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7. On & 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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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도는 투어가 한국에 오는 경우는 드물다.
외국 가수들의 포스터를 접해본 한국 대중들은 이러한 명제에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인기가 절정 가도를 달리는 이들이 한국에 오는 일은 드물었다.
가수 스스로가 한국에 오고 싶다는 굳은 의지가 있지 않는 이상, 인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면 한국보다 훨씬 알찬 시장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자국에서 하는 투어와 해외에서 하는 월드 투어는 수익구조가 달랐다.
미국의 뮤지션들이 자국 내 투어(혹은 인접한 국가)를 도는 경우에 기대하는 수익은 입장 수익과 광고 수익이었다.
솔직한 말로 이러한 투어는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어둔다’라는 의미로 진행되는 투어가 맞았다.
이미 자국에서 앨범과 음원은 팔만큼 팔았으니, 이제 그 인지도를 바탕으로 공연 수익을 벌어들이자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외 투어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해외 투어는 입장 수익보다는 추후에 들어올 추가적인 수익에 대한 기댓값이 더욱 컸다.
그리고 그 추가적인 수익이란 보통 앨범 판매 수익이었다.
즉, 해외 투어는 아직 앨범을 사지 않은 대중들이 존재하는 곳으로 가서 ‘내 앨범을 사세요.’라고 홍보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공연을 관람한 이들이 ‘이 뮤지션 앨범 사고 싶다’라는 욕구를 들게 할 만한 공연이 최선의 공연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국가가 일본이었다.
일본은 문화 예술에 대한 소비 허들이 낮은 나라였다.
때문에 외국 가수가 일본에서 투어를 진행 한 뒤, 몇 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일본은 진짜 이상한 나라야. 공연을 할 때는 클래식 관람 온 것처럼 가만히 있더니, 공연이 끝나니 앨범이 몇 만장씩 팔린다고.’
일본 특유의 조용한 관객 문화에 질린 뮤지션들은 보통 투어가 끝나고 ‘다시는 일본 안와!’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죽하면 에미넴이 일본에서 라이브를 하다가 ‘니들 클래식 공연 보러왔냐?’라고 대놓고 말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뮤지션들은 추후에 일본 지역의 판매고를 듣고 나서는 어이없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상 재미없는 공연처럼 보고 있다가 몇 만장씩 앨범을 사주니까 말이었다.
반대로,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썩 매력적인 투어 국가는 아니었다.
한국은 문화 예술에 대한 구매 허들이 상당히 높은 나라라서, 좋은 공연을 봤어도 그게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다운 받아서 플레이 리스트에 넣으면 넣었지, 공연을 보고 ‘이 앨범 사야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단 말이었다.
다만 공연 내적인면에서 한국은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서구권과 감성도 완전히 다르고, 언어 사용도 완전히 다른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열정적인 호응과 떼창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관객들의 반응이 열정적이기로는 남미계열의 국가가 최고로 꼽히지만, 일본에 들렀다가 한국으로 온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한국 반응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한국은 수익적인 면에서 매력적인 투어 시장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 뮤지션들의 한국 공연은 짧게는 1회로 끝이 나고, 정말 길어봐야 3회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골든 뉴에라 투어는 아니었다.
골든 뉴에라 한국 투어는 5개의 도시에서 7회의 공연을 예고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공연이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곱 번째 공연이었다.
마지막 공연이라서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라인업이 특별해서 관심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일곱 번의 공연이 전부 매진이 됐으니, 매진이 됐다고 관심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일곱 번째 공연이 관심을 받는 것은, 바로 어떤 ‘다른 공연’과 날짜가 같고, 장소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 Golden Nu-Era Tour
1st. 2012. 01. 10 - Seoul
2nd. 2012. 01. 13 - Seoul
3rd. 2012. 01. 18 - Incheon
4th. 2012. 01. 22 - Daegu
5th. 2012. 01. 27 - Busan
6th. 2012 01. 31 - Gwangju
7th. 2012. 02. 03 - Seoul
서울의 2회 공연으로 한국 투어의 시작을 알리고, 전국을 순회한 뒤 다시 서울에서 마지막 공연을 갖는 골든 뉴 에라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 Oh! 카드 슈퍼 콘서트
2012. 02. 03 ? 서울 오경 카드 슈퍼홀
오경 카드의 슈퍼 콘서트 일정과 겹쳐 있었다.
‘오? 이게 뭐야. 시기가 완전 딱 이네?’
상현이 월드 투어라는 비단옷을 준비하면서 했던 재미있는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에 한국의 대중들은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복수는 나의 것.
-이상현 이 새끼 변태 아니냐. 집요해도 너무 집요한데.
-근데 나 같아도 할 수 있으면 하겠다. 니들은 대기업에 횡포 당하면 잊을 수 있냐.
-랩쟁이들은 건들면 안 되겠다. 집요한 놈들임.
이런 관심들 속에서 마침내 2012년 1월 10일, 골든 뉴에라 투어의 첫 번째 한국 공연이 시작되었다.
***
오경 그룹은 이상현에 대해 손쓰기를 포기한 지가 좀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현이 와 로 오경 미디어가 2년 동안 벌어들인 이윤보다 더 큰 돈을 벌어들였을 때부터였다.
물론 매출액으로 들어가면 개인이 기업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익 쉐어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이상현은 당당하게 1인 기업이라고 칭할 수 있는 인물이 된 것이었다.
또한 돈도 돈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상현이 미국에서 가진 파급력이었다.
오경은 이미 세계적인 기업이지만 그것은 전자나 자동차 등의 공산품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서비스업이나 금융, 통신업 수출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 상태였다.
그래서 이상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소위 말하는 ‘깽값’을 감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대기업이 개인에 대해 소극적인 행동 노선을 정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이미 손을 쓰기에 이상현이 너무 큰 존재가 되어버렸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지.’
오연주는 오경 미디어의 사장으로서 이러한 회사의 방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약간의 호의와 동정, 그리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만났던 18살의 고등학생이 어느새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의 힘은 대중들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었기에, 오경 그룹이 모든 힘을 동원했다면 888 크루는 물론이고 H&R INC조차 골든 뉴 에라 투어를 한국에서 개최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아주 간단히 생각해서 모든 공연장이 골든 뉴 에라 투어의 대관을 거부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얻는 게 없지.’
얻는 건 딱 하나였다.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는 점.
그러나 잃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이제 이상현의 등 뒤에는 H&R INC가 있으니까.
만약 H&R INC가 한국의 모든 공연장에 대한 대관을 거부당했다면 하델 레인즈는 가만히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그래미 어워드도 후려치는 사람이 활동 반경이 다른 오경 그룹과의 싸움을 피할 리가 없었다. 만약 진다고 해도, 이상현은 다시 미국으로 가면 그만이었으니까 말이다.
한 마디로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지만, 이겨도 얻는 게 없고 잃기만 하고, 만에 하나 진다면 망신도 개망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상현이 오프라 윈프리쇼에서 오경 그룹에 대한 ‘불쾌한 발언’을 했을 때도 유야무야 넘어갔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상현이 먼저 싸움을 걸었다. 그것도 한국에서.
카드사에서 경쟁적으로 진행하는 콘서트들은 막대한 적자를 예상하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욘세, 휘트니 휴스턴, 어셔, 스티비 원더, 스팅 등등의 슈퍼스타들이 섭외되는 것이었다.
기업이 적자를 상정하고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러한 콘서트는 ‘돈’은 잃지만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가져가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상현은 그 상응하는 뭔가를 빼앗으려하고 있었다.
관심과 이슈, 혹은 브랜드 가치 따위의.
때문에 오경 그룹은 심기가 크게 상했고, 오경 미디어의 오연주 사장 역시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다.
아니, 쓰고 있는 척을 했다.
그녀가 있는 곳이 오경 그룹을 이끄는 이들과 함께하는 임원회의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예매 취소가 일어나긴 했지만 예매율이 68%로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닙니다. 공연당일이 되면 아마 75%이상의 좌석이······.”
“그래서 전년도 예매율은?”
“그게······ 백퍼센트였습니다.”
“그 전년도는?”
상무보의 질문에 상무와 전무가 인상을 썼고, 오랜만에 부하직원 체험을 하게 된 운 없는 부장이 쩔쩔매며 대답했다.
“배, 백퍼센트였습니다.”
“한 번이라도 백퍼센트가 아니었던 적이 있나?”
“2007년과 2008년의 공연 때······.”
“그때는 슈퍼콘서트가 아니었지. 국내 가수들로만 진행해서 손익분기점과 큰 차이가 안 났지 아마?”
“······.”
“그리고 그때도 90%가 넘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틀렸나?”
“마, 맞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전무가 말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거요? 새파란 놈이 날뛰는 걸?”
골든 뉴에라 투어는 아시아 일정을 조금 늦게 발표했다.
서구권 투어가 절반정도 진행이 됐을 때 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상현은 오경 카드의 슈퍼 콘서트가 완전히 픽스되는 상황을 기다린 것 같았다.
이번 오경 카드 슈퍼 콘서트에는 마룬 파이브와 레이디가가가 라인업으로 픽스가 되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의 슈퍼스타가 픽스된 이상, 일정 조정은 불가피했다.
마룬 파이브와 레이디 가가가 인기가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단지 파이브식스와 H&R INC 소속 뮤지션들이 인기가 너무 많아서, 같은 돈을 지불한다면 한국 대중들은 골든 뉴 에라 투어에 더 끌릴 것이란 말이었다.
이상현이야 한국에서 쭉 활동하겠지만, 이상현 못지않게 인기가 있는 켄드릭 라마나 제이콜은 언제 또 한국에 올지 모르니까.
‘그런데 이건 이상현이 H&R INC를 완전히 주도하고 있다는 건데······. 너무 심한 비약 아닐까?’
하델은 매번 ‘파이브식스가 내 열정에 불을 붙였다.’라고 말했지만, 외부적으로는 슈퍼 매니저인 하델 레인즈가 언더그라운드에 묻혀 지내던 파이브식스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도 있었다.
오연주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회의 전에 이번 일에 대해 미리 고심했던 부장이 입을 열었다.
“경찰을 이용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경찰?”
“미국의 래퍼들은 대부분 대마초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가사에도 공공연히 밝히기도 하죠. 그러니까 경찰을 이용해서······.”
부장의 말에 오연주 사장이 입을 열었다.
“체류외국인에 대한 수사권이야 그렇다고 쳐도 한국에 와서 안했으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모발 검사는 6개월이 지나도 남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마가 합법적인 미국의 주에서 6개월 전에 했다고 하면 어쩔 거죠? 그리고 마룬 파이브나 레이디가가가 대마초를 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는 없죠. 이건 자칫 잘못하면 다음 슈퍼콘서트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뮤지션이 한국에 공연을 왔다가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은 금세 퍼져나갈 테니까요.”
“으음······.”
오연주의 말에 임원들이 침음성을 내밀었다.
잠깐 부장의 말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오연주 사장의 말을 들으니 그것도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연주 사장은 분위기의 변화를 보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회의는 지지부진해졌다.
사실 이 정도까지 일이 진행된 이상, 어떤 수를 쓰더라도 골든 뉴 에라 투어를 막는 일은 요원해보였다.
오연주 사장은 자연스럽게 마무리 되는 회의를 지켜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렸다.
어차피 이상현이 무슨 짓을 해도 오경 그룹은 잘 돌아간다. 매년 성장할 것이고, 매년 더 많은 돈을 쓸어 담을 것이 분명했다.
재벌가의 오너인 자신조차도 문득문득 ‘나도 일개 나사일 뿐인 게 아닐까’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공룡그룹이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그녀의 삶은 나사로 태어나서 나사로 끝나는 것일지도 몰랐다. 단지 남들과 다른 점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핵심부품에 박힌 나사라는 것뿐.
그래서 오연주는 자신이 평생 해온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 이상현은 만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많은 것을 해준 건 아니지만, 그리고 그에게 해준 일들이 전부 그를 위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상현이 음악에는 자신의 지분도 조금은 있었으니까.
그 지분이란 1%, 혹은 그 아래일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의 행동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는 착각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내가 나이를 먹었나?’
오연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슬쩍 웃었다가 재빨리 웃음을 감췄다.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서울의 한편에서는 골든 뉴 에라 투어의 첫 번째 공연이 진행 중이었고, 또 한편에서는 그 투어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도 상현과의 인연이 이어진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상현이 회귀 이후 이뤄낸 가장 큰 변화는 음악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끈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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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se 47. On & On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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