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96화 (296/309)

< Verse 46. Rapstar >

***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그렇듯, 상현에게도 영국은 신사의 나라, 축구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막상 영국에 도착하고 나서는 또 다른 인식이 생겨났다.

바로 비와 안개의 나라였다.

분명 오전에는 날씨가 좋았던 것 같은데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비가 왔고, 아침부터 안개가 잔뜩 낀 날은 거의 100%의 확률로 비가 오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인지, 지금까지 거쳐 온 투어 일정에는 야외 공연이 제법 포함되어 있었는데, 영국은 야외 공연 일정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불만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골든 뉴 에라 투어의 선택을 받은 영국의 공연 장소들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하고 싶다고 문의를 넣고, 수없이 오퍼를 넣어도 그쪽에서 ‘No’라고 말하는 순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곳들이었다.

영국 투어의 스타트를 알릴, 9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뉴 웸블리 스타디움(New Wembley Stadium)이 특히 그랬다.

“우와…….”

“엄청 큰데?”

상현을 비롯한 H&R INC의 멤버들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공연의 드라이 리허설을 위해 뉴 웸블리 스타디움을 찾았다가 그 규모에 압도되었다.

1KM의 둘레를 가진 크기도 엄청났지만, 9만개의 좌석을 악천후로 보호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돔과 600대의 텔레비전을 합쳐놓은 크기의 대형 스크린 2개를 갖춘 ‘축구의 성지’는 그들이 지금까지 만나온 어떤 장소보다 화려했고, 웅장했다.

뉴 웸블리 스타디움의 거대함을 더 쉽게 설명하는 방법으로는, 경기장 내에 화장실이 2618개가 있다는 말로  충분했다.

그러나 골든 뉴 에라의 공연 장소로 결정됨으로써 이제 뉴 웸블리 스타디움은 ‘보는 장소’가 아니라 ‘보고 듣는’ 장소로 바뀌게 되었다.

때문에 화려하고, 멋진 게 다가 아니었다.

“하델. 지붕을 완전히 닫을 수 있나요? 보기에는 안 될 것 같은데.”

“안 돼. 애당초 부분 개폐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야. 완전히 닫을 수는 없어.”

“그럼 소리가 울리는 게 아니라 위쪽으로 새겠는데요? 잔향이 전혀 없을 거 같은데 랩 퍼포먼스에서 중요한 공감각이 전달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상현의 질문에 잠깐 생각하던 하델이 질문으로 답했다.

“지금까지 웸블리 스타디움을 매진시킨 공연은 3번뿐이었어. 그 세 번의 주인공이 어떤 가수일 것 같아?”

“글쎄요? 마이클잭슨, 비틀즈?”

“뉴 웸블리 스타디움 개장년도가 2007년인데 어떻게 비틀즈가 왔겠어? 마이클잭슨은 원래는 2009년에 올 예정이었지.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그럼 누구에요?”

“메탈리카, 롤링 스톤즈, 뮤즈. 사실 이중에서 완전 매진을 시킨 건 뮤즈뿐이고, 메탈리카와 롤링 스톤즈는 좌석과 입석을 전부 이용한 건 아니었어.”

“그런데 그게 왜요?”

상현이 하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하델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한 팀 더 있지. 골든 뉴 에라.”

하델의 말처럼 이제 <웸블리 스타디움을 매진시킨 가수>란 기록에 골든 뉴 에라의 이름이 새겨지게 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1만 5천 개의 입석과 7만 5천개의 좌석을 전부 매진시켰다. 이것은 웹블리 스타디움이 콘서트 용도로 이용될 때 수용할 수 있는 최대 관객 규모였다.

물론 골든 뉴 에라 팀을 한 팀의 가수가 아니라 레이블 전체로 보는 영국 평론가들이 있긴 했다.

그들은 이번 공연이 연합공연이기 때문에 웸블리 기록관에 골든 뉴 에라 팀의 이름이 올라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론가들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번 골든 뉴 에라 투어가 2007년 이후로 처음 나오는 웸블리 스타디움 전석 매진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상현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하델, 혹시 지금 말 돌리시는 거예요? 사운드가 완벽하지 않아서 자긍심을 고취시키려는 그런 꼼수? 장비적인 결함을 너희의 열정으로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열혈 메시지?”

상현의 말에 하델이 콧잔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끝까지 들어. 그럼 이러한 메탈리카, 롤링 스톤즈, 뮤즈, 골든 뉴에라의 공통점이 뭘 것 같아?”

“전석 매진이라면서요.”

“하나 더 있어.”

“잘생긴 외모의 가수가 있다는 것?”

“……무대 제작사가 같다는 거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제작사. England Pro Sound.”

“아?”

“우리 스태프들은 이렇게 크고, 반개폐형식인 공연장을 제작해본 적이 없어. 설령 있다고 해도 그게 뉴 웸블리와 완전히 같은 형태는 아니겠지. 그럼 이곳의 전문가들을 부르면 되잖아?”

상현도 888 크루의 단독 공연을 기획하면서 외주 업체에 무대 제작을 맡겼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4년이 흐른 지금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제작사 E.P.S에 외주를 맡기고 있었다.

“한국에서 레이블을 운영하던 버릇 좀 내려놔. 넌 랩만 잘 하면 되는 거야. 그게 9만 명의 관객들이 원하는 바이고.”

“Yes Sir!”

상현이 하델에게 경례를 붙였다.

상현은 하델이 내려준 랩이나 잘하라는 임무를 완수할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리허설을 끝내고 들린 레스토랑에서 갑작스런 소식을 듣는 순간 세상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2011년 9월 초.

뉴 웸블리 스타디움의 무대를 꾸며줄 히든카드,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가 사망한 것이었다.

***

영국민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가수를 꼽으라면 아마 수많은 가수들의 이름이 거론될 것이었다.

사람의 취향은 가지각색이고, 각자 좋아하는 노래의 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안에는 반드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이름이 높은 순위로 자리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가수의 범위를 ‘여성 가수’로 한정하면 아델(Adele)과 함께 와인하우스가 투톱을 이룰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천재였다.

흔히 죽은 뮤지션에게 붙는 애도가 담긴 수식어가 아니라, 그녀는 살아있을 때부터 천재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단 2장의 앨범으로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됐으며, 2008년에는 그래미 어워드의 4개 본상 중 3개를 휩쓸며 5관왕에 올랐었다.

직설적이고, 자기비하적이며 자조적인 그녀의 가사는 ‘소울 음악과 힙합 가사의 결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고, 덕분에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래퍼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기로 유명했다.

상현 역시 다른 팝 보컬들은 잘 몰라도,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대해서는 제법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앨범도 소장하고 있었고.

그러나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2011년에 사망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할 도리는 없었겠지만.

“사인은 뭐래요?”

“자살이나 타살 정황은 없고, 약물 중독인 것 같다는데……. 정확한 소식은 기다려봐야겠지.”

“공연은 어떻게 하죠?”

“일단 진행해야지.”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특히 좋아하고, 한 무대에 선다는 것에 흥분해있던 제이콜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아주 어렵게 섭외된 가수였다.

전 세계를 도는 골든 뉴 에라 투어에 섭외된 가수는 총 50명이 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들게 섭외된 가수가 그녀였다.

본인의 투어도 시작했다가 알콜 중독 때문에 취소하기를 반복하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섭외하기 위해 하델이 들인 노력은 정말 엄청났었다.

사실 골든 뉴 에라 투어는 게스트가 없어도 충분한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투어였다.

게스트 한 명 없이 진행했어도 지금 만큼의 티켓을 팔았을 것이고, 지금 정도의 관심을 받았을 것이었다. 오히려 아무 도움 없이 이루어낸 결과라며 더 각광을 받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델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위대한 뮤지션들을 섭외하는 것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바로 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같은 DVD를 통해서, 2011년에 Golden Nu-Era가 가졌던 재능과 파급력을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후대에 전달하고 싶었다.

파이브식스, 제이콜, 켄드릭 라마, 스쿨보이 큐, 디제이 스탠다드 등등…….

지금 눈앞의 뮤지션들이 얼마나 위대했던 존재들이었는지를 말이다.

‘영원한 록스타.’

상현이나 켄드릭, 제이콜은 정말로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았지만, 하델은 H&R INC가 그래미 어워드와 루비콘 강을 건넌 사이가 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미 어워드의 평가가 그들의 음악적 자존감보다 중요해서 그렇다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다만 10년이 흐르고 50년이 흐르면 과거의 영광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기록’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옛날 사람이라 그럴 지도 모르지.’

저들은 이미 음악만으로 완성되는 존재들이었지만, 하델은 매니저로써, 또 한 사람의 팬으로써 위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만 찾아다니면서 함께하는 무대를 기획한 것이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지금처럼 안타까운 일을 경험하게 된 것이었고.

하델의 생각에,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죽음은 골든 뉴 에라 투어에게 결코 가벼운 사건은 아니었다.

우선 그녀와 함께하는 무대 자체가 꽤 많았다.

예를 들면 상현의 Lonely Road Part 2는 원래 멜로디와 함께하는 노래였다. 그러나 영국 무대에서는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여성 보컬을 맡아주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상현뿐만 아니라 켄드릭이나 제이콜의 노래에도 한 곡씩 피쳐링이 있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공연 분량은 솔로 곡으로 따지면 4곡이었고, 콜라보레이션 무대까지 생각하면 무려 7곡이었다.

이것은 꽤나 치명적인 문제였다.

9만 명을 모아놓고 하는, 한 곡 한 곡이 중요한 무대에서 7곡의 시나리오가 틀어진다는 것은 무대를 다시 짜야한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이제 자정이 지나서 공연이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의 죽음 그 자체에 있었다.

힙합 공연은 다른 공연에 비해서 좀 더 축제 형식에 가까웠다.

물론 상현이나 켄드릭, 제이콜이 고평가를 받는 것은 ‘흥을 낸다’라는 조건 하에서도 굉장한 음악성과 수준 높은 가사를 선보이기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대중들이 힙합 공연을 찾아올 때는 높은 텐션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이러한 무대에 ‘라인업 뮤지션의 죽음’이란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모양새가 이상해질 수밖에 없었다.

몇몇 대중들에게는 마치 장례식장에서 흥을 내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뮤지션이 영국에서 매우 사랑받는 인물이고, 오랜만의 무대에 많은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던 인물이라면.’

하델은 7곡이란 물리적인 제약과,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죽음이란 심리적인 제약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골똘히 고민했다.

물론 대중들도 골든 뉴 에라 투어가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을 이해해줄 것이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월드 투어가 한 번 일정이 꼬이면 얼마나 복잡해지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어를 총괄하는 프로듀서의 입장에서는 꽤 골치아픈 상황인 것은 틀림 없었다.

그때 상현이 입을 열었다.

“하델. 그럼 와인하우스와 함께 하기로 한 곡들은 펑크가 난 건가요?”

“지금 원곡의 주인들을 불러 모았어. 멜로디와 나탈리는 지금쯤 영국행 비행기를 탔을 거야. 머치는 일정상 불가능하다고 해서 켄드릭의 무대는 어쩔 수 없이 AR을 까는 수밖에 없겠지.”

나탈리는 제이콜의 앨범에 피쳐링을 할 뉴욕 출신의 여성 보컬이었고, 머치는 켄드릭의 앨범에 피쳐링을 한 남성 보컬이었다.

“그럼 와인하우스의 솔로곡은요?”

“이제부터 고민해봐야지.”

“이건 어때요? 오프닝을 와인하우스의 곡으로 하는 건?”

“누가 불러?”

“뮤직비디오를 틀어야죠.”

상현의 제안에 하델이 당황했다.

“오프닝을 뮤직비디오로 하자고? 그것도 우리 것도 아니고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것을?”

“문제가 되나요? 켄드릭 네 생각은 어때?”

“그녀를 샤라웃 해야 한다면 그게 나을 것 같은데? 죽음이란 무거운 거야. 우리가 신나게 놀다가 그녀를 언급하는 그림은 별로 좋지 않아.”

“음……. 좋아, 일단 말 해봐.”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래들은 자조적이며, 자기비하적이고 때로는 자학적이다.

때문에 하델의 생각에 와인하우스의 노래로 오프닝을 시작하면 그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그녀가 직접 불렀다면 어렵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죽음이 함께 걸쳐있어서 문제가 됐다.

그러나 하델은 상현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상현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어찌 생각하면 아주 원론적이고 뻔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켄드릭이나 제이콜도 당연하다는 듯이 상현과 비슷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원론적이고 뻔한 방법을 택할 수 있는 뮤지션들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었다.

“난 모르겠어. 그게 가능하다면 맘대로들 해.”

“방금 발언은 제작 책임자로써 실격 아닌가요?”

“꼬우면 해고하던가.”

골든 뉴 에라 투어가 시작된 이후로 가장 바쁜 사람은 하델이었다. 그는 H&R INC 멤버들의 노래를 거의 대부분 외우고 있었고, 무대 제작부터 리허설, 본 무대까지 간섭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은 아니었다.

그냥 뮤지션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델이 모든 걸 뮤지션들에게 맡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공연 날이 밝았다.

오후 7시.

우중충한 안개가 낀 하늘을 맞이하며 골든 뉴에라 투어의 웸블리 스타디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 Verse 46. Rapstar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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