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 #
하운드는 벽 한구석을 쓰다듬어 문을 만들었다. 그곳을 통과하니, 어떤 건물 안으로 이동해 있었다.
일단 넓이는 얼추 축구장만 한 곳이었다.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기둥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는데, 금속질에 한눈에 봐도 기계 같은 면모가 있었다.
바닥 면적은 축구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원통. 추측대로라면 저게 회사의 시스템인 것 같은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작았다.
하지만 그런 판단은 높이를 보자 전부 사라져 버렸다.
끝없는 천장. 시스템 기둥은 물론이고, 건물조차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아 있었다.
중간중간 기둥으로 갈 수 있는 철교가 있고, 수많은 난쟁이가 그곳을 움직이며 시스템 기둥을 점검했다.
웅장함과 깔끔함. 그리고 기계적 편리함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축제 못지않은 숫자의 난쟁이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회사에 소속된 난쟁이들은 전부 모인 듯한 광경이네요."
"정확히는 83%가 이곳에 있습니다. 저희 회사가 협회보다 기계적으로 부족한 것은 그 때문이죠."
난쟁이들은 과학기술과 장인의 종족이다. 그들은 어떤 제품도 만들 수 있지만, 사용자에게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만들어주려는 걸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양산에 대해 무척이나 부정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렇다면 만들어내는 손이라도 많아야 물량을 댈 수 있는데, 그 대부분이 이곳에 쏠리니 회사가 물량부족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분들은 전부 이사급인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회사의 시스템이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요. 위치와 시스템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없을 뿐입니다."
하운드의 설명은 이러했다.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고 있는 난쟁이는 소수이며, 대부분은 일부분만을 알고 있단다.
전체를 알고 있는 난쟁이. 즉, 오더가 일부만 알고 있는 난쟁이들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한다.
"난쟁이분들이 용케도 해주시고 계시네요. 자존심이 강한 거로 아는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좋은 경험이 되다 보니, 처음에 제안을 거절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한번 들어오게 되면 전부를 파악하지 않고서 나갈 수가 없게 되죠."
"어어. 그럼 전부 익히신 분들이 나가서 기술을 유출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내가 물어보자 하운드는 상큼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난쟁이가 200년에 한 분쯤은 나온답니다. 그리고 오더가 되지요. 정말 딱 좋은 비율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년에 하나. 기술의 종족이라 불리는 난쟁이가 그 정도 비율밖에 낼 수 없을 정도로 회사의 시스템이 복잡하고 장대했다.
그러나 반대로 난쟁이들에겐 개미지옥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번 보면 호승심을 억누를 수 없고, 전부 이해하지 않으면 찜찜해서 나가지 않는다. 그야말로 종족의 특성을 이용한 자발적 노예 시스템. 회사는 난쟁이들을 즐겁게 착취(?)시키고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 적당한 휴식과 기분 전환은 시켜주고 있습니다. 비록 절반도 못 즐기고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요."
속으로 난쟁이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하운드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그가 향한 곳은 한쪽에 있는 엘리베이터. 무려 200층까지 있는 어마어마한 수준의 엘리베이터였다.
하운드는 가장 높은 층을 눌렀고, 우린 빠르게 치솟았다. 층이 많다보니 속도를 좀 빠르게 한 모양이었다.
200층에 내리자 아래가 까마득해질 정도의 높이가 되었다. 한 층이 난쟁이의 키로 맞춰진 듯했지만, 그것도 이 정도가 되니 어지간한 고층 빌딩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였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것은 여기가 꼭대기가 아니었다는 것. 맞은편에 있든 다른 엘리베이터에 타는 하운드의 뒤를 따라가 물었다.
"몇 층까지 있는 건가요?"
"726층입니다."
나는 높이에 대한 생각을 포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세 번 갈아탄 후에야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하군요."
꼭대기의 철교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다. 빛이 환한데도 불구하고, 철교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지면을 가린 것이다.
만약 이곳에서 떨어진다면, 말 그대로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데드하울을 타고 있을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네.'
그래도 높은 데 많이 올라가 본 터라 겁나진 않는다. 나는 하운드의 위를 따라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난쟁이와 만나게 되었다.
"으음? 하운드로군. 자네가 이곳엔 무슨 일이지?"
"오랜만입니다. 시그라뭄님. 제가 온 건 다름이 아니라 시스템의 마법적 요소를 수리 및 개조해 주실 분을 모셔왔기 때문입니다."
"또 용족을 데려온 건가? 아니, 잠깐만. 혼자 걷고 있잖아?!"
시그라뭄은 나를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이해한다. 나도 직접 걸어 다니는 용을 본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이 오해는 하운드가 바로 교정해 주었다.
"소개하겠습니다. 선천적 마법사의 재능을 가진 인간 마법사 하연성씨 입니다. 하연성씨, 이쪽은 현재 회사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는 오더 직위의 시그라뭄씨 입니다. 서로 인사 나누시죠."
"안녕하세요."
"그래. 만나서 반갑네, 젊은 인간족 친구. 그런데 자네는 용족처럼 게으르지 않은 모양이군? 역시 그건 용족 특징인가?"
"아뇨. 원래 선천적 마법사는 대부분 게으른 게 맞아요. 제가 예외적인 거고요."
"그런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마법적인 부분을 개선만 해준다면야."
수염을 쓰다듬는 시그라뭄. 그는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난쟁이였지만,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손짓했다.
"따라오게. 보여주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가 움직인 곳은 기둥 근처의 모니터였다. 버튼이 가득 비쳐 있는 그곳에서 몇 가지 항목을 누르니, 공중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그것은 기둥의 단면도였다. 우측 상단에 표시된 숫자로 보아, 가장 아래쪽의 10km 부근인 모양이다. 시그라뭄은 그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법진이 분포하고 있는 곳은 여기다. 시스템의 기본은 기계로 구성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몇몇 요소에서 마법을 쓸 수밖에 없지. 그 기본이 되는 게 이 부분이다."
홀로그램은 친절하게 마법진의 그림과 박혀 있는 보석도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덕분에 시스템에 사용된 마법들을 한눈에 파악했다.
그런데 내 눈으로 보기에도 시스템의 마법은 거의 완벽했다.
'수정할 게 거의 없어.'
사용된 보석과 공간을 한계까지 이용한 작품. 덕분에 나는 속으로 놀라고 말았다. 이건 분명히 선천적 마법사의 재능이 없고선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나서도 시스템의 대대적인 수정은 불가능. 가능한 거라 해봤자, 보석 촉매의 최적화와 남은 공간으로 약간의 보안성을 높이는 게 전부였다.
그것을 말하자, 시그라뭄이 반색을 하며 손뼉을 쳤다.
"우리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과거 한번 협회의 공격은 받은 적이 있는 데, 그 타이밍이 기계적 시스템을 수리할 때였다고 한다.
용족의 마법진 수리와 달리 기계적 수리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좀 걸리는 작업이고, 필연적으로 약한 타이밍이 생긴다. 그때 시스템을 보호하는 것이 이 건물 외벽인 '탑'이다.
그런데 이 외벽이 뚫린 것이다. 난쟁이들은 시스템의 자체 방어. 그러다 보니 상시 돌아가고, 마룡들이 움직이면 극히 짧은 시간에 수리할 수 있는 마법적 방어 체계를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엄청난 마법은 불가능한데요."
"그거야 어쩔 수 없겠지. 아, 그리고 한 가지만 물어보겠네. 혹시 기둥의 밑부분을 더 두껍게 할 순 없나?"
"어떻게 두꺼워지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냥 외벽의 두께? 아니면 겉에 한 겹을 더 감는 것? 그것도 다르다면 아예 밑면 자체를 넓히는 건가요?"
"밑면을 넓히는··· 아니. 잘 생각해보니 한 겹을 더 감싸는 게 좋겠군! 지름을 2m만 넓혀도 할 수 있는 게 아주 많아!
그가 눈을 반짝이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니, 이곳의 난쟁이들은 아래층의 두께를 늘릴 수 없다는 게 항상 불만이었던 듯하다.
마음만 같아서는 그냥 넓히고 싶지만, 시스템은 아래의 마법과 연동해서 만드는 것. 마법이 있는 아래층을 넓히지 못하면 위층을 넓히는 것도 꿈에 불과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겹 더 두르는 것은 자원만 있으면 할 수 있어요."
"오오! 그럼 즉시 준비하겠네!"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달려가는 시그라뭄. 그가 시스템 기둥에 설치된 마이크 비슷한 거로 소리치자, 이내 탑이 거대한 함성으로 몰아쳤다. 아무래도 시스템을 개조하는 건 모든 난쟁이가 바라던 바였던 모양이다.
"대대적인 개조가 가능하겠군요. 사장님이 무척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시스템의 문제는 비단 난쟁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하운드도 밝은 표정으로 단말기를 통해 누군가와 연락했다. 대상은 아마 사장일 것이다. 시스템을 증축하는 데 들어가는 자원은 거기서 나올 테니까.
그렇게 다들 엄청난 개조가 될 거라며 기뻐하는 걸 보며, 나는 하운드에게 물었다.
"이 시스템에 마법을 쓴 존재는 어떤 분인가요?"
"···"
하운드는 침묵했다.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나로선 여태까지 참은 게 신기할 정도로 궁금한 사항이었다.
"홀로그램에 나온 마법을 봤을 때, 분명히 선천적 마법사의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이걸 마룡이 했을 거 같지는 않거든요."
귀찮을 바엔 죽겠다는 존재들이다. 설계도가 나와 있는 대로 수리하는 거면 모를까, 스스로 궁리해서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성격 이상한 마룡이나 다른 종족이면서 선천적 마법사가 또 있을 거란 뜻. 저번에 회사를 나간 존재라고 들었으니, 나는 좀 더 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이에 하운드는 조금 고민하더니 이내 제작자에 대해 말했다.
"행성파괴자 그론드님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회사를 만들 때 함께 했던 분이라고 하더군요."
"···그건 정말 대단하네요."
회사가 세워진 것은 까마득한 옛날이라 알고 있다. 그걸 저번에 알려줬던 내용. 여태까지 살아 있다는 것과 합치면, 용보다 오래 사는 불로불사의 존재라는 거다.
그렇다면 상위종족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마법 실력으로 보아, 이쪽 계열일 것은 분명했다.
'한번 만나보고 싶다.'
호기심이 차오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재가 전혀 파악되지 않는단다. 오히려 그분을 만나면 꼭 좀 설득을 부탁하겠다며 부탁까지 받았다.
'그 존재는 어떻게 불로불사에 닿은 걸까. 나랑 같은 방식으로 한 걸까? 아니면 다른 형태로 간 건가?'
혹시나 행성파괴라는 별명이 관계가 있을까 싶어 물어보았지만, 그건 아니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회사에 수색의뢰를 내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그론드라는 존재를 머릿속 한구석에 집어넣고, 나는 회사 시스템 점검에 들어갔다.
시스템의 점검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재료의 공수는 빨랐고, 난쟁이들은 보석 촉매를 만드는 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덕분에 나는 레비아탄을 만들 때보다도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작품이 나와서 문제였다. 나는 그들에게 마법의 대가로 완성품의 일부를 넘겨받게끔 흥정을 시도했다.
"···마법이 있어서 만들 수 있었으니, 1/10만 주세요."
"너무 많아. 1/100."
"그건 너무 적잖아요. 이거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제가 이대로 가면 더 이상 만들 수 없을 거라고요. 1/15!"
"틀린 말은 아니군. 하지만 자네가 욕심을 부린다는 건, 분명 우리 작품이 뛰어나서겠지. 1/80!"
"작품이 뛰어난 건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깥에 다른 난쟁이들과 이야기를 하면 근접한 수준은 나온다고요. 제가 사려는 건 개성적이기 때문입니다. 1/17!"
이런 식으로 이뤄진 흥정은 최종적으로 100회 사용이 가능한 마법진과 1/20의 비율을 교환하는 거로 마무리되었다.
그 후로는 회사 시스템을 증축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새로 만들어진 외벽 부분에 할 것은 안쪽 것의 복제 및 최적화. 같은 것을 만드는 이유는 안쪽의 마법진을 변경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동하는 기능을 외벽 쪽에 옮겨 심음으로써 시스템의 기능을 연속적으로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남은 외벽과 새로 비게 된 안쪽을 보안에 관련된 마법들로 채워 넣었다. 보석 촉매를 꽉꽉 채워 넣어도 면적의 한계가 있어서 강력한 건 넣지 못했지만, 전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하는 건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차원을 이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95%가 기계로 이루어진 거대한 물건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확장이 끝난 후, 시그라뭄에게 차원 이동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그는 확장에 기분이 들뜬 상태였고, 실력 좋은 마법사인 내게 기계의 위대함을 설파하고 싶어 했다.
따라서 마법진이 설치된 곳 바로 위쪽. 약 30km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바라보며,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이 거대한 것이 차원이동 기계이며, 너무나 완벽하여 회사가 설립된 후, 한 번도 개조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설명을 듣고 나는 회사의 방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과 관련된 거면 몰라도, 기계는 내 수명으로 익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30km나 하는 완벽한 물건을 만들 수도 없는 일.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기본 원리를 적어 가져오는 게 전부였다.
그 후,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애인이 깨어난 레고드였다.
"스펠북을 만드는 재료를 모으시려는 것 같은데, 혹시 신비 포식자의 가죽은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