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임 #
오랜만에 가족과의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은 뒤 리보라로 향했다.
다만 여기엔 꼬리가 붙었는데, 그 정체는 당연히 지아였다.
"내 두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
그리곤 리보라에 도착. 들어가서 내가 대부분의 직원에게 '하연성 이사님'이라는 말로 인사받는 걸 보곤,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내 동생이 누구던가. 가족 중에서 누구도 갖지 못한, 급격한 태세 전환 스킬을 마스터 한 게 바로 이 아가씨다. 내가 정말로 이사란 걸 알게 되자 빠르게 행동을 변화시켜 아양을 떨어왔다.
"오빠~ 나, 반지 싼 거 하나만!"
거의 3년 만에 들어보는 동생의 애교.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채로 반지 하나를 해 줬다. 물론 리보라의 운영 방식대로 제값을 냈으며, 수제 제작이었다.
지아는 자기 손가락을 사이즈를 재고, 3D 그래픽으로 즉석에서 디자인을 변경해 주는 모습을 보며,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버렸다. 이 정도 해줬으니, 나중에 집에 가서 부모님이 물으면, 알아서 잘 대답해 줄 것이다.
그리고 반지를 예약한 지아는 곧장 집으로, 나는 회사에서 보석을 만지며 연습을 했다. 주로 눈에 쉽게 띄는 사물들로 했는데, 이번에는 로드리오의 눈에 들어간 게 없었다.
다음 날은 부모님께 리보라 근처의 투 룸을 잡았으니 독립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갑작스러운 독립에 어머니께서 당황하셨지만, 리보라의 업무 때문이라 하니 결국에는 허락해 주셨다.
다만 될 수 있으면 집에 자주 오라 했으니, 시간이 될 때 조금씩 들려야 할 것 같다. 그 후는 간단하게 짐을 옮기고 리보라에 갔다가, 이젠 내 집으로 돌아와 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 며칠을 온전히 혼자 보내도 문제가 없게 된 기간의 시작.
나는 기대하고 고대하던 특별 상점을 열기로 했다.
'이젠 폭주해도 문제없어.'
특별 상점의 물건에 반해서 특별 상점 포인트. 줄여서 '특 포인트'를 얻으러 다닌다 해도 걸릴 게 없어졌다.
그렇기에 나는 편한 마음으로 특별 상점 부분을 열었고.
신세계를 보았다.
"이게 다 뭐야···"
그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전설'로 표현하는 물건들. 어마어마한 효과와 희귀성, 그리고 가능성을 지닌 물품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엘릭서(Elixir)에 여의주(如意珠), 기린의 뿔(麒麟之角)··· 묠니르(Mjolnir)? 롱기누스(Longinus)? ···이거 진짜야?"
국적, 종교, 시대, 지역을 총망라한 물건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지구에 관련된 것뿐이었지만, 그것만 해도 입이 쩍 벌어질 정도. 거기에 다른 차원의 물건들도 있다 보니 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을 지경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본다면, 욕심에 침을 삼키지 못할 터.
그러나 나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갖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다른 것이 싹텄다.
'어떻게 만든 걸까?'
의문과 호기심. 눈앞에 있는 전설이 있지만, 어차피 그게 진실인 것은 아니다. 유일신이 있는 종교 때문에 충돌할 테니까.
그렇기에 이것들이 전설을 모티브로, 전승과 같은 수준의 무구를 재현한 건 확실했다.
그것이 내 지식욕을 자극한다.
'누군가가 만들었다면,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설령 신이 만들었다 해도, 나 역시 마법에 대한 지식은 종점의 편린을 본 사람. 다른 기술들이 필요할 테니 똑같이 만들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마법에서만큼은 흉내 낼 수 있을 거다.
'알고 싶다.'
궁금하다. 아득히 높은 존재는 어떤 방식으로 저것들을 만들었는지 알고 싶다.
그런데. 대체 왜. 어째서.
'안 보이는 거야아!'
스마트 워치는 허공에 3D 홀로그램을 띄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전설적 물품들의 마법도 보여야 정상이다. 마법에 내가 상상하지 못한 것은 있어도, 읽지 못하는 건 없었으니까.
그러나 전설을 비추는 홀로그램에서는 아무것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내 능력 부족이 아닌, 무언가의 방해로 인해서였다.
'이 안개!'
회사에서 해놨는지 모르겠지만, 회색의 뿌연 안개가 교묘히 마법에 관련된 부분만 막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 스마트 워치의 각도를 돌려보았지만, 안개는 내 눈에 맞춰서 계속 따라왔다.
"아, 진짜!"
이럴 거면 차라리 홀로그램을 띄우지 말던가! 슬쩍슬쩍 마법이 있다는 걸 비추는 형태가 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지팡이를 봤을 때, 절정에 닿았다.
"이건 아니지···"
지팡이의 전신은 안개에 덮여있고, 흐릿한 윤곽만이 보인다. 그런 와중에서도 약 올리듯이 안개가 움직이는 데, 아주 적은 부분만이 눈에 들어왔다.
마법 문자가 보이더라도 일반적이거나, 핵심적인 것을 완벽하게 빗겨서 보여주는 안개.
여기에 정말 황당한 것은 능력치마저 가려놨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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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왕의 유언.
설명 : 리드릭다그리옷의 전설, 요정왕은 위대한 숲의 마법사다. 그가 지팡이를 휘두르면 ----가 일어나고 ---이 움직였다. 이 지팡이는 그 전설을 토대로 만든 것으로, 숲에서 펼칠 수 있는 마법의 한계를 보여줄 것이다.
부가 기능 : ----, --, ---, ----, --- --, 마법 강화, 영창 단축.
가격 : 1317 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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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눈앞에서 먹이를 흔드는 것 같은 행위. 기만에 가까운 횡포에 폭발할 것만 같은 지경이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명분에서 밀려.'
회사에서는 특 포인트를 모아야, 물건을 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이 특별 상점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물건의 모습을 전부 보여주지 않는다고, 항의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열 받는단 말이야···'
약 올리듯이 슬쩍슬쩍 움직이듯 보여주는 안개가, 내 심기를 자극한다. 마음만 같아서는 한 방 먹여주고 싶은 상황. 나는 혹시 모를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안개 자체를 없앨 순 없고··· 잠깐 멈추게만 해도 좋을 거 같은데.'
어떻게든 안개를 벗기는 방법을 궁리하던 찰라, 구석에 모셔둔 물통이 눈에 띈다. 원념을 담아둔 임시 통. 영체. 스마트 워치는 기계. 영체와 기계. 여기까지 생각한 순간, 나는 재빨리 통을 집어 들고 있었다.
'이거라면 혹시 모른다!'
예전부터 기계의 천적은 영체였다. 섬세한 전자제품으로 구성된 기계들이, 투과해서 힘을 쓰는 영체에 대항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스마트 워치에도 통할지 모른다.
물론, 회사의 스마트 워치는 마법이 가미된 하이테크놀러지. 영체 정도야 대응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렉 정도는 걸릴지도 모르지.'
곧장 실험해 본다. 방안에 미처 담지 못한 작은 원념을 찾아서, 스마트 워치를 가져다 대었다.
파직!
그러자 작은 스파크와 함께 영체가 타버린다. 내 생각대로 영체에 대처가 돼 있는 모습.
하지만 나는 보았다.
영체가 닿았을 때, 홀로그램이 렉에 걸려 아주 잠시 멈춘 것을.
'가능성이 있다.'
마법 물품과 안개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물론 그것은 겨우 30cm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지만, 멈춰만 있다면 틈 사이를 살펴볼 수는 있을 수준이다.
그 말인즉슨, 일정 수준의 영체가 있다면 그 틈으로 가려진 부분을 볼 수 있다는 뜻.
'해보자!'
곧장 도전을 위해 원념의 일부분을 꺼낸다. 그 양은 1/4 정도. 너무 많은 양의 원념이 스마트 워치에 부딪치면 회사에서 의심할 수도 있기에, 1∼2초 정도만 멈출 수 있도록 조절했다.
그리고 목표로 한 부분의 안개가 가장 적어진 순간에 맞춰, 스마트 워치를 영체에 가져다 내었다.
피지직!
그러자 아까처럼 작지만, 이번에는 조금 지속적인 스파크가 튀었다. 동시에 안개의 움직임이 살짝 멈췄다.
'지금!'
나는 곧장 생각한 방향으로 몸과 고개를 움직인다. 안개가 거기에 반응하려 했지만, 원념 때문에 조금 느려졌고, 안개 사이로 요정왕의 유언이 일부 드러났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지팡이 끝에 박혀 있던 거대한 보석 촉매.
다른 곳에 마법 문자가 적혀있었지만, 거기에는 전혀 시선이 가지 않았다. 그저 녹색의 보석에게만 시선을 주고, 그것의 원리, 만들어진 방법, 방식을 머릿속에 새겼다.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보아온 어떤 촉매보다도 잘 만들어져 있었으며, 소재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낸 방식이었다. 너무나도 잘 만들어져서, 며칠은 그냥 처다만 보고 싶을 정도였다.
'아···'
그러나 야속하게도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손목을 보니, 어느새 스마트 워치에 원념은 모조리 타버린 후였다.
'아쉽다.'
한 번 더 보고 싶다. 이미 거기에 새겨진 기술은 파악했지만,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마음만 같아서는 스마트 워치를 마법으로 조종하고 싶지만···'
지금 그런 짓을 하면 회사에서 쫓겨나리라. 설령 방출을 피한다 하더라도, 다른 제제가 있을 건 뻔했다. 그럴 순 없었다.
'다른 것들도 봐야 하니까.'
당장 마법을 써 본들, 볼 수 있는 것은 고작 요정왕의 유언뿐이다. 그 선택지를 택하기엔 너무나 짧은 생각이겠지.
그렇기에 욕심을 고이 접었다. 그다지 어렵진 않은 선택이었다. 방금 본 보석 촉매 때문에, 많은 것을 얻었고, 깨달았으니까.
그리고 내가 똑같은 것을. 아니, 더 뛰어난 물건을 만들 수 있단 사실도.
'아직 만들기엔 재료가 부족하지만.'
열심히 일하자. 포인트, 특 포인트 가릴 것 없이 일하다 보면, 재료를 살 수준이 될 거다. 다행히 나에겐 능력이 있었다. 노력만이 답이다.
'그럼 일단 보급부터 할까?'
최근 마법 물품의 소모가 꽤 격렬해서 바닥을 보였다. 이것들을 보충하지 않으면 포인트의 소모가 더 커질 거다.
'우선은 마법 종이부터.'
나는 리브뤼엣에게 들리겠다는 허락을 맡은 후 이동했다.
"어서 오게! 자네가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네!"
그는 나를 기쁘게 맞이해 주었다. 마침 시간이 점심때라서, 우리는 함께 식사하며 여태껏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서로 잘 된 것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날 때 즈음, 용건을 꺼냈다.
"리브뤼엣, 마법 종이 좀 팔아주세요."
"그러지. 일단 자네에게 주려고 50장 정도를 쌓아 놨네. 더 필요한가?"
"그 정도면 될 것 같네요. 얼마인가요?"
"다 해서 250 포인트만 주게."
"···얼마요?"
"50장에 250 포인트일세."
리브뤼엣의 마법 종이는 결코 5 포인트에 팔만한 물건이 아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해서 리브뤼엣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편안하게 웃으며 정정하지 않았다.
"그럼 리브뤼엣이 손해를 보잖아요."
"푸하하핫!"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리브뤼엣은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웃은 그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이보게 연성. 자네가 저번에 의뢰를 왔을 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는가?"
"기억나는 거야 많이 있지만···. 한마디로는 최선을 다했다고밖에···."
"그래 맞아. 자네는 최선을 다했지."
그는 점원을 불러, 술을 시키더니 두 잔을 따라서 한 잔을 주었다.
"자네는 내게 도움이 되는 형태로 최선을 다했어. 마법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했고, 나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지도 않았지. 그 결과 아나? 나는 중급 마법 종이의 양산과 질적 향상에도 손을 대서, 마법사 중에는 리브뤼엣 공장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가 됐어."
그는 술로 목을 한번 축이고 말을 이었다.
"그게 자네가 최선을 다한 결과야. 자네가 만약 마법 종이를 생각하고 끝내거나, 악덕 공장주를 내버려 뒀다면 이럴 것 같나?"
그건 아니다. 그들을 내버려 뒀다면, 리브뤼엣에게 계속해서 문제를 야기시켰을 것이다.
"자네가 내게 최선을 다했으니, 이젠 내가 자네에게 최선을 다할 차례네. 마법 종이에 모든 마진과 비용을 빼고, 순수 재룟값으로 장당 5포인트. 앞으로 자네와 거래할 때는 이 이상 받지 않겠네."
"···고맙습니다."
호의에 호의로 돌려주는 것. 당연하지만 절대 쉽지 않은 일을 하는 리브뤼엣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거래를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보석은 필요 없나? 내가 잘은 모르지만, 몰갓 만큼 보석이 싼 곳도 드물 텐데."
분명 필요한 물건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생각이 있었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석으로 구할 예정이에요."
"원석이라. 어지간하지 않으면 기록이 짧아서 약한 촉매밖에 되지 않는다만. 아, 혹시 좋은 세공사라도 알게 된 건가? 그러면 그럭저럭 쓸만한 정도는 되겠군. 포인트를 아낄 수 있겠어."
나는 한 번 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생각한 바를 말해주었다.
"원석을 아주 많이 구해보려고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광산 하나 정도의 양으로."
일반적으론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에, 리브뤼엣의 표정이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