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 파견 회사-11화 (11/207)

# 인턴 #

내 당당한 발언에, 냥트이족이 침묵했다. 이해한다. 자신들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상황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간이 살려주겠다고 한 거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수밖에 없겠지. 의심도 들고, 희망도 생기고, 현실을 보며 다시 좌절도 할 거다.

하지만 막을 수 있을 거 같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가옹?"

몰랑드옹의 의문은 당연하다. 그들에겐 이 상황이 절망적일 수밖에 없고, 원군은 나 혼자였으니까.

"들어보시고 결정하세요."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냥트이족의 사냥꾼, 피리옹은 숲을 거칠게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약 30여 명가량의 냥트이족이 뒤를 따랐다.

"피리옹. 그 인간을 믿을 수 있는 거냐옹?"

그런 그에게 말을 건 것은 플라옹이었다. 그와 동갑에, 뛰어난 실력으로 냥트이족 사냥꾼 서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남자. 멋스러운 회색 털을 날리며 묻는 말에, 그는 고민했다.

"···믿을 수는 없다옹."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돌연 종족을 찾아온 인간 때문이었다. 그 인간은 냥트이족이 홍질랑을 막을 수 있다며 호언장담했고, 작전을 알려주었다.

피리옹이 마을을 나선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 작전은 확실히 효과적이다옹."

인간이 제안한 가장 첫 번째 수는, 홍질랑을 습격해 시간을 끄는 거다. 인간이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모한 작전. 하지만 그의 설명에는 일리가 있었다.

-이쪽에서 홍질랑을 습격하면 숫자를 줄일 수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죠.

원래라면 냥트이족을 덮칠 생각만 할 홍질랑들이기에, 이 기습은 정말 생각도 못 할 것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성인들뿐이라면 습격 후에 도망치는 것도 용이하다.

'이쪽은 나무 위로 노닐 수 있다옹.'

냥트이족은 나무 위를 뛰어다닐 수 있었다. 비록 홍질랑도 시간을 오래 들이면 올라올 수 있기에, 안전한 장소가 되진 않지만, 회피수단이라면 충분하다.

'물론, 홍질랑이 바닥에서 쫓아오겠지만옹···.'

오히려 그것은 바라는바. 미끼가 되어서 홍질랑들을 마을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만 있다면, 이 한목숨 아쉬울 건 없었다.

"···나무 열매가 열렸으면 좋았을 텐데옹."

플라옹의 말에 피리온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열매만 있었다면 살 수 있었을 텐데옹."

홍질랑. 정면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무서운 적이었지만, 피하는 걸 전제로 한다면 어렵진 않았다. 냥트이족이 각자 퍼져서 나무 위를 요리조리 도망만 다닌다면, 그들은 지켜만 봐야 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생존 방법이라는 것은 아니다. 홍질랑은 4주 동안 물만 먹어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무에서 내려갈 수도 없는 냥트이족이 버틸 수 있는 건 길어봐야 5일. 그 이상은 탈수 증상이 나타날 거다.

과일이 있다면 먹으면서 버틸 수 있겠지만, 이 시기엔 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면 나는 상관 없다옹."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옹."

플라옹과 피리옹은 서로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나 훈훈한 분위기는 척후조의 보고로 인해 긴장으로 바뀌었다.

"전방에 홍질랑이 있습니다옹."

피리온은 곧장 사냥꾼들에게 외쳤다.

"모두, 나무 위로 올라간다옹! 녀석들의 머리 위에서 기습하는 거다옹!"

그들은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 조심스럽게 홍질랑에게 접근했다. 그들의 후각은 예민했지만, 지금 바람은 미세한 역풍. 아무리 후각이 날카로워도 쉽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냥트이족의 기습은 훌륭한 형태로 들어갔다.

"캐앵!?"

"깨개앵!"

"캥!"

붉은색 털을 가진 덩치 큰 늑대들. 냥트이족의 사냥꾼들은 챙겨온 목창으로 능숙하게 홍질랑을 찔러 들어갔다. 그리곤 결과도 보지 않은 채 바로 나무를 탔다.

그런 그들이 있던 자리에 홍질랑들이 덮쳤다. 아직 고통에 신음하는 동료들이 있었지만, 발톱은 자비 없이, 그리고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찢어발겼다.

홍랑이었다면 어떻게든 동료를 구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홍질랑이 되어, 흉포성이 폭증한 그들에게, 동료는 크게 신경 쓸거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적을 처리하는 게 훨씬 우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홍질랑들의 시선은 나무 위의 냥트이족들에게 쏠렸다. 피리옹은 자신들이 표적인 된 걸 확신하곤, 곧장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선은 뭉쳐서 간다옹! 나중에 지치면 흩어지는 거다옹!"

인간이 말한 부탁은 시간벌기였다. 위험하지 않게 시간만 끌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부탁이었다.

그러나 피리옹과 사냥꾼들은 시간 벌기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홍질랑을 몰고 갈 바에는 같이 죽겠다옹!'

숲의 깊숙한 곳에는 난폭한 괴물도 몇몇 있었다. 평소에는 냥트이족도, 홍질랑들도 가지 않는 위험지역이지만, 지금처럼 공멸을 위해서라면 그보다 좋은 곳이 없다.

원래라면 유인해도 따라오지 않겠지만, 지금의 홍질랑이라면 흉포성을 감추지 못할 터. 피리옹은 홍질랑들이 자신들을 따라, 같이 전멸할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다면 인간의 도움 따위 필요 없이, 냥트이족은 살아남을 것이다.

"녀석들의 발걸음에 맞춰라옹! 우리에게 흥미를 계속 가지게 해야 한다옹!"

"피리옹!"

"무슨 일이냐옹!"

그는 친구의 외침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홍질랑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보통의 1.5배는 크고, 수많은 상처를 가진 녀석을.

커다란 홍질랑의 뒤에는 다른 녀석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절대 앞으로 나서진 않았다. 커다란 녀석이 가만히 있었으니까.

'저 녀석이 우두머린가옹.'

녀석을 죽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는 아쉬움에 녀석을 바라보다가, 섬뜩한 감각에 걸음을 멈췄다. 플라옹 또한 자신의 옆에 서서, 이를 갈았다.

"말도 안 된다옹···."

불길한 예감. 뇌리를 타고 오르는 써늘한 감각이 그에게 경고했다. 그는 홍질랑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멍청히 중얼거렸다.

"대체 왜냐옹."

피리옹이 홍질랑의 우두머리를 바라본다. 우두머리도 그런 피리옹을 보고 있다.

그 상황에서 피리옹이 외쳤다.

"왜 움직이지 않는 거냐옹!"

두 집단은 서로 움직이지 않았다. 본래 쫓아야 할 쪽도, 쫓겨야 할 쪽도, 그저 서로를 마주 봤을 뿐. 어느 누구도 급박한 상황을 만들진 않았다.

아니, 사냥꾼들은 초조해했다. 그들이 생각했던 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홍질랑들이 쫓아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돌연, 우두머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것을 보고, 그들은 최악의 경우를 떠올렸다.

그리고 마치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우두머리가 몸을 돌린다. 그에 맞춰 모든 홍질랑들이 우두머리를 따라 움직였다.

냥트이족의 마을이 있는 곳으로.

"막아라옹!"

피리옹의 날카로운 외침에, 절박함이 담긴다. 사냥꾼들은 내달렸다. 그들의 가장 선두를 달리는 피리옹은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당했다옹.'

홍질랑이 추격을 멈출 줄이야. 본래라면 싸움이 있다면 움직여야 할 녀석들이 등을 돌릴 줄이야. 예상외의 일이다.

'생각보다 통제가 잘 된다옹.'

대장으로 보이는 홍질랑. 홍랑이 아닌 홍질랑이 되었는데도 통솔력이 굳건했다. 게다가 영악했다. 잠시간 멈춰 있었던 시간. 녀석은 나무 위에 냥트이족이 몇 있는지 세었다. 아마 전력이 얼마나 왔는지 판단했을 것이다.

서른. 많지 않은 숫자지만, 결코 적은 숫자도 아니다. 게다가 여기 있는 녀석들은 실력이 절정에 이른 이들뿐. 녀석은 그걸 보았다.

그리고 마을의 습격을 결정했다. 여기 있는 서른의 냥트이족들이 도망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고 약한 이들을 학살하기 위해. '빈집털이'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전략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아주 훌륭한 선택. 그리고 냥트이족에게는 재앙이었다.

'마을은 남아 있는 사냥꾼이 거의 없다옹.'

마을에 남은 전력이라 해봤자, 극소수의 실력자들과 경험적은 젊은이들이 전부다. 피리옹은 그들이 습격을 막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설령 그 인간이 세운 작전이 완벽히 통했다 하더라도, 그건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상황이 악화 되었다. 원래 4시간에 걸쳐 적당히 체력을 안배하며 나아갈 홍질랑들이 뛰기 시작했다.

저들의 숫자가 서른 마리 줄긴 했지만, 마을의 전력은 훨씬 더 줄어들었다. 사냥꾼 조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홍질랑이 마을에 도착하면 냥트이족은 전멸이다.

피리옹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잡아라옹!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옹! 아직 인간이 말한 시간도 못 벌었다옹! 오히려 습격을 앞당겼다옹!"

이젠 모두가 상황을 파악하고, 필사적으로 나무 위를 달렸다. 그러나 그들은 원래 홍질랑 보다 느린 종족. 거기에 나무 위를 달리고 있었으니, 속도가 밀리는 건 필연이었다.

피리옹은 이를 갈았다. 그는 결단을 내렸다.

"내려가라옹! 내려가서 녀석들을 잡으라옹!"

홍질랑을 앞에 두고 내려선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이는 없었으나 그들의 행동엔 망설임이 보이지 않았다.

냥트이족들이 뛰어내린다. 나무 위를 탈 수 있다곤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지상에서 더 빠른 종족. 사냥꾼들은 홍질랑들을 쫓아, 있는 힘껏 내달렸고.

"우우우우-!"

반전한 홍질랑들과 충돌했다.

"캬앙!"

"캿!"

"캬옹!"

압도적인 힘의 차이. 달리던 속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몇몇 홍질랑들을 죽일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냥트이족은 박살 났다.

그렇지만 마을이 습격당한다는 생각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발하며, 손톱을 꺼내 휘두르는 게 전부였다.

"크아, 옹···"

피리옹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그에겐 이미 수많은 상처가 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고자 더 반항을 시도했다.

그런 그의 앞에 홍질랑의 우두머리 녀석이 섰다.

"하핫. 잘 왔다옹. 널 처리하면 이 녀석들도 조금은 발을 늦춰질 거다옹."

그는 헛된 희망과 함께, 자긍심을 세워 대장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당연한 패배.

피리옹 바닥에 쓰러졌다. 너무나 힘들어 일어나지도 못한 채, 바닥에 얼굴을 대고 죽음을 기다렸다.

콰직!

"캬아아앙!?"

그러나 그에게 다가온 것은 죽음이 아닌 고통이었다. 피리옹은 자신의 왼쪽 다리가 부러진 것을 느끼며 신음을 내질렀다.

그건 비단 그만의 일은 아니었다. 옆에서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던 사냥꾼들도,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을 질렀다.

마치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지 않을까? 피리옹은 절망스러운 생각을 떠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 미소 지었다.

"가지고 놀고 싶은 거냐옹? 좋다옹. 놀아줄 테니, 원하는 대로 놀아보라옹."

녀석들이 단번에 목숨을 앗아가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저들이 이쪽을 가지고 놀수록, 시간을 벌 수 있었으니까.

비록 고통에 몸부림치겠지만, 질기게 명줄을 붙잡고 있으면 녀석들의 발목도 붙잡을 수 있을 테니까.

피리옹의 말을 들었는지, 주변에도 비슷한 신음과 실없는 웃음소리가 퍼진다. 그 소리가 적지 않은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피리옹의 생각에 동참했다.

사냥꾼들은 홍질랑들의 비위를 맞춰주겠다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우두머리가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입가에 이빨을 드러내며, 초승달처럼 휜 눈에는 조롱을 한가득 담아. 사냥꾼들을 보고 웃었다.

너무나도 불길한 예감이 피리옹을 엄습한다.

그는 속으로 그것을 부정해 봤지만, 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어디 가냐옹."

홍질랑들이 다시 몸을 돌렸다. 그들은 천천히. 천천히, 마을이 있는 곳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을 힐끔힐끔 보면서. 그들을 한껏 우롱하며.

피리옹은 그제야 깨달았다.

저들이 가지고 노는 것은 맞지만, 그 방식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도망칠 수도, 쫓을 수도 없는 그들을 보며 즐기려 한다는 걸.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는 울분을 토했다. 몸을 억지로 일으켜 외쳤다.

"돌아와라옹! 어디 가는 거냐옹! 너희 상대는 여기 있다옹! 비겁하게 가지 마라옹! 돌아오라옹!"

홍질랑을 쫓아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박살 난 왼발은 그의 의지를 무시한 채, 통증만을 보내왔다. 그는 철퍽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그래도 외쳤다. 신에게 빌듯이 간절히. 정말 간절한 마음을 담아 외쳤다.

"돌아오라오옹!"

그러나 홍질랑들은 웃으며 나아갔다. 하나같이 다리를 다친 피리옹 일행들이 땅 위의 물고기 같이 펄떡거리는 것을 즐기며 질주했다. 그들의 외침은 숲속의 메아리가 되어, 사라졌을 뿐이다.

그렇게 홍질랑들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캬아아아! 갸아학! 캬아아아아앙!"

피리옹은 울부짖었다. 울분과 원망을 담아, 목이 찢어질 정도로 외치며, 바닥을 기었다. 왼발이 끌리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전혀 알지 못한 채, 발톱에 피가 나도록 바닥을 긁었다.

"진정해라, 피리옹."

마치 짐승처럼 울어대던 그를 진정시킨 건, 플라옹이었다. 어느새 부러진 다리에 부목을 댄 그는, 나뭇가지를 피리옹의 다리에 대며 말했다.

"아직 마을이 습격당했다고 정해진 건 아니다옹. 그 인간 녀석이 마법이란 걸 할 줄 안댔으니, 버틸지도 모른다옹."

그건 너무나도 작은 희망. 그러나 머리를 차갑게 식힐 수는 있는 양이었다.

"···알, 았다옹."

그는 얌전히 부목을 감기 시작했다. 주변의 다른 사냥꾼들도, 서로서로 도와가며 치료를 시작했다.

"···."

"···."

"···."

일행 사이에 침묵이 떨어졌다. 그들은 말없이 최소한으로 상처를 돌보며,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능성이라든가, 인간은 하나뿐이라는 생각은 내뱉지 않았다.

말하면 사라질 것 같은 희망에 매달려, 상처를 치료했다.

그리고 불완전하게나마, 걸을 수 있게 되자, 그들은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로서로 부축하며, 어떻게든 움직였다.

정말 아주 기적적인 확률을 가슴에 품고서.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지만, 참극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붙잡겠단 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들은.

기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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