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 #
나는 일단 데드하울이 장난치는 것부터 멈췄다.
"데드하울! 그만!"
영적으로도 연결된 해골용은 그것만으로도 내가 온 것을 알았고, 장난을 그만두고 얌전히 물러섰다. 그리고 나는 반대로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40대 중반에 조금 배가 나온 체구. 흔히 지구에서 볼법한 평범한 아저씨의 모습에 친숙함까지 느껴지는 모습. 그런 마법사는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뻐끔거렸다.
"아··· 아···"
'너무 놀라서 그런가?'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혹할 만하다. 게다가 조금 전만 해골용에게 장난감처럼 굴려졌으니 더더욱. 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데드하울에게 손짓했다.
"좀 더 떨어져 있어."
-크르르.
충실한 해골용은 군말 없이 물러섰다. 이것으로 마법사가 안심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으나, 역효과였다.
"가, 강령술사다아아!"
"···무서워한 게 그거였구나."
뒤늦게 알아챈 사실. 그러나 후회는 늦었다. 마법사는 사색이 되어 도망치고 있었으니까.
"···하아."
골치 아프다. 한숨을 쉬며 그렇게 생각했다. 저 마법사가 강령술사에게 겁을 먹은 이상, 원활한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데드하울에게 명령하는 모습을 면전에서 보여줬으니, 어떠한 말도 소귀에 경 읽기가 될 것이다.
'별 수 없지.'
기왕 이렇게 된 거 컨셉을 좀 잡아보자.
나는 마법사를 가리키며 데드하울에게 명령했다.
"물어와."
-크롸라!
해골용이 하늘을 날았다. 마법사를 다치지 않게 잡아 온다면 어떤 수단도 상관없다는 명을 받은 녀석은, 여태껏 억눌린 날개를 펼친 것이다.
"히야아악!?"
당연히 마법사가 기겁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쿠웅!
숲을 너무 많이 뭉개면 정령이 화내기 때문에, 살포시 내려앉은 데드하울. 그러나 마법사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충격. 그는 자리에서 주저앉았고, 해골용은 입을 벌렸다.
"끄갸아악?!"
그야말로 세상이 떠내려갈 듯한 함성. 그는 데드하울의 입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내 앞에 올 때까지 목청이 찢어져라 울었다.
-크롸.
"꺼흑!?"
데드하울이 마법사를 떨어드려 놨다. 묘하게 높은 곳이라 얼빠진 비명이 터진다. 데드하울이 이상하게 거친 느낌이 있지만, 나무라지 않고 같이 남자를 핍박하듯 말했다.
"어딜 도망가는 건가요? 설마 해골용을 부리는 강령술사 앞에서 도망이라도 생각하신 건지?"
"히익!? 사, 살려주세요!"
마법사는 내 앞에서 엎드려 싹싹 빌었다. 그 모습이 여러모로 불편했지만, 우선 목적이 있었으니, 이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제가 묻는 말에만 답하면 살려드리죠."
"저, 정말 살려주시는 건가요?"
"네. 숲의 현자라는 존재에 대해서만 알려주시면 돼요."
"숲의··· 현자요?"
남자는 눈을 껌벅거렸다. 답을 듣지 않아도 얼굴에 물음표가 보이는 표정이다.
'숲의 현자가 뭔지도 모르는 모양이네.'
나는 질문을 방향을 바꿔, 남자에 관해 물었다.
"이곳에 온 지는 얼마나 됐죠?
"고블린을 잡은 적이 있나요?"
"숲 밖으로 나간 지는 얼마나 된 거예요?"
몇 분간의 문답. 그것으로 알아낸 것은 이 남자가 숲의 현자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거였다.
"숲에 다른 마법사는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있어도 숲 바깥입니다! 이곳에서는 불을 피울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숲의 현자는 나다. 99%의 확신을 품은 나는 아리아에게 메시지로 그 사실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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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발신자 : 아리아 리드로프
내용 : 그것참 다행이네요. 한시름 놓았어요. 정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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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마법사가 대립하는 적에게 가는 걸 막아야 한다. 그 목표를 달성한 아리아는 시간이 나면 대접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의뢰를 완료해줬다.
그러나 나는 아직 모든 일이 끝난 게 아니었다.
숲의 정령이 준 의뢰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숲에 들어온 인간들을 전부 내쫓아야 하는데···'
나는 잠깐 머리를 굴리곤, 바들바들 떨고 있는 마법사에게 말했다.
"아저씨. 보수 좋은 단기 알바 해보실래요?"
"그, 그냥 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앞으로 조용히 살겠습니다!"
"···알겠어요. 아, 혹시 숲에서 계속 지내실 거면, 고블린 좀 잡으세요. 그럼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그는, 말이 바뀔까 봐 쏜살같이 뛰어갔다. 중간에 데드하울의 불만스러운 울음에 넘어졌지만, 단 한 번 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저렇게 겁이 많으면 대역은 어렵겠지.'
숲에서 사람들을 내쫓는 방법. 그중에서 가장 쉬워 보였던 것은, 가짜 숲의 현자를 바깥으로 보내는 거였다.
그러면 수색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알아서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해주면 좋은 마법 도구 좀 만들어 줬을 텐데.'
숲의 현자는 굉장한 마법사로 알려져 있었다. 흉내를 시킨다면, 당연히 어느 정도의 마법 도구는 들려줬을 것이다. 비록 여러 가지 제한을 걸기는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굉장하다는 평가를 받을만한 무언가를.
하지만 본인이 싫다 하고, 연기할 만한 담도 가지지 못한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네. 음. 사실대로 퍼트리면 얼마나 효과가 있으려나.'
나는 아리아에게 메시지를 보내, 숲의 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퍼트리면 어떻게 될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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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발신자 : 아리아 리드로프
내용 : 거의 없을 거예요. 이미 숲에 현자란 것 자체가 허무맹랑한 편이었고, 없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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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작금의 상황에서는 무조건 증거가 필요하다는 소리. 역시 대역이 가장 놓을 거 같았다.
'정 안되면 내가 나서야지.'
그러나 상황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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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발신자 : 아리아 리드로프
내용 : 대역은 한번 시도해 봤어요. 회사의 마법사를 고용해서 해봤는데 실패했어요. 말은 숲의 현자를 찾는다곤 하지만, 접촉해 오질 않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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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말이었다. 아리아와 대립하는 존재가 강력한 마법사를 원하고 있다면, 소문 비슷한 거만 들려도 달려들어야 정상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거짓 소문을 퍼트려 아리아를 혼란하게 만들려는 수작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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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발신자 : 아리아 리드로프
내용 : 저도 숲의 현자를 찾으면서 어느 정도 자원을 쓰긴 했지만, 치명적인 수준은 아녜요. 전부 외부인을 고용하거나, 회사에 의뢰를 넣었는걸요. 이걸로 영지를 흔들려 했다면, 아르지리아 백작은 무지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치루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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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생각마저 부정당하자,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상대방은 뭘 노리는 거야?'
나는 머리를 싸매며, 다시 숲에서 사람을 내쫓는 방법을 짜야 했다.
프리디아 차원은 다른 차원에 비교해 평화로운 곳이었다. 기본적으로 자원이 풍부하고, 위정자들이 욕심을 덜 차리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사람이 여럿 모이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충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아르지리아 백작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난 욕심을 차리고 있으니 말이지.'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닐세. 그냥 개인적인 일이야."
기사의 질문을 적당히 얼버무린 아르지리아 백작은 포도주를 한 모금 넘겼다. 약간의 씁쓸함. 중간에 살짝 감도는 산미. 단맛과 특유의 향이 그를 감동시키고 사라진다.
"언제 마셔도 황홀한 맛이군. 없어지는 게 안타까울 정도야."
잠시 사색에 잠겨 있던 그는, 이내 기사가 들어온 이유를 상기하며 물었다.
"그래. 준비는 얼마나 됐지?"
"8할쯤 완료되었습니다. 선발대 정도는 보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듣던 중 기쁜 소식이군. '그녀'는 어떻다고 하던가?"
"전장에 빨리 나가기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 수고했네. 선발대에게는 곧 나갈 거라 전달해주게."
"알겠습니다. ···백작님. 혹시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백작은 한 번 더 잔을 기울이다 멈추며, 기사를 바라보았다.
"어떤 질문인가?"
"그··· 리드로프의 영주가 사술(邪術)에 빠졌다는 설명은 진실입니까?"
"난 또 뭐라고."
와인잔이 손에서 테이블로 이동한다. 백작은 서랍을 열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서류를 보여주었다.
"아리아 리드로프에 대한 정보일세. 작년까지만 해도 그녀는 아주 평범한 여아에 불과했다네."
기사는 조심스럽게 서류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그녀의 과거 이력과 능력에 대한 적성검사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랬던 아이가 한 달가량 실종되고는 갑자기 세계에서 100위안에 들어갈 정령사가 된 걸세. 사술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게 말이나 되겠나?"
"과연.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적성검사표의 결과에는 썩 좋은 말들이 적혀 있지 않았다. 마법으로 적히는 적성검사표가 조작될 염려는 거의 없는 만큼, 이 정보는 믿음직스러웠다.
'하려면 실력 좋은 마법사와 작정하고 짜야하니, 가능성은 작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소녀의 이력을 보면 어디에서도 정령술을 배웠다는 문장이 없었다. 그 말은 결국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기술을 익혔다는 것.
"···그럼 흑막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 게 있으십니까?"
"나도 정확한 건 모른다네. 하지만 모종의 정보망으로 수집한 결과, 그들이 '회사'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냈지."
"회사라··· 이상한 이름이군요. 어떤 의미가 있을지···"
"그걸 알아내는 것이 자네 의무가 아니겠나?"
확신과 믿음이 담긴 백작의 말. 기사는 이 이상 의심의 여지는 없으며, 더 이상의 질문은 무례라고 생각했다. 아니, 본래는 검이어야 할 기사가 모시는 존재에게 적이 착하지 않냐는 질문을 한 것부터가 이미 문제였다.
"실례되는 물음을 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아닐세. 현장을 지휘하는 자가 망설임이 있어선 안 되는 법.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물어봐도 좋네."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르지리아 백작은 너그럽게 용서했다. 기사는 그의 마음씨에 감명받고, 조용히 물러섰다. 이후 일어날 일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이윽고 기사가 사라진 후. 백작은 다시 한번 와인 잔을 집으며 투덜댔다.
"이래서 눈치 빠른 것들은 귀찮다니까."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 진중한 느낌의 백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상대를 깔보는 듯한, 오만방자한 인격이 자리하고 있었다.
"도플갱어(Doppelgänger)가 그런 말 하면 안되지."
그리고 백작의 뒤편. 어느새 나타난 여인이 그 말을 받았다.
검고 긴 생머리의 동양인. 옷은 달라붙는 가죽 재질의 옷과 마법사를 상징하는 화려한 로브를 걸치고, 마른 몸매에 160 정도의 키를 가진 여성.
그녀는 도플갱어라 부른 백작에게 다가가 살포시 껴안으며 와인잔을 가로챘다.
"도플갱어가 변장, 사기에 특화되어 있다곤 해도, 귀찮은 건 귀찮은 거야. 신경 쓸 것 없이 술술 잘 풀리면 그게 최고라고."
"그렇다고 해줄게."
"아, 잠깐! 다 마시지마! 얼마 없는 거라고!"
맛도 모양도 모르는 방식으로 와인을 삼켜버리는 여성에게 백작이 불평을 토했다. 그러나 그걸 막을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둘은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먹고 마신 만큼은 일해. 괜히 널 '숲의 현자'라면서 넣어둔 게 아니라고."
"알았어. 알았어."
여성은 와인을 한잔 더 따르며, 말을 적당히 흘려듣는다. 그 모습에 백작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물었다.
"작전은 얼마나 되어가고 있어."
"순조로워. 요 근래에는 꽤 많이 퍼졌지."
"농땡이 부리지마. 이번 일만 잘 되면, 협회 간부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몰라. 레둘라둘의 자리가 하나 비잖아."
"뭐, 여유롭지 않아?"
어깨를 으쓱인 여성은 다시 한번 와인을 다량으로 들이키며, 빨개진 얼굴이 되었다.
"간부 밑에, 임원이라고 해봤자 고작 열셋. 그중 둘이나 뭉쳤는데, 문제 될 게 있겠어?"
"그렇긴 하지. 하지만 예상외의 일도···"
"그런 의미에서 미리 축하주 한잔."
"···하아. 정말 못 말리겠다."
둘은 거의 비어버린 와인병과 와인잔을 부딪쳤다. 프리디아 차원의 한 곳에서, 아직은 누구도 모를 물밑의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