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 #
만나게 된 의뢰인은 인간이었다. 어마어마한 근육질에 약 170 정도의 40대 중년. 얼굴의 흉터 때문에 거친 느낌이 드는 남성이다.
"안녕하세요. 마법 부여를 맡게 된 하연성입니다."
"오, 그렇수? 잘 좀 부탁하겠소!"
성격은 호탕해 보였다. 내가 어리고 인간이어도 딱히 차별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오?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거요?"
"문제는 아니고 서비스죠."
나는 그에게 부여할 마법에 관해 설명, 선택하는 것을 도왔다. 구체적으로는 추천하는 마법들의 효과를 말해주고, 고르게 한 것.
하지만 의뢰인은 선뜻 고르지 못한 채, 머리만 긁적였다.
"솔직히 내 머리로는 뭐가 좋은지 모르겠구먼. 미안하지만 내 일행을 불러와도 되겠는가?"
"물론이죠."
그가 데려온 사람은 빼빼 마른 남성이었다. 다만 예상외였던 것은 그가 마법사였다는 것이다.
"실례지만, 원거리 공격이 필요하신 이유가 있나요?"
마법사가 있는데 굳이 전사가 원거리 공격을 해야 하는가. 거기에 대한 질문에 그는 껄껄대며 말했다.
"유인이오. 내가 전사라서 손이 남는 것도 있지만. 하핫!"
어그로(aggro)인가. 별로 효과적이지도 않을 것에 이렇게 포인트를 투자해도 되는 걸까 싶었지만, 이내 털어버린다.
물건을 만들어 주는 데, 개인적인 사정에 침범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
나는 일행에게 마법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강화와 기름칠을 뽑았다.
"강화는 그렇다 치고, 기름칠은 예상외네요."
"한번 날려서 소모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쓸 거니까요. 박히면 큰일입니다."
명안이다. 회수 마법이 걸려있다곤 하지만, 공간이 뛰어넘는 게 아니다. 부메랑처럼 날아오는 기능인만큼, 기름칠 마법은 필수라 할 수 있었다.
'역시 아이디어는 다른 존재들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좋네.'
내가 생각지 못한 방향을 메꿔준다. 그리고 다양한 응용성을 제시해 주었다. 지금 이 기름칠 마법 아이디어도, 나중에 총알 같은 것에 써보고 싶다. 잘하면 공기 저항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럼 30분 정도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보석과 신의 손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마법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묻는다.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마법을 부여하는데 어떻게 30분이···"
신의 손에 새겨진 마법진이 빛났다. 동시에 펜촉이 붉게 물든다. 주변 공기가 일렁일 정도의 고열. 그것으로 막대기에 빠르게 상처를 낸다.
그 움직임에 망설임과 실수는 없다. 몇 번 물건 잡는 위치를 바꾼 것 빼고는 막힘이 없는 팔. 중간중간 마법진에 보석을 녹이거나 금과 은으로 홈을 채우는 것도 빠트리지 않는다.
'록디의 로고도 뺄 순 없지.'
마법진과 자연스럽게 녹아든 로고를 마무리하니, 20분이 지난 후였다.
장소가 공방 입구였기에, 어느새 주변에는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존재들이 모여 있었다.
'생각대로 됐어.'
퍼포먼스. 의뢰인과 주변 손님들에게 내 실력을 보여주기 위한 일환이었다. 마법에 대해 문외한인 전사들조차 이게 쉬운 게 아니라고 느낄 만큼, 과장된 모습으로 만들었다.
마법사는 허세가 들어간 걸 알겠지만 괜찮다. 그 정도는 신경도 못 쓸 만큼 놀랄 테니까.
"어떻게 이런 실력이··· 아!"
예상대로 의뢰인의 일행은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다 내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손뼉을 치며 놀란 목소리로 외친다.
"용의 마법사! 어쩐지! 보통이 아니다 했더니만!"
저 이상한 별명 오랜만에 들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존재들에겐 많이 퍼졌을 테니,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맥키알을 가리켰다.
"친분이 있어서요. 어려운 의뢰는 제가 맡고 있죠."
"그렇군요! 용의 마법사는 1만 포인트 이하의 의뢰를 쳐다도 안 본다고 들었는데, 그런 이유가. 이곳을 선택한 건 행운입니다!"
과장된 소문도 여전한 듯하다. 나는 5000 포인트 이상이면 된다고 수정해 주려다가, 맥키알을 보곤 생각을 바꿨다.
"그렇죠. 앞으로도 맥키알씨가 주는 의뢰는 종종 맡을 생각이에요."
"운이 좋았지. 대신 나도 어중간한 의뢰를 부탁하지 않는다네."
원래부터 고급 마법 물품 제작에 대한 의뢰가 있으면 알려주기로 한만큼, 맥키알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갈 계획을 세웠다.
'중간 지점이 있었으면 좋겠어.'
지금 나에게 직접 의뢰를 주는 존재가 없었다. 그렇다면 맥키알을 대리인처럼 내세워 맡기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 것.
'그러면 거절하기도 쉬워지니까.'
친분이 있다 해도, 내가 바빠서 거절하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물론, 그만큼 맥키알이 수고를 하게 되니, 수수료를 줄 생각이었다. 구체적으론 약 5% 정도. 내가 받는 의뢰가 큼직큼직하니, 그에게도 손해는 아니라고 본다.
나는 이 일이 끝나면 한번 제안해 볼 것을 계획하면서, 의뢰인들에게 미소지었다.
"써보고 제가 말씀드린 것과 다르면 연락 주세요. 고쳐드릴게요."
"그러겠소! 하핫!"
"나중에 포인트를 모으면 제 스펠북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스펠북인가. 영창을 줄이는 마법사들의 필수 도구다. 나는 사정이 좀 달라서 안 쓰지만.
'···음? 방금 뭐가 떠오를 것 같았는데?'
머릿속에 뭔가 스치듯 지나간다. 하지만 깊이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웃으며 마법사에게 대답했다.
"그러세요. 대신 새길 마법은 생각해 오셔야 해요."
"그야 물론이죠! 만나 봬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들과 헤어지고 난 후. 나는 맥키알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유는 당연히 '접촉 창구'가 되어 달라는 것. 그러나 그는 장고 끝에 거절했다.
"그렇게 되면 나에게 물건을 맡기러 오는 존재들보다, 자네에게 마법 물품 제작을 맡기려고 오는 존재들이 더 많을 것 같군. 돈과 포인트를 버는 건 좋지만, 그건 제작으로 벌고 싶어."
장인의 긍지. 나는 그것을 존중했다. 더 이상 이 일에 관해 제안하지 않고,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약속한 채 헤어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 소파에 몸을 묻었다.
"하신 일은 잘 되셨나요?"
"아뇨. 생각보다 쉽게 풀리질 않네요. 아. 고마워요."
지아가 타서 준 커피를 마시며 잠시 잊었던 조련술을 떠올린다. 그리고 의뢰를 하면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스펠북에 대해서 생각했다.
'스펠북이라.'
영창을 줄이는 데 사용되는 마법 도구. 그걸 쓰면 영창을 단축할 수 있었다. 물론, 내 경우엔 줄여할 영창이 너무 많아서, 손가락만한 불꽃을 위해 작은 책 하나를 만들어야 된다.
게다가 방식도 다양해, 각 마법마다 겹치는 부분도 거의 없었다. 즉, 마법 하나당 책 한 권이 필요한 수준이라는 것.
그것도 내 제작 실력으로 말이다.
아마 다른 마법사들은 시작도 못 할 거다.
하지만 영창을 단축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한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조련술의 음악도 스펠북으로 줄일 수 있을까?'
강화의 음색은 핸드벨을 연주할 때만 떠오른다. 적어놓는다면 편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콩나물 대가리를 그려본 적이 없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을 악보에 그릴 수 없었다.
'둘을 같이 해야겠네.'
연주를 떠올리는 것과 그것을 줄이는 마법진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즉, 멀티캐스팅(multicasting)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두 가지 행위를 동시에 하는 것과는 다르다.
행위가 아닌 생각을 동시에 하는 것. 거의 정신을 둘로 나누는 일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지금은 핸드벨 연주까지 해야 하는 상황.
'이게 될까?'
모르겠다. 하지만 시도는 해봐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이다. 나는 핸드벨을 들고 러쉬에게 강화를 거는 것처럼 연주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음색이 떠오르고, 핸드벨의 움직임이 바뀐다.
'헨드벨 소리는 무시하자. 연주를 줄이는 것만 생각해.'
음색과 그것을 줄이기 위한 마법진.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한다.
'된다.'
그러나 길다. 기억할 수가 없다. 빠르게 신의 손을 꺼내니, 지아가 눈치 좋게 적당한 종이를 가져왔다.
오른손은 핸드벨을 연주하며, 왼손에는 신의 손이 움직였다. 따로 노는 손들. 그러나 틀리진 않는다. 오른손이 좀 힘들지만, 왼손은 자연스럽게 마법진을 그린다.
기준은 리브뤼엣이 판매하는 마법 종이. 나중에 스펠북을 만들 것을 머릿속에 고려한다.
종이가 계속 교체됐다. 눈치 빠른 지아의 보조가 고맙다. 감사를 표하고 싶지만, 멀티캐스팅 중에 그런 것까지 할 수는 없었다. 일말의 여유도 없다. 고맙다는 생각조차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상황을 계속 유지해 나간다. 기준은 마법을 줄이는 데 성공할 때까지. 그리고 장장 한 시간이 걸린 끝에야, 조련술의 '강화'에 대한 맞춤식 스펠북 도안이 나왔다.
"고생하셨어요."
"···고마워요. 지아 씨 아니었으면,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을 거예요."
정신을 둘로 나뉜 상태에서 양손을 따로 움직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아마 종이를 갈기 위한 움직임만 덧붙여졌어도, 집중이 몇 번이나 깨졌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아의 보조는 정말 딱 좋았다.
그녀에게 감사하며, 바닥에 흩어진 종이들을 긁어모은다. A4 용지로 어지간한 책 한 권은 우습게 넘어가는 분량. 이게 겨우 기술 하나를 잘 펼치는 데 필요한 수준이다.
"포인트가 또 깨지겠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의뢰로 포인트를 받아뒀다는 점일까. 스펠북 하나를 만들 수준은 충분했다.
'다만 그 전에 가공해야겠지만.'
조금은 줄이자. 핸드벨 연주하는 부분을 늘리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조련술 수업을 끝낼 때쯤엔 파산해 버릴 거다.
'진짜 얼마나 들려나.'
소모될 포인트를 걱정하면서 오랜만에 리브뤼엣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스펠북 제작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릴 마법진은 완성되어 있으니 종이만 구하면 됐기 때문이다.
'원래는 표지나 내구도 같이 다양한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상관없겠지.'
실전용으로 만든 게 아니다. 연구용이니 불편해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강화를 시도했다.
러쉬를 불러 눈을 맞추고, 공명, 소통 단계에 이른다. 그리고 강화를 위한 음색을 만든다.
처음에는 나르지다가 알려준 음색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머릿속의 다른 방식의 영향을 받는다. 길고 돌아가는 비효율적인 음색. 여기까지가 여태껏 겪었던 상황.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펼쳐진 스펠북에서 빛이 흐르고, 내 연주. 조련술을 보조한다. 여기서 음색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딸랑. 딸랑. 나르지다가 알려 준 것보다 더 짧고, 강한 힘을 담은 음색. 더 이상 머릿속의 방해는 없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따라가야 한다.
선천적 마법사의 재능과 스펠북의 적극적인 보조로 인해 단축된 길이는, 조련술의 달인 만큼이나 빨랐으니까.
나는 자신감 넘치게 핸드벨을 흔들었고, 러쉬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컹!
녀석이 짖는 것과 동시에 변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커지고, 날렵해지며 근육질인 몸.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저게 과연 개일까 싶은 몸매다.
근력이 강화돼도 겉모습은 변함없는 마법과 또 달랐다.
헥헥헥! 컹! 컹!
"우왁! 너 혀도 더 커졌잖아! 그만 핥아!"
그러나 댕댕이는 댕댕이인 모양이다. 러쉬는 커진 몸집과 힘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그 재롱을 받아들이며 녀석의 몸 상태를 살핀다.
'확실히 강해졌어. 이 정도면 신체 능력이 1.8배는 올라간 수준인가.'
어지간한 개나 늑대들은 3:1로 덤벼도 쉬이 승리를 점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강화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겨우 30초. 물론, 내가 핸드벨 연주를 멈췄기 때문이긴 했지만, 이건 짧아도 너무 짧았다.
'역시 실전에서 쓰려면 계속 연주해야 하는 건가. 어렵겠네. ···아니, 잠깐만. 계속 악기를 연주해야 하면, 조련술 자체가 실전에서 못 쓰는 거 아닌가?'
조련술을 파트너를 강화해 활용하는 기술이지만, 그렇다고 조련사 자체가 아무런 행동을 안 하는 건 아니다.
못해도 최소한 약점은 되지 말아야 하는 게 조련사의 소양. 그러면 강화는 대체 어떻게 유지하는 걸까.
궁금해진 나는, 나르지다를 찾아갔다. 우선은 강화의 성공 보고 부터.
"솔직히 강화를 못 하실 수도 있다 생각했습니다만··· 마법사는 저희와 사고 자체가 다른 모양이군요. 축하합니다. 당분간은 강화를 계속 연습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강화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걸까? 물어보니,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화'는 파트너의 신체를 조금씩 영구적으로 바꿔주는 기술입니다. 보통 2개월 정도면 따로 강화하지 않아도 같은 모습을 유지하죠."
정말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그냥 강화를 연속적으로 쓰는 거라니··· 무공도 이렇지는 않아.'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하면 된다고만 배웠으니까요."
이유를 물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난 스스로 연구하기로 하곤, 러쉬를 불러 탐색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특별한 무언가는 보이지 않는다.
'강화 마법을 한 번 더 써보고 상태를 관찰하자.'
현재 상태를 저장한다. 러쉬를 한 번 더 강화했다가 풀고, 다시 한번 탐색 마법을 썼다.
그러자 뭔가의 변화가 관측되었다.
'세포의 활동량이 변했어.'
왕성한 활동. 어림짐작이지만, 이건 몸의 성장이 촉진된 듯하다. 즉, '강화'라는 것은 파트너의 육체 성장을 가속하는 것.
그 최종 목표는 강화된 모습. 아마 유전자상, 가장 좋은 상태로 변하는 것 같다.
나는 강화의 실체에 놀라면서도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 사람한테도 적용할 수 있지 않나?'
머릿속에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