리오에게 물어보니,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일개 사업자일 뿐이고, 자네는 마법의 개발자이지. 그리고 직원 중에서 자네에 대해 모르면 뽑지 않았고. 자네를 더 어색하게 대하는 건 당연한 거야.”
과연 회사라는 집단이 그래도 되는 걸까 고민해 본다. 그러나 예상외로 문제가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사장보다 유명한 직원은 꽤 많았었다. 돈만 벌면 된다는 마인드로 회사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이들도 있었으니까. 운영 자체에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 부분에 대해 적당히 수긍하기로 하고, 보석을 가공하는 곳에 도착했다. 적당히 넓은 장소에 내가 만든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일하고 있는 것은 몇몇 소수의 종족들. 대부분은 난쟁이다. 그들의 만든 완성품 중의 하나를 보았다.
‘이건···.’
가히 평가를 하기가 두려운 예술품. 속에 만들어진 것은 마치 산호초처럼 보였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여러 가지 신경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각에 서투른 나조차 알 수 있는 대작.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건 ‘보석 촉매’라는 부분에 있어서 내가 만든 것보다 수준이 떨어졌다.
나는 완성품 중 이와 같은 것들을 몇 개 더 뽑았다. 작품으로서는 훌륭하지만, 보석 촉매로서는 결함품인 것들. 로드리오는 팔짱을 낀 채 턱을 괴었지만, 딱히 별말은 하지 않았다.
“···이봐. 그것들을 뽑는 이유가 뭐지?”
작품들을 골라내어 적당한 테이블에 올려놓자, 난쟁이 중 하나가 물었다. 어느새 주변에 있던 존재들이 작업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단순히 몇 개를 뽑아서 조언한 마디 해주려 했건만, 어느새 본격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조금 당황했지만 도망치진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던 탓이다.
“이것들은 마법 촉매로서 다른 것들보다 더 떨어지는 물건입니다.”
“그런가? 솔직히 내 눈에는 오히려 수작으로 보이네만.”
난쟁이가 다른 작품들에 대해 눈을 흘겼다. 속에 들어간 것은 조금 딱딱하며 만들기 쉬워 보이는 것들. 아마 처음 만드는 방식에 실험작으로 보였다. 그러나 오히려 저것들이 더 가치가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보석 촉매는 ‘인위적’일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기록이 올라가고, 마법적 가치가 올라가는 것. 그것이 보석 촉매다. 그런 걸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물건보다는 딱딱하고 계산된 것이 필요하다. 막말로 불순물이 들어간 원석 중에는 아름다운 것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치가 없는 건, 희귀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성체가 정하는 희귀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보석들 사이에서의 희귀성을 말하는 거다. 불순물이 들어간 원석? 원석 중 불순물이 없는 게 더 희귀하다. 보석의 마법적 가치를 끌어내는 것은 바로 그런 요소였다.
그 부분을 설명해주자, 눈앞의 심사숙고하는 표정이 되어 골라온 보석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것들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아뇨. 그냥 상대적으로 좀 떨어지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미적으로는 오히려 더 훌륭하네요. 장식이나 다른 용도로 써 보는 걸 생각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런가.”
난쟁이는 로드리오에게 눈을 돌렸다.
“이봐 로드리오. 아무래도 나는 마법 촉매 쪽으로는 맞지 않은 모양이군. 예술 방향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문제없겠나?”
“상관없다. 원래 그런 계약이었고, 예술품도 만들 생각이 있었으니까.”
“좋군.”
아무래도 저 난쟁이는 마법 촉매처럼 딱딱한 물건을 계속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주변의 몇몇은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로드리오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존재와는 재계약했고, 부서를 마법 촉매와 예술품으로 나누겠다며 약속하기도 했다. 그렇게 약 30분의 이야기 나누고, 우리는 작업장을 나왔다.
“처음부터 화려하게 일을 벌여줬군.”
“으음. 죄송해요. 그냥 한마디 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아니. 고맙다고 말하는 거다. 자네가 아니었으면, 나중에 물품을 내놨을 때 실전으로 얻어야 할 경험이었으니까. 이제부터 나는 방금 전 일에 대해 처리하러 갈 생각인데, Mr. 하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어어··· 더 둘러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부를 둘러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돼. 아니면 방금 작업장에서 지적할 걸 더 살펴봐도 괜찮고. 양쪽 다 싫다면 퇴근하고 개인사로 돌아가도 문제없지. 자네는 그런 입장이니까.”
본래 고문이나 자문직이 이렇게 쉬운 일은 아닌데, 특별취급 해주는 모양이다. 방금 본 작업장에서 더 이상 특별한 문제를 발견하진 못했음으로, 일단 오늘은 물러나기로 했다. 대신 물건을 처음 시장을 내보낼 때 다시 한번 들리기로 약속한 뒤, 그 차원을 떠났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레비아탄에게 조사가 끝났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 말에 마리아나 해구에 찾아가 보니, 녀석은 이미 사람을 물리친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버이시여. 신경 쓰이는 벌레들을 모두 모아왔습니다.
그것도 벌레들을 한가득 끌어안은 상태로.
“···그게 전부 몇 마리야?”
-1,583마리입니다.
적진 않지만, 그렇다고 많다고도 할 수 없는 숫자. 나는 바다 위에 마법진을 그려서 벌레들에게 탐색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저번에 봤던 물음표와 이상한 정보들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게 보였다.
“음··· 일단 다 잡은 것 같기는 한데···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한담?”
다 태워버릴 수도 있었지만, 정보를 얻고 싶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인형술을 써보기로 했다.
-대상의 마법사용을 확인.
-탐색계열. 회피.
-이동 불가. 이동 불가. ···이질적인 요소를 확인.
거기까지 들은 나는 인형술을 해제했다.
‘이건··· 저번에 하운드와 라그드에게 인형술을 걸었을 때와 같은 반응이다.’
하운드와 라그드의 몸속에는 이런 벌레들이 몸속에서 조종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혼란에 빠진 채로, 레비아탄에게 벌레들의 소멸을 명령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른 차원에서 들어온 벌레가 있다면 확인해 보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을 가득 안고서.
****
[아아. 모처럼 심어 놓은 첩자들이 몽땅 당해버렸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라비린토.]
“이거 미안하게 되었군요.”
벌집의 투정에 라비린토가 과장된 모습으로 사과한다. 어느 쪽도 후회하거나 손해 본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냥 으레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 같은 분위기.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벌집은 대가를 받고 해준 거였으며, 라비린토는 사라질 것을 예상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거야? 정보가 없으면 너도 힘쓰기 어려울 텐데?]
“어쩔 수 없지요. 당분간의 정보는 소문에 의지하는 수밖에.”
[흐음? 내가 아는 라비린토 답지 않은걸. 회사를 흔들어서라도 틈을 만들어낼 줄 알았는데.]
“회사를 습격하는 건 아직 완벽하지 않거든요.”
[아니 그거 말고. 협회장이 키우는 애완동물 있잖아. 녀석이라도 쓸 줄 알았지.]
“하핫. 농담도 심하시군요. 검갑용(劍鉀龍)이 겨우 흔들기라뇨. ···하지만···.”
라비린토는 쓰고 있던 가면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효과는 있을 거 같군요.”
악마의 눈동자가 불길하게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