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66화 (66/207)

# 주임 #

"입사 동기입니까?"

"네. 기억 안 나세요?"

"기억에는 있습니다만··· 그때와는 너무 다르군요. 체격은 그렇다 해도 얼굴까지 바뀌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얼굴요?"

내 기억으로 얼굴이 바뀐 적은 없었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휘아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도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옷을 입었죠. 하지만 얼굴이 너무 달라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군요. 정말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그녀가 무얼 착각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사실을 말해줬다.

"저, 휘아씨. 그건 제가 아니라 다른 한 명의 입사 동기예요."

"다른···. 한 명?"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고 눈을 몇 번 껌벅이더니, 화들짝 놀라 외쳤다.

"그 이상한 남자!"

그렇구나. 휘아의 눈에 그때 당시 나는 이상하게 보였었구나. 좌절하면서도 한편으론 납득했다. 확실히 그때는 그냥 집에 눌러 박혀 있는 방구석 취준생에 불과했으니까.

"앗!? 그, 죄송합니다! 취중에 생각 없이 그냥···. 아니, 그게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 펄떡 뛰어오른 그녀를 진정시킨다. 그리고 술 한잔을 꿀꺽 삼켰다.

"괜찮아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으니까."

"그렇죠. 정말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회사에 들어가고 어떤 생활을 한 겁니까?"

노골적인 말 돌리기. 하지만 순순히 넘어가 준다. 수련이 끝났으니 술자리가 끝나면 헤어질 텐데, 굳이 어색하게 헤어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회사에 들어간 이후,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늘어놓았다.

"처음 한 의뢰에서 마법을 배우고···"

조용히 듣기만 하는 그녀. 분명 좋은 청자의 자세는 아니었지만, 술이 좀 들어간 상태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일. 나는 어떤 추임새나 질문이 없이도 혼자 술술 이야기를 뱉어 놓았다.

"최근에는 물품 제작 대회에서 우승도···"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문뜩 혼자서 너무 많이 떠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미안해요. 제 이야기만 떠들었네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흥미롭군요. 저는 아직 인간의 의뢰. 그것도 제가 사는 곳과 비슷한 곳만 들려왔기에 신기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저,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는 저도 다른 차원을 돌아다니고 싶어졌습니다. 혹시 다른 존재 중에 무공을 익힌 이가 있다면 꼭 보고 싶군요."

"그렇다면···"

나는 잠시 그녀에게 해줄 말은 정리했다.

휘아는 나보다 실력이 훨씬 좋다. 한번 물어봤을 때, 검기(劍氣) 정도는 가볍게 쓸 수 있다고 했으니, 무협지의 절정 고수 실력을 지닌 셈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녀보다 실력 좋은 이들은 넘쳤다. 그렇다면 최소한 상극이라 불릴만한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적이 정령과 악마, 그리고 권총보다 좋은 과학 기술을 사용할 때는 피하세요. 제가 봤을 때, 무공과 상성이 좋지 않아요."

"알겠습니다. 반드시 조심하죠."

"그리고 혹시 모르니 믿음직한 친구를 만들어 두세요. 긴급 의뢰를 지정해서 냈을 때 금방 받아들일 존재로요."

"그렇군요. ···그러면 하연성씨. 부탁 하나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갑자기 휘아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곤 내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친구가 되어주십시오."

뜬금없는 부탁. 그러나 한편으론 약삭빠르면서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나는 입사 동기에 나이도 비슷했으며, 여러 차원을 돌아본 실력 좋은 마법사였으니까.

게다가 이건 나한테도 이득이었다. 무공이 막혔을 때 조언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의뢰도 끝났으니, 깔끔하게 관계 청산하고 친구 하죠."

술병을 내민다. 그녀는 당황하며 술잔을 들었고, 나는 한잔을 따라 주며 술병을 넘겼다. 이번엔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한잔 받는다.

그리고 술잔을 내민다.

"···저는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어릴 적부터 스승하고 둘이서만 생활했다는 휘아. 그녀는 술잔을 마주치는 걸 몰랐다. 그래서 간단하게 의미를 설명해주자,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들어온다.

"친구가 된 기념을 위해!"

내가 외쳤다.

"기, 기념을 위해."

이 상황이 어색한 듯 얼굴을 붉힌 휘아가 외치며 잔을 부딪쳤다.

그렇게 무공 수련을 완료한 날. 나는 한 명의 친구와 함께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다음날. 집에서 깬 나는 무의식적으로 휘아가 있는 곳으로 가려다가, 스마트 워치를 키고서야 의뢰가 끝났다는 걸 깨달았다.

'두 달간 완전히 적응해 버렸네.'

하지만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생긴 건 나쁘지 않다. 나는 가볍게 운기조식을 한 뒤, 훈련은 뒤로 미룬 채, 리보라로 향했다.

'한동안 일을 못 했으니까.'

휘아가 있던 차원. '천무'라는 곳은 지구와의 시간 비율이 30/24 정도였다. 덕분에서 천무에서는 두 달간의 시간을 보냈지만, 지구에서는 45일 정도의 시간만 지난 상태였다.

나는 그동안 밀린 리보라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자, 그럼 가볼까."

오랜만에 정장과 트렌치코트를 입고 출근. 리보라에 도착하자, 로비에서 날 알아본 안내원이 인사를 한 뒤 말했다.

"하연성 이사님, 릭 지부장님께서 오시면 말씀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래요? 바로 갈게요."

번거롭게 릭이 찾아오게 하기보단, 내 쪽에서 찾아갔다. 그의 사무실 앞. 비서에게 말을 건네니, 곧장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지만, 우선은 이것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사무실에서 만난 그가 준 것은 한 통의 편지였다.

"초대장입니다. 저희 리보라에서 여는 보석 경매의."

"아. 그러고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됐네요."

귀금속만 파는 경매를 연다고 했던가. 편지를 열어 시간을 확인하니, 시작 날짜가 14일 뒤로 잡혀있었다.

"안에 비행기 표도 있군요."

"회사 업무로 가시는 거니까요."

그래서일까. 비행기 표가 값비싼 퍼스트석이다. 제주도 여행으로 비행기를 타 본 적은 있었지만, 퍼스트는 물론, 비즈니스석 조차 타본 적은 없었던 터라 은근히 기대된다.

"12일 뒤라. 신청할 게 많네요."

"공항에 도착하시면 안내해줄 인원도 있을 겁니다."

"알겠어요. 다른 용건은 뭔가요?"

"저희 보석을 주문하면서 하연성씨에 대한 지명이 들어왔습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가 갸웃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작품이 나가지도 않았고, 만든 제 이름도 모를 텐데 어떻게?"

"작품은 경매를 흥행시키기 위해서 소문내고 있긴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들은 갑부들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주문을 넣었더군요. 최근에 갑자기 들어오신 분은 하연성 이사님밖에 없으니 찾기 쉬웠나 봅니다."

"···그건 생각도 못 했네요."

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명성이 알려지는 것은 좋지만, 일이 많이 쌓이는 것은 사양이니까.

"사장님은 말씀 없으셨나요?"

"'작거나 일부분이라면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작 기간, 출시 기간 등은 맡긴다고 하셨고요."

그 말인즉 자잘한 주문에 대해서는 알아서 판단하라는 뜻이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에 한 가지를 더 물었다.

"혹시 거절할 수 있나요?"

"합당한 사유가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예약이 있으니, 순서대로 만들어야 하고요."

결국,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만들기는 해야 한다는 소리. 고개를 끄덕인 후, 릭에게 디자인에 대한 열 장 정도의 도안 뭉치를 받았다.

"이제 가장 먼저 예약하신 VIP의 주문입니다."

첫 번째 도안. 그러나 나는 그걸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이건 안 되겠군요."

그곳에는 경매로 내보낼 물건 보다 더 화려하고 기교가 넘치는 디자인이 들어가 있었다.

"사장님이 생각한 기준을 분명히 넘어 섰어요."

"그렇군요. 그럼 1면은 안 되고···. 2면은 어떠신가요?"

"2면?"

릭의 말에, 받은 도면을 넘겨보았다. 그러자 기교와 보석이 좀 빠진 느낌의 디자인이 나온다.

"···이건 뭔가요?"

"디자인 쪽에서 일단 주문을 받긴 해야 하는데, 아직 정해진 기준이 없다 보니 10가지 정도로 구분해서 받은 모양입니다. 이 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해 주시면, 추후 디자인팀에 정보를 넘길 예정입니다."

합리적인 판단이다. 나는 도면을 넘겨 확인하고, 그중 네 가지를 꼽았다.

그러자 릭이 웃으며 도면 한 부를 더 넘겼다.

"···릭?"

"한 달 넘게 쉬셨잖습니까. 앞으로 계속 주문이 들어 올 것 같은데, 이 정도 일은 한꺼번에 처리해 주시죠."

억울하다. 나는 한 달 동안 논게 아니라 열심히 수련하다 온 거다. 노동의 강도만 따지자면 훨씬 더 힘들게 움직였던 상황.

그러나 이 사실을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던 나는, 결국 한숨을 푹 쉬며 주문량을 물었다.

"30개 정도입니다. 오늘 중으로 약 300개의 도면을 확인해서 구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듣기만 해도 눈이 아파졌다.

다행히도 디자인 구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야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판단해야 했지만, 5개 정도를 구분하면서 나름의 명확한 기준이 생겨 속도를 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디자이너들이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을 발휘하진 않아서 다행이야.'

아마 기준을 잡기 위한 시기기 때문이리라.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 전엔 내 실력을 높이면 좋겠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첫 번째 예약 손님의 물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꾸준히 만들어 두어야 나중에 여유 있게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일부분이 포함된 게 한 달에 두 개. 경매에 내보낼 대대적 디자인은 한 달에 한 개꼴인가. 초과근무 하지 않으려면, 리보라에 있을 때는 열심히 해야겠네.'

그렇게 9시간 근무를 마친 후. 나는 사람이 없는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돌아다녀야 했다.

'접사창법을 수련할 장소가 필요한데.'

많이 움직여도 상관없을 만큼 넓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공간이면 딱 좋았다. 하지만.

'역시 없나.'

이곳은 서울이다. 지방으로 가면 한적한 곳이야 많겠지만, 인구밀도가 빽빽한 이곳에서 그런 한적한 장소를 찾기란 지난한 일. 결국, 나는 한동안은 방에서 신의 손을 줄여 연습하기로 했다.

그 후, 한동안은 고정된 생활을 보냈다. 다만 중간에 부모님에게 얼굴 좀 비치고, 미국 비자, 새 양복, 차고 갈 시계 하나를 리보라에 주문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12일이 지났을 때. 나는 미리 싸 놓은 짐과 정장 복장을 정리하고, 공항에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하연성 고객님. 좌석은 가장 앞이십니다."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편하고 쾌적한 퍼스트석에 앉았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즐기며 미국에 도착. 캐리어를 찾고 입국 심사를 통과해 공항 로비 쪽으로 들어갔다.

'여기 있을 거라고 들었는데.'

그러다 곧 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 중 '언'자가 좀 이상해 보였기 때문에, 다가가서 한번 물어보았다.

"실례합니다. 혹시 머드릭 케이씨이신가요?"

"오, 맞습니다! 당신이 Mr. 하군요. 반갑습니다!"

안내원으로 예정된 머드릭 케이. 그는 목청이 크고, 밝게 웃는 덩치 큰 남자였다. 나는 그를 따라서 미리 준비된 차에 올라타, 곧장 이동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LA의 한 호텔이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네.'

"오늘 하루는 이곳에서 보내시면 됩니다! 혹시 나가려 하신다면 연락 주십시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관광은 일이 끝난 다음에 할 예정이에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은 경매장으로 안내해 드릴 테니 편히 쉬십시오!"

비행기로만 근 12시간 가까이 타고 온 상태였다. 아무리 여행이 좋아도 쉬고 싶었고, 그날은 룸서비스를 시켜보면서 조용히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케이의 안내를 받아 경매장에 이동한 나는, 화려한 파티와 같은 모습에 입을 떡 벌려야만 했다.

'확실히 보석이라면 부자들이 많이 오겠지만··· 이런 형식은 예상 못 했는데.'

보아하니 경매와 파티가 겸해서 이뤄지는 상황. 사업적인 복장에 맞춰왔던 나로선 조금 곤란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초대장을 보여주십시오."

"여기요. 아, 그리고 로드리오 사장님이 어디 계신지 알려주시겠어요?"

나는 경매장 안으로 들어간 뒤, 곧장 로드리오를 찾아갔다. 다행히 그는 파티장이 아닌, 주최하는 입장 쪽에서 있었던 터라, 만나기 어렵진 않았다.

"로드리오 사장님. 저 왔어요."

"마침 딱 좋은 타이밍에 왔군. Ms. 에밀리! 이 친구 메이크업 좀 부탁하지."

"네. 사장님."

"···허?"

그리고 나는 곧장 한 명의 여성에게 끌려나갔다.

"자, 잠깐만요! 제가 메이크업을 왜 해야 하나요!?"

당황하면서 외치는 내 목소리에, 그는 가볍게 말했다.

"일정이 바뀌었네. Mr. 하. 자네는 나와 함께 무대 위에 서야겠어."

그건 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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