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89화 (289/309)

< Verse 44. The End >

***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다

보통 뭔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은 느리기 마련인데, 상현의 시간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시간은 아주 빨랐다.

어느새 한 달이 흐르고, 두 달이 흐르더니, 벌써 다섯 달이 지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스탠다드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You've been waiting for a long time-!”

그 사이 상현은 새로운 앨범을 발매했다.

“He Come Back! FIVESIX!”

2010년 6월에 발매된 그의 앨범명은, 였다.

Standard라는 단어는 힙합 뮤지션들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였다. 때문에 상현의 이번 앨범은 평범하다면 평범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앨범이었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친구를 위한 단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비판의 여론은 당연히 존재했다. 몇몇 사람들은 파이브식스가 친구의 불운을 팔아서 앨범을 띄운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 것에 신경 쓰기에 그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느라 너무나 바빴다.

사람들은 기적을 잘 믿지 않는다. 말로는 기적을 바라면서도 내심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현은 기적을 믿었다.

왜냐하면 그의 두 번째 삶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일로 인해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자.'

'뭘?'

'빌보드 앨범차트 1위. 빌보드 싱글차트 1위. 앨범 판매량 1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까지.'

'그 정도는 해야지 하늘에 닿을 수 있다?'

'그렇지.'

상현과 스탠다드가 를 만들면서 세웠던 목표.

하늘에 계신 상현의 부모님과 스탠다드의 아버지께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겠다는 다짐.

둘은 그 다짐을 지켰었다.

는 싱글차트 1위를 제외한 빌보드 모든 부문을 석권했고, 그래미 어워드의 4개 본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니 말이다.

‘고마워. 전부 네 덕분이야.’

‘뭐야? 무슨 일이야? 평소에는 너 때문에 내가 성공한 거라고 박박 우기더니?’

‘뭐,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

스탠다드가 웃으며 상현에게 잔을 내밀었고, 상현은 그 잔에 자신의 잔을 가져다댔다.

술을 한 모금 마신 스탠다드가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도 아시겠지?’

‘아마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케이알에스원이나 제이지는 아시지 않을까?’

‘그렇겠지?’

흐뭇한 미소로 파티장을 둘러보던 스탠다드가 갑자기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더니, 상현을 바라보며 호기롭게 말했다.

‘야, 이틀 뒤에 그래미 받으면 너가 원하는 거 아무거나 하나 해준다. 진짜 뭐든지.’

‘왜 너 혼자 받는 것처럼 말하냐. 같이 받는 건데,’

‘Record Of The Year(엔지니어와 프로듀서에게 수상되는 상)받으면 나 혼자 받는 거지.’

‘웃기네. 그거 가수도 같이 받거든.’

‘아, 아무튼 원하는 거 하나 해준다고.’

‘아무 거나?’

‘아무 거나!

‘은행 구좌 내놔.’

‘……그거 말고.’

상현은 파티장에서 스탠다드와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빴다.

가 부모님을 생각하며 만든 앨범이었다면, 는 스탠다드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강요’하기 위해 만든 앨범이었다.

상현이 강요할 것은, 스탠다드가 깨어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상현에게 지나치게 감성적인 행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그렇게라도 믿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상현은 감성적인 행동을 하거나, 억지로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스탠다드가 정말 깨어날 것만 같았다.

***

상현이 미국에서 발매하는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가 6월 말부터 본격적인 프로모션에 돌입했다.

때문에 2010년에는 한국으로 갈 거라던 888 크루 멤버들과의 약속은 취소되었다.

888 크루 멤버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상현은 한국 대신 전미를 돌았다.

이런 상현을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은 에미넴이었다.

에미넴은 2006년에 친구였으며, 형이었고, 정신적 지주였던 프루프(Proof)를 잃고 항우울제에 중독돼 죽을 뻔했었다.

때문에 그는 상현의 심정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스탠다드가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상현은 스탠다드가 당한 사고의 책임 중 일부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슬픔은 결코 적지 않았다.

물론 에미넴이 단지 동질감이나 동정으로 상현을 도와준 것은 아니었다.

에미넴은 슈퍼스타였고, 그의 활동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걸려있을 수밖에 없었다. 단지 충동이나 감정 때문에 피쳐링을 부탁하고, 투어를 함께하며, 공연을 같이할 수 없는 위치란 의미였다.

그러니 에미넴은 상현을 끌어준 것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걸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에미넴의 매니저나 레이블은 에미넴이 파이브식스와 함께하는 것이 윈-윈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파이브식스란 이름은 무거워져 있었다.

이미 누군가가 이끌어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제 아무리 거대한 사람이라도 태산을 끌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

‘이건 정말 미쳤군.’

하델 레인즈는 가 세우고 있는 기록들을 살펴보며 혀를 내둘렀다.

상현보다 약간 늦게 활동을 시작한 제이콜의 기세도 무서웠지만, 파이브식스의 기세는 기세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태풍이나 해일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상현은 이번 앨범을 기획하고, 만들면서 하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어떤 어려운 프로모션도 상관없고, 아무런 배려 없이 공연을 잡아도 상관없어요. 대신 이 앨범이 Touch The Sky를 뛰어넘게 해주세요.’

상현의 요구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다.

는 랩 앨범으로써 이룰 수 있는 대부분의 것을 이뤄낸 앨범이었다.

평론가들은 파이브식스가 너무 일찍 개화한 아름다운 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는 앞으로도 계속 뛰어날 것이고, 완벽할 것이고, 성장할 것이지만 ‘처음’은 처음뿐이라는 것이었다.

파이브식스가 더욱 완벽한 랩을 한다고 해도 ‘동양인 래퍼’, ‘한국의 랩스타’, ‘더 엑스펙터’, ‘파이브식스만의 스타일’이라는 신선함이 줬던 메리트는 이제 없다는 것이 그들의 평가였다.

즉, 랩 실력이나 음악적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상현이 그리는 디스코그래피의 최고점이 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처럼 이제 랩씬에는 적극적으로 꿈을 펼치려는 수많은 아시아계 래퍼들이 등장했으며, 메인스트림 래퍼들은 파이브식스의 장점을 흡수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게다가 다수의 레이블들이 한국이나 일본의 랩스타들 중에서 스타성이 있는 이들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상현이 불러온 변화의 바람 속에서 재능 있고, 매력적인 이들은 꾸준히 등장할 것이고, 그들은 알게 모르게 상현이 쥐고 있는 독점적인 점유율을 가져갈 것이었다.

그러니 가 를 뛰어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가능하죠?’

‘당연하지.’

그러나 하델 레인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건 스탠다드와 상현의 친구로서 내린 긍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냉철한 사업가로써 내린 긍정이었다.

그만큼 는 뛰어났으니까.

하델이 상현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인 날로부터 정확히 4개월 뒤, 의 모든 아성은 무너졌다.

-파이브식스의 , 빌보드 앨범 차트 5주 연속 1위 기록. 더 이상 깨지지 않을 것으로 평가받던 의 기록 자체 갱신.

-4위로 데뷔한 파이브식스의 싱글 ‘Talk Back’, 2주 만에 핫 100 1위 등극.

-파이브식스, AMA(American Music Award)에서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아티스트를 거머쥐며 2관왕 달성.

-파이브식스, 발매 4개월 만에 의 판매량 추월.

-파이브식스, 롤링스톤 선정 ‘2010 올해의 앨범’ 1위.

***

미국의 가수들은 RIAA(미국 레코드 산업 협회)의 홈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왜냐하면 RIAA에서 공식적인 앨범 판매량을 집계해 레코드 디스크(Record Disc)를 수여하고, 홈페이지의 [Gold & Platinum]이라는 카테고리 앨범의 정보를 기재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뮤지션들이 골드나 플래티넘을 달성했다고 말하는 것의 원래 의미는 앨범을 몇 장을 팔았다는 것이 아니라, RIAA에서 판매량을 인증하는 디스크를 받았다는 의미였다.

이런 RIAA의 레코드 디스크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었다. 모두들 알고 있는 골드 디스크와 플래티넘 디스크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디스크에는 한 가지 종류가 더 있었다.

바로 다이아몬드 디스크였다.

다이아몬드 디스크는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워낙 영광된 일이기 때문에 RIAA에서 다이아몬드 디스크를 달성한 뮤지션들에게 인증을 해줄 뿐이었다.

왜냐하면 이 부류의 디스크를 달성하는 앨범이 미국대중음악 역사상 채 100장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중 대부분은 판매량 집계가 지금처럼 시스템화 되지 않았던 먼 과거의 기록이라서, 정확히 인증이 된 앨범은 스무 장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스물한 장이었다.

상현의 가 미국에서는 스물한 번째, 힙합 앨범으로써는 네 번째로 천 만장의 판매량을 돌파했기 때문이었다.

-와, 미쳤다. 천만 장이라니.

-한국 인구의 오분의 일만큼 팔았네. 진짜 미쳤다.

-돈을 도대체 얼마나 쓸어 담은 거지?

-앨범 판매에, 싱글 판매에, 이런저런 축제의 헤드라이너에, 방송 출연까지 하면……. 모르긴 몰라도 오경 미디어 연매출 정도는 벌지 않았을까?

-오경 미디어는 오경 그룹의 얼굴 마담 같은 거라서 막상 톱 엔터테인먼트 중에서는 연매출이 낮은 편임. 아마 이상현이 더 벌었을 걸?

-한국은 안 오려나? 내한 공연 해줬으면 좋겠는데.

-앨범이 망하지 않는 이상은 안 오지 않을까?

-근데 이번 앨범 낸 방식 봤잖아. 이상현의 앨범 중에 망하는 앨범이 나올까? 덜 팔리는 앨범은 나오겠지만.

-인정.

한국에서는 더 이상 상현의 활약에 언론이 들썩이지 않았다.

빌보드 기록이나 AMA의 2관왕 같은 이벤트들은 여전히 언론매체의 메인을 장식했지만, 사소한 활약들은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너무 많이 다뤄서 식상했으니까.

더 이상 대중들은 상현이 활약하는 것에 놀라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

상현은 2010년의 마지막 날을 2009년의 마지막 날을 보낸 곳과 같은 장소에서 보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

카운트다운 행사.

작년에 상현이 카운트다운 행사의 엔딩을 맡고, ‘I Swear’를 부르면서 빌딩의 불빛을 올렸던 것은 순전히 하델 레인즈의 덕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가 카운트다운 행사를 개최하는 뉴욕시에 기부금을 약속하고, 록 네이션의 양해를 구해내고, 타임스퀘어 광장 주변 회사들의 협의를 얻어낸 것은 정말 대단한 수완이었다.

그러나 2010년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델 레인즈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상현은 카운트다운 행사의 엔딩 라이너였으며, 마지막 곡으로 I Swear를 불러달라고 요청 받았으며, 타임스퀘어 광장 주변의 온 건물들이 노래에 맞춰 불빛을 올렸다.

심지어 내년과 내후년의 무대도 요청을 받았다.

여건만 된다면 카운트다운 행사의 마무리를 고정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연말연시에 함께하고 싶은, 그러나 함께할 수 없는 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뜻 깊은 무대로.

2011년을 맞이하는 상현의 노래에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뿐만 아니라 친구에 대한 그리움도 담겨 있었다.

상현은 카운트다운 행사 이후로 보름 정도 뉴욕에서 머무르며 다양한 스케쥴을 소화했다.

콘서트를 했고, 방송에 출연했으며, 광고를 찍었다.

상현은 그렇게 모든 일을 끝낸 뒤 돌아온 LA 공항에서 받은 한통의 전화로, 인생이 영화나 소설과는 다르다는 것을 가슴깊이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회귀라는 믿을 수없는 일 때문에 스탠다드 역시 극적으로 깨어날 줄 알았다.

보름 뒤에 있을 그래미 어워드에서 상을 받고, 함께 이야기했던 모든 것을 이뤄낸 뒤에 스탠다드에게 말을 걸면 그가 깨어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현실은 달랐다.

상현은 전화를 받자마자 스탠다드가 잠들어있었던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온 이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스탠다드는?”

“안에 있…….”

상현은 켄드릭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병실의 문을 박차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침대를 둘러쌓고 있는 두 명의 여인, 덴마크에서 모셔온 스탠다드의 어머니와 누나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보인 것은…….

“상현.”

스탠다드였다.

스탠다드는 초췌한 몰골로, 하지만 밝게 빛나는 눈빛으로 상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상현은 스탠다드가 깨어난다면 눈물이 날 것만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뭐 이렇게 오래 자. 사람 심심하게.”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러니까. 엄마와 누나보고 놀란 다음에, 내가 일 년이나 잤단 거에 놀라고 있는 중이다. 밤샘을 워낙 많이 했더니 몰아 잔 거 아냐?”

스탠다드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했다. 11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목을 쓰지 않았는데 아무렇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었다.

“몸은 어때? 움직일 수 있어?”

“괜찮아. 아직 걸을 수는 없는데 의사가 재활하면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거래. 그나저나 너 그래미 어떻게 됐어? 상 받았어?”

“이 미친 새끼. 지금 그게 궁금하냐.”

“내가 그래미 가는 중에 사고 당한 거 맞지? 어떤 미친놈이 나한테 총 쏜 거?”

“그 새끼 잡느라 LA 3대 조직이 움직인 거는 아냐?”

“3대 조직?”

“경찰, 크립스, 블러드.”

상현의 말에 스탠다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립스랑 블러드는 왜?”

“스쿨보이 큐랑 제이록이 어디 소속인지 자면서 까먹었어? 그 자식 경찰에 넘길 때 이미 반쯤 죽어있었다던데.”

“아…… 그렇지. 근데 그래미는 어떻게 됐냐니까? 4개 본상에 노미네이트 됐었던 것 맞지? 내가 헷갈리는 거 아니지?”

“맞아.”

“상은 어딨어? 받았으면 병실에 가져다 놨어야 할 거 아니야.”

“없어. 못 받았어. 무관의 제왕 유지 중이다.”

“뭐? 그래미 꼰대들 미친 거 아니야?”

“욕하다보니까 목이 좀 풀리는 거 같은데?”

상현이 웃으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뭔가를 검색하고는 스탠다드에게 건넸다.

“이거……?”

“보이냐. 네 이름.”

*53th Grammy Nominated ALBUM

FiveSix - Standard(Prod. DJ STANDARD)

“이게 뭐야. 53회면 올해 아니야? 근데 앨범 타이틀과 프로듀서 명에 내가…….”

“그게 타이틀이고, 너가 찍은 비트들이니까.”

앨범 의 비트는 전부 스탠다드가 만든 비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를 만들며 다음 앨범을 위해 미뤄놓았던 비트, 그 당시에는 선택받지 못했던 비트, 스탠다드의 컴퓨터에서 작업 중이던 비트, 심지어 Touch The Sky에서 이미 사용했던 비트까지.

상현은 제한된 비트를 가지고 그토록 위대한 업적들을 이뤄낸 것이었다.

인생은 영화나 소설과 달랐다.

그래서 그래미 어워드의 상을 가져오니 깨어난다는 드라마틱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스탠다드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래미 받고 앨범을 들려주면 깨어나지 않을까 하는 오글거리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러나 인생은 영화나 소설과 달라서 남들이 보기에 맥이 빠지고, 싱거워도 아무 상관없었다.

단지 이 순간이 못 견디게 감사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너가 망친 영화의 끝은 너가 채워라.”

“뭔 말이야?”

“같이 그래미 상 받으러 가자고.”

“뭐 얼마나 자신 있기에 이 난리야?”

스탠다드의 물음에 상현이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네가 지금 내가 세운 기록들을 몰라서 그래. 한 마디로 The End. 끝, 끝이라고. 랩의 끝.”

“하델, 저 대신 이 자식이 누워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망상이 심한 거 같은데.”

“다이아몬드 디스크면 그럴만하지 않아?”

“……누나, 여기 침대 두 개가 더 필요한 거 같아. 망상 환자가 한 명 더 있네.”

스탠다드가 병원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병실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제이콜 헐레벌떡 병실로 뛰어 들어왔고, 몇 시간 뒤에는 스탠다드와 친분이 깊은 케이알에스원이 달려왔다.

하델은 웃음으로 가득찬 분위기를 보면서 이번에야 말로 이 분위기가 그래미로 이어질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 Verse 44. The End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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