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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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시는 바람의 정령이다. 따라서 공기의 흐름에 예민한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것은 소리를 듣는 데도 무척 유리하다는 말과 같았다. 그런 그의 귀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가루 같은 것이 흩날리는 소리. 그냥 넘어가도 될 법한 소리였지만, 그게 5분간 이어지면 이야기가 달랐다.
'뭐가 있네.'
위시는 이런 일에 특화된 또 다른 존재. 러쉬를 바라보았다. 원래라면 한창 장난치고 있을 녀석이 무슨 일인지, 묘하게 경계를 하고 있다. 조련술 '강화'로 인해, 단련된 러쉬의 상태를 생각해보면, 상황은 필연이었다.
'습격인가. 으음. 계약자의 기억대로라면 꼬투리 잡힐만한 건 없어 보이던데··· 뭐, 이런 일도 있겠지.'
그는 상황을 최악의 형태인 습격으로 가정했다. 만약 아니라면 그냥 해프닝이 되겠지만, 진짜라면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파악하고 실행할 뿐. 이건 같은 지성체이면서도 '당황'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는 정령이기에 할 수 있는 속도였다.
그는 곧장 한 장의 편지를 썼다. 길진 않았다. 그저 현재 상황과 해줬으면 하는 것을 간단하게 적은 게 전부였다.
하지만 상대방이 상황을 파악하기엔 충분하리라. 위시는 편지를 접고, 적당히 비닐봉지에 넣은 뒤, 러쉬를 불렀다. 그리고 비닐봉지를 잘 엮고, 테이프로 붙여서 몸에 묶어주었다.
"지아씨에게 줘."
긴말 하지 않았다. 또한, 러쉬가 헷갈릴 만한 대상을 고르지도 않았다. 본래 연락을 할 대상으로서는, 하연성의 가족 호위를 맡은 도플갱어 부대가 최고였지만, 지아를 고른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왕!
아니나 다를까 단박에 말을 알아들은 러쉬가 크게 짖은 뒤,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적에게 들키긴 하겠지만, 막진 못 할 거다. 상대방은 아직 주변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러쉬에 대한 정보도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이것을 일종의 기습이었다.
위시는 이게 반드시 통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실패했을 때의 계책도 짜기 시작했다.
'슬라임이 만든 물건 중에···.'
지하로 내려가 창고를 뒤졌다. 그것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대부분 멜드멜이 만들어낸 완성작이 임시 보관하는 장소였다.
위시는 그곳에서 적당히 쓸 만한 물건들을 몽땅 챙겨왔다. 평소 호기심에 써 보고 싶었지만, 연성에게 금지당한 물품들도 거기에 있었다.
'아. 그리고 어떻게 쓸지 모르니까, 이것도 가져가 볼까.'
그는 연성이 만들어낸 인공 영혼도 품에 넣었다. 그리곤 바닥에다가 대충 펼친 다음에, 데드하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원래대로 돌아가 봐."
-크르르···.
"역시 안 되나."
현재 이곳의 최대 전력인 데드하울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축소 마법을 조절하는 건 연성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
'본체에 걸린 마법인 사라진 건 아니지.'
화염, 동결, 전격 등 각종 무형 공격에 대한 방어와 돌격 소총 정도를 막을 수 있는 존재다. 위시는 데드하울을 문 앞에 배치하고, 각종 창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종 물품을 적당히 배치하는 거로 준비 끝. 그와 동시에 바깥에서의 소리도 멈췄다.
'어디 들어와 보시지. 문이든 창문이든, 다 막아낼 테니까 말이야.'
위시가 자신만만하게 대기한 순간, 바깥에서 기이한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발사음과 무언가가 연소되는 듯한 소리. 그것이 로켓포의 발사음이란 걸 알게 된 위시는 절로 욕지거리를 지껄였다.
"저 개새끼들이 집을 통째로 부수러 왔나?!"
직후, 커다란 폭발음이 그의 말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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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군."
하연성의 집에서 약 500m 떨어진 장소. 레빈은 대전차 로켓을 맞고도, 그을린 게 전부인 집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대전차 로켓이 무엇인가. 본래 철판으로 둘러싼 전차의 갑옷을 뚫어버리기 위한 무기다. 일반 건물의 콘크리트라면 철근째 아작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연성의 집은 이야기가 달랐다. 충격을 받는 순간 분산은 물론이오, 불꽃에 대한 저항 마법이 발동됐다. 그 결과 콘크리트에 닿은 것은 1/10만 한 수준. 그것도 강화된 벽에 맞으니, 겉만 좀 그을린 게 전부였다.
아무리 평범한 대전차 로켓을 썼다 한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
"레, 레빈님··· 그, 레고드나 애들리를 데려오는 것은···."
"닥쳐."
"네···."
대전차 로켓을 장전하던 메이르 다오프가 참견을 해왔지만, 레빈은 일축했다. 둘이 온다고 해서, 커다란 전력이 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외벽에서 몽땅 퍼붓는다."
"하지만 그래선 환영 마법의 한계가···"
"그 정도로 깨지진 않아. 뭣 하러 1km짜리 대형 마법진을 고급 소재까지 써가면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레둘, 라둘!"
레빈의 말과 동시에, 두 존재가 몸을 움직였다. 하나는 죽은 존재의 몸으로 만든 언데드 사이보그(Undead cyborg). 일반적으로 사이보그의 약점으로 꼽히는 무거운 동체와 유연성 없는 관절 문제가 해결된 존재.
이것은 그야말로 기계로 된 몸을 움직이기에 최적화된 존재다. 망자이기에 두려움을 모르며, 기계이기에 신관술도 몸을 빼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2.5m의 크기에 꽉꽉 담은 기계의 파워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다른 한 존재도 만만치 않았다. 언데드 키메라(Undead chimera)인 녀석은 레둘라둘이 3m로 축소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종의 주술과 술법이 가미된 형태로, 그 힘의 1/3을 흉내 낼 수 있었고, 오거 특유의 기술인 힘의 조종(vector change)과 악마와 연결함으로써 영체와 정령에게 특수한 타격이 가능한 특제였다.
둘 다 레둘라둘의 시체를 분해하여 만든 작품이니만큼, 뛰어나기 그지없는 일품들. 그러나 레빈은 이 존재들에게 불만이 가득했다.
'부족해.'
사체의 특성을 100% 살리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준비하는 화기들도 전부 일반적인 것들뿐. 협회의 인맥이 없으니,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게 생긴 것이다.
그러나 지금 투정 부린다 해서 최고급 물품들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협회에 있을 때는 얻지 못할 레둘라둘의 시체를 얻기도 했으니, 사실상 전보다 전력 강화는 맞았다.
'하지만 녀석보다는 부족해.'
레빈은 이를 갈았다. 비교 대상과 비교해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증명하는 일환으로, 하연성의 집을 파괴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포격을 개시했다.
사이보그에 달린 소형 폭탄들. 벙커를 관통하기 위한 폭격 탄. 건물을 파괴하거나, 안에 있는 사람들을 태우는 화기 등등. 그가 구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을 퍼부었다. 그 화약량을 보자면 어지간한 영주성은 흔적도 없이 날릴 정도.
그러나 하연성의 집에는 한쪽 벽면을 뚫는 게 고작이었다.
"···제길."
레빈은 그제야 하연성의 집이 다수의 화력을 막는 데 특화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걸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거대한 화력의 병기는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으며, 일행을 전진시키는 것뿐이었다.
"저기 레빈님. 저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 두고 가시면··· 으허억!"
여차하면 방패로 써먹을 메이르 다오프까지 알뜰하게 챙긴 그는, 눈앞의 집을 향해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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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거 진짜 장난 아니네."
위시는 한쪽 벽면이 무너진 모습에 휘파람을 불었다. 처음 대전차 로켓이 날아왔을 때, 무난히 막아내고, 희망을 보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무너진 쪽은··· 지하실 위인가. 다행히 아래는 부서지지 않았네. 힘쓰는 데엔 문제없겠어.'
지하실을 비껴간 파괴에 가슴을 쓸어내린 그는, 이윽고 적들이 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밝혀진 적을 보며,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강해 보이는 데.'
보인 적은 둘. 각각 3m와 2.5m의 거대한 체구를 확인한 위시가 혀를 찼다. 천장의 한계상 들어오는 것은 후자만 가능하겠지만, 전자는 전자 나름대로 쓸모가 있었다.
예를 들면 마당 부근에 설치된 함정들을 대신 맞아주는 거였다.
적 또한 굳이 큰 덩치를 안에 욱여넣을 생각이 없었는지, 우선은 전면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마당에 첫발을 디딘 순간, 불꽃 마법에 휩싸였다.
'운이 없네.'
적은 한눈에 봐도 불꽃에 내성이 있어 보였다.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피부가 전혀 타들어 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본 위시는 애꿎은 함정 하나가 날아갔다며, 혀를 찼다.
그리고 거인이 두 번째 발걸음 내밀었을 때, 세 가지 함정이 동시에 발동했다. 식물이 올라와 발을 묶었고, 발밑에서 서리가 낄 정도의 냉기가 솟아올랐으며, 상체에는 다시 불탔다.
아무리 언데드라고 해도, 타격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공격. 특히 열기와 냉기가 부딪치는 곳은 필연적으로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틈은 위시에겐 기회였다.
"먹어랏!"
돌풍이 몰아쳤다. 바깥이라 최대한의 힘은 낼 수 없었지만, 주변 파편을 날리고, 하지만 적에게는 그리 유효한 공격이 아니었다.
'그걸 받고도 멀쩡하단 말이야?!'
레둘라둘의 가죽. 거기에 주술적 처리와 미약하지만, 혼의 방어가 그것들을 막아냈다. 피해가 없진 않았지만, 사용된 것에 비해 너무나 멀쩡한 모습.
그 광경에 위시가 경악하는 사이, 언데드 키메라와 그 뒤를 이은 언데드 사이보그가 들어왔다.
그들이 침범한 곳은 집의 옆구리 부분이었기에 마당이 짧았다. 그 덕에 키메라는 집 안까지 발을 디뎠고, 사이보그는 첫발을 디뎠다.
그 순간, 둘에게 마법이 몰아쳤다.
건물에 사용된 철골이 날카롭게 벼려졌고, 그것이 돌풍과 함께 키메라에게 꽂혔다. 또한 냉기를 전달하는 통로로 삼아 근육을 둔화시키곤, 바깥에서 한번 더 얼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주방에 있던 각종 날붙이가 날아와 고속으로 회전하는 형태를 만들더니, 얼어붙은 다리 부분을 천천히 갈아 내려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강해지며, 적과 주변 상황에 맞춰, 응용하여 몰아치는 마법들!
이게 바로 하연성이 공간에 제약을 덜 받는 곳에서 최대한의 지혜를 짜낸 마법 함정들이었다.
중심부에 감춰진 기록 저장 및 제어 촉매를 통해 움직이는 이 함정들은, 가히 어떤 존재가 쳐들어와도 막을 수 있도록 설계된 형태였다.
그러나 얼핏 굉장해 보이는 이 마법 체계는, 사실 흔해 빠진 방식이다. 다른 존재들이 흔히 던전, 혹은 마법사의 탑이나 거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선천적 마법사의 재능과 겹쳐져, 집 한 채 공간에 꽉꽉 채워졌을 뿐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약 30km에 걸쳐 설치되어야 할 마법들이 30m에 채워졌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것은 아군에겐 어마어마한 아군이었고, 적에게는 재앙이었다.
'우와. 그런데도 안 죽네.'
위시가 마법에 경악하고, 키메라의 몸에 두 번째로 경악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은 이미 뚫려서, 안에서 싸우기 적당한 사이보그가 이미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위시를 보자마자 몸에 감춰진 발사구를 드러냈다.
"···여기서도 쏘는 거야?"
황당하다는 위시의 답변은 미사일 발포음으로 대신 되었다. 총 7개의 수류탄만 한 미사일. 추진력이 약해서, 근접한 엄폐물 뒤의 적을 타격하는 공격이지만, 작금의 상황에 딱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너무 작은 것이 흠이 되었다. 미사일들은 위시가 몸을 감추고 있던 데드하울의 마법에 부딪혔다. 순수하게 속도만 감소 키시는 마법은 미사일을 터트리지 않고, 추진력만 떨어트렸으며, 그것은 곧 위시의 바람에 의해 영향을 받기 쉬워졌다는 소리가 되었다.
바람의 정령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급작스럽게 돌풍을 일으켜 탄두를 180도 회전시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감속 마법이 사라졌고, 거기에 위시의 바람이 가속을 붙였다.
공격한 방향 그대로 되돌아간 미사일. 그러나 키메라와 사이보그는 갑작스럽게 이것에 대처할 능력이 떨어졌다.
콰과앙!
폭발. 엄폐물을 파괴하는 형식의 포탄은 사이보그에게 치명적이었다. 다행히 회피 운동을 했는지, 단번에 기동이 정지되지는 않았지만, 무릎 관절 한군데에 타격을 입어서 기동력이 대폭 떨어졌다.
그 광경을 본 위시는 기가 살아서 외쳤다.
"하핫! 이 멍청이들! 너네는 백날을 고생해도 이 집에 못 들어올 거다!"
"들어갈 생각 없어."
"···어?"
자신의 말에 답변이 들려오자 순간 당황한 위시. 그리고 동시에 키메라가 옆의 벽을 부수며 구멍을 넓혔다. 본래 부족한 힘이지만, 한번 금이 간만큼, 내구도가 급격히 떨어진 걸 노린 것이다.
그리고 넓혀진 공간 바깥에서 마법과 시약을 준비하는 레빈과 메이르 다오프가 보였다.
"이 집을 부수는 게 내 목적이니까."
연금술과 마법이 조화된 기술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