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121화 (121/207)

# 대리 #

****

"이건 완전히 못쓰겠는걸."

아르지리아 백작. 그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는 형편없이 망가진 향을 보며, 작은 한숨을 내 쉬었다. 그건 그의 연인인 동양인 여성. 애들리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게다가 만들기도 어렵겠어. 그 악령들, 쉽게 없어질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니까."

조향(調香)족이라는 소수 종족의 그녀는, 양손의 들린 물건의 향기를 합치거나, 나눌 수 있었다. 아르지리아 영지민들에게 나눠준 향도 전부 그녀가 손수 만든 거였다.

그러니 재료만 있다면 재연하긴 쉬웠지만, 주변에 돌아다니는 악령의 모습을 보고, 그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같은 방법은 못 써.'

비슷한 형태의 다른 조향은 가능할지 모르나, 애들리는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한다고 해도, 최소한 악령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다음에나 시도할 것이다. 혹시나 악령들이 습격한다면, 떨쳐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령술사도 두렵고.'

하늘에서 보여준 장면은 재앙과 다름없는 악몽이었다. 처음 그것을 봤을 때, 그녀는 리치(Lich)라도 나타난 줄 알았다. 그만큼 사악하고 거대한 기운이 팽배했었다. 막지는 못했다. 그녀는 영지 바깥쪽에 있었으니까.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 정도 거리면 어지간한 기술은 닿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실제로 악령들은 영지 바깥까지 뛰쳐나왔다. 이동 중 원념을 흡수했던 걸 보면, 최대 나라 바깥까지도 나가리라.

그런 무시무시한 기술을 사용한 존재가 회사 소속이어서, 무차별 공격이 아닌 건 다행이었다. 아니면 영지 하나가 죽음의 땅으로 변했을 것이다.

"레고드. 우리 돌아가자. 향을 쓰는 작전이 무너져서 더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

계획의 실패와 강령술사에 대한 공포. 그것으로 인해 애들리는 후퇴를 제안했다. 그건 무척이나 타당한 이야기였으나, 도플갱어 레고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직 끝난 건 아니야. 다행히 회사 쪽에서 강령술을 쓴 덕분에 희망은 있어."

"그걸로 어쩔 셈인데?"

"그 강령술은 눈에 너무 띄었어. 아마 아르지리아 뿐만 아니라, 인접한 영지에서도 보였을 거야. 게다가 악령은 한동안 이 근처에 머물거나 퍼져나갈 테고. 소문내기에는 딱 좋을 거 같지 않아?"

"...그건 그렇네. 그런데 만약 들키면 어떻게 할 거야?"

"걱정 하지 마."

애드리의 우려 섞인 발언에, 레드고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말했다.

"1:1이라면 신에게도 이길 자신 있으니까."

****

나는 고도를 최대한 높인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하운드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

메시지

발신자 : 하운드

내용 :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십시오.

----

'더 설명해야 하나?'

그에게 보낸 의뢰에는 내가 아는 모든 사정을 적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은 설명하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음. 그냥 이렇게 된 거, 해결됐다고 보낼까?'

일단 가장 골치 아픈 향은 모두 처리했기 때문에, 그래도 될 듯하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쯤은 이야기를 해야지. 다른 것도 아니고, 차원 하나가 통째로 영향력에서 벗어날 뻔한 일인데.'

나는 한 번 더 장문의 문장을 작성했다. 이 일이 벌어진 것부터, 특별의뢰의 내용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지원, 마지막으로 자체 해결한 방법까지. 전보다 더 꼼꼼하게 세세하게 적어 보냈다.

얼마나 길게 썼는지, 끝나자 목표로 했던 숲의 정령에게 도착했을 정도였다.

[무슨- 일인가?]

"아, 잠시 자리가 필요해서요. 10분이면 되는 데 괜찮을까요?"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머물러도- 상관없다-]

고블린 퇴치나 사람을 쫓아 내준 덕분에, 숲의 정령은 매우 높은 호감을 보여주었다. 그 때문에 별다른 문제없이 데드하울에게 다시 은신 마법을 걸고 날아가려는 찰라, 커뮤니티의 내용이 갱신된 걸 보았다.

그건 한 가지 질문이었는데, 꽤나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향을 처리한 건 좋지만, 강령술은 인식이 안 좋은데요. 잘못 쓰이면 어떻게 하죠?

맹점이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를 떠올리진 못했다. 솔직히 이런 선동과 날조에 강한 편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좋은 방법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커뮤니티에 불이 붙었다.

-아르지리아 백작을 악의 축으로 밀어붙이죠. 그의 영지에서 벌어진 거고, 리더의 얼굴도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어요. 영지민이 헛소문이라며 외쳐대겠지만, 벽에다 소리치는 거하곤 다를 거예요. 어쨌든 향은 없어졌으니까요.

-회사라는 소문을 지우기 위해서, 다른 소문을 퍼트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회사라는 집단은 가짜고, '다크 뭐시기' 같은 이 차원 분위기에 맞는 이름과 그럴듯한 가상의 악을 만드는 겁니다. 틀림없이 먹힐 겁니다.

-그거 좋네요! 제 의견하고 섞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동감입니다. 백작의 설정을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해골용은 보였으니, 사악한 리치 정도가 좋겠군요. 아리아 리드로프의 영지에 고의로 적은 병사만 보내 죽이기도 했으니, 여러모로 맞아 떨어질 겁니다.

-만약 하신다면 빨리하셔야 할 거예요. 적들도 이 생각을 하고 있을 게 틀림없어요!

커뮤니티에 겨우 세 명밖에 없는 데, 두 명이서 의기투합을 하고 의견을 마무리 지었다. 왠지 리더로서의 카리스마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애초에 그런 것에 집착하는 타입이 아니니, 넘어가기로 했다.

대신 한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주 좋은 의견이긴 한데, 그걸 실행할 숫자가 부족해요.

-아...

-다른 존재를 고용하는 건 안 되겠습니까?

-안될 건 없지만 부자연스러울 것 같네요. 어쨌든 현지인들이 아니니까요.

거기서 우리의 이야기는 잠시 막혔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하운드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

메시지

발신자 : 하운드

내용 : 이야기할 시간이 되십니까?

----

꽤 곤란했다. 커뮤니티의 예측으로 보면, 적들이 곧 활동을 시작할 것 같았으니까. 그것을 막거나 대응할 방법을 짜야 했다.

나는 사정을 설명하는 메시지와 함께, 당장은 곤란하다는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곧장 답장이 도착했다.

----

메시지

발신자 : 하운드

내용 : 그 일, 제가 해결해 드리면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

스마트 워치를 만지던 손이 딱 멈췄다. 그야 물론 해결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전 이사급이라고 한들, 이 일은 머릿수가 필요한 거였다.

'...뭐, 일단 그렇다고 승낙만 할까.'

일이 해결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에 하운드와 만날 의사는 충분히 있었다. 따라서 승낙의 메시지를 보낸 순간.

채 30분이 되지 않아, 30명의 증원이 커뮤니티에 합류했다.

----

메시지

발신자 : 하운드

내용 : 제가 키워줬던 음유시인들에게 연락을 보내 놨습니다. 소문을 다루는 데에는 전문가와 다름이 없으니 안심하시죠.

----

그의 메시지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커뮤니티의 기록을 읽더니, 순식간에 지역을 분담해서 흩어졌다. 노래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소문을 퍼트리기 좋은 수단이니,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것이다.

적의 방해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최소한 선방 정도는 가능하리라.

게다가 나는 이만큼의 투자를 하면서까지 나와 이야기 하고 싶은 하운드의 마음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길어봐야 몇 시간이겠지. 초동 대응도 됐고, 그 정도는 충분할 거야.'

결국, 결심한 나는, 커뮤니티에 양해의 글을 올리고, 하운드의 공간으로 이동했다.

일그러진 시야가 돌아왔을 때 보인 광경은 이미 한차례 본 경험이 있는 곳이었다.

지구의 평범한 응접실 같은 풍경. 내가 처음 회사에 끌려왔을 때와 같은 장소였다.

"오셨습니까. 앉으시죠.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아서, 가장 편하게 느껴질 공간으로 골랐습니다."

"고마워요."

그 말대로 지구인인 나한테는 이런 공간이 가장 익숙하다. 그리고 한번 겪어봤던 곳이라 그런지, 조금 더 편하게 자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 때문에 부른 거죠?"

내어준 차를 한잔 마시고, 곧장 본론에 관해 물었다. 그와 서먹한 사이는 아니지만, 즐겁게 사생활을 이야기할 사이도 아니니 문제는 없었다.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까요. 어려운 일이군요."

그는 평소답지 않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어 예민할지도 모르는 질문을 해왔다.

"회사의 대응이 안일하다고 생각하신 적 있으십니까?"

"...가끔은요."

나는 협회와 종종 얽매여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회사의 대응이 한발씩 늦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했다. 하운드가 그걸 물어온 건 예상외였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안일하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유가 있지 않았나?'

지아의 스승인 연호에게 들은 이야기. 회사의 이사급은 대부분 용이고, 따라서 사후 대책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 그 부분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에, 그나마 불만을 참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어진 하운드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요 근래 회사의 대응은 점점 소극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킬 것만 지키고, 어려운 것은 버리자는 주의죠."

내가 들은 것과 달랐다. 사후 대책이라고 한들, 용이라는 카드는 굉장히 강력한 존재다. 따라서 나중에 투입되어도 어느 정도 일이 해결되기에, 사후 대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건 어려운 것을 버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회사의 용들은 뭘 하고 있죠? 출처를 밝힐 순 없지만, 그들이 나중에라도 움직인다고 들었는데요."

"...오래된 회사 사정을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회사의 이사급은 대부분 마룡입니다. 문제는 용이란 존재가 너무 오래 산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세대교체의 문제다. 다른 존재들은 대부분 용보다 수명이 짧았고, 어느새 인가 마룡의 숫자가 회사 중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사의 대응 자체가 소극적으로 변해갔다는 말이었다.

"잠시만요. 사장님은 어쩌고요. 그분이 말씀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지극히 당연한 의문. 그러나 돌아온 것은 하운드의 싸늘한 조소뿐이었다.

"그 이중적인 존재를 믿지 마시길. 그 존재에게 회사는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니까요."

그는 그 이상 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 역시 뭔가가 있다고 생각만 할 뿐, 묻지 않은 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좋아요. 회사의 대응이 늦은 것에는 이해했어요. 하지만 들어보니, 고치기엔 요원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죠. 특히, 협회에 관건 일은 소극적으로 되어선 안 되는 일입니다."

하운드는 중간에 차를 마셔 목을 축였다.

"그렇기에 회사가 먼저 협회를 공격해야 한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그건 꽤 복잡한 상황이었다. 회사와 협회는 서로 대적하고 있지만, 집단의 성향을 보면 회사 측에서 공격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 물론, 다른 차원을 무차별로 공격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정확히는 협회의 본진이나 중역을 적극적으로 처리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조금은 의미가 완화되었지만, 골자는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나도 실행이 어려운 일이었다.

"하연성씨는 어떠십니까? 지금 회사가 올바르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운드의 기습적인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장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내리기엔 꽤 복잡한 문제였으니까.

이런 내 심정을 느꼈는지, 하운드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신 차를 한 번 더 홀짝이며, 다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하연성씨가 맡은 특별의뢰의 지원, 아무리 그래도 증원 속도가 중요성에 비해 너무 늦더군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 봤습니다만, 아무래도 회사 차원에서의 고의적 누락이 있었습니다."

"...네?"

"회사 내부의 판단에서 하연성씨를 부장급으로 잠정 판단하고 거기에 맞는 증원 속도를 붙였더군요."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동시에 왜 그가 이 이야기를 나중에 해주는지 알게 되었다. 자신의 말한 것을 생각해 보라는 제스처인 것이다.

"그걸 저에게 말씀해 주셔도 되는 건가요? 꽤 기밀에 속할 것 같은데요."

"기밀 맞습니다. 그래도 이곳이라면 괜찮습니다. 사실 들킨다 해도, 전자의 이야기를 모른다면 잔소리만 좀 듣고 끝날 겁니다. 회사는 인재 부족이니까요."

당당하게 선언하는 그를 보며, 쓰게 웃었다. 하운드는 그것을 끝으로 차를 전부 마셔버렸다. 할 이야기가 전부 끝났다는 표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돌아나가려던 나에게 몇 문장을 던졌다.

"하연성씨. 당신은 앞으로도 협회와 많이 부딪칠 겁니다. 스스로 그것을 피하려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러니 제 이야기를 머릿속 한구석에 담아주시길 바랍니다."

의미심장한 이야기. 그의 말에 확신의 담겨 있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 이유가 회사 때문인지, 아니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 협회와 자주 엮일 것 같았다.

'...고민을 해봐야겠네.'

그것을 끝으로 나는 프리디아 차원으로 돌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