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12/16일 전면 수정했습니다.) #
야영은 거창하게 하지 않았다. 그저 저녁을 먹고, 가방을 베게 삼아 침낭에서 자는 것뿐이었다.
데드하울은 작아져서 은신했다. 커진 상태의 마법은 내가 잠이 들면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고(alarm) 마법 또한 그냥 만들면 안 된다. 조금 아깝더라도 촉매를 이용해서 확실하게 마법진이나 물품, 두루마리로 만들어야 했다.
이번에 만든 것은 마법진. 근처에 누가 오면 소리가 울리게 했다. 파수꾼으론 데드하울과 디가가 있으니 괜찮았다.
잠옷은 따로 없었다. 입고 있던 옷을 마법으로 대충 세척했을 뿐이다. 야영이다 보니, 방어구들을 쉽게 벗질 못했다.
간단하게 구두만 벗고, 침낭에 들어갔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다음 날 아침 일찍 활동할 예정이었기에, 빨리 자야 했다.
하지만 나는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나야 했다.
투다다다다!
키이이잉! 카가가강!
-연성 님! 일어나서 대피를!
갑작스러운 소란. 연속적인 총소리. 아니, 개틀링 건(Gatling gun)의 괴물 같은 발포 음이 울려 퍼졌다. 호위인 멜드멜도 다급히 외쳤다.
물론, 방탄 마법은 건재하다. 하지만 거리적 여유로 인해, 총알이 겹치는 것은 계산되어있지 않았다.
영화처럼 방탄유리라며 깝죽대면 죽는 건 순식간. 그러니 다급히 침낭에서 일어났다. 자던 시간이 아니라 얕은 잠을 자던 것은 행운이었다.
"데드하울! 디가!"
해골용의 몸집이 갑작스럽게 불어난다. 동시에 은신이 풀렸다. 그 위협적인 크기는 개틀링 건의 목표를 순식간에 바뀌어 놓았다.
투다다다다!
-크롸아아!
그러나 데드하울은 쓰러지지 않았다. 방탄 마법이 개틀링 건의 총알을 막아내었다. 총알이 중첩되면 막힌다곤 하지만, 최소 3분은 걸린다. 그 전에 적을 찾아서 공격해야 했다.
-저쪽이다!
데드하울이 총알 세례를 몸으로 막아내는 사이. 악마인 디가가 적을 알려왔다. 내가 시선을 돌리니, 과연 꽤 먼 거리에서 총구에 불을 뿜는 존재가 보였다.
얼굴은 40대 중반 가량의 여성. 그러나 몸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컸다. 옷이라고 불릴만한 것은 거의 없었고, 대신 온몸이 쇠로 되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사이보그(cyborg). 머리만 남기고 온몸을 개조한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가라!"
-크롸아!
내 사고를 전달받은 데드하울이 움직인다. 거기에 대항하듯, 습격자가 공격의 박차를 가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데드하울의 이빨이 개틀링 건을 부쉈다. 습격자는 방법을 바꿨다. 자세를 잡곤 주먹을 꽉 쥐어, 데드하울의 콧잔등을 후려갈겼다.
한눈에 봐도 무모해 보이는 시도.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콰아앙!
-크롸아!
펀치와 함께 일어난 폭발. 원거리 폭격은 신경 썼어도, 근접 폭격은 생각도 못 했기에 방어가 약했다. 데드하울의 머리가 휙 돌아가고, 습격자가 재공격을 시도한 순간.
[붙어라. 망가트려라. 너희의 불합리함을 보여라! -망령의 괴롭힘-]
어느새 구두 신고, 애뮬릿도 사용한 뒤, 신의 손을 키워 마법진을 그린 내가 참전했다.
강령술로 나타난 망령들은 습격자를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사이보그의 연타를 제지한 순간.
"지금이다!"
소리와 함께 내 방향으로 무언가가 날아왔다. 속도가 느려 육안으로도 충분히 식별 가능한 물건. 병처럼 생긴 그것을 확인하곤, 나는 곧장 몸을 움직여 회피했다.
파창!
본능적인 회피. 그것은 정답이었다.
빈 병이 바닥에 깨지며 내용물이 나뭇가지에 닿았다. 그러자 나뭇가지는 징그러운 벌레처럼 꿈틀대며 모양을 일그러트렸다.
만약 저게 신의 손에 닿았다간, 본체로 쓴 나무가 움직여 마법진이 무너졌을 거다.
'누가 이런 생각을.'
내부로부터의 파괴. 오직 나무로 된 마법 물품만을 파괴하기 위한 물약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곧 이 약의 개발자를 볼 수 있었다.
"이 멍청한 놈! 그것도 하나 못 맞추냐!"
"제길! 그럼 네놈이 하면 될 것 아냐!"
전투 준비를 하며 말로 다투는 두 존재. 검은 양복과 메이르 다오프를 발견한 것이다.
"쳇!"
상황이 어떤지는 명백한 상황. 나는 구원이나 후퇴를 위해 팔찌에 손을 대려 했다.
-위험합니다!
"큭!?"
그러나 멜드멜의 경고를 받고, 몸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 사이보그가 날 향해 덮쳐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속타가 이어졌다.
[-대지의 창-]
"먹어라!"
바닥에서 창이 솟아오르고, 약품이 날아온다. 나는 재빠르게 몸을 날려 피하곤, 곧장 사이보그가 날아올 방향에 신의 손을 휘둘렀다.
카앙!
불꽃이 튄다. 몸무게가 낮았던 나는 공중에 떴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외쳤다.
"데드하울! 디가 같이!"
-크롸아!
-알겠다.
몸이 커서 회복한 뒤에도 쉽게 참전하지 못한 해골용. 데드하울은 이번엔 사이보그가 아닌 검은 양복과 메이르 다오프를 습격했다. 거기에 디가가 붙어서 보조를 맡았다.
"라콘! 막아!"
-완벽하겐 안 된다.
"으아악!"
언제 한번 봤던. 정확히는 보자마자 퇴장했던 금속의 정령이 데드하울의 앞에 나서서 방패 역할을 했다.
물론, 그 질량과 힘을 완벽히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그저 검은 양복과 메이르 다오프가 피할 시간을 벌었을 뿐.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사이보그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가소롭긴!"
사이보그가 자신 있게 맞상대를 해온다. 나는 신의 손 펜촉에 주먹을 지르는 그녀를 보며, 슬쩍 웃었다.
접사창술의 반격 초식. 뱀이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는 의미의 동작이 펼쳐진다. 뻗어오는 주먹을 신의 손이 휘감듯 올라가고, 그 형태를 따라 내 몸도 주먹을 스치듯 피한다.
뻗어 나간 창격은 기계 몸을 긁었다. 어차피 무기에 내공을 넣을 수 없어 방어를 뚫지 못한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썼다.
기계의 몸에 마법 문자를 새긴 것이다.
퍼걱!
"윽!"
덕분에 후속타인 몸통 박치기를 받았다. 하지만 버틸 만 했다. 멜드멜이 한번, 코트가 두 번 막아줬으니까.
그러니 허공을 날면서도 시동어를 외칠 수 있었다.
[-녹슬어라(rust)-]
질이 낮은 마법. 겨우 한 글자로는 쓴 부분 밖에 효과를 볼 수 없지만, 상관없었다. 섬세한 사이보그의 몸은 녹이 침범한 것 자체가 치명적일 테니까.
키리릭!
"캬흑!"
"윽!"
아니나 다를까, 사이보그의 몸 상태가 순식간에 나빠졌다. 나는 바닥에 추락한 뒤, 곧장 마법진을 그렸다.
[금속은 원래의 모양이 있도다. 불꽃의 속박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모습을 찾으라. -형상 복구-]
콰드득!
"캬아아악!"
사이보그의 몸이 순식간에 우그러들었다. 급하게 해서 강하진 않았지만, 몸속 금속들이 뒤틀린 상황. 이제 더는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남은 건 둘···'
퍼엉!
"음?"
내가 사이보그의 처리를 끝낸 순간. 커다란 풍선이 터진 듯한 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보게 된 것은 붉은 액체가 데드하울을 덮치는 모습이었다.
철퍽!
-크롸아!
데드하울은 그것을 맞으며, 다시금 공격을 전개했다. 그러나 녀석은 곧 움직임을 멈추고, 발버둥을 쳐야 했다.
붉은색 액체가 접착제처럼 몸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크롸라아!
쿵! 쿵! 콰앙!
먼지가 잔뜩 피었다. 시야가 가렸다. 데드하울은 분한 듯한 감정을 드러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발버둥밖에 없었다.
"하하하핫! 어떠냐! 이 몸의 '붉은 지옥'은! 아무리 해골용이라도 시간 내엔 빠져나올 수 없을 거다! 본래는 하연성을 붙잡기 위해 가져왔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켁!"
뿌연 먼지 속. 나는 메이르 다오프의 커다란 외침으로 인해, 저것이 시간 경과로 알아서 풀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물건이 더 이상 없을 가능성을 높다고 판단했다.
'아이자드.'
먼지 속, 시야가 제한되는 틈을 타서 눈보라의 정령을 피해 없이 소환한다. 그리고 적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탐색 마법을 그리는 도중.
-계약자! 피해라!
디가의 외침이 들렸다.
그것에 반응한 나는 몸을 굴렸고, 뒤따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콰아앙!
후두둑.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폭음과 돌가루가 떨어진다.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걷히는 먼지 속에서 적을 확인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드시 죽여주마."
복장과 얼굴형은 분명 검은 양복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른 외형은 천차만별이었다.
우선 몸이 3m로 커져 있었다. 덕분에 양복이 추하게 찢어지며 몸을 보여줬다. 그 사이사이로 도료가 보인다. 형이상학적 문양의 그것은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양복에겐 뿔과 날개가 돋아 있었다. 그 상황에서 대검을 든 채로, 눈에 붉은 혈광이 흘렸다.
한마디로 악마의 모습 그 자체. 그게 인간의 육체로 이뤄낸 형태였다.
"···허."
원리를 대충 짐작해보면, 주술의 강신으로 악마를 자신의 몸에 깃들게 한 것 같았다. 아니면 정신체인 악마가 저렇게 육체 형태로 나타날 리 없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짚어본 것뿐이다. 명확한 원리나 방법은 파악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추리한 게 틀려도 이상하진 않으리라.
'대체 무슨 기술을 만들어 낸 거야.'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차며, 신의 손을 움직였다. 어찌되었던 마법 문자 한두 개만이라도 써 놓는 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다른 존재에 의해 방해되었다.
-이걸 막으면 되는 건가.
"?!"
금속의 정령. 녀석이 날카로운 금속으로 신의 손을 쳐낸 것이다. 아이자드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는 내 시선에도 잡히지 않은 공격이었다.
놀라운 방식. 물론, 오행(五行)에서 토생금(土生金)이라 하여 땅과 쇠는 밀접하게 연관 짓는다. 하지만 아예 땅속에서, 그것도 조짐 없이 공격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 못 했다.
"크아아악!"
그리고 신의 손이 막힌 틈을 타, 검은 양복이 달려들었다. 휘둘러지는 거대한 대검. 그걸 피하자, 바닥에서 정령의 방해가 이어진다.
'이건 귀찮다.'
금속의 정령부터 처리해야 한다. 나는 신의 손을 땅에 대고 움직였다.
-넌 이제부터 마법을 쓸 수 없다.
"누구 마음대로."
봉황 촉매가 금색으로 물들었다. 그것의 의미를 모르는 금속의 칼날은, 당당하게 신의 손을 막아섰다.
나는 그 위에 글자를 썼다.
[-녹슬어라(rust)-]
-끼가가가악!
기이한 비명과 함께, 정령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빠져나가는 게 보인다. 나는 뒤쫓아 온 악마의 일격을 피하며, 이번에는 바닥에 글씨를 써 내려갔다.
"큭?!"
달려오던 그의 발 한쪽이 꺼진다. 다행히 신체 능력이 올라갔는지 넘어지진 않았지만, 틈은 생긴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마법 문자를···
-이번엔 막아주···뭣!?
쓰지 않고 신의 손을 내지른다.
"우습게 보는 거냐!"
그러나 검은 양복의 남자는 그것을 쳐낸다. 뭔가의 기술이 아니다. 순수 육체의 능력이다. 몸의 힘이 세졌으니, 그것이 대검에 영향을 주는 건 당연했다.
'당연···한가?'
갑자기 떠오른 사소한 의문. 나는 그것을 머릿속 한 쪽에 두며, 아이자드에게 공격을 하게 했다.
-그런 직선적인 공격이 먹힐 것 같나.
하지만 아이자드의 고드름은 금속의 정령에게 잘렸다. 몸에 한순간 틈이 생긴다. 악마는 발로 내 옆구리를 찼다. 멜드멜과 코트의 방어가 있었지만, 꽤 강렬한 통증이 몰려왔다. 한 바퀴 구르며 일어났다.
그리고 머릿속 한구석에서 생각했다.
'방금 공격을 맨몸으로 맞았다면 죽었겠지.'
그건 무기도 마찬가지리라. 단련한 인간이란 그렇다. 존재만으로도 무기가 된다.
'그럼 무기와 나의 차이는 뭐지?'
고민하며 몸을 날렸다. 양복 남자의 움직임에 실감이 없어진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건만,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것은 내 몸 또한 마찬가지. 마치 제 3자의 시선으로 보는 듯한 감각으로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러니, 나와 무기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모습이 다를 뿐, 내 손에 들렸다면 몸에 일부와 다름이 없었다.
내가 여태까지 그걸 몰랐던 것은, 무기를 신체와 같이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기는 나에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몸과 다를 바가 없고, 두 가지는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고로, 무기에 내공을 담는 것 또한, 몸과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신창합일(身槍合一)'
나는 내공을 담은 창을 남자에게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