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95화 (295/309)

< Verse 46. Rapstar >

***

긴 침묵을 깨고 에미넴의 복귀를 알렸던 는 훌륭한 앨범이었고, 상현의 를 제외하면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랩 앨범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중들의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앨범이기도 했다.

3AM 같은 노래들은 지나치게 하드코어했고, 가사에는 슬림 쉐이디의 익살스러운 면은 사라지고 싸이코패스적인 면모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에미넴의 랩 실력은 여전하지만, 그가 약물 중독과 프루프의 죽음으로 심리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몇 달 뒤, 이러한 평가를 단번에 뒤집어버리는 싱글이 공개되었다.

바로 에미넴, 릴웨인, 칸예 웨스트가 피쳐링을 맡은 드레이크(Drake)의 포에버(Forever)란 곡이었다.

포에버에서 에미넴은, 그동안 동등한 위치로 평가받던 칸예 웨스트와 릴 웨인을 무참히 짓밟았으며, 커리어를 끌어올리고 있던 핫 루키 드레이크를 좌절시켰다.

그만큼 에미넴의 벌스는 굉장했다.

굉장하다는 표현이 부족했다.

그래서 에미넴이 후일 이런 가사를 쓴 것이었다.

But Jesus, I can just see why people quit callin' me to do features

맙소사, 왜 사람들이 나를 피쳐링이나 BET 사이퍼에

And them cyphers on BET cause if I wasn't me

부르지 않는지 이해가 돼, 내가 다른 래퍼였다면

I probably wouldn't want to play with me neither, shit

나도 나랑 같이 곡하긴 싫을 거 같아, 젠장

이후 칸예 웨스트는 AMA 시상식에서 취한 채로 무대에 올라가 주정을 부렸다.

‘에미넴 때문에 약속을 다 깼어. 가사를 수도 없이 고쳤어. 존나 신경 쓰인다고. 그 벌스를 들은 순간부터 한 순간도 신경이 안 쓰인 적이 없다고!’

드레이크는 인터뷰에서 ‘Em에게 곡을 도난당했어. 슬프게도 말이야’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에미넴은 더 재미있는 말을 했다.

모 시상식에서 Forever를 공연하고 내려오는 에미넴에게 던진 MTV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말이다.

‘랩의 신이 사람들에게 랩을 알려주기 위해 릴 웨인을 내려 보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난 그런 사람 보낸 적 없는데?’

에미넴의 이 같은 발언은 다양한 화제를 만들어냈고, 한동안 큰 유명세를 탔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는 Rap God이라는 칭호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게 Forever가 발매됐던 1년 반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에미넴은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골든 뉴 에라 투어가 끝나고 또 한 번 같은 질문을 받게 되었다.

“랩의 신이 랩 문화를 위해 파이브식스를 내려 보냈다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다만 그 대상이 달랐을 뿐이었다.

인터뷰어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에미넴이 말했다.

“언젠간 하델 레인즈가 라디오에서 나와서 했던 말을 기억해. 그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에미넴의 스튜디오에서 머무는 동안 파이브식스가 랩의 끝을 본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지.”

“그래서요?”

“모두가 알다시피 내가 릴 웨인을 두고 했던 말은 농담이었어. 다들 웃었잖아? 하지만 파이브식스에 대해서 묻는다면, 내가 그의 음악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겠어.”

“그 말은……?”

“파이브식스를 내가 보낸 건 아니지만, 내가 보냈다면 그것도 괜찮지.”

“그럼 파이브식스가 당신의 사도가 되는 건가요?”

인터뷰어의 집요한 질문에 에미넴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자리를 떠나며 말했다.

“No. We both God.”

다음날 MTV 매거진의 첫 페이지를 채운 문구는, ‘신들의 전쟁’이었다.

***

로스앤젤레스의 스눕독과 더 게임.

디트로이트의 에미넴.

뉴욕의 제이지, 나스, 케이알에스원.

시카고의 칸예 웨스트.

애틀란타의 티아이와 구찌 메인.

이 외에도 각 주를 대표하는 수많은 메이저 래퍼들.

골든 뉴 에라 투어는 ‘골든 라인업 투어’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수많은 랩 슈퍼스타들을 섭외해 무대 위로 올렸다.

대중들은 H&R INC의 뮤지션들의 인맥이 엄청나게 넓다고 놀라워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단지 하델 레인즈의 섭외능력이 뛰어났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하델의 섭외 능력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빛을 발했다.

“Wassup!”

“3년 만에 거물이 되어서 돌아왔는데, 기분이 어때?”

커튼 콜 투어에서 상현에게 ‘Real Yellow Nigga’라는 별명을 선사해주었던 샌프란시스코의 간판 랩스타인 프란코와 슬럼 덕을 섭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었다.

또 한 명의 샌프란시스코 랩스타도 있었다.

피피란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플랜 페이퍼였다.

“저 개자식을 여기서 보네.”

“잘됐네. 겁 좀 줘볼까?”

“그만 둬. 이제 캄튼 길바닥에서 총 쏘던 시절은 지났잖아?”

“누가 총을 쏜데?”

제이록과 스쿨보이 큐가 켄드릭의 만류를 뿌리치고 저 멀리에 어색하게 서있는 피피를 향해 다가갔다.

플랜 페이퍼에게 유감이 있는 것은 상현뿐만이 아니었다.

케이닷으로 활동하던 시절 플랜 페이퍼의 질투 때문에 투어에서 제외되어야했던 켄드릭이나, 켄드릭의 친구들인 블랙 히피의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피피에게 LA로 오려면 방탄조끼를 입고 와야 할 거라고 협박했던 것도 당시에는 갱단원이었던 스쿨보이 큐와 제이록이었다.

상현은 피피를 보자마자 하델의 의도가 짐작되었다.

지금까지는 각 주의 간판스타들에게 오프닝 무대를 맡기지 않았다. 에미넴이나 제이지 같은 거물들에게 오프닝을 요청하는 게 어렵기도 했지만, 일종의 예우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오프닝은 피피였다.

‘하델도 어떤 의미에서는 진짜 집요한 사람이야.’

솔직히 상현은 피피를 완전히 잊고 살았다.

물론 피피에 대한 유감이 사라졌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엿같이 굴었고, 인종차별과 폭언을 일삼았으며, 어떻게든 기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상현에게 그것은 기회의 일부였다.

피피의 행동을 역이용해 자신의 실력으로 ‘No Color’의 기회를 잡아낼 수 있었다.

그 뒤로 피피는 관심 밖의 작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더 엑스펙터에서도 피피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재수 없겠지만, 급이 안 맞는 존재였다.

그러나 하델은 아니었나보다.

그는 언젠간 피피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피피가 켄드릭의 시간을 망쳐놨으니까.

파이브식스에게 인신공격을 했으니까.

감히 자신의 뮤지션들의 미래를 막으려고 했으니까.

‘하긴 저러니까 마지막 불꽃을 태울 뮤지션을 찾는다고 1년 반 동안 미국과 영국을 헤집고 다녔지.’

그러나 상현이 하델의 행동을 탓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 복수를 해준다는 게 기분 좋기도 했다.

물론 스쿨보이 큐나 제이록이 너무 심하게 굴면 말리겠지만 말이다.

그때 상현의 옆으로 하델이 다가왔다.

“여기서 뭐해?”

“저한테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뭐?”

“집요한 사람.”

상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뜬금없는 상현의 말에 하델이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스트레스가 심한가본데……? 내가 일정을 너무 타이트하게 잡은 건가?”

***

투어는 계속 이어졌다.

투어가 시작한지 날짜로 따지면 36일이 지났고, 거쳐 간 도시로 따지면 8곳을 지났다. 공연 횟수로 따지면 총 24번의 공연이 있었다.

사실 이것은 전미 투어라는 호칭을 붙이기에는 소소한 기록들이었다.

투어에 할애된 일정이 한 달이 조금 넘으며, 8개 도시의 24회 공연이라는 것은 ‘전미’라고 칭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든 뉴 에라 투어는 전미라는 호칭을 붙여도 부족하지 않는 두 가지 지표들을 가지고 있었다. 라인업들의 인지도를 제외하고 말이다.

두 가지 지표는 바로, 티켓 판매금액과 동원된 관중의 수였다.

골든 뉴 에라 투어의 티켓 가격은 보통의 티켓 가격에서 30%정도가 더 비싼 가격이었다.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하는 투어와 비교하면 2배의 차이가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골든 뉴 에라 투어의 티켓이 비싸다고 말하는 이들은 없었다.

공연이 만족스러운 탓도 있었지만, 암표 가격이 너무 높아서 예매만 성공하면 엄청나게 싸게 산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골든 뉴 에라 투어는 공연 횟수가 적은 만큼 각 도시에서 수용 인원이 가장 큰 공연장들을 찾아다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공급된 티켓의 양이 수요량을 만족시킨 적이 없었다.

그렇게 미국 내 마지막 도시인 뉴멕시코 공연을 앞두고 있는 골든 뉴 에라 투어는 현재까지 95만장의 티켓을 팔아치운 상태였다.

골든 뉴 에라 투어가 예정된 베르날리오 카운티의 엠부도 하우스(Embudo House)는 뉴멕시코 주에서 가장 스탠딩 수용인원이 많은 시설이었다.

예정된 2회 공연을 위해 풀린 티켓수가 5만 3천장이었다.

즉, 엠부도 하우스의 공연이 매진된다면 골든 뉴에라 투어는 26번의 공연으로 100만장 이상의 티켓을 팔아치우고 미국을 떠나는 것이었다.

하델은 뉴멕시코 주에 진입하기 며칠 전, 전산회계 팀의 보고를 받았다.

5만 3천장의 티켓을 따내기 위해 경쟁을 벌인 숫자는 12만 명이었다.

그리고 하델이 받은 보고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

-골든 뉴 에라 투어, 세계를 정복하다

2011년 6월엔 골든 뉴에라 투어가 출발할 때, 성공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론가나 업계 종사자들은 물론이고 대중들까지 H&R INC가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예측했고, 힙합 투어 최초의 월드 투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측은 틀렸다.

방향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정도가 틀렸다.

마치 비틀즈가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면서 자신들의 유명세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던 것처럼, 모두들 골든 뉴에라 투어가 이 정도로 거대한 성공을 거둘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쩌면 H&R INC의 저력을 가장 과소평가하는 나라는 미국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어제 골든 뉴 에라의 멕시코 투어 티켓이 전 좌석 매진됐다는 소식을 듣고 강해졌다.

골든 뉴 에라 투어는 6회로 예정된 멕시코 투어의 티켓 40만 장을 전부 팔아치웠다.

그들이 벌어들인 최소 수익은 3천만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입장 수익만 계산한 최소 수익으로써 스폰서 계약과 광고까지 포함된다면……

(중략)

***

-골든 뉴 에라 투어가 증명하는 대중 예술의 놀라운 힘

멕시코는 구조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인종차별이 뿌리 깊은 나라이다.

1910년에 시작된 멕시코 혁명이 끝나고, 혁명정부는 혁명 과정 속에서 오만가지로 분열된 국민들을 통합하는 문제에 당면했다

10년에 걸친 혁명기간 동안 군부, 지방 호족, 자유주의 부르주아, 원주민, 농민, 외국의존 세력 등등의 수많은 집단들의 협력과 반목이 반복됐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멕시코가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메스티소 인종(멕시코의 주 인종) 우월주의’를 꺼내들었고, 그것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극심한 인종차별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골든 뉴 에라 투어는 멕시코에서 예정된 공연의 전 좌석을 매진시켰다. 매진시킨 것으로 모자라, 암표와 추가 표를 구하기 위해 도시가 들썩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파이브식스의 절대적인 인기가 있다. 와 는 미국의 랩 앨범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멕시코에서 무려 42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었다.

이러한 현상을 강력한 예술이 문화의 근간을 바꿀 수 있는 예로 보는 것은 비약일까?

골든 뉴 에라 투어를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 Tour 1992'와 비교되는 것은 비약일까?

마이클 잭슨의 데인저러스 투어는 공산주의 국가의 문화적 배타성을 끝장낸 투어였다.

마이클 잭슨을 ‘미국의 제왕’으로 생각해 왔던 공산주의 국가 사람들은, 마이클이 러시아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으로 시대가 바뀌었음을 인정했으니 말이다.

1992년의 마이클 잭슨은 미국의 제왕이었다.

그렇다면 2011년의 파이브식스는 무엇의 제왕일까?

***

멕시코, 캐나다, 프랑스, 스웨덴, 호주…….

골든 뉴 에라 투어는 방문하는 국가와 도시마다 소동을 일으키고, 매진을 기록하고, 천문학적인 수익을 기록했다.

HBO에서 따낸 캐나다 투어의 중계는 무려 9%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었다.

그 사이 달력이 4번을 넘어가고, 계절이 바뀌었다.

아니, 나라마다 기후가 달라서 계절이 바뀌었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 표현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10월.

골든 뉴에라 투어는 서구권 투어의 마지막 나라인 영국에 도착했다.

< Verse 46. Rapstar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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