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92화 (292/309)

< Verse 45. Golden Nu-Era >

***

-H&R = Hadel`s Revenge

뉴욕 타임즈의 1면에 실린 헤드라인이었다.

사실 하델은 예전부터 그래미 어워드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창조해낸 LA 메탈(헤어 메탈)은 엄청난 인기를 가진 채로 전미를 휩쓸었지만,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평가 때문에 늘 그래미에 외면을 당해야만했다.

때문에 몇몇 평론가들은 이번 하델 레인즈의 행동이 과거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추측했다.

실제로는 전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평론가들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메이저 언론사들이 상황 자체만을 설명할 뿐 중립을 지키려는 데 반해서, 빌보드나 롤링 스톤 같이 그래미 어워드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매거진에서는 은근히 H&R INC의 행동을 지지하는 뉘앙스를 보였다.

사실 빌보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실컷 순위를 매기고, 빌보드 어워드로 상을 수상해도 그래미에서 ‘NO’ 라고 말하는 순간 권위가 떨어지는 것에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빌보드는 상현에게 이렇게 말했고,

-파이브식스가 너무 크게 실망하지 않았길 바란다. 우리는 여전히 그의 음악을 듣고 싶고, 빌보드에는 여전히 그의 이름이 올라갈 자리가 있다.

롤링 스톤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줬다.

-파이브식스, 동양인 최초로 롤링 스톤의 메인 표지 모델 선정. ‘그에게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처럼 그래미 어워드에 대한 H&R INC의 보이콧은 수많은 서브 텍스트를 양산해냈고,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래미 보이콧이란 상황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그 안에는 로 정점을 찍은 파이브식스의 미국 내 활동중단이라는 화제와 골든 뉴 에라 투어에 대한 관심이 섞여있었다.

또한 이제는 고인이 됐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마이클잭슨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파이브식스와 마이클 잭슨의 행보에 대한 비교가 끊이질 않는 것이었다.

-Wacko Jacko(괴짜 잭슨)라는 별명은 있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마이클 잭슨은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어. 그래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못했지. 지금 그 일을 파이브식스가 대신하는 거야.

-그래미에 대한 공격이 당연하다고 보는 거야?

-당연하지. 그래미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권위적이고, 정치적이야. 이러한 성향을 만들어준 건 그래미에 매달리는 뮤지션들이이고. 그러니 해결할 수 있는 부류도 뮤지션들뿐이야.

-내 생각도 그래. 사실 억울한 뮤지션들은 많아. 단지 파이브식스처럼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세워서 ‘이건 누가 봐도 수상이었다.’라고 주장하기가 애매해서 그렇지. 내심 다들 동감하고 있을 걸?

-기사 보니까 본 조비도 파이브식스를 지지했던데.

-본 조비도 억울할 만하지. 20년 동안 하나도 못 받다가 컨트리 앨범 내고 상 받았을 때 기분 이상했을 거야.

-마이클 잭슨이 살아있고, 파이브식스의 행동에 동참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R.I.P 마이클잭슨.

-근데 마이클 잭슨은 그래미에서 상을 좀 받지 않았어?

-받긴 받았지. 100개를 받아야하는데 10개를.

-잭슨이 스릴러(Thriller) 앨범을 냈을 때 제법 많은 상을 받아서 상을 받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 스릴러 다음 앨범인 배드(Bad)는 빌보드 1위 싱글이 다섯 개나 있었고, 다이아몬드를 가볍게 달성한 앨범이었는데 상을 단 하나도 못 받았으니까.

-사실 파이브식스는 로 랩 필드라도 휩쓸었지, 마이클잭슨은 정말 억울한 경우도 많았어.

-그래도 지금은 시대가 좀 바뀌었으니까 그래미가 최소한의 소통은 하는 거야. 지금이 80년대였으면 파이브식스도 무관이었을걸.

-근데 MJ 때의 다이아몬드와 지금의 다이아몬드는 좀 달라. 그때는 앨범 산업이 호황이라서 조금만 히트하면 플래티넘, 더블 플래티넘은 우습게 찍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플래티넘만 찍어도 굉장하다고 하잖아.

-어떤 평론가의 글을 봤는데, 80-90년대의 1000만장은 지금으로 따지면 300만장 정도라더라.

-파이브식스는 그런 상황에서 다이아몬드를 찍은 거네? 그것도 랩 앨범으로.

-그럼 파이브식스가 MJ보다 위대한 건가?

-멍청한 소리하지 말고, 그냥 둘 다 대단한 거야.

마이클잭슨은 그래미 어워드의 불공정한 심사로 인해 가장 많은 상을 빼앗긴 인물이었다.

그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인 ‘오프 더 월(Off The Wall)'은 판매량으로는 더블 다이아몬드(2000만장)를 기록했고, 미국 대중음악 역사상 한 앨범에서 가장 많은 빌보드 Top 10 진입 싱글(4개)을 보유한 앨범이었다.

그러나 <오프 더 월>이 그래미에서 받은 상의 개수는 1개뿐이었고, 그 역시도 본상은 아니었다.

이처럼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지만 상현의 앨범과 마이클 잭슨의 앨범은 묘하게 닮은 점이 많았다. 그래서 네티즌들의 입에 둘의 이야기가 수없이 오르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비교는 상현에 대한 위상을 한층 끌어올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와 비교당하는 사람이 현대대중음악사에 영원히 살아있는 전설이기 때문이었다.

대중들이 그렇게 상현에 대한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마이클잭슨과의 비교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나올 그래미의 행동노선에 대해 예측했다.

-근데 노미네이트 거부를 해도, 그래미가 선정을 하면 노미네이트에 이름이 올라가고, 수상하면 기록에 남아. 예전에 무슨 여성 로커가 그래미 수상을 거부했는데, 그래미는 그녀에게 상을 줬고 기록에 수상자로 이름이 올라갔어. 이런 면으로 보면 H&R INC의 거부는 별 의미가 없는 거 아니야?

-이제 노미네이트 자체가 안 되지 않을까?

-될 리가 없지. 그런 인터뷰를 했는데.

-아니야. NARAS는 음악 관련 기술자들의 모임이고, 그 안에는 젊고, 생각이 열려있는 사람들도 많아. 어느 순간부터 그래미에 블랙 뮤직이 자주 노미네이트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게 바로 NARAS의 세대교체가 일어난다는 증거지. 그러니까 노미네이트는 계속 될 거야.

-투표가 정말 의미가 있어? 근데 수상 결과는 왜 그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 그래미 Winner 선정방법은 비공개라서 정확히 알 수는 없어. 추측하기로는 투표가 여러 가지가 있다는 말이 있어. 그러니까 NARAS 전체 회원의 투표가 있고, 원로들의 투표가 또 따로 있다는 말이지.

-만약 전체 회원의 투표가 반반이라면 원로들의 투표에 따라 결과가 갈리겠네?

-맞아.

-그 원로들이 소위 말하는 그래미 패밀리고?

-맞아.

-이런 씨발. F로 시작해서 K로 끝나는 새끼들.

-사실 파이브식스가 정말 그래미를 타고 싶었다면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 다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래미를 존경하고, 반드시 수상하고 싶다.’ 정도의 언론 플레이만 했으면 다음에는 수상이 가능했을 거야. NARAS 회원들도 전부 사람인지라 여론이나 언론에 영향을 받거든. 마이클 잭슨의 역시 비슷한 경우였지.

-그럼 파이브식스는 왜 안 그랬을까? 하델 레인즈라면 충분히 그런 방법을 염두에 뒀을 텐데.

-자존심 아닐까? 아니면 내 음악이 그래미 위에 있다는 자신감이라든지.

-결과적으로 두 집단의 싸움은 지구력 싸움이네. H&R INC 뮤지션들이 그래미 어워드에 얼마나 오래 노미네이트 되느냐. 그리고 그 시기가 길어질수록 그래미는 점점 권위를 잃어가겠지.

-그럼 뮤지션들에게 너무 불리한 싸움인데?

-맞아. 지금 H&R INC를 응원하는 대중들도 그들의 앨범이 전부 망하면 조롱하겠지. 어려운 길을 택한 거야.

미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아주 진지했다.

미국인들은 보통 권위 있는 단체의 공정성에 민감한 이들이었고, 파이브식스의 미국 내 활동 중단이라는 화두가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아주 심플했다.

-이상현 싸움 잘하냐?

-왜?

-원래 싸움 잘하는 애가 하자하면 반 애들이 같이 하거든.

-······그럴 듯한데?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를 양산해내던 H&R INC의 그래미 보이콧에 대한 화제가 잠잠해진 것은 더욱 큰 화제가 터진 이후였다.

바로 2011년 6월 22일에 LA에서 시작을 알린 이었다.

***

골든 뉴에라 투어는 상현이 경험했던 첫 번째 투어인 커튼 콜 투어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각 도시의 유명 가수들을 초청하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했다.

그러나 골든 뉴에라 투어는 커튼 콜 투어와 방식만 비슷할 뿐 스케일로는 비교도할 수 없는 투어였는데, 투어에 초청하는 이들이 각 ‘도시’의 유명 가수가 아니라 각 ‘나라’의 유명가수였기 때문이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싱가포르의 국민 가수인 로레인 탄(lorraine tan)이 오프닝을 할 예정이었고, 프랑스에서는 상현과 'The Way We Live'로 인연이 있는 블랙 엠(Black M)이 오프닝을 할 예정이었다.

심지어 아직 접촉 중이라 언론에는 밝히지 않았지만, 하델은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의 공연을 위해서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를 섭외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LA나 뉴욕 같은 미국 주 공연에서는 당연히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가수들이 섭외가 되었다.

그 골든 뉴에라 투어의 시작을 알린 LA 공연에 초청된 게스트는 켄드릭의 앨범 연속으로 참여하며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웨스트 코스트의 대부인 스눕독과 더 게임이었다.

물론 살이 있는 전설들에 대한 예우가 있는 만큼 오프닝을 맡긴 것은 아니었다.

LA 무대의 오프닝은 최근에 H&R INC에 합류한 사이커델릭 레코즈의 간판 듀오인 웨스트런과 멜의 차지였다.

웨스트런과 멜은 이제 LA에서 만큼은 완전한 랩스타로 취급을 받고 있었다.

사이커델릭 레코즈가 H&R INC의 서브 레이블로 합류한 것은 단지 상현과의 친분 때문은 아니었다. 하델 레인즈는 사업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게 물렁물렁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이커델릭 레코즈의 래퍼들은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성장해 나가고 있었으며, 어느새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전부 파이브식스 덕분이지.’

‘처음에는 내가 차별받는 동양인 자식을 도와주려는 마음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자식을 만난 건 내 인생의 최고의 행운이었어.’

웨스트런과 멜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었다.

상현에게 테러를 가했던(결과적으로는 스탠다드를 향했지만) 벨 포스를 몇날 며칠 동안 찾아다녔고, 끝내 찾아낸 것도 이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현을 만날 당시만 해도 이들은 캄튼 주변의 힙합 씬이나 LA의 헤비 리스너들 사이에서만 이름이 알려진 루키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진정한 도약을 시작한 것은, 상현이 더 엑스펙터에 출연할 즈음에 발매된 믹스테잎이 덕분이었다.

사이커델릭 레코즈에 메인 프로듀서가 없던 시절에 대부분의 프로듀싱과 디렉팅, 마스터링을 도와주고 죽여주는 피쳐링으로 벌스를 꽉꽉 채워준 친구.

더 엑스펙터에 출연하고, 점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캄튼의 클럽에서 함께 랩을 해주고 몸소 믹스테잎을 홍보해준 친구.

웨스트런과 멜이 상현을 친구를 넘어 은인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씨발! 여기는 TV로만 보던 곳이었어. 근데 내가 여기 있어. LA 씬에서 성장해 여기까지 왔다고!”

“누가 그랬지? 파이브식스가 LA를 대표할 수 없다고. 근데 난 그 새끼랑 같이 여기까지 왔다고!”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다짜고짜 등장해 폭풍같이 두 곡을 쏟아낸 웨스트런과 멜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객석에서는 ‘Fuck Bell Force!와 ‘Fuck Grammy!'가 마구 섞여 들렸다.

벨포스를 욕하는 것은 파이브식스가 LA를 대표할 수 없다고 말한 당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미를 욕하는 것은 지금, 골든 뉴에라의 LA 투어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가 매년 그래미 어워드가 개최되는 스테이플스 센터이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엿같은 무대를 죽여 버릴 거야. 내년 그래미는 우리가 죽인 시체 위에서 시작되겠지.”

“Say! Fuck Grammy!"

-Fuck Grammy!

-Fuck Grammy!

웨스트런과 멜이 발로 무대를 쿵쿵 차며 소리를 질렀고, 흥분한 관객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둘의 열정적인 무대가 시작되었다.

아니, 시작되려고 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난입 때문에 중단이 되어버렸다.

“만들 때는 같이 만들어놓고 혼자 즐기는 거야?”

-꺄아아아아아악!

-파이브식스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오프닝 무대에 등장한 래퍼는 상현이었다.

상현은 누가 뭐래도 이번 골든 뉴에라 투어의 메인 래퍼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오프닝 무대에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상현이 오프닝 무대에 등장한 것은 웨스트런과 멜이 부르는 히트곡 메들리에 그의 벌스가 상당수 포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보통 이런 경우는 후발 라인업의 벌스가 빠진 채로 공연이 진행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상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sb'로 오해하고 찾아왔던 이 둘이야 말로, 스탠다드가 덴마크로 떠나고 아무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 때 편이 되어줬던 친구들이었다.

덕분에 무대에서 알음알음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후드맨이 더욱 극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사이커델릭 친구들이 상현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있듯이, 상현도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현은 고마움과 비례하는 미안함도 가지고 있었다.

제이콜과 켄드릭이라는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사이커델릭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현이 웨스트런과 멜의 오프닝 무대를 함께 꾸몄다.

둘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와, 이런 곡도 있었네.”

“그니까. 파이브식스 앨범은 다 찾아들었는데 LA 언더그라운드 시절에 했던 피쳐링들은 못 들어봤어.”

“노래 죽이는데?”

“저 듀오는 이름이 뭐야?”

“웨스트런이랑 멜 몰라? 쟤들 믹스테잎을 파이브식스가 전부 프로듀싱했거든. 사운드도 매력적이고, 장난 아니야.”

그리고 상현의 선물은 통하고 있었다.

골든 뉴에라나 블랙 히피, 또는 스눕독과 더 게임을 보기 위해 찾아왔던 관객들이 웨스트런과 멜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골든 뉴에라 투어의 첫 시작인 LA 무대는 성공적인 시작을 맞이하고 있었다.

< Verse 45. Golden Nu-Era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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