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34화 (34/207)

# 사원 #

다음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했다. 구체적인 내역은 에너지 바, 라면, 통조림, 육포, 물 등이었다.

'고블린 퇴치 때는 먹을 게 부족해서 꽤 고생했지. 이번에는 신경 써서 챙겨가자.'

통조림은 될 수 있으면 국물이 적고 가벼우면서 열량이 있는 것으로. 라면과 육포는 목마르지 않게 간이 좀 밍밍한 제품을 고른다. 그리고 에너지 바는 든든함을 생각해서 견과류가 박힌 걸 샀다.

특히 상대적으로 가볍고 열량이 높은 육포와 에너지 바의 경우, 가방의 1/4 채울 정도로 샀기 때문에, 마트 아주머니가 놀랄 정도였다.

"총각. 이 정도면 그냥 회사에서 박스째로 사는 게 좋지 않아?"

"아, 그런 수가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그냥 살게요."

다음부터는 제작 회사라도 찾아가자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쌌다. 캠핑용 작은 냄비 하나와 저번에 잘 썼던 모포, 그리고 집에 있던 접이식 과도와 라이터를 챙겼다.

'이 정도면 되겠지?'

먹을 것만 따져도 일주일은 넘게 버틸 양. 거기에 아이자드의 눈을 녹여 마실 수만 있다면, 족히 이주는 견딜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마법 종이와 마법 펜을 챙기는 거로, 짐 싸는 건 끝. 이제 남은 준비는 딱 하나였다.

-하석아. 나 알바 간다고 구라 한 번만 더 쳐주면 안 되겠냐?

친구에게 날아가는 깨톡. 답장은 빠르게 날아왔다.

-이 미친놈아, 네가 부모님께 말씀 드리면 되잖아.

-말할 거야. 근데 핸드폰을 놓고 갈 거라서.

-너희 부모님이 그걸 믿겠냐? 아니, 그보다 그냥 너 혼자 폰 놓고 가면 되잖아.

-미안. 예상시간은 2~3일 정도인데, 상황에 따라 늘어날지도 몰라.

-···너 정말 무슨 일 하는 거냐?

-나중에 기회 되면 이야기해줄 게. 불법은 아니야.

-···뭐, 염전 같은 데 가는 거 아니지? 아니면 위험한 일이라던가.

-아냐. 문제없으니까 부탁 좀 하자.

-···ㅇㅋ. 일단 되는대로 해 보마. 빨리 다녀와라.

-알겠으. 담에 술 한번 쏘마.

-ㅇㅋㅇㅋ

만약에 대한 대처가 끝났다. 위험한 일을 하는 건 맞으니, 거짓말을 하는 게 좀 걸리긴 했다. 하지만 이건 내 기준으로 교통사고 수준의 위험성이다. 교통사고를 두려워해서 운전을 안 할 순 없는 노릇이니, 감수해야 할 일이겠지.

끝으로 어머니에게도 갑자기 일이 잡혔다는 말씀을 드렸다. 아침밥을 드시다가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니는 깜짝 놀랐지만, 반대하진 않으셨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난 후에야, 나는 의뢰를 수락할 수 있었다.

몇 번을 이동해도 익숙해지지 않은 감각이 사라진 후. 나는 어느 울창한 숲에 서 있었다. 나무들이 키가 너무 커서 햇빛을 가린다. 땅은 좀 습하긴 했지만, 열대우림처럼 질척하진 않았다.

아주 가끔, 서양 쪽 깊은 숲에서 찍은 사진이나 영상에서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신기하게만 봤을 뿐이다.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숲의 특징 같은 건 잘 모른다.

"하연성씨?"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에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네. 제가 하연성입니다. 버드릭씨 신가요?"

"맞습니다."

전체적으로 말라보였지만 바깥을 꽤 돌아다닌 듯, 탄 피부와 근육. 그리고 활동하기 편하면서 질긴 옷을 입은 20대 중반 정도의 남자. 그게 이번 의뢰자인 버드릭이었다.

의뢰에선 학자 같은 느낌이라 마르고 약한 사람을 생각했는데, 실제 인상은 인디아X 존스다. 그는 내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유적은 처음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으흠··· 연성씨. 인사를 나눈 직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좀 그렇습니다만···."

상당히 정중하며 조심스러운 언동. 나는 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쌓아가며 고개를 끄덕인다.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안다. 초면인 상대에게 확인해야 할 것. 이 의뢰 내용을 생각하면 그건 딱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정령을 보여 달라는 말씀이시겠죠?"

"네.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살짝 고개를 숙이는 버드릭. 연신 예의를 잃지 않는 모습에, 기분 좋게 눈보라의 정령을 불렀다.

"아이자드."

나와 엮인 혼이 반응한다. 이곳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던 눈보라의 정령은 의지에 반응해, 기꺼이 부름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로서, 허공에 눈보라가 몰아치며 아이자드가 나타났다.

"형! 오랜만이야!"

아이자드는 소환되자마자, 곧장 살갑게 달려왔다. 아직은 조금 어색한 나와 대조적인 모습. 하지만 지금은 의뢰인의 앞. 정령과 친하다 했는데, 이상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아이자드와 친해져야 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나는 머릿속 인식을 바꾸기 위해 중얼거렸다.

'동생처럼 생각하자. 동생처럼.'

아이자드는 동생이다. 비록 남동생은 없지만, 여동생을 해준 것과 크게 다르진 않겠지. 나는 어렸을 적 동생에게 해 준 것처럼 아이자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호들갑 떨지 마. 안 본 지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났잖아."

순간, 소년의 모습을 한 정령의 눈동자가 화잔등만 하게 커졌다. 그리곤 이내 헤실헤실 웃으며 밝게 소리쳤다.

"요즘 시간 느끼는 게 예전하고 달라! 형이 만들어준 식물 때문에 시간에 예민해졌거든!"

그게 그런 효과가 있을 줄이야. 나는 식물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는 녀석의 말을 잠시간 들어주었다. 그러다 슬쩍 버드릭에게 눈길을 주었다.

"어험. 정령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도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는 내 신호를 잘 파악했다. 아이자드는 주변에 한 명의 사람이 더 있다는 걸 눈치채고, 그제야 용건이 있어서 불려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놀자고 부른 건 줄 알았는데."

"일 끝나고 또 불러줄게."

"오오! 정말이지?!"

"그래. 그러니까 지금은 저 사람하고 이야기 좀 할게."

"알았어! 그럼 난 주변 구경할래!"

큰소리로 외치곤 주변의 식물들을 보기 시작한 녀석을 잠시 뒤로 한 채, 나는 버드릭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정도면 더 말할 게 없군요. 유지는 얼마나 할 수 있으신가요?"

"그냥 소환만 하는 거라면 하루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능력을 좀 쓴다면 30분 정도고요."

정령의 소환에는 내 정신력을 소모한다. 그건 고위의 정령일수록 더 컸으며,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또 달라졌다.

지금 아이자드의 경우, 평범하게 모습을 유지하는 건 그리 소모 값이 크지 않다. 하지만 고위 정령의 힘을 쓴다면 급격하게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그 값을 어림짐작해서 내놓은 게, 버드릭에게 말한 이야기였다.

"그럼 반나절 정도는 탐험하고, 반나절 정도를 휴식하면 되겠군요."

"일반적인 활동 시간만큼 움직이셔도 됩니다. 마법도 쓸 줄 아는데, 그건 정신력을 훨씬 덜 소모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마법도 할 줄 아신다고 하셨죠. 좋습니다. 그럼 3/5 정도를 활동시간으로 하고 나머지를 쉬죠. 그 외에는 가면서 정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시죠."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듯한 합의!

유적 안에는 위험도 있으니 다양한 상황에 대한 회의를 거쳐야 하건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존재 중 그런 걸 따질 이는 없었다.

'어차피 따지고 보면 파티의 구성 요소도 개판이야. 작전 같은 걸 짜는 것보다는 최소한의 대비만 하고, 그때그때 대응해 나가자.'

학자, 마법사, 정령이라는 파티 구성. 앞에 든든하게 버텨줄 전사조차 없는 근본 없는 조합이니, 작전을 짜는 것부터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다른 형식의 대응 방법을 짤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버드릭은 그런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우리 둘은 한시라도 빨리 유적에 들어가고 싶었으니까.

훌륭한 공감대에 마음속 깊이 감탄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입구는 어디인가요?"

"여기입니다."

버드릭은 나무 밑동에 있는 몸통만 한 돌을 옆으로 굴렸다. 그러자 성인 한 명이 간신히 기어갈 만한 통로가 보인다.

"지하에 묻힌 유적이라 정식 입구는 노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런 개구멍으로 가야 하죠."

"통과하면 바로 적이 나오나요?"

"아뇨. 그랬다면 들어갈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하하."

버드릭은 가볍게 웃으며, 주변의 큰 나무에 줄을 묶어 구멍으로 늘어뜨렸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따라오시죠."

그는 먼저 가방을 넣고, 그것을 미는 방식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보였기에, 나도 따라 한다. 참고로 아이자드는 통로를 얼려버릴지도 모르니, 잠시 역소환했다.

약 3m가량을 기어가자, 넓은 통로 같은 부분이 보인다.

"줄을 잡고 내려오세요."

버드릭의 말대로 줄을 잡고 굴에서 몸을 빼자, 반 바퀴가 뒤집히며 자연스럽게 착지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여긴 통로인가?'

떨어진 장소는 폭 5m에 높이 3m쯤 되어 보이는 길이었다. 바닥과 벽은 돌로 칠해져 있으며, 뒤는 문처럼 생긴 인공물로 막혔다.

그중 내 시선을 끈 것은 벽에 새겨진 글자였다. 나는 아이자드를 다시 소환하면서, 벽의 글자를 살폈다.

'마법 문자가 아니네?'

광원이 버드릭의 횃불뿐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내가 읽을 수 있는 문자가 아니었다. 혹시 버드릭이라면 알까 싶어 물어보니, 예상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주술적 문자입니다. 지금이야 극소수의 종족 말고는 쓰지 않는 기술이지만, 고대에는 마법보다 널리 퍼진 문명이었죠."

주술이라. 흥미로운 요소가 하나 더 늘었다.

'하지만 이렇게 문자로 되어선 읽을 수가 없는데.'

차라리 결과물이 남아 있다면 그 방식을 유추라도 해볼 텐데. 이렇게 기록만 남아 있어서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어. 하연성씨?"

"네?"

"유적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좀 설명해드릴까요?"

버드릭의 눈이 반짝인다. 내가 글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던 걸, 유적에 대한 호기심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자신의 전문분야가 활약할 것 같은 기회가 생기자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도 호재였다.

"버드릭씨는 이 문자를 해석할 줄 아신 가요?"

"어느 정도는요."

"그럼 설명 좀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그 후, 버드릭은 봇물 터지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유적이 언제 만들어졌으며,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에 대한 추측과 안쪽에 있을 법한 물건들의 목록까지. 나이는 나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아 보이는 수준의 그였지만, 지식수준은 이미 40~50대 교수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그의 설명을 듣고 한 가지 부분에선 실망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 안에는 주술의 흔적이 거의 없을 거란 말씀이시군요."

"예. 아까 들어오시면서 뒤편이 문이었죠? 거기에 새겨진 병사나 검의 모양은 이곳이 무기에 대해 연구를 하던 곳이란 걸 알려주죠. 주술적 문자는 도둑을 막고, 행운을 모으는 의미죠. 하지만 저희가 멀쩡히 들어왔잖아요? 효과가 다 됐거나, 그럴듯한 장식물이란 거죠."

주술에 관련된 지식이 있을까 싶었는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단번에 날려주는 소식이 있었으니.

텅. 텅. 텅.

골렘의 등장이었다.

"오오오오!"

생각보다 빠른 만남. 안에 들어선 지 아직 30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골렘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걱정일랑 눈곱만치도 하지 않은 채, 눈을 빛내며 관찰에 들어갔다.

골렘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통로가 그 형태를 강제한 모양. 다만 사람이라 보기에는 굉장히 투박한 모습이었으며, 순전히 흙으로만 만들어져있었다.

내 예상보다는 훨씬 덜떨어진 기술로 만들어진 놈들. 하지만 내가 흥분한 건 골렘의 성능 때문이 아니었다.

"촉매가 없잖아!"

한눈에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저건 마법 이외의 기술이 섞여 있는 물건이라고.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마법 종이 한 장과 마법 펜을 챙겨서 바로 뛰쳐나갔다.

"연성 씨! 위험해요!"

"같이 가, 형!"

뒤에서 버드릭과 아이자드가 말하는 게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달려가며 마법 종이에 문자를 쓴다. 받침대? 손바닥이면 충분하다. 시간? 몇 문자 쓸 것도 없다. 3초면 끝이다.

찌익-.

글자를 쓰고 남은 부분은, 마법 종이가 전부 소모되지 않게 찢는다. 그리고 손바닥만 한 종이를 내밀며 외쳤다.

[너의 주인으로서 나를 고정하라! -주종성립-]

골렘이라 한들 결국엔 마법 도구.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골렘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이 마법이다.

지능이 있다고 하지만, 컴퓨터보다 못한 수준의 대처능력을 가진 게 녀석들. 따라서 골렘은 항상 주인이 있고, 그 명령을 따르는 마법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든 마법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내가, 저 골렘의 주인을 바꿔치기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 방금처럼 손바닥만 한 최상급 마법 종이 한 장만 있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쿵.

내 앞에 무릎 꿇는 골렘. 녀석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이거 진짜 촉매가 없잖아! 어떻게 한 거지? 뭐로 동력을 얻고 있는 거야? 아니 겉으로는 알 수 없는 건가? 그럼 일단 왼팔부터 분리를···"

점점 유적 탐사가 기대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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