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원 #
나는 마피아의 조직이라고 해서, 내심 슬럼가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그가 안내한 건물은 주택가의 한 커다란 저택이었다.
"페트로프 씨, 그자는?"
"이번에 새로 안면 튼 거래상이다. 물건보고 결정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곳엔 문 앞을 지키는 남자가 있었지만, 페트로프의 말 한마디에 바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상당히 영향력 있는 모습. 하지만 특별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회사 사람이라면 지구에서 대접받을 능력 하나둘쯤은 있을 테니까.
어쨌든 덕분에 검문도 없이 들어간 나는, 그를 따라 지하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권총 사격장. 페트로프는 표적을 손짓했다.
"한번 시험해 보지."
"좋아요. 대신 그전에 목표물 수정 좀 해요."
"? 뭘 수정한다는 거야?"
"방탄조끼 걸어요. 그래야 성능을 제대로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는 잠시 내 눈을 바라보더니, 이내 혼자 '그러고 보면 방금 총알을 막았지'라고 중얼거리며 자리를 비웠다. 그리곤 어디선가 방탄조끼 하나를 가져와 표적에 걸었다.
"이걸로 만족하나?"
"벽에 상처가 나도 상관없다면요."
"괜찮아. 그냥 뚫어버려."
"···뚫는 건 어렵고요."
페트로프의 시선을 받으며 품에서 가져온 권총을 꺼내 조준한다. 그리고 한 발을 쏘았다.
탕!
발포음. 총알이 10m 거리의 방탄조끼에 박혔다. 그 장면을 본 그는 눈썹을 씰룩거렸다.
"위력이 변한 게 없는데?"
성질 참 급하긴. 이쪽을 째려보는 페트로프의 모습에 한숨을 살짝 내쉬곤, 표적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제대로 좀 보시죠."
"뭘 보라는··· 음?"
얼핏 보면 그냥 총알이 하나 박혀 있는 방탄조끼. 그러나 이제는 일반적인 방탄조끼와 전혀 다른 물건이다. 페트로프는 간신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방탄조끼를 유심히 살폈다.
"···모습이 이상하군."
정확히는 조끼의 모습이 정상적이지 못했다. 전에는 두껍긴 했어도 천의 질감을 표현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속에 철심을 넣은 듯한 느낌으로 굳어 있었다.
"뭘 한 거지?"
"두 발째를 보시면 알아요."
한 번 더 방탄조끼를 겨누고 총을 쏜다. 발포음과 함께 날아간 총알은 정확하게 명중.
그리고 방탄조끼를 산산이 부숴버렸다.
"···얼음?"
부서지는 방탄조끼 속. 얼음 파편이 가득한 것을 보고 페트로프가 중얼거렸다.
"자, 어때요? 위력 확실하죠?"
내가 자랑하듯이 말했지만, 그는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부서진 방탄조끼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파편의 일부를 집어서 한번 움켜쥐었다.
그러자 파각, 소리를 내며 파편이 부서진다. 겉모습은 방탄조끼지만 부서지는 모습은 마치 과자 같았다.
"어떻게 한 거지?"
그가 다른 파편들을 주워 살피며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보고도 몰라요? 방탄조끼를 얼려서 유연성을 확 낮춘 거에요."
모든 사물은 딱딱하게 얼어붙었을 때, 유연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유연성이 없다는 것은 충격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다는 뜻. 즉, 강한 관통력과 충격을 주는 총알과 부딪치면 이렇게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머리가 좋진 않지만 이게 쉽지 않다는 건 알아.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궁금해 할 줄 알았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물어보는 그에게 자랑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거 보이시나요?"
보여준 것은 총신 밑에 달린 손가락 세 개만 한 촉매. 아이자드에게 받은 것을 융화시켜놓은 흔적이었다.
"이게 아주 대단한 물건이거든요. 이 속에 담긴 힘을 응축해서 쏘면, 어지간한 물건은 액체 수소를 맞은 꼴이 되죠. 상점에서 무려 1000 포인트 수준에 거래되는 거라고요."
물론 실제로 1000 포인트는 아니다. 내가 사용한 것은 촉매 중 1/10만 쓴 거니까. 하지만 굳이 그걸 알려줄 필요는 없다.
"거기에 이 마법진들 보이시죠? 이게 다 보석을 녹여서 만든 거예요. 효과는 무려 내구성 강화! 이 총은 아무리 쏴도 열기로 변형되지 않는 데다가, 어지간한 충격에는 상처도 나지 않죠!"
실질적인 물리력으로 환산해보면, 어지간한 절단기 정도는 우습게 씹어 먹는 수준! 게다가 마법진의 효과는 그뿐만이 아니다.
"게다가 총열이 뒤로 제쳐졌을 때. 그러니까 총알을 쏘고 재장전 되는 타이밍, 그 짧은 시간에는 배열이 달라지죠. 그때 발동되는 게 바로 총알에 힘을 응축하는 마법!"
레시의 마법 도구는 꽤 시간을 들여 화살에 천천히 냉기를 집어넣는 방식이었다. 그건 다른 물건이 들어갔을 때의 대비와 마법진이 지속하기에는 무척 좋았다.
하지만 마법진의 지속성만을 생각한 덕분에, 화살에 냉기가 들어가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을 고치기 위해, 마법진을 독특한 구조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바로 이것. 평소 때 총열이 가만히 있을 때는 내구도 강화 효과를 부여하지만, 총열이 자동 장전을 위해 뒤로 가면 다른 마법진이 나타나는 구조!
이것을 통해, 순간적으로 하나의 물체에 강력한 힘을 부여하는 마법진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촉매가 좋아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아니면 이 작은 권총에 사파이어를 주렁주렁 달아야 했을 것이다.
"···그럼 이 총에는 내구도 강화와 얼음 총탄을 쏘는 기능이 들어가 있다는 건가?"
"하나 더 있죠."
나는 탄창 부분을 뺐다가, 구멍에서 5cm 정도 떨어뜨린 다음 손을 놓았다. 그러자 탄창이 빨려 들어가듯 권총에 들어간다. 한 번 더 탄창을 빼고, 이번에는 뒤집어서 손을 놓는다. 탄창도 뒤집혀 장전된다.
탄창이 어떻게 있든 5cm 안에 들어온다면 자동으로 들어오는 마법. 이름은.
"자동 수납(automatic storage). 원래는 책장에다 책을 던지면 알아서 돌아가는 기능이지만, 적당히 응용해서 근처에 있는 탄창을 빨아들이게 했죠. 재장전이 엄청 빨라질걸요?"
얼핏 봤을 때는 무척 편리해 보이는 기능. 그러나 사실 이건, 내가 가격을 뻥튀기하려고 덧붙인 기능이었다.
'이런 것보다는 조준 보조나, 마찰력 약화로 총 자체의 위력을 올리는 게 훨씬 더 좋지.'
면적이 남아서 새긴 기능! 그러나 여기에는 더 강력한 것을 새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의로 자동 수납 마법을 새긴 것이다.
'회사 의뢰에 '최선을 다한다'라는 조건이 붙었으니, 공간을 비울 수는 없어. 그렇다고 너무 좋은 마법을 쓰면 골탕 먹일 수 없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적당히 권총의 기능을 올려주면서, 면적을 메우는 방법.
'애초에 권총은 사거리가 짧고, 보조로 사용하는 무기. 이 기능을 잘 사용하겠다고 탄창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건 낭비야.'
돌격 소총이라면 모를까, 권총으로 쓰기에는 너무 호화스러운 마법.
그럴듯한 기능을 던져주고, 가격을 올려 받으려는 속셈이 여기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걸 당장 페트로프가 알아차릴 순 없다.
"이거 페트로프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물건이라고요. 냉기가 압축된 총알은 사람 몸에 스쳐도 저체온 증이고, 방금 봤다시피 방어구도 무력화시키죠."
일부러 가져온 인형에 총을 쏴서 관통시키고, 속을 벌려준다.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힘이 강한 겉 부분은 거의 이상이 없었지만, 속은 새하얗게 얼어붙은 모습. 나는 그것을 바닥에 떨어트려 깨뜨린다.
"위력 충분하고, 부서질 걱정 없고, 게다가 장전도 편리하기까지! 솔직히 페트로프 씨가 안 사도 상점에 팔면 최소한 본전 이상에요."
당연한 이야기. 기술만큼의 비용을 더 받으니, 포인트 상으로 반드시 이득이 남는다.
'내가 한 말에 거짓은 없어.'
모든 것을 전부 말하진 않았지만,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형태의 수사법은 화자의 마음에 안정을 주어, 일반적으로 거짓말을 했을 때 나오는 반응을 대폭 줄여준다.
게다가 진실과 섞여 있으니, 쉽게 구분하지 못하는 효과는 덤!
나는 페르토프를 골탕 먹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얼마지?"
그런 내 노력을 통한 걸까. 그는 의심하는 기색도 없이 가격을 물었다. 그리고 이 가격이야말로 이 계획의 화룡점정. 나는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1500 포인트!"
턱없이 높은 가격! 물론 일반적인 마법 물품의 가격을 생각하면, 평범한 수준이긴 하다. 하지만 이건 불필요한 기능이 달린 반쪽짜리! 그걸 따져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가격이 셌다.
"세일해 준다고 하지 않았나?"
"1%! 그러니까 15 포인트 깎아서··· 에이, 인심 썼다! 첫 손님이니까 특별 할인으로 1450 포인트!"
마치 마감 세일이라도 하듯이 외친 세일. 50 포인트 내려갔지만, 아직도 가격은 높다. 나는 당연히 망설이리라 생각하며, 그가 더 깎아달라고 조르기를 기다렸다.
"좋아. 사지."
"하핫. 역시 비싸서 사지 못하시는··· 네?"
그러나 결과는 사겠다는 선언.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굳을 얼굴로 물었다.
"저, 적지 않은 가격일 텐데요?"
"그보다 높은 가치를 할 것 같군. 수중에는 400 포인트가량이 전부지만··· 말했던 대로 빚을 내서 사지."
전혀 망설임 없는 말투와 표정. 그리고 곧장 회사에 접속해서 포인트를 대출하는 모습까지. 그냥 허세 부린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당당해 보인다.
마치 이 권총이 정말 그만한 가격을 하고 있다는 듯한 행동.
그가 자존심과 실리 사이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생각했던 내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포인트는 의뢰가 완료되면 갈 거다. 원래 그런 시스템이니까 문제없겠지?"
"어, 네···."
"나도 한번 쏴 보고 싶군. 좀 주겠어?"
"그러죠···."
나는 조금 멍한 기분으로 그에게 총을 넘겼고, 그는 거침없이 벽에다가 몇 발을 쏘곤,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던 대로 벽을 뚫지는 못하겠지만··· 방탄유리 정도는 충분하겠어."
아? 방탄유리? 그건 생각 못 했다. 확실히 저 권총이라면 한 발에 얼리고, 두 발째에 박살 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원거리에서 두 발로 영화 속 '아저씨' 흉내를 내는 게 가능하다.
"정말 좋은 무기를 만들어 줬군. 나중에 포인트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부탁해도 되겠지?"
"네에··· 뭐."
이쪽을 보며 묻는 페트로프.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좋아. 앞으로 너와는 자주 만나겠군. 다음에도 이렇게 부탁하지. 이걸로 의뢰를 완료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시야가 일그러졌다. 그리고 방의 모습으로 풍경이 바뀌자, 나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는 채로 멍청이 중얼거렸다.
"이, 이게 아닌데···"
본의 아니게 그의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만들어 버린 모양이다. 아마 방탄유리 때문에 골머리를 썩인 일이 있었겠지.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기능이 붙을 물품을 저리 흔쾌하게 살 순 없었다.
"그런 거겠지? 내가 한 방 먹인 거 맞지?"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찝찝한 걸까?
나는 알 수 없는 의문에 휩싸인 채로, 돌아온 어머니를 마중했다.
다음 날 아침. 스마트 워치를 확인하니, 별 5개의 의뢰 완료 메세지와 수당으로 건 1450 포인트가 곧장 들어왔다.
'1637 포인트.'
여태까지 쓰거나 얻어서 모은 내 포인트. 그리고 이 정도가 있다면.
'아버지 약을 살 수 있어!'
그러고도 적당한 수준의 포인트를 남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회사 생활에 지장도 없을 터.
나는 곧장 상점에서 약을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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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용도 복합 치료제.
제작자 : 하퀴크란로벡뜨룩
설명 : 값비싼 약제와 회복약을 사용하여, 모든 질병에 치료 효과를 보이는 물약.
가격 : 536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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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가 빠져나가고, 주먹만 한 상자가 나온다. 열어보니, 그 속에는 손바닥만 한 물약 하나가 들어 있었다.
'드디어.'
가장 급한 목표가 해결되었다.
감격을 감추지 못하며, 거실로 뛰쳐나갔다. 그곳에서 아침상을 차리는 어머니 발견했다. 나는 곧장 다가가서, 그릇과 식기를 식탁에 놓는다.
"어머? 네가 웬일이니?"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죠."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놀란 어머니가 살포시 눈웃음을 그렸다. 그리곤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들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뭐가 부탁하고 싶어서 아침부터 움직인 거니?"
역시 어머니. 행동을 훤히 꿰뚫어 보는 듯한 발언에, 잠시 말문이 막힌다. 하지만 내가 부탁할 일은 켕기는 게 전혀 없는 것.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같이 병원에 갈게요."
"병수발을 하겠다고? 그러지 말고 집에서 다른 일은···"
"병수발도 병수발이지만, 아버지 얼굴 좀 보고 싶어서 그래요. 병원에 안 간지 몇 주 됐잖아요."
"너 요즘 알바 한다고 힘들었잖니."
원래 어머니 쪽에서 먼저 해야 했을 말인 병문안. 슬슬 때가 됐는데도 말하지 않으신 건, 그런 이유 때문인 모양이다.
나는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요 며칠 쉬어서 괜찮아요. 다음 알바까지도 시간이 좀 있고요. ···아니, 알바가 아니라 알바 비슷한 거였죠."
"우리 아들 거짓말이 이렇게 서툴러서 사회에 들어가면 어떻게 살까."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걱정해 주신 어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오랜만에 같이 가자."
"네. 밥 먹고 빨리 준비할게요."
숟가락을 놀려 허겁지겁 밥을 넘긴다. 빈 그릇을 싱크대에 담그고 방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자를 챙긴 채, 나는 어머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