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 #
심장 주변에 위치한 두 개의 고리. 그건 거리가 멀어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자연력을 저렇게 쌓을 수도 있다고?'
순간 무공을 떠올렸다. 둘 다 몸에 자연력을 쌓는다는 것에서 공통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양이 심상치 않았다.
'내가 쌓은 내공의 네 배는 되겠어.'
지금 나의 내공을 수치로 환산하자면 4년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4년간 수련을 해야 쌓이는 양으로, 크기는 성인 남성 주먹의 2/3쯤 된다.
객관적으로 보면 굉장히 빠른 속도. 1개월에 1년 수준으로 단축했으니,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아이자드와 계약을 맺은 것도 한몫했지마는.'
내공의 기초가 자연력이다 보니, 아이자드와 한 계약은 수련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그런 내가 이 정도인데, 저들은 그것의 네 배 수준의 힘을 저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봐야겠어.'
양은 많은 데 크기는 작다. 나는 그것에 수상함을 느끼곤, 멀찍한 공터에 데드하울을 착륙시켰다. 그리고 데드하울을 축소화시킴과 동시에, 다시 한번 은신 마법을 사용해, 모습을 감췄다.
'적당히 떨어진 사람 한 명만 있으면 좋겠는데.'
죽이려는 건 아니다. 그냥 기절시키거나 납치해서 정보만 좀 얻을 뿐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그것도 범죄지만, 이곳은 지구가 아니고 전쟁 상황이니 그 정도는 괜찮을 거다.
나는 강화된 몸으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주변에 나무가 적은 환경이어서 꽤 먼 곳에서 착륙했기에 거리가 꽤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의외의 행운으로 작용했다.
'음?'
몰래 도망치는 사람이 보였다. 심장에 고리는 하나. 주변 평균보다는 낮은 것 같았지만, 마법은 쓸 수 있을 것이다. 아까 마법을 쓴 사람들과 복장이 동일한 게 그 증거였다.
'그럼 조속히.'
은신 마법과 내공을 믿고 빠르게 접근한다. 검무를 쓰는 기사보다 느릴지라도, 일반인으로선 상상도 못 할 속도. 당연히 남자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윽!?"
오른팔을 뒤를 꺾으며, 목에 신의 손을 대었다. 남자가 발버둥치려 했지만, 목덜미의 차가운 금속에 움직임을 멈췄다.
"사, 살려주십시오."
"묻는 말에만 답하면 다칠 일은 없어요."
나지막이 속삭여준다. 경고를 잘 알아들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뺐다. 나는 추궁했다.
"마법을 배운지 얼마나 됐죠?"
"두, 두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어떻게 배운 건가요? 단체로 모여서 교육하는 방식?"
"그런 것도 있었고, 책으로 개인적으로 본 것도 있습니다."
"왜 익힌 거죠?"
"머, 먹고 살 게 없어서···"
"마법 써서 앞에다 날려 봐요."
"저, 저기, 제가 탈영한 거라서 마법을 쓰면 들키는데···"
"쓰세요."
"힉?! 아, 알겠습니다!"
신의 손을 더 바짝 들이대자, 남자는 겁먹은 모습으로 영창을 했다.
[불꽃은···]
영창은 짧지 않았다. 외우는 것만으로 약 30초.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고, 남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하기에도 느긋한 시간이었다.
[···내 손에서 피어날지어다. -불꽃의 화살-]
그의 손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났다. 하지만 그것을 곧장 날리진 않고, 조금 눈치를 본다. 나는 작은 한숨을 쉬며 박치기를 했다.
"끅?!"
"···아야."
남자의 머리가 예상외의 돌대가리였던지라, 나도 꽤 충격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피부 경질 마법이 걸린 내 박치기에 당한 거다.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마법이 취소되었다.
원래 마법은 시전자의 충격에 사라지는 게 아니지만, 남자에게는 통했다. 나는 그의 위치를 되돌리며 으르렁거리듯 한 번 더 협박한다.
"허튼수작 부리지마. 나한테 쏘려는 것도 모를 것 같았나?"
존댓말은 없어졌다. 그리고 망설인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자, 몸을 한번 움찔한 남자는 그저 살려달라고만 빌었다.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그 마법을 만든 사람은 누구지?"
"몰라? 그럼 알려준 사람은 누구야?"
"목숨보다 기밀이 중요해? 어차피 탈영병이잖아."
"이 마법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원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약 15분 정도의 질문이 끝나고. 나는 약속대로 그를 놓아줬다.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협박을 붙이긴 했지만, 적국의 첩보원 같은 거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한 것뿐이다. 여기에 그를 걷어차서 은신 마법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하니, 그럴듯한 신비주의 인물이 완성되었다.
이제 남자는 자신이 겪은 일을 사실대로 말해도 소용없을 거다. 마법이 발달하지 않은 이 세계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란 귀신뿐일 테니까. 다들 남자를 미친놈 취급하거나, 다른 나라의 특수 첩보원이라도 만났다 생각하겠지.
'어떻게 해도 회사를 의심하진 않을 거야.'
적당한 속임수로 증거를 인멸한 후. 적당한 곳으로 자리를 바꿔 생각에 잠겼다. 주제는 당연히 남자가 보여준 마법에 대해서였다.
'이상한 마법이었어.'
그것은 내가 아는 마법과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 마법을 '서클 마법'이라 불렀는데, 심장에 있는 고리가 근간에 가까운 것이라 그런 듯했다.
'실제로 심장 주위의 정령력으로 된 고리가 중심이긴 했지.'
그러나 정령력이 뭉쳐서 만들어진 고리, 서클. 그건 내공에 비해 무척이나 조잡하게 만들어진 거였다.
'마법으로 묶어서 압축시켰어.'
처음에는 마법이 사용됐다는 걸 몰랐다. 너무나 의외인 방식이었던 탓이다. 몸을 천천히 영구적으로 변화시키는 건, 쉽게 보기 어려운 난폭한 방식이었다.
'그런 걸 자기 몸에 사용할 줄이야.'
심장의 근처에 정령력이 들어설 공간을 비우고, 호흡하면서 잔뜩 끌어들인 다음, 넣어서 압축. 그것은 부피가 큰 이불을 착착 정리해서 많이 작은 통에 잘 넣어놓은 모양새와 같았다.
예상보다 훨씬 더 억지스러운 기술이다. 영혼과 정신을 조합해서 만든 무공과 비교하면, 몇 수는 뒤처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그리고 마법을 발현할 때도 비효율적인 게 있었지.'
이들이 발현하는 마법은, 서클의 정령력을 일부 풀어서 세상에 영향을 주는 방식이었다. 다만 정령력의 소유권이 온전하게 시전자에게 있지 않았기에,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린다. 방해를 받으면 풀어지기도 하며, 다른 사람이 통제권을 빼앗은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장점도 있었다.
'재능과 관계없이 빠르게 비슷한 마법을 배우게 하는 데엔, 확실히 좋아.'
서클을 만드는 과정부터가 몸을 변화시키는 거니, 초반 재능의 유무는 의미가 없다. 또한, 서클의 정령력을 풀어쓰는 방식은 마법의 통일성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즉,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군대'를 위한 마법인 것이다.
'남자가 스스로를 마법병이라 부를 만 했네.'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대 다른 의문이 나를 괴롭혔다.
'단점이 있지만, 장점도 있어 보이는 마법인데 다른 곳에서는 왜 못 본거지?'
서클 마법은 심장에 고리를 두른다는 특징이 있다. 즉, 내가 지나가면서 봤다면, 틀림없이 흥미를 느꼈을 거란 이야기다.
그러나 보지 못했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다른 이유가 있을 터. 나는 서클 마법의 단점을 한 번 더 되짚어보았다.
그러자 선천적 마법사의 재능이, '단점'이 아닌 치명적인 '맹점'을 알려주었다.
'서클 마법' 그 자체가 마법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아이고. 이러면 마법이 해석 당하는 순간 끝이구나.'
영창 파기는 쉬운 기술이 아니지만, 연구하면 된다. 즉, 이 경우에는 서클 마법 그 자체를 연구하다 보면 근간이 되는 서클을 파기할 수 있다는 거다.
'결론적으로 서클 마법은 구식 기술이구나.'
마법에 대해 제대로 된 근간을 모르고, 연구가 덜 된 상태에서 쓰이는 기술이다. 고위 정령과 계약하는 존재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 방식이 고정되리라.
어쩌면 이 방식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법에 대한 인지도를 빠르게 넓힐 수 있고, 활발한 연구를 가능케 하니까.
이대로 마법이 발전하고, 새로운 형식을 알아내게 된다면, 이 차원은 마법으로 이름 높이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
'···마법 도구는 발사체만 없애는 거로 해야겠네.'
의도치 않게 의뢰인의 소망을 이뤄줄 방법을 찾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생각이다. 여기서 서클을 부수는 마법 도구가 나오면, 마법에 대한 발전 가능성이 크게 후퇴하기 때문이다.
발사체를 막는 마법 도구면 된다. 의뢰인의 실력을 생각하면,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강해질 거다.
그렇게 결정한 나는, 데드하울로 높이 올라가 주변을 마구 쏘다니며 전장을 찾았다. 혹시나 다른 형태의 마법이 있는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렵진 않은 일이었다. 높이가 높이다 보니, 길만 대충 따라가도 금세 다른 도시나 마을이 보였다.
전투 중인 곳은 세 곳 정도가 더 있었으나, 쓰는 마법은 같았다. 혹시 다른 나라에서는 다른 마법을 쓸지도 모르겠지만, 비슷한 형식이라 봐도 될 것이다.
사용할 마법도 정해졌다. 내가 쓰는 방탄 마법을 조금만 응용하면, 두 개 고리의 마법까지는 수월하게 막아낼 거다.
'그럼 그렇게 하고 돌아가 보실까.'
데드하울을 움직여 고개를 돌리는 찰나. 아래에서 그럭저럭 큰 마법을 쓰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 고리가 네 개잖아!'
여태까지 평균 1.8 정도의 고리가 보통이었던 걸 생각하면, 굉장한 수치다. 아마 본인에게 재능이 있었을 것이다. 정령력을 잘 받아들였으니, 무공 쪽이겠지만 말이다.
그는 양손을 허공에 들고, 수많은 불꽃을 만들어 냈다. 마법이 한 개로 추정되는 이 세계이기에 발생한 슬픈 광경이었다.
'개조라도 하고 쓰지.'
하긴, 재능이 무공 쪽이라면, 마법 개발에는 서투르리라. 아마 다른 존재들이 미리 만들어둔 마법만 쓰는 형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이 차원엔 다른 마법이 없거나, 매우 적었다.
'그래도 팔자니 어쩔 수 없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데드하울에게 움직이자고 말하려는 찰나.
띵-.
그의 운명이 바뀌는 소리가 들렸다.
스마트 워치의 소리가 유난히 머리에 박히는 건, 특별 의뢰 하나뿐이다. 그리고 이번에 온 내용은 저번에도 한번 본 적 있는 거였다.
----
의뢰 종류 : 직원 모집
의뢰자 : 사장
시험 대상 : 마도비
의뢰 내용 :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회사로 채용시켜라.
설명 : 마도비는 좋은 적성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회사의 존재를 밝히고 동의를 얻은 뒤, 손을 잡고 의뢰를 완료하라.
조건 : 사기, 속임수는 불가하며, 본인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함. 잠시 다른 공간에 간다는 것을 밝혀야 함.
보상 : 성공 시 일반 의뢰, 긴급 의뢰 하나씩을 완료한 것으로 간주함. 특별 상점 포인트 5p. 실패 및 거부 시, 15p 차감.
----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였지만, 보상이 정말 쥐꼬리만 했다.
'특별 의뢰 포인트가 귀하긴 하지만.'
한동안 큰 것들을 뭉텅뭉텅 받은지라 의욕이 잘 나지 않는다. 솔직히 뭘 하려면 백 포인트 이상씩 되어야 하는 데, 5p는 너무 적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게 정상이다.
'전설로 남아도 이상하지 않을 물건을 몇 개나 가진 내가 이상한 거지.'
의뢰를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수락만 해놓고, 당장에 납치하진 않았다. 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라카나의 의뢰를 먼저 해결하고 와도 문제 될 게 없었다.
"가자."
나는 데드하울에게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라카나와 헤어졌던 공터에 도착. 데드하울을 축소하고 곧장 마법 물품 제작에 착수했다.
'방탄 마법에 썼던 다중 소형 방패(multiple Small Shield)를 개조하기만 하면 돼.'
전장에서 보았던 마법은 위력이 높지 않았다. 그리고 속도와 관계성이 적으니, 웹 마법과 관련된 것은 뺐다.
아마 이 정도만 해도 향후 10년간은 문제가 없으리라.
다만 다중 소형 방패만 해도 쉬운 마법은 아니다. 공격 궤도에 작은 방패를 만드는 거니만큼, 실력이 어중간한 마법사는 시도조차 못 한다.
물론, 내게는 문제없었다. 마법에 맞는 속도를 설정하느라 조금 까다롭긴 했지만, 30분이면 충분했다.
모양은 팔뚝만 한 원통의 양 끝에 주먹만 한 보석 두 개를 박은 형태. 보석을 눌러서 고정하면 발동하는 방식이다.
'향후 2~30년은 사기물품으로 등극하겠네.'
이 차원의 기술로는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게 원천 봉쇄되는 것과 다름없다. 라카나의 검술 숙련도가 낮지 않아 보이니,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물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가 원하는 건 마법을 완전히 없애서 예전의 지위를 되찾는 거겠지만, 그건 어렵지.'
당분간은 이 도구로 버티면서, 검무를 익히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게 좋겠구먼. 남에게 의지만 할 수는 없으니 말이우."
라카나에게 내 생각을 말해준 결과, 그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생각이 여러 가지로 바뀐 모양이라 다행이었다.
"그런데 가격은 얼마유?"
"3000포인트입니다."
"비, 비싸구려."
그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듯 흔들린다. 그러면서 이쪽의 눈치를 보는 것이 깎아주길 원하는 듯하다.
'이 이상은 못 깎아줘.'
이것만 해도 많이 깎아준 거다. 다중 소형 방패 마법이라는 게 하나의 마법 같지만, 사실은 몇 가지의 마법이 엮여서 이루어진 거니까.
라카나는 헛기침을 한번 했다.
"내가 의뢰를 넣기 전에는 포인트나 마법 물품의 가치를 잘 몰랐슈. 그냥 장난 같은 숫자인지 알았지."
"그렇군요. 이해 갑니다."
상점도 가짜라 생각했다는데, 포인트라고 진짜라 생각할 리 없었다. 제작의뢰를 맡긴 걸 보면 정사원까지 가긴 했겠지만, 그 정도는 운으로 통과할 수도 있는 법. 만난 사람들이 설명하기 귀찮아했다면, 이 상황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상당히 특수하긴 하지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나는 입을 열었다.
"포인트가 모자라시면 대출도 가능하니까, 열심히 하시길 바라요."
"끙. 알겠구먼."
결국, 그는 빚을 내서 물건값을 치렀다. 그리곤 곧장 회사에서 의뢰를 받아 떠났다. 낮은 직급에 적지 않은 포인트를 빌려서, 변제 기간이 길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나도 의뢰하러 가볼까.'
나는 공터로 나가 데드하울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