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107화 (107/207)

# 대리 #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혼이라고 느꼈던 건 방어막이었어요. 그 덕에 죽다 살았죠."

양진자는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펼쳐보려 했는데 잘 안됐어요."

손을 주억거린다. 레둘라둘과의 전투 후. 같은 것을 시도해 봤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혼을 움직이는 건 자연스럽게 됐다. 하지만 방어막의 형태로는 펼쳐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뿐일 것 같은데."

조용히 듣고 있던 그는 바닥의 세모에 물음표를 그렸다.

"자네가 그린 그림을 모른다는 거네."

조용히 신음을 삼켰다.

"그게 가능한 건가요?"

"물론이지. 영혼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네. 그러니 도형처럼 일정한 모양이 아니라, 어떠한 문장이나 서술이라도 말일세."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신관술을 쓰는 노아가 한 개의 기술만 가진 게 아닌 것처럼, 영혼의 힘은 어떻게 깨우쳤느냐에 따라 사용법이 달라졌다.

'아마도 노아 씨는 신에 대한 믿음이 기준일 거야. 그러니 종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기술을 쓸 수 있는 거고.'

이것은 기준. 근간의 문제였다. 그것을 알게 된 나는 깨달음을 얻었을 때를 되돌아보았다.

'분명··· 다른 존재들과 나를 구분하는 거였지.'

죽은 존재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 에 대한 대답치고는 이상한 결론이다. 그리고 완벽한 해석이라곤 할 수 없었다. 다분히 내 주관이 섞여 있다.

하지만 양진자의 이야기로 미루어 봤을 때, 이게 내 속에서 굳어져 버린 결론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 결과.

팟!

나는 손에서 둥그런 막 같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모양은 알 수 없다. 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곳은 찌그러져 있고, 어딘가는 평평하다. 이유를 몰라서 멍하니 보고 있자니, 양진자가 손뼉을 쳤다.

"축하하네. 그게 자네가 깨달은 영혼의 방식인가 보군."

"그런 것 같네요."

영혼을 다루는 방식에 감이 잡혔다. 그러나 아직 이해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왜 모양이 이런 걸까요?"

"내가 알겠나. 그것을 만들어낸 건 자네이니, 자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네."

그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인 듯했다. 영혼을 다루는 걸 완벽하게 익히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이 이상은 방법이 없었다. 내가 입맛을 다시자, 양진자가 말했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전부 해준 것 같네. 그럼 이번에는 내 처지 좀 도와주지 않겠나?"

노인이 부탁했다. 그가 들려줄 걸 생각하면 조금은 강하게 나가도 되건만, 한결같은 태도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를 더 물었다.

"흑진사라는 녀석을 유인해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겠나. 이걸로 잡아야지."

"잡는 건 어렵지 않으신가요?"

"그리 어렵지 않네."

자신감을 표출하는 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흑진사가 흑철이란 걸 파먹는다 했죠. 그럼 안쪽에 들어갔을 텐데, 구멍은 어디 있나요?"

"저쪽이네."

노인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약 100m 거리쯤 떨어져 있는 구멍이 보였다. 나는 그곳을 다가가서 신의 손을 키웠다. 뒤따라온 노인이 놀라워했지만, 소란 피우는 일은 없었다. 대신 조용히 한마디를 더 했다.

"흑진사는 사람을 무척 경계한다네. 사람들이 흑진사만 보면 어떻게든 잡으려던 통에 그리되었지. 자네가 안에 들어가면 다른 곳을 파고 나갈지도 모르네."

"그렇군요."

굴은 상당히 깊다고 들었다. 아마 흑진사가 빠져나가기에는 충분한 길이이리라. 하지만 나는 굴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상점에서 젖은 장작을 구매했다. 정확히는 '물기 나무'란 녀석으로, 수분을 잘 빨아들이고 쉽게 마르지 않은 녀석인 듯하다.

내가 그것을 굴 입구에 쌓아놓자 노인이 한 번 더 충고했다.

"안에 숨구멍이 있다네. 연기는 거기로 다 새나갈 걸세."

"걱정 마세요. 그냥 쓸 생각 없으니까요."

장작 주변에 마법진을 그렸다. 하나는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으로, 굴 안쪽을 향해 바람이 불게 하는 거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석탄 연기의 성질을 바꾸는 마법이었다.

[너희는 뜨거울수록 내려가리라. -상하 역전-]

간단해 보이지만 이래 보여도 꽤 어려운 마법이다. 연기의 기본 성질을 뒤집는 거기 때문이다. 따라서 촉매값이 은근히 들었다. 이미 노인에게 받기로 한 것보다 예산 오버다.

하지만 나는 거침없이 사용했고, 모닥불을 가져와 그 위에 젖은 장작을 태웠다. 그러자 새까만 연기가 풀풀 피어난다. 그것은 바람을 타고 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불이 약하네.'

불길이 약했음으로, 신의 손으로 마법을 그려 강화시켰다. 불꽃에 직접 글을 쓸 수 있으니,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장작의 물기는 더 이상 장해가 되지 않았다.

그 기세를 이어 젖은 장작을 더 놓았다. 검은 연기는 보는 눈이 아플 정도로 많이 나왔고, 거의 대부분 동굴로 빨려 들어갔다.

"쿨럭, 쿨럭! 으흠. 이거 장관이로군."

연기가 비정상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 그건 나이가 많은 양진자에게도 신기한 듯했다.

"얼마나 걸릴까요?"

"으음. 내 이런 경험이 없어서 장담은 못 하겠네만, 반나절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군."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안이 깊다네. 그리고 연기에는 쉽게 나오려 하지 않을 걸세."

과연 그의 말대로 우린 몇 시간 동안 별다른 이변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3시간까지였다.

스으윽. 스으윽.

동굴 안쪽에서 무언가가 쓸리는 듯한 스산한 소리가 울린다. 노인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적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흑진사가 조용히 머릴 내밀었을 때, 노인이 외쳤다.

"참형(斬刑)!"

네 장의 부적이 빛나며 거대한 검이 되었다. 그것은 거침없이 흑진사에게 내려꽂혔다.

스아아아!

이름과 달리, 칼은 대번에 목을 베지 못했다. 약 1/3 정도 파고들었으니 치명상이지만, 죽지 않아서 뱀이 특유의 소리를 냈다. 안쪽에서는 몸을 꿈틀거리는 듯, 쿵쿵거리는 진동이 들렸다.

몇 분 버티기만 하면 끝나는 상황. 그러나 노인은 버티지 못했다.

"흐으음···"

칼이 사라진다. 흑진사는 자신의 몸을 구속하는 것이 사라지자 빠르게 도망쳤다. 상처를 입었으니 반격을 택할 만도 하건만,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그 모습에 노인은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나이는 못 속이겠구만."

"안 쫓아가도 되나요?"

"지금 쫓아가도 못 잡는다네. 머리를 디밀었을 때 확 죽였어야 했는데."

잠깐 사이, 노인의 얼굴이 수척해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물어보자, 영혼의 힘을 쓴 반동이라고 한다.

"조금 쉰 다음에 추적해 봐야겠네. 상처도 꽤 크고, 피도 많이 흘렸으니,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야."

다만 그때는 잡기가 더 어려운 듯했다. 굴 바깥에 있는 녀석은 꽤 강하다고. 게다가 운이 없으면 약초를 먹고 회복하는 경우도 있다 한다. 따라서 양진자는 오래 쉬지 않았다.

"수고했네. 오랜만에 먹은 음식하고 술이라 아주 좋았어."

"어···. 의뢰를 연장하지 않는 건가요?"

"그건 내 일일세. 맡길 포인트도 없고."

그러면서 그는 가보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당혹스러웠다. 여태껏 내 능력을 보고도 이렇게 무덤덤한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존재도 있구나.'

뭔가 일이 덜 풀린 것 같아서 찜찜하긴 했지만, 본인의 의지를 막을 순 없었다. 나는 사고 남은 장작을 선물한 채, 의뢰를 완료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찝찝함에 몸부림쳤다. 그게 식사 시간까지 이어지자, 신경이 쓰였는지 지아가 물었다.

"왜 그러셔요? 하신 일이 잘 안되셨어요?"

"아··· 그게···"

나는 조용히 의뢰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지아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분은 연성 씨의 능력을 낮게 봤을 것 같네요."

"어째서죠?"

"마법에 대해서 놀라지도 않았고, '죽을 뻔한 경험'을 들려주었잖아요. 그럼 나이 또래의 실력으로 보지 않았을까요?"

일리 있는 말이다. 연기의 성질을 바꾸는 것. 그것도 무게에 관련된 마법은 굉장히 어려운 편에 속하지만, 문외한이 봤을 때는 별거 아닐 수도 있다. 그걸 촉매 팍팍 써가면서 했으니, 실력을 과소평가 할 만했다.

"그게 아니라면 자존심의 문제일 수도 있고요. 어느 쪽이든 연성 씨가 더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느샌가 모든 사람에게 나를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모양이다.

'이런 의뢰도 있는 거겠지. 이제 잊어버리자.'

마음을 다잡고 그날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리보라로 향했다.

리보라는 현재 두 번의 보석 경매를 치른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경매를 준비 중이기도 했다.

경매들이 성공적으로 열린 결과, 리보라의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다. 어찌 되었든 세계 최초의 보석만으로 이뤄진 경매였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이 여섯 점이나 나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 여섯 점의 물건들은 '리보라 컬렉션'이라 불리며, 상류층의 인기를 휘어잡는 보석이 되어 있었다. 소문으로 듣자 하니, 돈이 있어도 못 구할 지경인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쩌다가 회사에 출근이라도 할라치면, 북적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하연성 이사님! 3분만 시간을!"

"저희 예약은 언제쯤···"

"예약 순서의 조정을 부탁합니다!"

"인터뷰 좀 부탁드립니다!"

대부분의 인파는 차가운 입구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들은 보석을 사는 당사자가 아닌, 심부름꾼이었으니까. 리보라는 손님이 아니면 들여보내지 않으니, 이런 괴현상이 생겨버렸다.

물론, 저들이 기다린다고 해서 나와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이 바빠서···"

언제나 같은 변명. 하지만 수많은 저들을 다 상대할 수는 없었다.

'회사의 제작 의뢰가 저렇게 들어왔을 면 좋겠는데.'

나는 속으로 희망 사항을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 곳으로 향했다.

"어머? 이사님, 오늘은 바로 세공실에 안 가시나요?"

최근 개인 발전에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리보라는 일만 하는 장소가 되었다. 항상 와서 제대로 인사도 없이 작업만 하다 돌아가니, 패턴이 바뀐 게 신기한 모양이다.

"네.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서요."

굳이 내용을 말해주진 않고, 안쪽으로 계속 들어간다. 그리고 멈춘 곳은 디자인 팀장이 일하는 장소. 내가 원하는 보석 케이스는 이곳에서 담당하기 때문이었다.

"오래간만이에요. 팀장님."

"어머, 어서 오세요. 이사님께서 디자인 팀에 오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세공사인 나와 디자인팀은 인연이 많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내 디자인은 로드리오를 거치기에,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잡담보다 용건을 물었다.

"그래서, 저희 회사의 기둥이신 분이 이곳에는 어쩐 일로?"

기둥이란 말이 좀 낯간지러웠지만, 부정하지 않으며 그림 한 장을 보여주었다.

"이런 크기의 목걸이에 어울릴만한 케이스가 있을까요?"

"케이스요?"

그녀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림을 받아보았다. 그림은 별거 없었다. 그냥 실물의 겉 선을 딴 것뿐이다.

"꽤 큰 편이네요. 요즘 이런 건 유행이 아닌데."

"···그건 알고 있어요."

좋은 마법 물품을 만든다면 일정한 크기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기에 얼굴이 굳으면서도 디자인 팀장의 말을 기다렸다.

"이건 어떠세요?"

이윽고 그녀가 꺼낸 것은 정사각형에 높이가 낮은 물건이었다. 디자인 자체는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것.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좋은 건 없을까요?"

그러자 디자인 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에게 줄건 데요?"

"어, 그게···"

말문이 턱 막힌다. 누구한테 준다고 해야 할까? 파출부? 여사친? 도움받은 여성? 아니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성?

내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하자, 팀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반응만 봐도 알겠네요. 어디 보자···. 그러면."

그녀는 케이스 하나를 다시 꺼냈다. 크기는 비슷하지만, 금과 은으로 장식된. 케이스만으로도 꽤 비싸 보이는 물건이다.

"상류층 고객들 사이에서 고백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거예요. 받을 사람 이름 알려주시겠어요? 금으로 새겨드리거든요."

과연 리보라. 개인 맞춤에 특화된 이 회사는 케이스에도 지대한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만족할만한 케이스와 달리,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고, 고백은 아닌데···."

"그래요? 그럼 다른 걸 추천해 드릴까요?"

"아뇨. 그건 아니고··· 그냥 고백용이 아니라고요."

결국, 지아의 이름을 말하고, 두 시간 후에 이름이 새겨진 케이스를 받을 수 있었다. 남는 시간 동안 일을 했기에, 비서에게 전달받았다.

"꼭 성공하세요! 그리고 무드 없이 주지 마요!"

"···쓸데없는 참견이에요."

어째서인지 여성 직원들에게 묘한 인사말들을 들으며, 리보라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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