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 #
뭔가 말리는 듯한 느낌. 그러나 지아의 제안이 조련술 성장에 도움 된다는 건, 부정하진 못했다.
"괜찮으시겠어요?"
"문제 될 것 있나요?"
건강이나 육체적인 경우라면 괜찮다. 조련술은 상대방을 꿇리는 기술이 아니니까. 문제라면 당사자의 기분이다.
그걸 말하니, 지아는 조신하게 웃었다.
"저는 상관없어요. 그걸 부정한다고 해서 여우인 게 달라지는 것도 아닌걸요."
당당한 자세에 감탄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곧장 시작한다. 별다른 준비는 필요 없었다. 나하고 그녀가 눈을 맞추며 앉고, 핸드벨 들면 되는 거였으니까.
그리고 핸드벨로 음색을 만든다.
딸랑! 딸랑!
조금 날카롭지만, 부드러운 연주. 거기에 따라 공명하도록 노력해 보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었다.
'그녀가 동물로 인식되는 건 둘째 치고, 호감과 신뢰가 비슷한 수준일 것 같지 않은데.'
흔히 사람은 동물보다 더 복잡한 생물이라 하지 않던가. 무엇보다 생각의 형태가 명확한 만큼,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그럼에도 실험할 가치는 있다.
'실패에서도 얻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직 기초라고 불리는 공명조차 못 한 상황. 따라서 조련술에 대해서는 최초의 짐작 빼곤 아는 게 없다.
만약 지아와 조그마한 감각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니 5분 동안 반응이 없어도 실망하지 않았다.
'역시 안 되는 건가.'
다만 아쉬운 마음에 계속해서 시도해본다. 10분. 여기까지 하니, 더 이상 가망성을 찾지 않았다.
'이만 끝내자.'
더 하면 지아가 지루해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마지막 음색을 만든 순간.
내 머릿속에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허?"
"어머?"
그것은 비단 나만 느낀 게 아닌 듯, 지아도 함께 놀란다. 덕분에 음색은 멈춰버렸지만, 가능성을 봤다는 게 더 중요했다.
"마지막에 될 것 같았는데. 아쉬워요."
"그러게요···. 죄송한데 한 번 더 해도 괜찮을까요?"
"네. 저도 가능한지 알고 싶어요."
재시도. 핸드벨 소리에 맞춰 정신을 집중하고, 공명해본다. 그 결과. 이번에는 2분 만에 감이 왔다.
'침착하자.'
머릿속에 느껴지는 찌릿한 감각. 당황하지 않고 계속 핸드벨을 흔든다. 딸랑. 딸랑. 소리와 함께 무언가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흥미. 호기심.'
이건 그녀의 감각인 걸까? 명확하지 않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으니까. 다만 연결된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니 핸드벨의 음색을 바꿔본다.
딸랑, 딸랑!
달라진 박자. 그것에 따라 머릿속에 느껴지는 것이 변화한다. 조련술의 기초, '공명(共鳴)'에서 한 단계 나아간 '소통(疏通)'. 그러자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이 느껴진다.
'재미. 즐거움. 기쁨. 욕망. 키스하고 싶다. 안기고 싶다. 요술 거는 빈도를 늘려볼까. 아, 머릿속 생각이 느껴지네. 귀여워라. 열심히 하는 게 정말 좋··· 잠깐. 이거 내 머릿속도 들리는 거 아냐?'
거기까지 들은 순간. 나와 그녀는 순간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혼란스럽다.
'키스? 안겨? 귀엽다고? 아니. 이런 거 다 때려치우고, 요술 걸고 있었다고?!'
그녀의 감상은 날 당혹스럽게 했지만, 그보다 먼저 따져야 할 것이 있었다. 예상외의 사태에, 나는 빨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세를 바로 한 채 그녀에게 물었다.
"지아 씨. 저한테 요술 쓰고 있었어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호호."
빠르게 상황을 파악, 회복하곤 능청스럽게 말하는 그녀. 당연하다. 처녀 귀신 뺨치는 모습에서 5초 만에 규중처녀로 이미지를 변신한 여우 아가씨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터. 연기가 연말 여우주연상을 시상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나 역시 전에 한번 보지 않았다면, 깜박 속아 넘어갔을 거다.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정말 모르겠는데요."
"···요술 거는 빈도를 늘려볼까. 라고 생각하는 거 분명히 들었어요."
그러나 다른 것도 아니고 직접 생각을 들은 상황이다. 내 추궁에 그녀는 꼬리를 부산하게 움직였다.
"···으음. 저기 연성 씨? 그게 말이죠. 제가 지구에 너무 살고 싶어서···."
"그 말씀은 어쨌든 요술을 썼다는 거군요."
"···네."
결국엔 긍정. 그녀는 고개와 꼬리를 푹 숙였다.
"언제부터 요술 걸고 있었나요?"
"···집안일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예요."
조심히 실토하는 그녀. 그러나 그 말이 믿기지 않는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지아를 보며 물었다.
"빈도는 어느 정도로 하셨나요?"
"하루에 한 번도 안 했어요. 정말로요!"
"흐음."
신뢰가 안 간다. 나는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하다, 한 가지를 주문했다.
"지금 한번 써 보실래요?"
"네?"
"호기심이 생겼어요. 한번 보고 싶어요."
"그렇지만··· 정신계 기술은 경계심을 가진 상태에선 안 통할 텐데요···."
그거야 나도 알고 있었다.
대상의 정신 상태가 맑을수록, 정신에 관여하는 기술의 확률은 떨어진다. 이것은 정신에 관여하는 모든 기술과 지성을 가진 존재에 대해서 공통이었다.
내가 한번 썼던 슬립 마법도 같다.
건물 하나를 재웠지만, 거기에 영향을 준 요소는 많았다. 우선 도시 내부의 집이라는 점. 거기에 외부 경비가 있어서 안쪽은 꽤 느슨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던 중이었고, 저녁이었기에 당연히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그나마 정신력이 단련된 편인 기사들은 술을 먹은 상황.
거기에 기습적으로 정신 마법에 걸리니, 맥을 못 춘 것.
그러니 지금처럼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걸릴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지아는 그걸 지적했다.
나는 그러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호기심이에요."
그 말에 지아는 어영부영 꼬리를 움직인다. 요술을 펼치는 듯한 액션. 하지만 특별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원래 요술이 이런 건가?'
사실 그녀의 요술을 느끼고, 사용 빈도를 특정해 보려 했다. 하지만 신통력과는 다르게 전혀 느껴지질 않으니, 그 방법은 실패. 결국, 그녀의 말을 믿는 걸로, 넘어가려 했을 때.
은은한 복숭아 향이 느껴졌다.
'설마.'
"이젠 됐어요."
내가 말하는 순간, 코끝을 간질이던 향기가 사라진다. 그녀는 변화가 없는 내 모습에 안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별 것 없지요? 사실 요술 중 유혹술이란 게, 여러 가지가 같이 동원되어야 제대로 된 효과가 나온답니다."
"그런 것 같긴 하네요. 그런데 지아 씨. 요술 저 만나자마자 쓰신 것 아닌가요?"
여우 요괴의 움직임이 딱 굳었다. 눈동자가 꼬리가 요동치며 갈 길을 못 찾는다. 나는 확신을 얻고 그녀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같은 회사 소속인데 요술을 쓰면 안 되죠. 회사 측에서 불이익을 줘도 할 말이 없다고요."
"미안해요. 앞으로 다시는 안 쓸 테니, 내쫓진 말아주세요. 제가 했던 말들은 정말이어서 그래요."
지구가 고향이고, 한동안은 머물겠다는 것. 확실히 그 말은 맞는 듯했다. 요술을 써도 피해자는 나뿐이고, 그것도 여태까지의 생활을 보면 손해는커녕, 이득을 얻은 수준이다.
그녀가 별 탈 없이 지구에 머무르겠다는 건 명백해 보이는 상황. 하지만 그녀는 한번 요술을 사용했다. 그냥 믿기에는 켕긴다.
"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이걸 맡기겠어요."
내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지아가 먼저 행동에 나섰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에 손을 대더니, 엄지손가락 두 개만 한 영롱한 구슬을 뱉었다.
"여우 구슬이에요. 이게 없으면 저는 요술을 쓸 수도 없어요."
들어본 적 있었다. 우리나라의 여우 요괴는 저것으로 사람의 정기를 빼 먹으며, 잃으면 쌓아온 요력을 모두 잃으며, 사람이 삼키면 세상이 이치를 깨닫는다는 보물이었다.
물론 설화이니 조금은 다르겠지만, 여우 요괴에게 있어서 중요한 물건이란 건 틀림없다.
"믿지 못하신다면 깎아 드릴 테니 조금 드셔도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이나 꼬리가 바짝 굳어 있다. 한눈에 봐도 그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 명확하다.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 여우 구슬을 조심스레 받았다.
"혹시 모르니 구슬은 받겠지만, 그 외에는 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그리고 몸을 지킬만한 수단의 물품은 제가 드릴게요."
사실은 안 받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 요술을 쓴 이상,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서 집에 들이는 건 불가능했다.
물론, 내 쫓으면 끝난다. 그러나 집안일도 잘 해줬고, 이렇게까지 하는 데, 매정하게 굴 순 없었다.
'···그리고 지아 씨의 목적이··· 그거니.'
조련술로 알게 된 그녀의 생각을 떠올린다. 성욕. 나에게 특정되어 있었다. 오해의 여지는 없다. 생각을 직접 들은 거니까.
물론, 그게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성적 파트너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정정하겠다. 용기가 없다. 경험자긴 하지만, 모쏠이다.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하다. 유예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 전에 요술에 홀리면 안 되니.'
여우 구슬은 이쪽에서 보관한다. 나는 보석함 하나를 만들어서 그 안에 여우 구슬을 넣고, 각종 마법진을 그린 다음 방에 소중히 두었다. 용이 아니라면 이걸 열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한 번 더 지아 씨와 관계를 이어갈게요. 여우 구슬은 의뢰를 끝낸다거나,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돌려드릴 테니까요."
"네. 다시 한번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나와 지아의 애매한 관계가 성립되었다. 당장에는 요 며칠간의 생활이 이어지겠지만,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리라.
그런 여지를 남겨둔 채, 나는 다음 일로 넘어갔다.
'조련술! 공명과 소통에 성공했어!'
지아가 나한테 요술을 건 사실 때문에 넘어가 버린 일! 조련술의 성공이다. 비록 그 대상이 여우 요괴라는 특수 상황이긴 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해냈다는 것.
그리고 공명과 소통의 원리가 이해된 것이다.
'공명과 소통. 두 가지 모두 패밀리어(Familiar) 마법과 연관성이 있다.'
아마 조련술 자체가 패밀리어 마법에서 파생된 듯하다. 그 증거로 두 기술의 공통점인 정신 연결이 있었다.
'정령이나 악마, 강령술의 데드하울의 연결과는 달라. 말 그대로 정신만 연결됐었어.'
알기 쉽게 말하자면 텔레파시와 비슷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마음이 같아지는 것부터야.'
지성체인 지아와 조련술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다. 처음 시도의 마지막. 그녀와 나는 서로 지루함을 느낄 때였고, 거기서 살짝 공명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호기심과 성공에 대한 생각이 공명한 것이다.
그리고 한번 공명한 것을 이어나가, 다른 생각을 해도 주고받을 수 있게 하는 게, 바로 소통이다.
'여기까지 알게 되면, 할 수 있겠어.'
나는 러쉬를 불렀다. 그리곤 녀석의 눈을 보면서 핸드벨을 흔들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동시에 러쉬의 생각에 맞춘다. 충성. 놀아줘. 맛있는 걸 먹고 싶다 등. 일반적으로 개들이 생각하기 쉬운 것을 떠올린다.
물론,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정말로 러쉬에게 충성하거나 놀아달라는 마음이 있던 건 아니니까. 하지만 의식적으로 생각만 해도 효과가 있었다.
'느껴진다!'
지아와는 달리 훨씬 부드럽게 연결되는 정신. 그리고 느껴지는 러쉬의 생각. 예상대로 그것은 일차적인 욕망에 가득 차 있었다.
다만 연결은 길지 않았다. 내 마음도 동시에 느낀 러쉬가 펄쩍 뛰었기 때문이다. 물론 녀석은 놀라서 뛴 게 아니라, 주인인 내가 같이 놀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기에 기뻐서 벌어진 일이었다.
왕! 왈왈!
"그래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놀자."
소기의 성과. 조련술에 한발 걸치게 된 나는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고, 녀석과 놀아주기로 했다.
러쉬와 첫 공명에 성공한 뒤. 나는 녀석의 생각을 이해하고, 조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천천히 나갈 생각이었다.
후에 한 번 더 지아와 함께 조련술을 해서 비교하기도 했는데, 러쉬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뭐라고 할까, 러쉬는 지능이 낮은 만큼, 파트너라도 내가 이끌어주는 부분이 있었는데, 지아랑은 그냥 연인끼리 알콩달콩하는 느낌이었다.
그게 꽤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잘하면 나만의 기술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로하드의 기술이나, 무공처럼 여러 가지를 조화롭게 합친, 독창적인 기술을.
다만 지아와의 훈련은 자제했는데, 둘의 정신을 연결한다는 게 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뭐, 사실 부끄러워한 건 나뿐이고, 지아는 적극적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치킨인 것을.
그 대신 내 조련술 훈련은 한층 더 꾸준해졌다.
그렇게 약 1주일 흐르자 나는 러쉬와 공명을 끝내고 소통까지 갈 수 있게 된 후.
'다시 나르지다에게 배우러 가야겠어.'
나는 오리안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