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임 #
나는 육안으로 적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쫓아갔다. 때때로 시야에서 사라졌을 경우는 망원경을 이용했기 때문에,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추적하길 30분.
적에게서 이상한 동태가 보였다. 마치 안 보이는 무언가를 누르는 것만 같은 기분. 그리고 곧 허공에서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내가 원리를 읽을 수 없는 검은 구멍. 나는 저것을 한번 본 적이 있었다.
'진짜 협회잖아!?'
동시에 스마트 워치에서 특별의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나는 그걸 펼쳐볼 시간도 없이 외쳤다.
"디가! 막아!"
-그러지.
적이 만든 구멍은 전에 봤던 것과 달리, 크기가 작았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사람이 슬라이딩해서 들어갈 만한 크기. 그 때문에 넘어가는 시간과 틈이 있었고, 디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큿!?"
디가의 기습 공격. 옆구리를 맞은 적이 구멍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곤 한 바퀴를 굴러, 경계 태세를 취했다.
"어떤 놈... 악마?"
적은 악마를 본 적이 있는지, 디가의 정체를 대번에 맞췄다. 그러자 바짝 긴장하는 자세로 몸을 움츠리며 외쳤다.
"어디서 나타난 놈이냐! 왜 날 공격하는 거지?"
-내가 알려줄 이유는 없을 거 같군.
잘한다, 디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정체를 감춘 디가를 속으로 칭찬하며, 나는 빠르게 의뢰 창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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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 종류 : 협회 인원 포획
의뢰자 : 사장
상황 발견자 : 하연성
의뢰 내용 : 협회 인원 포획. 혹은 제거.
설명 : 검은 구멍은 협회에서만 사용 가능한 이동 기술이다. 크기로 보아 적은 말단 수준이지만, 사로잡는다면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성공 조건 : 협회 인원의 포획. 혹은 제거.
보상 : 포획 시, 1000p, 특별 상점 포인트 94p 지급. 제거 시, 500p, 특별 상점 포인트 31p 지급. 실패 및 거부 시, 300p 지급 특별 상점 포인트 18p 지급. 다른 사원 파견. 상황에 따라 변동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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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물러나도 전혀 손해가 없네.'
전에 것들과 달리 실패를 해도 보상이 꽤 좋다. 아마 내가 적을 발견한 공로가 인정됐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귀찮거나 싸우기 싫다면 포기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 그러나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포획 시 보상이었다.
'특 포인트가 94점이나! 이거 내가 모아둔 것과 합치면, 어찌어찌 가죽이나 천 소재 정도는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특별 상점은 회사의 최고 기술이 사용된 곳. 당연히 소재의 값보다, 완성품의 값이 훨씬 비쌌다.
물론 200 포인트 정도로는 그곳의 상급 소재를 사긴 어렵다. 그러나 낮은 등급이라 해도 일반 상점에서는 구하지도 못하는 것들. 방어구의 소재로 쓰기엔 차고도 넘친다.
'가능하면 포획하고 싶다.'
다행히 상황은 거기에 맞춰 돌아가는 분위기다. 적은 악마에게 반항하지 않으며, 기계 사용자로 보이는 상황. 즉, 악마를 타격할 뚜렷한 방법이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공격할 수 있지.'
굳이 디가만 믿는 게 아니다. 신의 손으로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진 못하지만, 마법 종이를 몸에 바짝 붙여서 쓸 수는 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쓰기 좋은 마법은.
'강령술!'
그것도 기계의 천적인 원념이나, 원령들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았다. 망자를 일으키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이곳에는 그리 쓸만한 시체가 없었다.
고로 내가 악마의 힘을 끌어 마법 종이에 강령술을 쓰려 하자, 디가도 그것을 눈치챘다. 그리곤 자기가 먼저 손에 원념을 끌어모았다.
"제길!"
그러자 중년 여성이 곧장 달려든다. 오른팔을 당기고 양쪽 다리를 박차는 순간, 그녀는 빠른 속도로 튕겨 나갔다.
'와우!'
발에 붙은 기계에서 뭔가가 분출됐다. 주변에 풀을 보면 그것은 확실. 그러나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액체나 기체를 강하게 분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가속도로 악마에게 접근한 그녀는 스파크를 튀기는 주먹을 휘둘렀다.
-큭!?
고통에 디가가 모은 원념이 흐트러진다. 악마는 원념 대신 손을 휘둘렀고, 중년 여성은 다시 한번 기계를 이용해 재빨리 뒤로 빠졌다.
그리곤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다지 강한 악마가 아닌데... 그럼..."
그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훑는다. 아무리 봐도 무언가를 찾는 모습. 아마도 악마를 소환한 누군가가 근처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눈치가 빠른걸!'
나이만큼, 경험도 있는 모양. 나는 그녀가 다른 곳을 보는 틈을 타, 강령술을 발동시켰다.
[-갉아먹는 원념-]
12개의 해골이 기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을 바짝 경계하고 있던 그녀에겐 조금 느렸다.
"이까짓 것!"
땅을 박차자 몸이 빠르게 뒤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녀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머리에 썼다.
마치 스포츠 선글라스처럼, 안경알이 크고 넓으며 색깔이 들어간 모습. 나는 그것을 보곤 불안감을 느꼈다.
'체온 감추는 마법을 안 썼어.'
그것을 깨닫는 순간,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면서 옆으로 굴렀다.
파앙!
그러자 옆을 중년 여성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구르면서 필사적으로 아이자드를 소환했다. 그리고 바닥에 엎어진다.
낙법은 취하지 못했다. 몸을 굴리지도 않았다. 마법을 써서 명확한 판단과 강한 신체 능력을 가졌던 전과는 다르다.
그래서 몸을 일으킨 순간. 여성의 발길질을 피하지 못했다.
"애송이가!"
뻐걱!
"끄억!?"
격통. 맞은 곳은 복부. 그러나 온몸이 아프고 숨이 턱 막힌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든 상태로 몸이 날아가, 나무 등치에 부딪힌다.
"커흑?! 케흑, 크허..."
아프다. 하지만 공격이 한 번 더 올 테니,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는 다리로 휘청이며 일어서니, 적의 모습이 보인다.
"아..."
중년 여성은 발이 얼어붙은 상태로, 복부를 디가에게 꿰뚫린 상태였다. 사태는 명확하다. 소환 직후, 내가 날아가는 걸 본 아이자드가 발을 얼렸고, 그 틈에 디가가 치명타를 넣은 모양이다.
"형... 괜찮아?"
어느새 옆에 다가온 아이자드가 날 부축하며 묻는다. 나는 고통 속에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괜찮지는 않지만.'
양복 남자와 싸웠을 때 보다 크게 당했다. 나는 새삼스레 마법을 두르고 싸우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를 느끼며, 아이자드에게 적의 손과 발의 기계를 완전히 얼려버릴 걸 부탁했다.
"알았어."
내 생각을 읽은 아이자드는 정신력을 써가며 빠르게 기계를 얼렸다. 그리고 그것을 디가가 발차기로 대번에 부숴 버렸다.
"카하악!?"
기계와 함께 발이 부서진 여성이 비명을 지른다. 나는 보기 좋지 않은 광경에, 눈살을 찌푸리며 회사 단말기를 조절했다.
'제압으로 의뢰 완료를...'
버튼을 누르자, 의뢰 완료와 함께 회수 방법에 대해서 떠올랐다.
'신체 접촉 후에 의뢰 완료인가.'
"콜록, 콜록! ...퉷!"
기침을 하니 입속에서 피가 섞여 나온다. 끝나고 노아에게 의뢰해서 치료받자. 그렇게 생각하며 적에게 다가간 순간.
"키힉!"
중년 여성이 웃었다.
"캬하하핫! 아하하핫! 이거 아주 운이 좋은데!"
아무래도 미친 것 같다. 나는 여자의 반응에 신경을 끄고, 의뢰를 완료하려 했을 때. 그녀의 등 뒤로, 검은 구체가 생기는 걸 보았다.
처음에는 다섯 개. 그 후로는 불규칙적으로 늘어난다. 크기는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게 대부분. 지금 이 여성이 보여 준 것과 같다.
"죽은 줄 알았는데, 설마하니 지명자였을 줄이야!"
이해하지 못할 여자의 말을 무시한 채, 곧장 의뢰 포기를 선택했다. 그러자 눈앞에 짧은 메시지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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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군 이동 시간 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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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을 버티라는 건가? 그러고 보면 양복 남자도 나랑 1분 이상을 싸웠었다. 이런 건 회사가 좀 더 빨라도 될 텐데! 속으로 투덜거리며 입으론 다른 말을 외쳤다.
"디가!"
생각을 읽은 아이자드와 눈치 빠른 악마가 움직인다. 목표는 검은 구멍. 적은 좁은 구멍에 몸을 비집고 나오니, 공격하기엔 딱 좋았다.
아이자드가 구멍들을 향해 냉기를 뿌리고, 디가가 발로 차며 원념을 모아 던진다.
"컥!?"
"젠..."
"비겁한!"
구멍 너머에서 뭔가 들려오지만 알게 뭔가. 다구리 치는 놈들이 불만 가지면 안 되는 거다.
그리고 둘이 그렇게 시간을 끌어준 사이, 나는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마법진을 완성했다.
[원념은 변화하여, 나의 다리가 되어라. -변화된 유령마(Phantom Steed)-]
사실 유령마는 소환술에 속하는 마법이다. 하지만 당장 빠르게 움직일 것이 필요해서, 원념을 모아 일시적으로 만들었다. 억지로 만든 거라 3m밖에 날지도 못하고 5분밖에 유지 못 하지만, 지금으로선 딱 좋다.
나는 몸을 숙인 유령마에 올라탔고, 고삐를 당겼다. 유령마가 달리기 시작한다.
'아이자드는 역소환.'
인간체와 닮은 몸 때문에 빠르게 날지 못하는 아이자드는 역소환하고, 디가는 따라오게 한다. 이대로 그냥 벗어 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탕! 탕!
아무래도 그건 어려 울 것 같았다.
"큭!?"
주변에 총알이 틀어박힌다. 나는 유령마의 움직임을 좀 더 복합적으로 움직인다. 좌우 위아래. 나무들 사이도 파고들자, 총알이 근처에 오는 일은 없어졌다.
대신 다른 위협이 다가왔다.
-널 잡을 거야!
바람의 정령. 녹색 바람이 유형화되어 종달새 모양을 만든 그것은, 즐거운 말투로 내게 쏘아졌다.
몸을 기울여 피해 보지만, 순식간에 돌아온다. 이번엔 갈색 보석으로 물든 신의 손을 키워서 막았다.
-켁!?
땅 속성이 스며들어 간 신의 손은 바람의 정령도 뚫지 못했다. 하지만 막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나에 대한 공격이 계속 이어졌다.
피유우웅!
폭죽 비슷한 소리. 그러나 영화 같은 것에서 들어본 듯한 소리에, 나는 유령마를 힘껏 한쪽으로 몰았다.
퍼엉!
화끈한 열기. 불비가 내린다. 네이팜탄. 주변은 물론, 근처의 아군도 고려하지 않은 공격에 입이 절로 움직인다.
"미친!"
한 마디 욕설과 함께, 유령마를 재촉해 재빨리 움직인다. 다행히 네이팜탄은 소형이었는지, 그 범위가 넓지 않았고, 나는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유령마가 덜컥 움직임을 멈춘다.
'강령술!'
멈춘 것은 아주 잠깐. 그러나 위에 있던 내겐 그것만으로도 치명적이었다. 나는 말 위에서 튕겨 나갔고, 그것을 디가가 받아줘서 살았다.
그러나 잠시 멈춘 사이, 후속타가 빗발쳤다. 바람이 정령이 날아오고, 폭탄과 총구가 날 노렸으며, 마법을 쓰는 자들과 병장기를 들고 오는 이들도 보였다.
그 수만 해도 얼추 오십 이상. 아무리 내 마법이 빠르고 반응이 좋다 하더라도, 절대 대응할 수 없는 숫자.
나는 유령마의 고삐를 쥐고, 끌려가며 마법 문자를 썼다. 어떻게든 피하고 막으려는 생각. 그러나 꽤 큰 부상을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제발 죽지만 말기를.'
그리고 방패막이 흙벽을 하나 세운 순간.
"늦어서 미안하군."
흙벽 뒤로, 거대한 곰이 나타났다.
털은 갈색. 크기는 4m 이상. 덩치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가장 특징적인 것은 머리 위에 달린 사슴뿔과 팔과 몸을 둘러싼 금속 조각들이었다.
이게 어떤 종류의 곰인지 짐작도 할 수 없는 모양새. 그런 기이한 형태의 존재는 흙벽 밑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어어어엉!"
흙벽을 던졌다. 10cm 두께에 5m 높이의 것을 가볍게.
그뿐만이 아니었다. 곰은 아무렇지도 않게 옆에 나무를 후려쳤다.
와직! 부웅!
나무가 반토막이 나서 날아간다. 그리고 날아간 물체들은 폭발형 발사체들과 충돌했다.
콰앙!
공중에서 터진 발사체에 적이 잠시 몸을 멈췄다. 그것은 곧 곰의 기회. 거구의 몸체로 휙 달려간 그 존재는 전장을 휘젓기 시작했다.
"끄아악!"
"이 곰은 뭐야!"
"총알이 안 박혀!"
"폭탄을...꺽!"
"제길! 도망쳐!"
저 장면에 대해, 추풍낙엽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나는 적들을 쓰러뜨리는 곰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는 도망치는 적까지는 잡지 않았지만, 다친 녀석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손을 휘젓자 식물들이 올라와, 다치거나 의욕을 상실한 이들을 굴비처럼 묶었고, 그는 내게로 다가왔다.
"괜찮나? 설마하니 대리도 안 된 직원이 협회의 리스트에 올라갈 줄이야. 예상에도 없었던 일이다. 이번 상황에 대해서는 회사의 보상이 있을 것이다."
"그렇군... 콜록, 콜록! 케흑. 알겠습, 니다."
안전하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는지, 몸에 통증이 크게 올라왔다. 기침으로 다시 피를 토하니, 호흡이 힘들다.
이런 내 모습을 본 거대한 곰이, 갑자기 빛나며 세 덩이로 나누어졌다. 그리곤 3m 정도의 거대한 곰, 갑옷의 모양을 한 정령, 사슴뿔을 지닌 푸른 피부의 인간과 닮은 종족으로 변했다.
'우와...'
처음보는 기술이다. 일단 마법이 섞인 것 같은데, 정령술과 주술, 게다가 조련술까지 섞인 모양이라, 정확히 인지를 못 하겠다.
"우선은 자네를 치료할 겸 회사로 이동을 하지."
사슴뿔을 지닌 남성이 손을 휘젓자, 곰이 두 발로 서서 나를 안았다. 그리곤 나뭇잎 한 장을 꺼내 조작했다.
'치료받으면 어떻게 하는 건지 물어봐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곰의 품에 안겨 일그러지는 시야를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