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81화 (81/207)

# 대리 #

신통력(神通力)이라고 한다면 분명 상점에서 초능력의 상위 개념이라고 본 적이 있었다.

'그걸 쓸 수 있다면···.'

이 작은 구슬이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선뜻 그것을 받지 못했다.

"···시키실 게 있으신가요?"

세상만사 오는 게 있다면 가는 것도 있는 법이다. 거기에는 개인적인 감정. 호감이나 만족감같이 무형의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실질적인 이득을 바란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그렇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나한테 어떤 감정을 느낄 이유가 없으니까.'

만남이 짧았고, 대화도 짧았다. 내 생각이나 의견을 듣긴 했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해줄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목적을 물었다.

거부는 없다. 이 구슬을 알게 된 이상 그 선택지는 지워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치러야 할 대가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는 것이다.

다만 이것도 쉽진 않을 것이다. 이미 물건을 받고 싶다는 티를 냈으니까.

'어쩔 수 없지. 협상 같은 건 잘 못 하니.'

어설프게 할 바에는 그냥 직선적인 게 더 좋다. 그렇게 생각하고 물으니.

"별 것 없다. 마법을 좀 부탁하고 싶을 뿐이니."

예상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다행히 제 특기네요."

안심하며 당당하게 묻자, 구미호는 살포시 웃으며 다시 자리에 엎어진다.

"그것은 결계술을 부쉈을 때부터 알아봤느니라."

과연 그런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떤 마법을 써드리면 되나요?"

"은신에 힘을 보태다오."

생각지 못한 마법의 종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했다.

'이해가 안 되는 데.'

휘아를 묶어두었던 결계술. 안개를 한 달 동안이나 유지할 실력이라면, 굳이 나에게 지원요청 할 이유는 없어 보였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제 도움이 필요할까요?"

그 부분을 짚어 물어보니, 그녀는 엎드린 채로 한숨을 푹 쉬었다.

"필요하다. 더 이상 내 기술이 회사에 통하지 않느니 말이다."

회사에 통하지 않는다? 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모습을 흘깃 본 그녀는 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예전에 회사에 있었다. 덕분에 내 기술을 배운 이들이 꽤 있고, 간파하는 법도 알려졌느니라."

"아, 그런 거군요."

기술의 연구. 지금 내 마법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지만, 배우면 쓸 수는 있는 원리이다. 그리고 거기서 더 발전하면 영창 파기 같은 반격도 가능해지는 것.

그게 바로 기술이 알려진다는 뜻이다.

"아주 골치 아픈 일이다. 어지간한 응용법도 다 알려줘서 안간힘을 써도 간파당하는 수준이니."

회사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있고, 오래 사는 이들도 많았다. 구미호가 얼마만큼의 세월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를 나온 지 오래되었다면 이상하지 않은 일.

"덕분에 가능하다면 근본이 다른 기술을 쓰고 싶었다. 여태까진 인재를 찾는 게 귀찮아서 시도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나를 흘깃 보곤 말을 이었다.

"마침 실력과 의욕이 있고, 거래도 가능한 존재가 왔으니 말하는 것이다."

과연. 원래는 생각이 없었지만, 제자로 받아 달라 해서 마음이 바뀐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어··· 그러니까···"

"연호(姸狐)라 부르면 된다."

"아, 네. 연호님을 찾는 이유가 뭔가요?"

"간단한 일이다. 복귀해달라고 오는 것이지."

그러고 보니 휘아의 의뢰가 설득이었다.

"회사에 고급전력이 많이 부족한 모양이네요."

"흥. 회사의 전력은 넘치느니라."

가볍게 넘어가기 위해 한 말. 그런데 거기서 예상외의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어··· 그런가요?"

얼떨결에 되묻자, 그녀는 우수수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알지 모르겠다만, 협회라고 회사와 같은 목표에 다른 사상을 가진 집단이 있다. 세력은 회사와 얼추 비슷한데, 전력의 비율은 다르지."

"협회에는 하급전력이 많다. 제한도 낮고 실력도 따지지 않으니. 반면에 회사는 들어오기부터가 까다롭다. 그 덕에 하급전력은 부족하지만, 그것을 고급 전력으로 메우고 있지."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회사의 대단위 의뢰나 해골용 때처럼 다수의 특별 의뢰는 나오지 않아야 하니까.

그 점을 지적하니, 연호는 조롱 섞인 미소로 답했다.

"고급 전력의 8할이 성체가 된 마룡이니라."

"회사에 마룡이 그렇게 많나요? 귀찮아서 안 들어 올 것 같은데."

"어린 용들을 보호해주고, 그 빚을 성룡이 된 후에 받는 것이다."

"성룡이 된 후에 나가진 않나요?"

"회사를 나간 용들은 언제나 협회의 표적이니라. 그곳에서는 마법사의 천적이 있으니 말이지."

그런가. 그렇다면 확실히 그들을 전력으로 삼을 수 있었다.

다만, 선천적 마법사의 귀차니즘을 생각하면 마구 부려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가끔 일을 시켜도 의욕은 바닥을 길 터.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문제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 사건이 터진 다음에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나요?"

"정답이다."

용들의 머릿속에는 대비란 것이 없다. 그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프로이며, 잃은 손해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존재들.

그러자 나는 무서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럼 미리미리 고급전력이 필요한 일은···."

"소수의 존재가 떠맡고 있느니라."

이해했다. 왜 눈앞의 구미호가 퇴사하고, 회사에서는 다시 설득하려는 지를. 나는 쓰게 웃으며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중에 한번 귀차니즘을 없애는 마법이라도 연구해봐야겠네요."

"그래 해보아라."

이에 구미호는 먼 산을 바라보며 한 가지를 덧붙인다.

"그걸 당할 리는 없겠지만."

그것은 마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연호가 부탁한 마법적 조치는 어렵지 않았다.

-내 기술에 마법을 덮어다오. 그것만으로도 회사에서는 찾을 수 없을 테니.

회사에서 연호를 찾는 방식은 단말기를 통한 정보 수집이었다. 그녀가 쓴 기술 안에 들어가면, 그 패턴을 인지해서 찾아내는 모양이다.

그러니 거기에 다른 기술. 즉 내 마법을 덮는 것만으로도 발견될 확률이 뚝 떨어지는 듯하다.

'생물이 아닌 단말기를 속이는 거니까.'

그 때문에 마법진이 보여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기왕 하는 것 나는 아무도 발견할 수 없도록 확실히 처리한 후에, 연호에게서 구슬을 받았다.

'···이건 조금 느껴지는 게 있네.'

내공과 매우 흡사한 힘이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내공은 고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기는 형태였다.

"이건 뭐로 만든 뭔가요?"

"요괴의 내단(內丹)이다."

내단. 무협지에서 흔히 들은 단어가 나오자 조금 놀랐다.

'내단이면 내공과 비슷한 거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고체가 될 수 있지? 요괴들이 내공을 쌓으면 이렇게 되나?'

호기심이 마구 피어올랐지만, 당장은 의문으로만 남겼다. 연구는 집으로 가서 할 생각이었다.

"이게 있으면 신통력을 쓸 수 있는 건가요?"

"맞다. 하지만 그리 대단한 녀석의 것이 아닌지라, 오래 쓰지 못하고 부서질 게다. 그러니 이것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그녀는 내 손에 구슬을 꼭 쥐여 주었다. 그러자 뭔가 머릿속이 톡톡 자극되는 감각과 함께, 구슬에서 빛이 점멸한다.

"이렇게 하면 신통력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느니라."

즉, 지금 나는 신통력을 쓰고 있다는 소리였다.

"알지 모르겠지만, 신통력은 짧은 수명을 사는 존재가 쓸 만한 것이 아니다. 육체. 특히 머리가 버티질 못하니 말이다. 다만 수련을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부담 없이 쓸 수 있다."

그 수준이 구슬이 빛나게 하는 정도인 듯했다.

"수련 정도에 따라 빛나는 수준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신통력을 쓸 수 있게 될 테고."

말하자면 이건 자동으로 신통력 수련을 시켜주는 물건이었다. 본래는 사미호(四尾狐). 지아라는 이름의 여우 요괴가 어렸을 때 쓰던 건데, 이제는 필요가 없어서 거래 대상이 됐다.

"부디, 소녀라 생각하시고 소중히 품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네, 네에···"

어째서인지 지아에게 과도한 인사를 받으며, 나는 의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

연성이 사라진 장소. 그곳에 터를 잡은 연호와 지아는 손님이 사라지자마자 언성을 높였다.

"형님! 거기서 방해를 하면 어째요!"

"그건 오히려 내가 할 말이니라. 손님이랑 이야기하는데 방해나 하고, 발정 난 그 꼴이 다 뭐더냐. 혼자 여우 망신은 다 시키더구나."

"흥! 600년 전에 하렘인지 뭔지 흉내 낸답시고, 예쁘장한 어린애들 몇백 명씩 데리고 논 여우가 할 소리는 아니네요!"

"···에헴."

펙트 공격에 연호의 말문이 막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술 먹고 자랑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녀는 후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당당하게 허리를 폈다.

"그래. 내 소싯적에 그리했다. 그래서 네년도 그리 하려 하느냐?"

구미호의 질문에 지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관심이 없다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달랐다.

"하더라도 연애란 것 한번 해본 뒤예요."

"그럼 하지 그러냐? 난 안 막았다."

마치 연애 못 한 것이 본인 잘못이라는 듯 말하는 연호. 그 뻔뻔한 태도에 지아가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내 200년을 여기 살았는데, 남정네라곤 코빼기도 못 봤다고요! 아니. 애초에 이곳은 인간도 없잖아요!"

그들이 있는 차원. 노리아드는 인간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니 지아가 남자를 못 보는 것도 당연한 일. 그녀의 입장에서는 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세상에 인간만 있지는 않으니라."

"알죠! 알아요! 하지만 그러면 인간이 있다는 걸 모르게 해주셨어야죠!"

여우 요괴. 그들은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다양한 성격을 가지게 되지만, 일반적으로 공통되는 점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요괴가 된 후, 처음 본 지성 종족을 흉내 낸다는 것이다.

지아는 요괴가 되고, 약 200년을 지구의 한국이란 땅에서 살며 수련한 경험이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취향은 동양인 남자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회사의 끈질긴 권유에 도망치는 연호를 따라 노리아드로 온 게 200년. 총 400년의 독수공방과 200년 만에 본 취향의 남성이었다.

"그런데 도와주지 못할망정 초를 치다니요!"

"그 남자 좋은 남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랬다면 형님이 내쫓았겠죠. 남자 후린 경력이 얼마 신데!"

진실이었기에 연호는 침묵했다. 그러다가 가벼운 한숨을 뱉으며 물었다.

"···인간 세상 가고 싶나?"

같이 400년을 같이 살아온 사이다. 둘은 이제 눈만 마주쳐도 상대방이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투정이 단순히 연애를 방해해서만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조금 쉬고 싶어요."

지아의 입에서 본심이 나오자, 연호는 침묵했다. 그리곤 상체를 일으켜 마주보았다.

"그래. 좀 쉬어라. 그럴 만도 됐다. 회사에 들어가는 법 알려줄 테니, 가서 많이 보고 경험해라."

사실상 항복 선언. 지아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다만, 인간세계 상식은 배우고 가라. 알겠나?"

"형님 사랑해요!"

연호에게 지아가 엉겨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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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Tip.

요괴에 대하여.

요괴(妖怪)란, 본래 지성 없는 종족이 우연한 계기나 수련으로 영성을 깨달아, 언어를 습득하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을 얻은 존재들을 말한다.

즉, 딱히 힘이 없어도 상관없지만, 지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니, 못해도 텔레파시 정도는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요괴라고 총칭하고 있지만, 번역상의 문제일 뿐. 딱히 악한 존재들만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의 힘은 전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있다. 바로 몸속에 쌓는 힘. 요력(妖力)이 그것이다.

요괴들은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자연력(정령력)을 몸 전체에 퍼트리는 데, 이것이 정착하면서 요력으로 변질, 육체적 변화를 일으킨다.

요괴의 모습이 다양하며 독특한 것은 이 때문.

이것은 인간의 내공과 흡사하다 할 수 있는데, 다른 점은 요괴는 몸 전체, 인간은 단전에 모은다는 것이다.

때때로 요괴의 몸에서는 축적되지 못한 자연력이 남는 경우가 생긴다. 그것이 한군데 모이고, 외부의 요력으로 인해 단단히 굳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내단(內丹)이다.

참고로 인간은 내공을 주기적으로 돌려, 내단이 생기지 않으니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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