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39화 (39/207)

# 사원 #

기사들에게 복수는 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 여자애만 설득하면 되는데.'

문제는 내가 수면 마법을 쓴 탓에 그 소녀도 잠들어 버렸다는 거다. 일반적인 잠과 달리, 마법으로 자게 되는 것은 지속해서 깊은 잠에 빠진 것과 다름없는 효과. 어지간한 충격으론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법에서 깨어나길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나는 제3의 결정을 했다.

소녀를 데려온 것이다.

물론, 좋은 말로 데려온 거지 실상은 납치와 다름없었다.

'···다음에 올 때는 조심해야지.'

보호색 마법을 썼으니 누구에게도 들키진 않았다. 하지만 차마 양심상 찔리는 것을 무시하지 못하며, 간단하게 모닥불을 만들었다.

깨어나고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서, 마을 밖 숲까지 들어온 상황. 적당한 땔감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으음···"

소녀가 눈을 떴다.

"···여긴?"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의 숲이야."

주변을 둘러보던 소녀가 이쪽을 발견하고 움찔했다. 과연 이 낯선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비명? 도주? 패닉? 어느 쪽이든 진정 시키는 데엔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하며,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당신은?"

그러나 소녀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몸을 움츠리고 있었지만, 똑바로 나를 보며 차분하게 물었다.

'하. 나보다 낫네.'

내가 회사에 납치됐을 때는 좀 더 허둥댄 거 같았는데, 나이도 어린 소녀가 훨씬 더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왔으면 저런 침착함을 가지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의뢰를 하기 더 편해졌다는 거니까.

"낮에 봤던 정령사입니다."

"아···"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손뼉을 치는 그녀.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온다.

"그런데 어째서 저를?"

여기서부터가 본방이다. 나는 되도록 호흡을 천천히 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이자드에 관심이 많던데."

동문서답. 소녀는 엉뚱한 대답을 꺼낸 나를 멀뚱히 쳐다보았지만, 이내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아이자드에게 계약을 하자고 한 건지?"

낮의 소동으로 여러 가지를 알아냈다. 기사는 호위라기보다는 감시에 가깝고, 이 소녀는 정령과 계약을 하고파 한다는 것. 그리고 친화력이 꽤 높다는 사실 등등.

그러나 이 정보에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 소녀는 왜 그렇게 정령과 계약을 하고파 하는 거지?'

낮에 아이자드의 기세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지금 내 눈앞의 소녀는 특별한 기술이나 단련을 받은 것 같진 않으니,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그것을 버텨낸 것이다.

이 아이에게는 그만큼 계약을 하고 싶은 절실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회사에 입사시키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말할 수 있는 만큼만 들려줬으면 합니다."

납치해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협박을 할 게 아니라면, 이런 상황에서 적당한 질문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생각하는 대로 뱉었고, 다행히 소녀는 간단하게나마 이유를 말해줬다.

"···강한 정령과 계약을 하면, 제 가치가 올라가니까요."

"그렇군요."

앞뒤 사정을 다 가린 최소한의 설명. 그러나 충분히 만족스럽다. 어제 보여준 그녀의 행동에서 대충 유추할 수 있는 게 있으니.

혹여 그것이 틀리더라도 상관없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소녀의 사정 보다, '자신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정령과 계약하려 했다'는 말을 들은 게 더 중요했으니까.

소녀의 동기와 의욕을 알았다. 그리고 굳이 아이자드가 아니라, 강력한 정령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조건은 다 갖춰졌네.'

이제 남은 것은 설득뿐이다.

나는 그녀가 경계심을 품지 않게 조심히 말한다.

"당신의 가치를 올릴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소녀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낮의 정령님과 계약하게 도와주시는 건가요?"

"아니, 그건 좀 어려워요. 이미 계약자가 한 명 있으면 그 이상은 잘 원하지 않는 데다가, 아이자드는 좀 까다로운 편이라서."

"그, 그렇군요. 그럼 어떤 식으로 저를?"

"간단합니다. 내가 아이자드와 계약하게 된 건, 어떤 집단에 소속해 있기 때문이니까요."

"그 말씀은?"

"당신을 우리 집단에 초대하는 겁니다."

"···"

소녀에게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제안. 그러나 어린 외관과 달리 침착하게 판단을 하는 그녀다. 바로 미끼를 물기보단 심사숙고하는 모습이 보였다.

'···좀 더 어필해볼까?'

아니. 오히려 꼭 데려가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반발할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그녀가 자발적으로 들어가겠다고 해야 하는 만큼, 그런 방식은 좋지 않았다.

'거절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자. 이 이상은 더 잘할 자신이 없으니까.'

마음을 편하게 먹자 행동이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소녀가 생각하게 내버려 둔 채, 가방에 남아 있던 육포를 꺼내 씹었다. 숲속에서 모닥불을 켜 놓고, 육포를 먹으며 경치를 구경하는 것. 의뢰 때문에 잊고 있었던 여유를 잠시 동안 즐겼다.

그러자 소녀의 입이 열렸다.

"지, 질문해도 되나요?"

"말해보시길."

"어째서 저인가요?"

자연스러운 의문. 다만, 거기에 대한 핵심적인 대답은 나도 아직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의뢰에 봤던 문장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우리 집단에 잘 어울리는 적성과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무것도. 당신을 마을로 바래다주고 전 갈 겁니다."

"그럼 반대로 제가 들어가면 어떤 일을 해야 하나요?"

"편한 대로 하면 됩니다. 원하는 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얻도록 노력하고, 싫다면 평범하게 생활하는 거죠. 이 집단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강제성이 없거든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을게요. 그 집단에 들어가면, 지금 바로 강한 정령과 계약할 수 있나요?"

"···으음"

끝에 가서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왔다. 사실, 낮은 등급의 정령이라면 얼마든지 계약할 수 있겠지만, 고위 정령과 바로 계약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건 자연계 정령이든, 정령계 정령이든 마찬가지.

자연계라면 찾고 호감 쌓는 게 일이고, 정령계라면 소환하는 게 일이다.

게다가 이건 내가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다. 자연계라면 소개가 한계고, 정령계는 소환하는 법을 모른다.

아이자드와 계약하면서 많은 걸 알았지만, 아직 정령계 정령과 계약하기 위한 소환진이나, 제물들에 대해서는 조금 미흡했기 때문이다.

'마법으로 보조하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고위 정령을 부르기엔 모자라.'

하지만 회사 내부에는 많은 존재가 있다. 그중에는 분명 나보다도 정령을 잘 다루는 존재가 있을 테지.

어제 그녀가 말한 대로 정말 친화력이 높다면, 고위 정령과의 계약도 꿈은 아니니라.

나는 이 사실을 솔직하게 알려주었다.

"솔직히 장담은 못하겠군요. 하지만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 가능성은 작은가요?"

"낮죠. 운도 필요할 테고."

"그렇군요."

단호한 대답에 소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곧 굳은 결심을 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겠어요. 뭘 하든 지금보다는 좋을 거란 생각이 드니까요."

훌륭한 생각이다. 변화를 통해 위로 올라가려는 자세는 언제나 높게 평가한다.

"···좋아요. 그럼 '회사'에 대해 설명을 좀 해드리죠."

그렇기에 나는 약간의 호의로 회사가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었다. 그 안에서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없을지도 몰랐으니까.

'어차피 회사에 들어가는 거라면, 이 정도는 문제없겠지.'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른 후.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의뢰를 완료했다.

일그러진 시야가 되돌아온다.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그 감각에, 소녀와 나는 비틀거렸다.

그런 우리를 붙잡아 준 것은, 양복을 입고 멀끔하게 생긴 남자였다.

"저런. 처음 오신 분은 그렇다 쳐도, 당신까지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한번 들어본 목소리. 마치 신뢰감을 강제로 주입하는 듯한 이 느낌은 기억에 있는 감각이었다.

"제가 이거에 적응을 잘 못 해서요. 하운드 부장님."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안내를 해준 존재. 그가 우리를 마중해주었다.

"그런가요? 하긴. 가끔 예민한 존재들이 그러긴 하더군요. ···그럼 옆에 있는 아가씨 소개를 부탁해도 될까요?"

소개라. 솔직히 그가 모르는 정보가 있을 거 같지는 않다. 첫 만남에서 보여준 것들이, 이제 와서 생각하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 잘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소녀는 그 사실을 잘 몰랐다. 그녀는 얌전하게 고개 숙이며 자신을 밝혔다.

"아리아 리드로프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는 '회사'에서 '부장'을 맡고 있는 하운드입니다."

둘은 서로 친절한 인사를 주고받곤, 하운드가 안쪽으로 안내했다. 장소는 내가 전에 본 것과 달리 중세풍의 화려한 방이었지만, 소녀는 오히려 이편이 친숙한 듯, 익숙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하운드에게 고개 숙였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조금 있으셔도 괜찮습니다만? 하연성씨가 상세하게 설명해 준 덕분에 제 일이 줄어서 말이지요."

"아뇨. 좀 자고 싶어서···"

그는 귀찮은 일을 줄여준 게 정말로 고마운 듯, 의자까지 권했지만, 나는 정말로 피곤했다. 기사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가져온 흙이 꽤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그럼, 한 가지만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행히 하운드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회사에서 당신을 관심 있게 지켜볼 겁니다. 이번처럼 특별한 의뢰를 맡길지도 모르니, 부디 앞으로는 많은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의뢰. 그러나 말투로 들어보아, 이번처럼 직원 모집 같은 것은 아니었다. 좀 더 어렵고, 까다로운 의뢰가 있는 듯한 뉘앙스였다.

"···어떤 걸 준비하면 되는 거죠?"

"죄송합니다만, 그 이상은 규정상 알려드릴 수가 없군요."

변덕스러운 회사다. 결국, 나는 찝찝함을 지우지 못한 채, 가려 했을 때였다.

"저어."

소녀가 다가왔다.

"이름 정도는, 알려주세요."

"아아.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안했네요."

납치범과 피해자의 입장이었고, 의뢰에서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덕분에 하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고개 숙이며 자기소개를 했다.

"하연성입니다. 혹시 나중에 또 본다면 잘 부탁해요."

"아리아 리드로프에요. 다음에는 아리아라 불러주세요."

"그러죠. 아, 하운드 부장님. 이 애 돌아가면 숲 한가운데인데, 보호되나요?"

"조치하죠."

마지막으로 내가 숲으로 데려간 아리아의 안전까지 묻고 난 후,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우윽."

어지럽다. 단시간에 두 번이나 시야가 일그러진 것은 반향이 꽤 컸다. 나는 니글니글해진 속을 달래며, 모닥불을 정리하고 마을로 향했다.

"아. 잘 됐나 보네."

중간에 여관 하나가 몬스터가 나왔다며 시끌벅적한 것을 보고 웃으며, 적당한 여관을 물색해 몸을 뉘었다.

"음··· 잠잘 때 이동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그리고 다음에 눈을 떴을 땐 집이었다. 아마 자는 사이에 버드릭이 의뢰를 완료시킨 모양이다.

그 덕에 나는 방바닥에서 뒹구는 모습으로 있었다.

'짐은··· 같이 왔구나.'

상체를 일으켜 짐을 확인하고, 시간을 살폈다. 지구에서 떠난 지 3일째의 새벽. 버드릭이 의뢰를 완료했으니, 저쪽은 아침이겠지만 이쪽은 아직 한밤중이다.

'잘됐다. 늘어지게 자야지.'

시차 적응이 이런 식으로 작용할 줄 몰랐던 나로선, 기쁘게 이불을 펴고 한 번 더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등짝에 커다란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으헉!?"

"너는 애가 새벽에 도둑같이 들어오면 어떡하니!"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 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것이 연속으로 작열한다! 나는 어떻게든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리쳤다.

"그, 그래도 3일 안에 돌아왔어요!"

"12시 지났으니까 4일이지!"

억울하다! 그렇게 따질 거면 아침에 출발했으니, 그때부터 72시간을 재 달라고 외치고 싶다! 그러나 이제는 항변하면 할수록 고통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걸 깨달은 나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중처럼 가만히 버텼다.

그리고 길고 긴 항전이 끝나자, 어머니는 밥을 먹으라는 소리와 함께 병원에 간다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퍼뜩 아버지가 떠오른다.

'진단은 어떻게 됐지?'

나는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오늘 나온다더구나."

그럼 오늘로 아버지의 암이 나았다는 사실도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퇴원하실 테지. 여기까지 생각하자, 위기감이 고개를 든다.

'어, 아버지가 휴일에 나가시던가?'

아니다. 일밖에 몰라서 쉬는 날에는 주무시거나, TV를 보는 게 낙인 분이셨다. 퇴원해서 집에 돌아온다 하셔도, 나가서 놀 일은 없으리라.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아버지가 완치한 건 기쁘지만, 당분간은 복직은 어려울 것이다. 전에 있던 회사에서 부르더라도, 최소 며칠은 필요할 터. 그동안, 내가 회사 일을 하기 어려워지는 건 당연했다.

'위장 취업을 하던가, 아니면 지방에 작은 방이라도 얻어야겠어.'

조급함을 느끼곤 스마트 워치를 켰다. 그리고 들어온 메일들을 대충 확인하고, 닫으려는 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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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사원에서 주임으로 승진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의뢰 옵션 : 지명(指名)', '의뢰 옵션 : 조력(助力)', '의뢰 옵션 : 직급 제한'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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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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