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임 #
내가 처음부터 노아의 신성력을 연구해 보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때는 두 국가 사이에서 빠르게 보석을 훔쳐 달아나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신성력을 볼 이유와 시간이 없었으니,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었다.
하지만 일이 꼬인 덕분에 기회가 생겼다.
악마를 처리하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힘은 신성력. 그녀는 필연적으로 힘을 써야 했고, 혹시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말에, 흔쾌히 보여주기로 했다.
하지만 신성력을 분석한다는 의견에는 회의적이었다.
"보여주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그 힘을 알아낼 수는 없을 거예요. 신의 힘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거니까요."
그녀의 입장에서는 타당한 의견. 내 생각과는 대립하지만, 지금 싸워서 득 볼 건 없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만한 사실을 들려주었다.
"그렇더라도 신성력을 다루기 편하게 해 줄 수는 있어요. 마법 중에서는 정신이나, 육체를 편하게 해 주는 것도 있으니까요."
아무리 신비한 능력일지라도 사용자와 완전히 떨어져 있지는 않은 법. 그러므로 사용자에게 영향을 주는 마법을 쓰면, 미약할지라도 보조가 가능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노아도 이 말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건 괜찮네요."
고개를 끄덕인 노아. 그러더니 품속 짧은 스태프를 꺼내 들었다.
"악마와 싸울 때를 대비하고 싶으니, 한 번만 보여드릴게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높은 곳에 계신 분이시여···"
이쪽에서 수긍하자, 그녀는 곧장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마법 주문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듣고 말하는 언어. 당장 여기까지는 뭔가 특별한 걸 느끼지 못했다.
"이곳에 기적을! 신성한 빛!"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말이 끝났을 때. 스태프에서 빛나는 지팡이를 보며 나는 속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모르겠어.'
어떤 힘인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마법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힘이란 건 알겠는데, 그 외에는 전혀 느껴지는 게 없었다.
'빛이 보이기는 하지만··· 저건 어딜 봐도 일부러 만들어진 현상이고. 대체 신성력이란 건 뭐지?'
신의 힘이 아니란 건 확실하다. 특별 상점에서 본 것도 있었고, 지금 신성력에서도 뭔가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이란 기분은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실들 말고는 전혀 아는 게 없으니, 속이 답답해진다. 선천적 마법사가 되고 난 후,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처음이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지'
나는 노아가 만든 빛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이건 어떤 효과가 있는 건가요?"
"빛이 닿는 곳에 약한 회복 효과를 주는 신관술이에요."
회복인가. 그 말에 나는 과도를 꺼내 손가락을 살짝 베어봤다. 그러자 상처가 화끈거리더니, 곧장 아물어 버린다.
'이게 신성력인가.'
미약하게나마 손에 흘러들어온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뭔가 따듯한 기분이 들 거란 내 예상과 달리, 꽤 폭력적인 감각이다.
그리고 신경 써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내 힘도 사용했어.'
정확히는 몸속에 있는 무언가. 그것이 신성술에 동조해서 움직였다는 게 중요했다. 왜냐면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하나였으니까.
'신성력이란 건 사람의 몸에 내재되어 있는 힘이다.'
파격적인 신성력의 정체. 신의 힘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뭔가 더 특별한 무언가일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사람의 힘이라니.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 결과는 내게 무척이나 유리했다.
'나도 신성력을 쓸 수 있을 거야.'
물론, 지금 당장에는 조금 어려우리라. 그러나 그 힘을 한번 느껴봤다는 것만 해도, 내게는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쓸 수는 없지만, 흉내 정도는 가능해.'
다만 그러기에는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노아, 부탁이 좀 있는데요."
나는 노아에게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잠시 후. 우리는 악마를 습격할 작전을 마무리 지었다. 노아는 예상대로 쉽게 풀리기 어려울 거라며 우려를 표했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그리고 작전의 첫 번째는 악마를 깨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레의 일격]
번쩍!
-캬아아악?!
벼락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검은 안개에 가해진 갑작스러운 기습. 발사체 속도 중에서는 단연 필두인 전격 마법은, 가만히 있던 악마가 피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놈이냐!
그러나 상처가 없다. 악마는 영체에 가까운 존재이니, 전격 마법으로는 간접적인 충격이 전부였으니까. 다만 고통이 꽤 있을 뿐. 다치진 않았지만 아프니, 녀석은 대번에 성질을 드러냈다.
그 증거로 뿌연 안개처럼 보이던 모습의 윤곽이 진해진다. 마법적 재능으로 간접적인 관찰이 아닌, 스스로 형체를 드러내며 악마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맹금류의 머리와 발과 손톱. 그리고 날개를 가지며 사람의 몸을 한, 검은빛의 악마. 마치 인도의 가루다(Garuda)와 닮은 녀석의 외형. 그것을 보곤 나는 속으로 혀를 한번 찼다.
'될 수 있으면 지상에서 활동하는 형태였음 했는데.'
뭐, 모든 악마가 공중을 노닐 수 있지만, 형태에 따라 주 활동 영역이 다르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가루다는 최악에 가까웠다.
'준비한 걸 다 써야겠네.'
어쩔 수 없다. 속으로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동안, 악마가 이쪽을 발견하고 고음을 내질렀다.
-네놈이구나!
10m가량의 공터에 서 있는 형체를 보곤, 악마가 날아든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아이자드가 재빠르게 고드름을 쏘았다.
-이깟 장난질 따위!
악마의 손짓에 고드름은 산산이 부서진다. 고드름의 성과는 악마의 움직임을 막은 게 전부. 하지만 그건 녀석에게 어떠한 피해도 아니었다.
-네가 어떤 존재의 단잠을 깨웠는지 보여주마!
악마가 손을 뻗자 검은 기운이 몰려든다. 원념. 내가 집에서 본 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와 농도의 것이 뭉쳐진다. 녀석을 저것을 총알처럼 쏘아낼 생각이었다. 영혼을 다룬다는 악마다운 공격.
하지만 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느려.'
번쩍!
-크아아악!?
원념을 모으는 데 2초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일반적인 영창 마법사에겐 더할 나위 없이 빠른 공격이겠지만, 마법 물품으로 싸우는 내겐 하품이 나올 정도의 시간.
당연히 그 틈을 보고 있을 리 없었던 내가 한 번 더 벼락을 쏘아내자, 악마는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지르며, 원념을 흩어버린다.
'열 좀 많이 받을 거다.'
두 번 때 공격 역시 큰 피해를 주진 못했다. 하지만 분노를 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유효타라 할 수 있었다.
-악마에게 이런 공격이 통할 듯싶더냐!
'나도 알아.'
녀석은 두 번이나 당한 게 민망한 듯 소리쳤지만, 그거야 다 아는 사실이다. 그보다 같은 마법을 쓴 이유를 짐작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갈가리 찢어주마!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녀석은 그런 생각 따위 하지도 않은 채, 이쪽으로 돌격해 왔다. 마법을 쓰기 전에, 더 빠른 육탄공격을 하겠다는 의지! 그 생각에 걸맞게 악마는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쐐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악마의 발톱이 내려꽂힌다. 그것은 내 몸통을 정확히 꿰뚫고, 바닥에 박혔다.
그러나 악마는 발에서 느껴지는 허무한 감각에, 그 실체를 깨닫곤 중얼거렸다.
-···환영이라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뭐, 그럴 만도 하겠지. 악마는 영혼을 다루니, 그것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까. 아마 겉모습은 그렇다 치더라도, 영혼이 느껴졌다는 점에서 경악할 거다.
녀석의 입장에선 내가 1m 땅속에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을 테니까.
'괜히 효과도 없는데 센 마법을 쓴 게 아니라고.'
처음부터 계획된 속임수. 강한 마법. 고통이 심한 마법을 써서 악마를 흥분시킨 것. 1m 밑의 내 영혼을 정확히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한 수작.
그리고 다음 작전이 이어진다.
'노아씨에게 신호!'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내가 아이자드에게 부탁하자, 노아의 외침과 함께 신성력이 퍼진다.
그 형태는 전방위를 향했기에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노아는 종교상 이유로 특정 대상을 집중해서 공격하는 신관술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이것이 공격의 한계.
하지만 다행히 그것만으로도 악마에게 데미지를 주기에는 충분했다.
-카하악! 이 망상증 환자가! 숨어 있었냐!
악마의 몸이 흐트러지는 게 눈에 보였다. 확실히 신성력과는 천적인 모습. 녀석은 노아의 신성술을 피하고자 날개를 펼쳤다.
공중으로 대피하려는 모습.
이때를 기다렸다.
[번개가 흐르는 새장.]
흙으로 살살 덮어두었던 마법진이 빛난다. 바닥과 공중으로 번개가 뻗어 나와 한끝으로 모이며, 순식간에 새장 모양의 감옥을 만든다. 신관술 때문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악마는 혀를 찼다.
-성가시긴 하지만··· 쓸데없는 짓이다!
날갯짓 한 번으로 공중에 떠오른 악마는 새장과 충돌했다. 뇌격에 데미지를 입긴 하겠지만, 신성력 보다는 나으리라 판단한 모양이다.
옳은 판단이다. 만약 내가 악마라도 그렇게 했을 거다.
전격이 일반적인 것이었다면 말이지만.
-크억!?
새장과 충돌하는 순간, 녀석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추락했다. 두 번의 전격을 맞으며 피해가 없었던 녀석은 같은 것을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 큰코다쳤다.
'어설프지만 영혼을 실은 뇌격.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할걸.'
이 상황을 위해서 집에 있던 금칠이 된 카메라와 원념을 담은 물통을 가져와야 했다. 카메라는 당연히 환영 마법을 쓰기 위함이었고, 원념은 내가 일부를 삼켰다.
영혼의 찌꺼기인 원념. 그것을 몸속으로 직접 받아들이며 느낀 감각과 노아의 신성력을 느낀 감각으로, 영혼이란 개념을 조금이지만 구분해 낸다.
그 후로는 계속 해왔던 것과 비슷한 일의 연속. 마법진의 중심에서 내 영혼을 구분, 촉매로 삼아 전격에 담았다.
남들이 보면 말도 불가능하다며 위험해서 안 된다고 말릴 일.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고, 해냈다.
'특별 상점의 물품도 만들 수 있는 게 나야. 할 수 있다면 실패는 없어.'
회사가 전설을 재연해 놓은 물건을 보고 얻는 깨달음. 객관적으로 내 실력을 알게 해준 그 경험이 자존감을 높여주었고,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악마에게 완승 후 포획.
누구도 이렇게 간단하게 제압할 순 없으리라.
그 사실을 속으로 즐기며, 통로를 이용해 지상으로 나왔다.
"사라지세요!"
-크아아악!
그곳에는 새장 바깥에서 일방적으로 악마를 때리는 노아가 있었다. 악마는 어떻게든 신관술을 피해 도망치려 했지만, 전격의 새장은 충격은 주지 못할지언정, 가두는 역할은 확실히 해내고 있었다.
"우와. 이렇게만 보니까 누가 악마인지 모르겠네."
갇혀있는 악마와 폭력을 휘두르는 신관. 이 묘한 광경에 선악의 기준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노아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신관술을 끊더니, 내 양손을 꽉 움켜쥐며 외쳤다.
"대단해요, 하연!"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잡은 손을 거칠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악마를 붙잡아 흥분한 심정이 행동과 말로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악마를 잡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생포하다니! 이건 전례가 없는 일이에요! 역사에 이름을 남길 일이라고요!"
"그건 기쁜 일이네요. 그러니 노아. 진정 좀 해요. 아직 안 끝났어요."
"아, 그렇죠. 어서 저 악마를 퇴치해요!"
"그래요."
흥분한 노아를 적당히 달래가면서, 마법진의 일부를 지웠다. 그러자 뇌전이 안쪽으로 줄어든다. 마법진의 변화를 이용한 축소. 악마는 있을 곳이 순식간에 줄어드는 걸 보며 기겁했다.
-잠깐, 이게 무슨 마법이냐! 내가 아는 마법 중에 이딴 건 없었다고!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소리를 지르는 게 전부다. 마법진을 세 개 지우자, 새장 안의 공간은 다리조차 뻗을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 상황에서 노아가 신성 마법을 발현하려 하자, 악마는 다급히 소리쳤다.
-잠깐! 너희 둘 중에 나랑 계약할 인간 없나?
최후의 수단! 그러나 비굴하기 그지없는 유혹이다. 게다가 이 자리에 있는 둘 중 한 명은 신관인 걸 생각하면 가능성조차 희박한 도박. 하지만 악마에게는 정말 남은 패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신관인 노아는 당연히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연, 듣지 말아요! 달콤한 말로 우리를 꿰려는 거예요!"
-그건 우리가 우위에 있을 때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짓을 하진 않아! 그리고 악마에게 계약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항이다! 결코,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다!
"거짓말!"
-상황을 보고 말해라! 죽기 직전에 거짓말하겠나! 에잇! 네년이랑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마법사! 계약하지 않겠나!
"하연! 당연히 거절하실 거죠?"
둘의 말싸움. 그 끝은 아주 당연하지만, 이쪽을 향해 있었다.
본의 아니게 양측의 뜨거운 시선을 받게 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