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 #
강령술이란 것을 완벽하게 알게 된 순간. 나는 막대한 성취감에 환희했다. 그러나 동시에 안타까움도 느낄 수 있었다.
'강령술은 완성된 기술이 아니야.'
비원인 불로불사가 완성되지 않았다. 리치라는 최종단계는 불완전하고 빗나가 있었다.
덕분에 마법으로 보았던 세계의 편린은 그리 넓어지진 않았다.
'뭐, 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완성되지 않은 기술이라고 해도, 다른 기술의 응용에 포함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영혼과 정령을 다룰 줄 알았기 때문에, 수월하게 무공의 파악할 수 있었던 것처럼, 강령술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 한번 써먹고 싶긴 한데.'
안타깝게도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죽음의 기사나 목 없는 기사나 둘 다 기사의 시체가 필요하단 말이지.'
기사의 시체는 검무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단련된 존재의 육체를 말한다. 게다가 이런 육체를 각종 비약으로 한 달 정도 재워놔야 비로소 만들 수 있는 게 죽음의 기사였다.
'당장 만들기엔 어렵겠어.'
나는 입맛을 다시며 기대를 접었다. 하긴. 어차피 내가 원하던 것은 지식이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강령술을 써야 한다는 건 리치의 생명의 그릇 때문이니,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그럼··· 이제 뭘 하지?'
여태껏 배워온 것들을 떠올리며 가다듬을 것을 따져보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나머지 것들은 시간이 걸리거나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한 것뿐이었다.
'아니지. 그러고 보면 하나가 있긴 하구나.'
나는 유적에서 얻은 인형술 책을 꺼냈다. 지금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이게 유일했다.
'한번 읽어보자.'
인형술은 한번 보고도 그 기술을 전혀 알 수 없었던 만큼, 마법과는 떨어져 있다. 아마 배운다 하더라도 단번에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수는 없으리라.
'그럼 어디.'
펼쳐서 정독해 본다. 책은 기초라 쓰여 있는 만큼, 상세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이해하기 편했다. 하지만 내가 단번에 익힐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정신력이라.'
인형술을 쓰게 하는 필수 요소는 정신력.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집중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럼 누구나 쓸 수 있었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 시험해보자. 주머니에서 소량의 실을 꺼낸다. 유적에서 인형술을 쓰던 키메라의 실인데, 혹시 성분이 다를까 싶어 조금만 가져온 거였다.
약 30cm가량의 실 끝을 쥐고, 책에 쓰여 있는 대로 심호흡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결과는 당연히 실패.
'책에서도 처음엔 안 될 거라 하긴 했지만.'
나는 이 기술의 원리가 알고 싶었다. 인형술 그 자체보다는 어떤 힘과 작용 방식으로 움직이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무공에서도 정신력이 쓰이긴 했지만, 이거랑은 구조가 다르단 말이지.'
자연의 기운에 정신력을 섞는다는 건, 자기 색으로 물들이는 것과 같다. 즉, 물을 떠 놓은 컵에 잉크를 몇 방울 섞는 것이다.
이 경우, 뚜렷한 의식이나 뭔가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간다.
하지만 인형술. 정신력으로 실을 움직이는 것은 경우가 다르다. 비유적으론 잉크를 얼려서 돌멩이처럼 쓰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어렵고 비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염동력 같은 초능력일지도.'
물론, 나는 초능력에 대해 전혀 모른다. 본적도 없었고 사용하는 존재도 모르는 기술. 그렇기에 상점에서 한번 초능력에 관해 찾아보았다.
'기본적으론 천룡(天龍)의 신통력(神通力)에서 따온 건가.'
천룡. 일반적으로 동양의 용이라 불리는 그 존재는 여의주라는 외부의 촉매로 정령과 같은 자연재해의 기술을 사용한다.
하지만 자연재해란 건, 본디 손쓸 수 없는 수준의 재앙. 크기가 작거나, 숫자가 적은 대상에게 쓸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때, 사용하는 것이 신통력.
이것은 정신의 힘을 유형화하여, 다채로운 형태로 발휘하는 기술인 듯하다.
그리고 신통력을 열화시킨 기술이 초능력 계열. 하지만 여기에는 크나큰 단점이 있었다.
'뇌의 수명 단축이라.'
정신의 유형화란 것이 어떠한 주문이나 까다로운 발동 조건이 없는 만큼, 강력한 페널티를 가진 모양이다.
'이러니 쓰는 존재가 없었지.'
뇌가 노화된다는 것은 수명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몸이 건강해도 머리가 나빠지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노화'인 만큼, 신성술 같은 것으로 회복도 불가능 할 터. 어떠한 존재도 쓰기 꺼려하는 게 당연했다.
'그럼 인형술하고 초능력의 차이점은 뭐지?'
검은 양복의 남자도 인형술을 썼지만, 초능력 계열은 쓰지 않았다. 분명 뭔가의 차이점이 있기에 그런 거겠지만, 지금 당장은 알 수가 없었다.
'아. 그런데 이러면 결국 내가 익힐만한 게 없어지는 거잖아?'
도돌이표다. 나는 탈력감에 드러누우며 반쯤 습관적으로 회사의 의뢰 목록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쉬우면서 보수가 괜찮은 의뢰가 있다면 수락할 생각이었다.
그때.
삑-
스마트워치에서 머리에 꽂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 들었던 소리. 하지만 집에서 쉬고 있는 상황에선 들어 본 적이 없었던, 특별의뢰의 알람이었다.
'이게 왜 지금?'
특별 의뢰는 협회의 상황과 마주쳤을 때만 울리는 게 아니었던가? 의문을 품으며 내용을 확인하려 했을 때.
삑-
삑-
삑-···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렸다. 그 숫자는 처음 것과 합해서 모두 7번 정도.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의뢰창을 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어떻게 되었지?
어둡고 칙칙한 공간. 그곳에서 신비 포식자가 물었다.
"킬킬킬킬! 아주 잘 되었다! 잘 되었고말고! 누가 진행한 일인데 말이야!"
그에 대답한 것은 경박한 웃음소리와 시끄럽고 두서없는 말투의 소유자였다.
눈은 사시에 코는 뒤틀렸고, 등이 굽은 곱추. 머리를 산발하고 며칠은 목욕을 안 한 듯 지저분한 모습이, 일반적인 존재들이 봤다면 무의식적으로 한발 물러설 모습이다.
그러나 신비 포식자는 코가 없으며, 인간의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존재. 곱추의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시간은 얼마나 되지?
"그야 회사에서 대응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킬킬!"
곱추의 말에 신비 포식자는 촉수를 꿀렁거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시. 그러나 곱추는 신비 포식자의 항의 표현에 그저 킬킬대며 웃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드나? 마음에 안 들어? 그럼 스스로 하면 되겠네! 킬킬킬!"
촉수가 한층 더 감정을 표현했지만, 그것이 결코 곱추를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어찌 됐든 눈앞의 이 곱추야 말로, 협회에서 처음으로 회사의 중추에 흠집을 가한 인물이니까.
물론, 회사의 핵심 인물이 잠깐 자리를 비운 동안에 벌인 일이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 기계장치의 신)가 조정에 들어간 틈을 타, 기습에 성공한 녀석이 말이 많군. 이쪽도 혼령결계(魂靈結界)만 없었더라면, 진작에 무너뜨렸을 거다.
신비 포식자가 그 점을 지적했지만, 눈앞의 곱추가 처음으로 회사에 유효한 타격을 줬다는 것엔 변함이 없었다.
"킬킬킬! 마음에 안 들면 죽여 보든지! 그런데 이럴 시간이나 있나?"
즐겁게 웃음을 터트리는 곱추. 그 말에 신비 포식자는 조용히 촉수를 가라앉혔다. 어찌 됐든 1000년 만에 성공한 기습이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회사의 주력인 용들은 '문명의 탑'에 몰려 있을 터.
그렇다면 용들 때문에 답보 상태로 있었던 일들을 진행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순서다.
지금 이곳에서 킬킬대는 곱추 또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빠르게 머릿속의 나노머신으로 안드로이드(android)를 조종하고 있을 테니, 신비 포식자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가보도록 하지.
신비 포식자는 검은 구멍을 열어 이동했다.
그러자 수많은 존재가 보인다. 다양한 종족들. 가지각색의 외모. 원수지간. 먹이와 사냥꾼.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이 많은 사정을 가진 존재들이 조용히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일면으론 전혀 모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한 가지 기술. 강령술을 익힌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쓰레기들.
신비 포식자는 그들을 보면서 역겨워하는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너희는 정말 쓸모가 없는 녀석들이다. 악마에게 속아 혼을 팔고, 그 힘에 취해 일반적인 마법은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족속들. 그런 주제에 마법적 재능만큼은 품고 있기에, 가뜩이나 적은 마법사들을 줄이는 죄악이지.
모여 있는 존재들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연한 일. 악마에게 부서진 것은 물론, 신비 포식자에게 온갖 일들을 당한 존재들이다. 이미 머릿속은 텅 비었고, 그저 명령대로 하는 인형이 되어 있었다.
-실패한 기술에 목을 맨 어리석은 녀석들. 그런 너희들을 쓸 곳이라곤 딱 하나뿐이다.
신비 포식자의 촉수가 펼쳐졌다. 그러자 그의 뒤로 수많은 검은 구멍이 생겨난다.
-가라. 최대한 죽이며 망자들을 일으켜라. 여러 차원에 전쟁의 불씨를 지펴라!
그리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표를 각인시켰다.
-전쟁은 곧 발전이니! 너희의 몸을 바쳐 마법을 발전시켜라! 재능 낭비로 소모된 마법사를 벌충해라! 그리하여 나, 주문 포식자(spell predator)에게 진미(眞味)를 바쳐라!
여러 차원으로 강령술사들이 퍼져나갔다.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기 위한 몇몇 가지 수와 함께. 그리곤 신비 포식자는 마법사들을 가둬놓은 곳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식사를 위해서.
****
갑자기 한꺼번에 튀어나온 특별의뢰 창. 거기엔 제한은 없었지만 높은 보상과 다양한 상황. 그리고 자세한 설명이 달려 있었다.
'뭐랄까. 꼭 '하나만 해주세요!'라고 조르는 것 같네.'
실제로도 그리 다르진 않으리라. 특별의뢰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량으로 나타났으니. 그것도 대리한테.
회사가 그런 조급함을 보이니,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치솟긴 한다.
그러나.
'어려운 의뢰라면 사양하고 싶은데.'
리치와의 갑작스러운 대면은 내게 큰 교훈을 주었다. 세상에 강자가 많다는 걸 깨달았고, 코트의 방어력이 아직 완전치 않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것을 대신해줄, 멜드멜도 소모로 며칠의 요양이 필요한 상황. 특별의뢰라고 해서. 아니, 일반의뢰보다 더 위험한 특별의뢰이기 때문에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봐두기만 할까.'
어쩌면 쉬운 의뢰가 하나쯤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나씩 펼쳐보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는 안드로이드 처치. 강력한 개체는 아닌데, 그 수가 많은 모양이다.
'패스.'
당연히 넘긴다. 숫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다. 하물며 그게 내가 약한 기계라면 더더욱. 아마 몰래 숨어서 한방 터트리라고 준 의뢰 같은데, 화력이 강한 무기는 가장 먼저 노려지는 표적이다.
'기습, 특공, 매복, 함정. 온갖 것들이 기다리겠지.'
개고생의 기운이 진하게 느껴졌다. 나는 다음 의뢰를 확인했다.
마약 전쟁 종결. 될 수 있으면 평화적으로 해결하길 원하는 의뢰다.
'이것도 패스.'
성격이나 방식. 해야 할 일도 잘 맞을 것 같지만, 장기 의뢰의 냄새가 난다. 생명의 그릇이 있는 이상,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의뢰는 사양하고 싶었다.
세 번째는 오거 무리 퇴치다.
'보류.'
기계보다 상대하기 쉽고, 사람보다 죄책감도 덜 느낄 존재다. 게다가 단체 의뢰라서 개인적인 부담도 적었기에, 일단 후보에는 넣었다.
네 번째는 요정의 호수 결계 보완.
이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배울 게 있을 거 같은데.'
회사에는 따로 결계술이란 기술이 있었다. 즉, 마법과는 다른 방식의 결계와 봉인 방법이 있다는 뜻. 이 의뢰를 하면 그것에 대해 배울 가능성이 높았다.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 선택하고 싶지만··· 일단 다른 것도 볼까.'
다섯 번째 의뢰는 망랑(妄狼)퇴치. 무려 대단위 의뢰였기 때문에, 거침없이 패스했다.
여섯 번째는 왕국 수호. 어떤 나라를 지키는 의뢰였는데, 마약 전쟁 종결과 같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은 의뢰였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해골용(Bone Dragon) 퇴치. 단체 의뢰였다.
"···해골용?"
나는 마지막 의뢰의 퇴치 대상을 보았다. 그리고 어제 정리한 유골함과 생명의 그릇을 보았다.
한 번 더 의뢰를 본다.
해골용. 죽음의 기사를 제작 가능한 수준이라면, 능히 만들 수 있지만, 재료와 시간의 이유로 만들기 어려운 존재.
이번엔 다시 한번 더 리치의 생명의 그릇을 보았다.
속에 리치의 영혼이 들어있긴 하지만, 지식을 가르쳐줄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저대로 오래 둘 수도 없는 노릇. 강력한 촉매로써 사용하는 게 좋아 보인다.
해골용과 생명의 그릇. 이 두 가지가 머릿속에서 조합되는 순간, 나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거 생각보다 빨리 쓸 수 있겠는데."
한순간 생명의 그릇이 파르르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