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98화 (298/309)

< Verse 46. Rapstar >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복잡한 인간관계를 약물로 해결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때문에 커리어 초창기에는 마약류의 약물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있었고, 중반에는 마약은 끊었지만 그 대가로 엄청난 알콜 중독에 시달렸고, 마지막으로 커리어의 마무리를 죽음으로 끝냈다.

27살에 요절하며 27클럽(27살에 죽은 천재 뮤지션들)에 가입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에이미 와인하우스란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곡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활원에 가기 싫다’라고 소리치는 Rehab(재활원)이었다.

Rehab은 앨범 이 미국에 정식 발매되기도 전에, 라디오 에어플레이와 인터넷 다운로드만으로 빌보드 팝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슈퍼싱글이었다.

They tried to make me go to rehab

(그들은 날 재활원에 보내려고 했지)

But I said ‘no, no, no’.

(하지만 난 싫다고 말했어.)

이 노래를 잘 모르는 이들도 ‘No, No, No'를 듣는 순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었다.

그만큼 유명한 곡이었으니까 말이다.

때문에 상현의 등장과 함께 Rehab이 들리기 시작하자, 웸블리 스타디움을 찾은 수많은 관객들이 숨을 죽였다.

켄드릭은 You Know I'm No Good으로, 제이콜은 Love is a Losing Game으로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대한 완벽한 추모곡을 선보였다.

그들의 랩은 완벽했고, 가사 역시 어설프게 유치한 찬양이 아니라, 최대한의 진심과 애도를 담고 있었다.

때문에 관객들은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웠다.

녹음된 사운드만으로도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래퍼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엄청났다.

그러니 만약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죽음을 맞이하는 대신 이 무대에 올랐다면, 얼마나 황홀한 무대를 선보였을 지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파이브식스의 차례였다.

천만장이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린 래퍼.

동양인이라는 약점을 오직 실력으로 극복한 천재.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랩스타.

엄청난 수식어가 붙는 래퍼가 보여줄 무대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린 것이었다.

그러나 수식어의 화려함과는 달리 공연의 시작은 아주 담담했다.

무대 중앙에 가만히 선 파이브식스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 다였다.

특별히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니었다.

아무런 기교 없이, 담담하고 단순하게 멜로디 라인만 따라가고 있어서 가창력의 유무를 판단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그 단순함 안에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와인하우스의 Rehab과 파이브식스가 무대 위에서 부르는 Rehab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내며 사람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역시 파이브식스.’라며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귀빈석에 앉아있는 음악 산업 종사자들의 반응은 단순한 감탄으로 끝나지 않았다.

‘허, 이건 미치겠군.’

노엘 갤러거는 자신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로 파이브식스의 노래에 빨려 들어갔다.

그는 지금 파이브식스가 보여주는 말도 안 되는 흡입력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바로 진심이었다.

진심의 전달이었다.

‘노래에 진심을 담아라.’라는 명제는 너무 뻔하고, 식상하고, 오글거리는 명제였다.

그래서 꽤 많은 뮤지션들이 진심 같은 건 다 허상이고 그냥 잘 부르면 되는 거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굉장한 히트를 기록한 메이저 가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노엘 갤러거는 단순히 히트를 친 가수가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들 중에 진심이란 단어를 비웃는 이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오히려 아주 어려워했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나중에는 안다고 착각하고, 종래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게 노래에 감정을 담는 법이지.’

무수히 많은 전설들이 남겼던 말.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가 잘 불러진 노래라서 명곡이 됐을까?

드러머인 돈 헨리가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들보다 노래를 잘 불렀을까?

비틀즈는 또 어떻고?

그들의 Yesterday는 지금 들으면 아주 쉬운 노래였다. 기교적으로는 연습할 부분조차 찾기 힘든 이지 테크닉-송이었다.

그러나 예스터데이의 위대함은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했지만 원곡을 뛰어넘는 이들도 없었다.

이게 바로 가창력이란 기술성과 궤를 달리하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파이브식스가 그걸 선보이고 있었다.

‘내가 틀렸군.’

노엘 갤러거는 독설로 유명한 만큼, 성격 자체도 꽤 냉소적인 편이었다.

때문에 그는 파이브식스의 노래를 듣고 그의 노래가 가진 말도 안 되는 딜리버리가 운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초심자의 행운 덕분에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데뷔 직후에 스타덤에 올랐다가, 연구를 거듭하면서 실력이 퇴보하는 이는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파이브식스는 진짜배기였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저 나이에? 그것도 래퍼가?’

Yes I've been black,

(그래, 내 모습은 암담했었지)

but when I come back

(그러나 내가 돌아올 때면)

You will know, know, know.

(당신들은 알게 될 거야)

I ain’t got the time

(내가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코드에 맞춘 화음을 넣는 것도 아닌데, 완벽하게 맞물리는 노래 소리가 계속되었다.

상현은 그 사이로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원래부터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한국의 에이미 와인하우스라고 불리던 스타즈 레코드의 김유화에게 감탄했고, 힙합 더 바이브에서 배틀을 할 때 경계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좋아한다는 것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Rehab의 가사가 꼭 자신의 ‘회귀’란 것을 투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Rehab의 가사처럼 상현의 과거는 암울했었다.

그러나 돌아왔고, 이제는 전 세계에 그가 새롭게 보내는 시간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그동안 상현을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그의 가사 전달력에 감탄했고, 감정을 정제하지 않고 통째로 건네는 방법에 경악했었다.

‘No Color’가 전달했던 메시지는 피부색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비슷하다는 내용이었다.

빈민가의 흑인들이 빈 총구라도 잡아야지만 잠에 들 수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각자의 생존을 위한 빈 총구가 있는 법이었다.

상현은 분명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걸 듣는 이들이 공감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반대였다.

그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Rehab을 부르고 있었지만, 그가 가고 싶지 않은 ‘재활원’은 과거였다.

오직 돈을 위해 달려갔던 무심하고 냉혈 했던 그가 살던 곳이었다.

그 순간 비트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곧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이제 남은 비트 위로 파이브식스의 랩이 쏟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선 켄드릭이 그랬고, 제이콜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비트가 커지고, 상대적으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목소리는 줄어들었지만, 노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Rehab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캐치할 수 있는 크기의 노래가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상현의 랩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재활원이 싫고, 나 역시 재활원이 싫지

뭔가에 중독된 상태, 그건 모든 이의 현실

가정해봐, 만약 삶이 두 번이라면

우리가 남기는 것들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상현의 랩은 켄드릭이나 제이콜과 다르게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죽음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노래는 아니었다.

대신 그녀의 삶에 자신의 삶을 투영한 채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죽었지만 그녀가 만든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죽음을 추모하기보다는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존경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인생은 한 번뿐, 그래 한 번 뿐인 인생

하지만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야

뭔가를 남겼다면, 당신이 노래를 불렀다면,

글을 썼다면, 가치는 여전히 세상을 떠돌아

원래 상현은 복잡한 방식으로 주제를 전달하기보다는, 쉬우면서도 딱 들어맞는 비유를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이번 Rehab은 좀 달랐다.

가사가 특별히 어렵게 쓰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쉽게 쓰인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대중에게 받치는 노래가 아니라 에이미 와인하우스에게 받치는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가사에 녹아 있었고, 상현이 회귀 이후로 느낀 감정들도 섞여있었다.

죽음 이후에는 비밀이 없으니까.

그러니 지금 이 무대는 장례식이 아냐

더 많은 가치를 삶에 부여하는 중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노래를 듣길 원하고,

지금 내 랩 뒤에도 흘러나오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 새로운 방식은 당신과 함께 만든 것.

새로운 가치. 새로운 방식.

그럼 여전히 살아있는 거지.

상현의 랩이 말하듯이, 아직까지도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래는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현은 그녀의 목소리 위로 랩을 하고 있었다.

사실 사람의 목소리를 비트 삼아 랩을 하는 것이 그렇게 신선한 시도는 아니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릴 웨인의 아밀리(A-Milli)역시 ‘아밀리, 아밀리, 아’가 반복되는 목소리 위에 랩을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노래’ 그 자체에다가 랩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언더그라운드까지 뒤져본다면 이런 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메인스트림까지 올라온 노래들 중에는 없었다.

지금껏 목소리 위에다 랩을 한 노래들은, 반드시 목소리가 일정한 소리를 가지고 루프되는 곡들이었다. 그러니까 목소리란 소스를 특별히 여기지 않고, 수많은 악기 소스처럼 취급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현은 분명히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Rehab 위에다가 랩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랩은 놀랍도록 완벽하게 노래와 맞아 떨어지며, 전혀 새로운 음악을 형성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오늘 공연을 찾은 수많은 프로듀서들과 뮤지션들은 놀라움의 연속을 경험하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은 ‘묘기’였다.

노래에는 노래 고유 멜로디가 있고, 음역대가 있고, 발음이 있고, 가사에 담긴 의미가 있었다.

그에 반해 랩은 멜로디 없이, 플로우와 라이밍만으로 의미를 이어가며 그루브를 형성하는 음악이었다.

두 장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청자의 만족성을 충족시키는 예술이었다.

그러니 완성된 노래 위에 랩을 불러서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빵과 치즈를 합쳐서 늘어나는 빵을 만들겠다는 것과 같았다.

아니면 바위와 물을 합쳐서 흘러 다니는 바위를 만들겠다는 것과 같았고.

설령 어설프게 해낼 수 있다고 해도, 1 더하기 1이 2가 되는 것이 아니라, 0.1 정도가 되는 결합일 것이었다.

백사운드로 깔린 노래가 좋다면, 그 노래에 청자들의 집중이 분산될 것이니까.

반대로 백사운드로 깔린 노래가 좋지 않다면 굳이 그런 노래를 깔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나 어쨌든, 파이브식스는 해냈다.

그것도 1에다가 1을 더해서 2 이상을 만들어냈다. 10 혹은 100까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목소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입혀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새로운 가치가 생성됨에 대한 증명을 위해서 말이다.

‘놀라워.’

하델 레인즈는 지금의 노래가 들어도 들어도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는 상현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이제 어느 정도 재능의 범위를 인지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상현이 이번에 보여준 Rehab은 재능과, 감각과, 화성학적인 지식까지 필요한 작업이었다.

랩이란 카테고리보다는 현대예술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게 더 어울리는 시도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단 하루 만에 해낸 것이었다.

‘제이지가 2주 만에 The Blueprint를 만들어냈다면, 상현은 하루만에 Rehab을 만들어냈군.’

대중들의 감탄과 업계 종사자들의 경악 속에서도 상현의 랩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의 랩이 멈춘 것은 원곡의 후렴이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하늘에 닿을 수 있게, 함께 불러주시겠어요?”

상현의 요청에 뉴 웸블리 스타디움이 처음으로 대중들의 목소리로 뒤덮였다.

-They tried to make me go to rehab

-But I said, No, No, No

***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대한 완벽한 추모공연으로 시작된 골든 뉴에라 투어의 영국의 공연은 9만 명의 대중들을 녹초로 만들며 끝이 났다.

오늘 공연을 찾은 사람들은 왜 H&R INC와 골든 뉴에라가 끝없이 비행하는지 알 수 있었다.

왜 파이브식스가 천만장을 판 앨범을 만들고도, '그의 라이브를 경험하지 않았으면 그의 노래를 들은 것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탄을 표현한 것은 대중들뿐만이 아니었다.

오랜 만에 무대 아래에 자리한 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엘 갤러거. 오늘 공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자의 질문에 스태프 통로로 공연장을 빠져나오던 노엘 갤러거가 대답했다.

“미친 새끼들.”

노엘 갤러거의 답변은 'Crazy Rapstar'라는 단어로 순화되서 다음날 신문을 장식했다.

***

< Verse 46. Rapstar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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