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35화 (35/207)

# 사원 #

골렘에 정신이 팔려버렸다. 그래서 팔 하나를 분리하고 난 뒤에야, 간신히 의뢰 중이었다는 걸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도 스스로 깨달은 게 아닌, 버드릭과 아이자드가 다가와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있어선 안 되는 실수였기에, 나는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연성 씨 때문에 조사할 수 있는 시간이 대폭 늘어날 것 같으니까요. 정말 마법 실력이 뛰어나시군요."

다행히 그가 흔쾌히 용서해주지 않았더라면, 꽤 곤란했으리라. 의뢰 내용에는 버드릭의 보호도 포함이니까.

'보호 대상을 팽개치고 가는 건 말이 안 되지.'

자칫 트집이라도 잡혔다면, 회사 일에 지장이 생긴다. 다양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회사에 있을 필요가 있었으니, 그건 꼭 피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의뢰인이 버드릭인건 행운이었다. 그는 내 실수를 신경 쓰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적극적으로 내 연구를 장려했다.

"연성 씨도 유적에서 할 일이 좀 있으신 것 같은데, 잠시 머물렀다 갈까요?"

"아뇨, 제 일은 나중에···"

"괜찮아요. 이곳은 아직 둘러보지 못한 곳이니까요."

아직 연구가 끝나지 않은 장소. 그 말은 이곳에서 머무는 게 그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뜻. 나는 폭풍처럼 고개를 끄덕이곤, 아까 쓰다 만 마법 종이를 꺼내 들었다.

'경보 마법(alarm)이면 충분하지.'

흔히 판타지에서 알람 마법이라 불리는 이것은, 난이도가 널뛰기하는 것 중에 대표 격이다. 많은 조건을 넣으면 촉매가 필요하지만, 그냥 단순히 선을 넘는 게 기준이라면 마법 종이로 끝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은 통로가 하나인 유적. 당연히 마법은 간단했다. 마법 종이 반 정도 분량에 글자를 채워 발동시키는 것으로, 우리는 안전 대비를 끝냈다.

"얼마 정도 있으실 건가요?"

"여기서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가 서로 조금씩 방해할 거라고 예측했다. 내가 통로 한가운데에 있긴 하지만, 골렘은 넓게 늘어놔야 했다. 반대로 버드릭은 유적을 조사하려면 움직여야 했고. 움직이다 보면, 필연적으로 서로가 거치적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러나 내 예측을 뛰어넘는 것이 있었으니.

우리 파티가 굉장히 잘 맞았다는 점이다.

나는 바닥을 차지하면서도 그가 밟을 거라 예측되는 동선에 대해서는 최대한 비워놓았다. 구체적으론, 벽이나 물건 등이 있는 곳. 그리고 그 장소들을 가로지르는 부분이다.

이러한 배려는 버드릭 역시 마찬가지. 그는 연구에 열중하면서도 내가 만들어준 선을 철저하게 지켰다.

나와 영혼이 연결된 아이자드까지 이러한 행렬에 참여하자, 우리가 서로 방해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단. 여기에서 그쳤다면, 그저 협력이 좋았을 뿐. 우리의 호흡은 본격적으로 연구에 빠졌을 때 시작되었다.

"이건 정말 순수하게 흙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대체 어떤 게 촉매 역할을 하는 거지?"

"형. 이거 그냥 흙이 아닌데? 뭔가 섞여 있어."

"음? 섞여 있다고? 내가 못 느끼는 걸 보면 마법적으로 만든 건 아닌가. 그럼 이 흙을 조사해 볼까···"

골렘 관찰에 내가 볼 수 없는 부분을 지적해 주는 아이자드. 그 말을 듣고선, 성분을 분석하기 위한 마법을 펼쳤다.

"흙은 평범한데··· 반죽으로 쓴 물이 평범한 게 아니잖아?"

덕분에 알아낸 사실. 마법으로 물에 초점을 맞추자, 다양한 약초와 약간의 광물가루가 섞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에 나는 경악했다.

"흙을 촉매화(觸媒化) 시켰어?"

비록 고급품은 아니었지만, 이 흙이 촉매로서의 성질을 띠게 되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떤 기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머릿속으로 고민해 봤다.

마법으로 사용한 물품에 대해 알아봤을 때, 촉매가 될 만큼 커다란 힘이나 역사를 가진 물건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몇몇 가지 물질이 섞이면서, 촉매로서의 힘이 생겼다는 거겠지.

일반적인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몇 가지 물건을 섞는 행위. 그러나 섞이는 입장에서는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하는 것.

여기까지 오자,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연금술!"

지구에선 과학의 기초라는 평가를 듣는 학문, 연금술. 하지만 그것의 실체는 '사물의 성질을 바꾸는 것'에 집중한 일종의 마법적 행위다.

다만 연금술과 마법의 차이점이라면, 마법 문자 대신, 각종 사물을 섞는 것으로 각종 현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나는 흥분해서 곧장 자세한 성분 분석에 들어갔다. 연금술은 레시피만 알면 99% 성공하는 기술이니만큼, 결과물을 분석할 수 있는 건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 성과는 버드릭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맞아요! 연금술이에요!"

"뭐가? 연금술이 중요한 거야?"

"물론이죠! 보세요, 정령님. 여기 다양한 문자가 적혀있죠? 이건 대부분 각종 약초나 물건의 이름들이에요. 대체 왜 이런 문자가 여기 있는지 몰랐는데, 연금술이라는 단어를 듣고 해결됐습니다!"

"아, 알겠다. 여기 적혀 있는 물건들이 연금술에 쓰인 거구나."

"바로 그렇습니다! 아아! 이제야 여러 가지가 이해되는군요. 보통 무기를 연구하는 곳이래 봤자 화려한 대장간. 그것도 노출된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곳은 골렘도 그렇고 방비가 너무 철저해요.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게 뭔데?"

"연금술을 이용한 무기의 제작! 새로운 광물이나, 성질이 변한 철을 무기로 만들어 병사들에게 들려주면, 그 수준이 달라지죠. 즉, 말하자면 이곳은 최신기술의 연구를 위해, 극비리에 세워진 장소란 겁니다!"

"일부러 감춘 거야?"

"보안을 위해서겠죠. 아아, 정말 놀랍군요! 고대 문명은 여태까지 주술 외에는 특별한 기술이 없었을 거라는 게 학계 정설이었는데, 이걸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들은 굉장히 체계적인 형태로 기술 발전을 꾀하던 문명이었어요!"

"대단한 거구나. 음··· 저기, 우리 형이 연금술에 관심이 있는 거 같은데, 벽에 적힌 거 베껴 줄 수 있어?"

"물론입니다! 어차피 저도 필요하니까요. 대신, 나중에 이 성분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알려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시너지 효과. 남겨진 지식, 남아 있는 결과, 적적한 추임새(?)가 하나 되어 움직이니, 그야말로 유적에 남아 있는 것들을 파헤치는 건 순식간이었다.

30분. 본래 예상시간을 1/4 정도로 압축한 우리는, 곧장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오오! 새로운 골렘이다!"

"글자가 지워졌군요. 루플리···다순 한 글자를 모르겠는데···"

"루플리막다순 아냐? 아주 오래전에 식물을 찾아볼 때, 상점에서 본 적 있어."

"아, 그거 특정 마법에서 쓰기도 하는 거예요."

"그럼 이게 맞는 것 같군요!"

거기에서도 우리의 호흡은 도드라졌다. 아니, 이젠 서로의 지식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는, 서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각자의 실력 이상을 발휘하며, 유적을 돌파한 결과. 하루의 3/5 정도 흘렀을 때는 아홉 군데의 포인트 탐사가 끝난 후였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임시 캠프를 세웠다. 체력적으로 좀 더 할 수 있었지만 만약의 만약을 대비해야 하는 법. 체력을 완전히 방전시킬 순 없었다.

게다가 우린 조사한다고 끼니도 거른 상태. 휴식이 필요했다.

"이야. 유적 조사란 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네요."

"원래는 이렇지 않죠. 수호 골렘 같은 게 있으면 처리에 며칠. 문자를 확인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데 며칠. 빠진 글자가 있으면 또 생각하느라 며칠씩 걸리는 게 일상이거든요."

"학자들이 많이 가지 않나요?"

"그러니 진전이 되는 거죠. 사실 아까 정령님이 알려준 지식이 아니었다면, 막힐 곳도 여러 가지 있었고요."

"그냥 아는 것만 말한 것뿐인데."

아이자드는 가볍게 말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다르다. 그렇든 저렇든 그는 무구한 세월을 살아온 정령. 상점의 물품만 봐도, 인간과는 지식의 수준이 달라진다.

게다가 식물에 대한 욕망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것은 사소한 것이라도 꿰뚫고 있으니, 도움이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었다.

"이렇게만 가면 내일 즈음엔 탐사가 끝날지도 모르겠군요. 그것도 겉핥기가 아닌, 제대로 된 조사로요."

내겐 좋은 소식이었다. 지식도 얻으면서 부모님의 걱정도 덜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편안한 내일을 꿈꾸며 휴식을 취했다.

기습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허···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우리는 보초를 세우지 않았다. 어차피 안에는 골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나나 버드릭이나 배불리 먹고 따듯한 모닥불을 쬐어서, 쏟아져 오는 졸음을 막을 수 없었다.

정령인 아이자드는 내 정신이 끊기는 순간 역소환 되므로, 보초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취할 방법은 딱 하나였다.

"연성씨가 저에게 메시지로 보낸 말씀, 이젠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 거 같군요."

마법적 조치. 그리고 사용한 마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연히 알람. 다른 하나는.

"겨우 30분 동안 개조한 골렘이 저렇게 강해질 줄은 몰랐으니까요."

우리가 일어날 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골렘이었다.

사실 골렘은 반쯤 실험이나 다름없었다. 유적에서 나온 것 중, 종류가 중복된 것 하나를 개조했을 뿐이니까. 그 과정도 무척 단순했다.

'촉매용 보석을 하나 썼고, 마법을 새겼으니까 강해지는 게 맞기는 하지.'

재창조가 아닌 개조가 중심이었다. 그래서 골렘의 원형은 건드리지 않았다. 저 앞에서 있는 녀석은 아직도 투박한 모습 그대로다.

거기에 보석 하나만 추가했다. 변형된 흙이 촉매로서 가치가 낮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보석 중심으로 겉에 마법진을 그린 게 개조의 끝이었다.

그 종류는 세 가지. 형상 고정(shape fixed), 형상 기억(shape memory), 형상 회복(shape restoration).

세 가지 모두, 물건 회복에 관련된 마법이다. 그냥 시간이나 끌라고 만든 형태라, 다른 것 없이 무한 회복만 할 수 있게 해준 것. 그런데 그게 예상외의 사건을 만들었다.

"끼에에!"

사람 다리만 한 형태의 지네처럼 생긴 몬스터가, 힘껏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녀석의 강인한 턱은, 형상 고정으로 조금 강화된 골렘의 일부 정도는 쉽게 부숴버렸다.

하지만 골렘은 반쪽이 되도 안 죽는 녀석. 그런 공격이 제대로 통할 리 없었다. 오히려 그 상황을 기회라는 듯이, 주먹으로 들어 올려 내리친다.

그러자 지네는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고, 골렘은 잠시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곧장 자세를 고친다.

럭비공만 한 상처는 어느새 회복된 모습. 그 광경에 버드릭이 감탄했다.

"대단하군요. 마법으로 뭔가를 복원시키는 건 몇 번 본 적 있습니다만, 저렇게 빠른 건 처음 봅니다."

"하하."

하지만 그의 감탄에 내가 맞장구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웃는 것뿐이었다. 왜냐면 눈앞의 상황은 예측 범위를 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빨리 회복될 리가 없는데?'

선천적 마법사인 내가 의도하지 않은 현상. 그 원인은 한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흙 때문에? 재료 전체가 촉매라서 뭔가의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다고?'

연금술과 마법이 그런 형태로 조합될 줄이야! 나는 더더욱 연금술에 대한 지식이 탐났다.

"버드릭씨. 저 안쪽에는 더 많은 자료가 있겠죠?"

"그렇죠. 다만, 저 몬스터가 원형을 훼손하지 않았을까 걱정됩니다."

"그럼 빨리 가야겠군요."

버드릭의 말을 듣곤, 곧장 아이자드를 소환했다. 이건 무력으로 해결 가능한 일. 마법 종이나 다른 촉매들을 쓰기보다는 정령이 효율적이다.

"안녕, 형."

"안녕. 오자마자 미안한데, 저 녀석도 처리해 주지 않을래?"

내가 지네 몬스터를 가리키자, 아이자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뭉친다. 순식간에 1m가 넘는 얼음송곳이 만들어지고, 손짓에 맞춰 날아갔다.

"끼익?"

지네는 중간에 그것을 눈치챘지만, 너무 늦었다. 얼음송곳은 순식간에 골렘과 지네를 동시에 꿰뚫고, 새하얗게 얼려버렸다.

"아. 미안 형! 작게 쓰면 조절이 잘 안 돼서···"

골렘까지 얼려버린 건 실수인 듯, 아이자드가 사과한다.

하지만 이건 그의 실수라고 보기엔 어렵다. 원래 '눈보라'라는 건 광역에 특화된 거니까. 그렇기에 나는 아이자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용서해줬다,

다만 여기서도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다.

쩌적.

"···허?"

쩌적. 쩍. 쿵.

골렘이 움직였다. 표면이 하얗게 얼어붙으며, 작은 고드름이 맺혔음에도 불구하고. 배까지 송곳으로 뻥 뚫려 있었지만, 녀석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곤 한발짝 한발짝, 발을 뻗어 본래 대기하던 자리로 돌아갔다.

"···흙을 가져가야 하나?"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회사 Tip

연금술에 대하여.

연금술은 여러 가지의 것들을 섞어, 사물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기술이다. 이 기술의 근본은 '섞는 것'이기 때문에, 재료와 레시피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연금술은 범용성이 높지만, 어렵고 까다로운 것일수록 그 레시피를 구하기 어렵다.

모든 연금술사는 레시피를 유출을 꺼리기 때문에 굉장히 폐쇄적이며, 오직 결과만을 비싸게 내놓는 성향이 있다.

이들과 협상하기 위해서는, 돈 같은 화폐보다 물물 교환이 훨씬 효과적이다.

참고로 금은 만드는 비용이 더 들어감으로, 제작되지 않는다.

지구의 연금술사의 경우는···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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