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88화 (288/309)

< Verse 44. The End >

***

닉 조나스와 그의 친구인 폴 왓츠슨은 파이브식스의 차가 중앙선을 넘어 트럭과 충돌하는 것을 본 순간부터 제 정신이 아니었다.

뭔가를 가득 적재한 트럭은 5톤 이상의 대형 트럭이었고, 충돌 지점은 운전석 쪽이었다.

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높은 사고였다.

“씨, 씨발!”

닉 조나스는 골탕을 먹이려고 했지만 사고를 바란 건 아니었다고 욕설을 섞어가며 외쳤고, 폴 왓츠슨은 쉬지 않고 어리석은 짓을 벌인 닉 조나스를 욕했다.

심장이 어찌나 쿵쾅거리는지, 마치 차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5분간 쉬지 않고 엑셀을 밟던 왓츠슨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차를 세웠다.

“뭐, 뭐야? 왜 세워? 빨리 안 달려?”

조나스가 미친놈처럼 소리쳤지만 왓츠슨은 결국 차를 멈췄다.

그리고는 말했다.

“자, 자수하자.”

“뭐? 미쳤어?”

“자, 자수해야 돼. 어차피 걸려.”

“안 걸려. 도망가면 안 걸려.”

주마다 다르지만 미국은 차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것이 불법이었고, 사생활침해의 우려 때문에 CCTV도 거의 없었다. 때문에 닉 조나스는 이대로 도주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폴 왓츠슨의 생각은 달랐다.

파이브식스는 유명인이었고, 그래미 어워드를 맞이하여 모든 관심을 휩쓸고 있었다.

그러니 전미에 무능함을 보이지 않기 위해 LA 경찰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들을 찾아낼 것이고, 결국은 발각될 것이었다.

‘게다가 난, 난 잘못 없잖아.’

그는 단지 친구의 강요에 의해 사소한 부탁을 들어줬을 뿐이었다.

그 순간 조수석에 앉아있던 닉 조나스가 차를 출발시키려 했다. 정신이 번쩍 든 왓츠슨은 그대로 운전석 문을 열고 도망쳤다.

더 이상 함께 하다가는 정말 공범이 돼버릴 것만 같았고, 자수를 하려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자신을 욕하는 조나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왓츠슨은 계속 도망쳤다. 그리고는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핸드폰을 들어 911에 전화를 걸었다.

“로, 롱비치 프리웨어, 블루몬트로 가는 길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래, 래퍼 파이브식스가 트럭과 충돌했는데, 친구가 페인트볼 건으로 위협을 해서……! 장난 아닙니다!”

폴 왓츠슨이 횡설수설거리며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명산 일보는 그래미 어워드를 맞이하여 뉴욕에 특파원으로 가있던 한우영 기자를 LA로 파견했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어차피 수많은 대형 언론사에서 대규모 취재팀을 구성할 텐데 소수 인원을 파견해서 뭐하냐는 의견이 많았지만, 편집장의 강한 추진력으로 인해서 성사된 일이었다.

사실 상현의 수상이 유력한 52회 그래미 어워드는 외면하기엔 너무 큰 이벤트였다.

게다가 명산 일보는 MTB 때 상현 덕분에 큰 재미를 본 언론사이기도 했다.

그런 명산 일보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는 순간, 편집실은 난리가 났다.

그리고 그 난리가 인터넷으로 퍼져나가는데 걸린 시간은,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이상현, 의식불명 상태.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전해져.

제 52회 그래미 어워드 참석을 위해 LA의 스테이플스 센터로 향하던 이상현이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입수되었다.

이상현이 소속된 H&R INC의 CEO 하델 레인즈는, 괴한이 이동 중이던 이상현의 차량을 총기로 위협했으며, 그 모습을 본 이상현이 총격을 피하려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오던 트럭과 충돌했다고 밝혔다.

하델 레인즈는 이상현의 현재 상태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자신 역시 그래미 어워드가 시작하고 약식 보고를 받았을 뿐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다만 하델 레인즈에 따르면 이상현은 병원으로 후송되는 내내 의식불명의 상태였으며, 생명이 위독한 수준의 부상을 입은 것으로…….

*

이상현 테러, 디스(래퍼들이 음악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행위)로 인한 우발적 범행으로 밝혀져.

이상현을 총기로 위협한 테러 행위의 유력한 용의자가 공범의 자수에 의해 밝혀졌다.

용의자는 벨 포스라는 스테이지 네임(래퍼들이 스스로에게 붙이는 예명)을 쓰는 LA 출신의 래퍼로서, 자신을 디스한 이상현을 발견하고는 우발적인 범행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직후 범행을 자수한 폴 왓츠슨은 자신은 그저 벨 포스의 부탁에 따라 차를 운전했을 뿐이며, 벨 포스가 실제 총이 아닌 페인트볼 건으로 이상현을 위협했다고 진술했다.

테러 행위의 유력한 용의자인 벨 포스는 사고 직후 도주한 상태이며, LA 경찰국은 테러 행위의 정확한 정황을 조사하는 한편 벨 포스(본명 닉 조나스)를 수배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1시간 사이 상현의 사고에 대한 무수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기사의 내용은 그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어떤 언론사는 미국의 뉴스 채널들을 모니터링하며 가능한 사실에 가까운 기사를 쓰려고 노력했고, 또 어떤 언론사에서는 사실 관계는 확인하지 않은 채 정황과 추측만으로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심지어 상현의 차와 충돌한 트럭이 화물 트럭인지, 픽업 트럭인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기사에는 미국에서 가장 흔한 픽업 트럭인 포드 트러스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1시간이란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그 1시간 사이 888 크루 멤버들은 모든 일정을 전면 취소한 채 LA행 비행기표를 공수했으며,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상미는 2005년 5월 13일을 떠올리며 쉬지 않고 울었으며, 준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런 상미의 손만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한 888 크루 멤버들은 그들을 알아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정보를 접할 수가 있었다.

***

하델 레인즈는 그래미 어워드가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직행했다.

그의 차에는 눈물을 글썽거리는 멜로디와 히메가 동승해 있었고, 케이알에스원이나 에미넴과 같은 다른 뮤지션들은 각자 자신의 차로 올 예정이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하델의 핸드폰은 쉬지 않고 울렸다. 그러나 대부분이 언론사의 전화였기 때문에 하델은 단 한 통도 받지 않았다.

대신 개인용 핸드폰을 꺼내서 H&R INC의 경호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하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경호가 없었지?”

-죄송합니다.

“사죄가 아니라 이유를 묻고 있잖아.”

-본인이 워낙 강력하게 경호를 거절했습니다. 갑자기 해야 할 작업이 떠올랐다며 다른 분들과 먼저 출발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하델은 화를 내려다가 참았다.

어차피 지금은 화를 내도 의미가 없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한동안 영감을 받지 못했던 상현이 갑자기 어떤 영감을 받은 모양이었고, 다른 친구들을 지체시키고 싶지 않아서 먼저 출발시킨 모양이었다.

“상태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수술은 성공적이지만 급성 경막하 출혈이 발생했고 뇌부종이 심각하며, 의식을 회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라고 합니다.

“의식만 회복할 수 있으면 괜찮단 말이지?”

하델이 희망을 담아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썩 낙관적이지 않았다.

-그게…… 의식을 회복하더라도 신경기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으며 예후가 좋지 않으면 뇌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일단 알았어. 가서 직접 듣지. 다른 친구들은 다 거기 있고?”

-네. 포토존에 들어가기 전에 연락을 받아서 전부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왜?”

-언론 보도가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언론은 제 정신일 때가 이상한 거지.”

하델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언론을 신경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신경 쓸 것도 없지. 전미가 파이브식스란 이름으로 들썩이는데 막아서 뭐해? 살아나기만 하면 이보다 더 완벽한 프로모션은 없겠네. 그럼 다음 앨범은 Coma 56 정도가 좋겠군.’

하델이 희망을 담은 자조적인 농담을 떠올리는 순간, 수화기 너머로 자신을 부르는 경호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혹시 깨어났어?”

-그건 아니고, 방금 말씀드렸던 언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모르시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뭘 몰라?”

-현재 언론에서 파이브식스가 사고를 당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게 왜?”

-역시 모르셨군요. 사고를 당한 건 파이브식스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

-사고를 당한 건 파이브식스가 아니라 스탠다드입니다. 디제이 스탠다드 말입니다.

***

벨 포스 혹은 닉 조나스는 친구인 폴 와츠슨의 말을 믿고 LA 시내를 지나는 BMW 컨버터블의 주인이 상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차에는 상현이 타고 있지 않았다.

스탠다드가 타고 있었다.

폴 와츠슨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BMW 컨버터블이 상현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가 파사디나에서 상현을 봤을 때, 상현이 그들이 본 자동차와 같은 번호판을 가진 차에서 내렸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본 번호판이 폴 와츠슨의 핸드폰 번호 가운데 3자리와 똑같아서 단번에 기억했다는 것이 그에게는 불운이었다.

그는 상현과 스탠다드가 같은 종류의 차를 가지고 있으며, 둘이 같은 작업실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앨범을 만들었다는 것을 몰랐다.

설령 알았다고 해도, 자신의 차에 문제가 발생한 상현이 파사디나에서 볼 일을 보기 위해 스탠다드의 차를 빌렸었다는 것은 알 수 없었을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스탠다드를 위협해 사고를 일으켰지만, 그 사고가 상현에게 일어났다고 착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폴 왓츠슨의 자수를 받은 LAPD가 파이브식스의 레이블인 H&R INC에 전화를 했다.

경찰의 연락을 받은 H&R INC의 상호협력부는 병원 전 이송 기관에 연락해 이송 중인 환자의 상태를 확인함과 동시에 가까운 사립 병원으로 이송을 요청했다.

그 다음에 그들이 한 일이 하델 레인즈와 골든 뉴에라 팀에게 비보를 알리는 것이었다.

환자가 죽음에 이르고 있다는 비보를.

상현은 처음에는 자신이 테러를 당해 생사를 헤매는 중이며,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는 곧 정황을 통해 스탠다드에게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벨 포스라는 이름을 듣고는 그 사고가 원래는 자신을 노렸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스테이플스 센터에 거의 다 도착했던 골든 뉴에라 멤버들은 곧장 차를 돌려서 병원으로 향했다.

그들에게 스탠다드는 소중한 친구였다.

제이콜이나 켄드릭은 스탠다드와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지만, 스탠다드는 늘 그들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위한 화폭을 준비해주던 친구였다.

아무리 어려운 요구에도 인상 한 번 쓰지 않으며, 밤새 준비한 화폭이 선택받지 않아도 불만 한 번 보이지 않는 친구.

특히 상현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원래 스탠다드는 그가 회귀를 하던 순간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톱 프로듀서였다.

그러니까 본래는 지금으로부터 20년은 아주 건강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그 미래를 자신이 바꾼 셈이 되었다.

스탠다드에게 훨씬 빠르고, 훨씬 빛나는 영광을 건네주었지만, 어쩌면 그 빛이 더 빠르게 꺼질 수도 있게 된 것이었다.

‘제발. 제발.’

상현을 비롯한 골든 뉴에라 멤버들은 간절한 기도와 함께 병원으로 뛰어들었다.

수술은 진행 중이었다.

하델 레인즈가 병원에 도착했다.

그는 병원에 오는 중에 자세한 보고를 받았으며 어디서 오해가 발생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H&R INC의 상호협력부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환자의 상태는 확인했지만 그 환자가 파이브식스인 것은 확인하지 않았다.

사실 확인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었고, 폴 왓츠슨의 자수를 받은 LAPD에서 직접 ‘파이브식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연락을 했으니 말이다.

그 뒤로 현장에 도착한 스태프들은 환자가 파이브식스가 아니라 스탠다드라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들의 소속 뮤지션이 죽음의 위기에 놓인 것은 변하지 않았고, 상황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때문에 한참동안 그래미 축하 공연에 대한 문제들을 정리한 하델이 'How is he?'라고 물었을 때, 하델의 ‘He’가 스탠다드가 아니라 파이브식스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없었다.

이미 그 한 시간 여의 시간 동안 모든 이들의 머릿속이 스탠다드의 걱정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하델은 병원으로 들어가면서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스탠다드가 걱정 됐기 때문에?

물론, 맞았다. 그는 스탠다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그의 마음이 무겁게 만들었던 것은, 불과 십 몇 분에 전에 떠올렸던 자신의 생각이었다.

하델은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이가 파이브식스가 아니라 스탠다드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 파이브식스의 신변에 불안한 일이 생길 것만 같다는 느낌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된 것에서 오는 안도의 한숨일 것이었다.

하지만 만일 그게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파이브식스와 스탠다드가 가진 생명의 무게를 다르게 생각했다면?

하델은 그런 가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반드시 속죄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속죄는 상대가 온전한 이성이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델의 속죄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스탠다드가 아주 긴 시간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 Verse 44. The End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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