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4.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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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초, LA의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제 52회 그래미 어워드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2010년은 블랙 뮤직의 한해라고 불려도 좋을 만한 해였다.
타일러 스위프트와 킹 오브 레온(King Of Leon)을 제외하면,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수상이 유력한 후보들이 대부분 블랙 뮤직의 뮤지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4개의 본상에서도 수상이 유력한 대부분의 후보들은 블랙 뮤지션들이었다.
오랫동안 흑인 뮤지션들을 차별해왔던 보수적인 그래미 어워드의 광경이라고 보기에는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광경 속에서도 유독 이질적인 존재가 있었다.
블랙 뮤지션으로 분류되지만 검은 피부색을 갖지 않은 존재. 심지어 하얀 피부색도 아닌 존재.
바로 파이브식스였다.
2009년 초와 말을 휩쓸다시피 한 파이브식스는 <베스트 뉴 아티스트> 상은 이미 받은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전문가들은 그가 본상 2관왕, 혹은 3관왕까지도 노릴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었다.
때문에 이번 그래미에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지대한 관심도 쏠려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이디 가가의 공연으로 시작된 그래미 어워드를 시청하던 대중들은 의아함을 느껴야했다.
그래미 어워드가 시작된 지 벌써 30분이 지났건만 카메라에 파이브식스나 H&R INC 멤버들의 모습이 한 번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H&R INC 멤버들이 다음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서 객석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욘세와 핑크(Pink)의 공연이 끝나고 2009년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마이클 잭슨 추모공연이 시작되면서부터 대중들의 의아함은 점점 커졌다.
어셔를 비롯한 7명의 가수들이 함께 하기로 예정된 마이클 잭슨의 추모공연에는 에미넴과 파이브식스가 등장할 예정이었다.
이 둘은 마이클잭슨이 음악성으로 열어젖힌 ‘인종차별의 해소’라는 프레임에 부합하는 뮤지션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공연이 시작되자 화면에 나오는 것은 에미넴 밖에 없었다.
파이브식스는 없었다.
켄드릭 라마나 제이콜도 없었다.
그들은 수상자가 발표될 때도, 축하 공연 순서가 다가올 때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미 어워드가 끝날 때까지 말이다.
***
흔히 흑인들이 백인들을 싫어한다는 인식이 있다.
이건 때론 참이기도 하지만, 때론 거짓이기도 하다.
백인에게서 받는 인종 차별 때문에 백인이란 카테고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막상 개인과 개인으로 만나서 친분을 쌓는 흑인과 백인들도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명제에서 ‘백인’을 ‘백인 경찰’로 바꿔버리면 그건 대부분 참으로 귀결됐다.
흑인들, 특히 빈민가의 흑인들은 백인 경찰을 혐오하고 증오한다.
백인 경찰의 과잉 폭력 진압 때문에 일어난 흑인의 폭동과 시위는 상당하며, 수많은 힙합 뮤지션들의 가사 속에서도 경찰에 대한 뿌리 깊은 적개심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오죽하면 N.W.A를 스타로 만들어준 노래가 Fuck Tha Police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흑인들의 인식에서 생긴 놀이 아닌 놀이가 있으니, 바로 ‘Shooting a cop car’였다.
이 놀이는 문자 그대로 경찰차를 향해서 총을 쏘는 것이었다. 다만 놀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진짜 총이 아니라 ‘페인트건’을 발포하기 때문이었는데, 경찰들이 깜짝 놀라서 사고를 낼수록 영웅 취급을 받는 놀이었다.
90년대 초반부터는 이러한 ‘놀이’를 공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테러행위로 취급하며 대부분의 주에서 심각한 처벌을 받는 중범죄로 만들었음에도, 행위를 크게 억제하진 못했다.
여전히 유투브에는 경찰차를 향해 페인트볼 건을 쏘는 수많은 영상이 올라왔다.
영화 8Mile에서는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경찰차에 페인트볼 건을 쏘는 장면을 다뤘다가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었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복잡한 도심지가 아니라, 빈민가나 우범지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아주 큰 사고로 이어진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폭력성은 늘 그렇듯 더 큰 폭력성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디트로이트에서는 페인트볼 건 대신 공기총을 쏘는 경우도 있었고, 시카고에서는 실제 총인 척 시민들을 위협하며 장난을 치는 이들이 생겨났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야, 저거 파이브식스 차 아니야?”
“뭐?”
LA 토박이인 닉 조나스가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도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도로 위에는 광고로 유명해진 파이브식스의 BMW 컨버터블이 신호 앞에 정차해 있었다.
“맞네. 원숭이 새끼 차. 그래미 어워드로 가나본데?”
친구의 말에 닉 조나스가 되물었다.
“맞아? LA에 저 차종이 저거 하나 밖에 없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야, 맞아. 내가 파사디나에서 봤을 때도 저 번호였어.”
“씨발. 확실하단 말이지?”
“맞다니까.”
“가자.”
닉 조나스는 친구를 재촉해서 자신의 차로 올라탔다.
그 사이 파이브식스의 차는 출발한 상태였지만, 스테이플스 센터로 가는 것이 맞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뭘 어쩌게?”
“총 있지?”
“미쳤어? 감옥가고 싶어?”
닉 조나스의 친구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남에 인생 망쳤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미친 짓 그만하고 차 세워!”
“씨발, 누가 진짜 총을 쏜데? 그냥 겁만 줄 거야. 페인트 건 있지?”
“아…… 깜짝이야. 이 새끼가 진짜 미친 줄 알았네.”
“어딨어? 페인트 건?”
“뒷좌석에.”
“가져와봐.”
그 순간 저 멀리서 파이브식스의 컨버터블이 보였다.
“누구는 씨발, 인생이 망했는데 저 새끼는 속 편하게 그래미 어워드로 가고 있어? 야, 경호 차량 같은 거 없지?”
조나스의 물음에 친구가 앞뒤를 살폈다.
그러나 딱히 경호원들이 타고 있는 차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파이브식스의 차를 발견하고 맞은편 차선에서 오는 차들이 빵빵 거리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없긴 한데…… 어휴, 씨발. 모르겠다.”
“신호 멈추면 운전대 좀 잡아봐. 여기로 쭉 가면 블루몬트 로드(Blumont.Rd)니까. 차도 별로 없어.”
닉 조나스는 조수석으로 이동해서 페인트볼을 채워 넣었다.
그 사이 BMW 컨버터블과 닉 조나스의 차는 도심지를 빠져나와서 로스앤젤레스 강과 인접한 롱비치 프리웨이를 따라 달렸다.
상현은 닉 조나스를 몰랐다. 그러나 닉 조나스는 진심으로 자신의 인생이 파이브식스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스테이지 네임이 ‘벨 포스’였기 때문이었다.
“저 새끼 달리는데?”
“추월해봐. 빨리.”
“야, 지금 속도가 너무 빨라.”
“씨발, 빨리 가보라고!”
마침내 닉 조나스의 차가 파이브식스의 차를 추월했고, 닉 조나스가 창문을 내리며 페인트볼 건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해를 등지고 있기 때문인지 파이브식스는 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빵빵!
닉 조나스가 왼손으로 클락션을 울렸다.
‘씨발 새끼. 잔뜩 겁먹었겠지?’
파이브식스의 표정을 보고 싶었는데, 사선으로 서있기 때문에 자동차의 전면 프레임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탕탕!
실제 총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도록 개조된 페이트볼 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불을 뿜었다.
-끼이이이익!
파이브식스는 깜짝 놀랐는지 브레이크를 밟으며 자신과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다.
여기까지는 수많은 장난 중 한 번이었다.
적극적으로 위협하긴 했지만, 아마 지금쯤 파이브식스도 실제 총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닉 조나스는 자신의 위협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고, 평소의 장난과 다르게 두 대의 자동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파이브식스가 미국 출신이 아니라서 이런 일을 겪어보지 못했을 거란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미친 새끼야!”
친구의 고함과 동시에 파이브식스의 차가 중앙선을 완전히 침범해서 균형을 잃었다.
“씨, 씨발!”
맞은 편 차선에서는 트럭 한 대가 세차게 달려오고 있었다.
닉 조나스는 2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겁을 먹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도망칠 궁리를 했다.
그 사이 트럭의 클락션이 ‘빠아아앙!’하는 소리를 냈고, 파이브식스의 차가 ‘끼이이이익’하는 소리를 내며 미끄러졌다.
그리고,
-콰아아앙!
트럭이 BMW 컨버터블의 옆구리를 들이 받았다.
***
H&R INC의 수장인 하델 레인즈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걸 참으며 그래미 어워드의 시상식장을 지켰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호흡이 가빠왔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대리 수상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에미넴에게 원래 상현이 맡기로 한 마이클 잭슨 추모공연 파트를 부탁하고는 자리에 앉아서 평온을 가장했다.
그가 처음 밴드 블루 치어의 매니저인 삼촌을 따라 음악계로 뛰어들었을 때,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속 뮤지션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마. 특히 그 뮤지션이 슈퍼스타일 경우 더욱 반응하지 말고. 스타의 일생은 롤러코스터와 같아서, 안전 바가 없으면 그들은 결국 추락하고 말아. 그래서 절대 흔들리지 않는 안전 바가 필요한 거고.’
어쩌면 하델 레인즈가 뮤지션들을 고려하지 않는 냉철한 프로모션을 시작했던 이유는 이 말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 또 다른 두 명의 말이 떠올랐다.
한 명은 엊그제 파티 장에서 만났던 제이지였고, 나머지 한 명은…….
“하델. 무슨 일 있어요? 상현은 왜 안 왔어요? 켄드릭이랑 제이콜은 또 왜?”
그 순간, 멜로디가 다가와서 하델에게 물었다. 멜로디의 옆에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히메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카메라가 꺼지고, 광고가 나가는 시간이었다.
골든 뉴에라 멤버들의 소식을 물어보는 것은 멜로디와 히메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들을 시작으로 케이알에스원, 에미넴, 제이지, 엘에이 리드, 사이먼 코웰 등이 다가왔다.
수상이 유력시됐으며, 전미의 관심을 받았고, 축하 공연까지 예정된 뮤지션이 불참한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현 혼자 불참한 것이 아니라 H&R INC 멤버들 전원이 불참하기도 했다.
하델은 그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며 얼마 전 파티 장에서 나눴던 제이지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슬럼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보통 슬럼프면 괴롭고, 답답하고 그러지 않나요? 전 그렇지가 않아서.’
‘그런 경우가 없진 않지.’
‘어떤 경우죠?’
‘음악을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은 경우.’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음악을 그만두면 뭐로 먹고 살겠어요?’
그때 하델이 제이지와 상현의 대화 사이로 끼어들었다.
‘적끼리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는 거야?’
그 뒤로 대화 주제가 바뀌어서, 하델과 제이지는 옛 추억을 더듬었다.
상현은 그 사이 자리를 떠났고, 하델은 제이지와 데쓰 로 레코드나 노토리어스 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델. 파이브식스와 나눈 이야기 듣고 있었죠? 슬럼프에 대한.’
‘듣고 있었지.’
‘파이브식스는 아니라고 했지만 슬럼프가 왔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경우는 하나가 더 있죠.’
‘어떤……?’
‘무의식적인 거죠. 내가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상황.’
제이지는 비기와 만났던 마지막 순간을 기억했다.
그때 비기는 그의 2집 앨범인 의 발매를 며칠 앞두고 있었다.
‘비기는 그때 저에게 이렇게 말했죠. 이상하게 요즘은 가사가 나오지 않아. 내가 더 이상 1집이나 2집 앨범처럼 죽이는 랩을 할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아. 근데 더 이상한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야.’
그리고 비기는 며칠 뒤, 투팍의 고향인 캘리포니아 주의 LA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검은색 쉐보레와 나란히 정차하는 순간, 쉐보레의 운전자가 권총을 꺼내서 비기를 무차별적으로 사격한 것이었다.
‘가끔 사람들이 비기의 앨범 명이 그의 사후에 정해졌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와 는 너무 의미심장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죠.’
‘이 말을 해주는 이유가 뭔가?’
‘요즘 파이브식스를 보면 마치 모든 걸 토해내는 사람 같으니까요. 그에게 그래미 어워드 이후의 비젼을 제시해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더군요.’
하델 레인즈는 그래미 어워드가 끝나고 스테이플스 센터를 빠져나오다가 한 무리의 취재진과 맞이했다.
그들은 파이브식스와 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온 취재진들 같았다.
“파이브식스가 그래미 어워드에 불참한 이유가 뭐죠? 혹시 작년에 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표시인가요?”
하델은 기자의 질문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랬을 거면 그래미 축하 공연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을 리도 없었고, 마이클 잭슨의 추모 공연 제의도 거절했을 것이었다.
하델은 기자들을 무시하고 지나가려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실시간입니까?”
“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한국에 실시간으로 방송되느냔 말입니다.”
“실시간은 아니지만 10분 안으로 한국에 전해집니다. 촌각을 다투는 중요한 기사라면 한국에서는 곧장 기사화 되겠죠.”
하델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상현에게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마치 본 것과 같은 888 크루를 떠올렸다.
그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하델 레인즈는 한국의 언론사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전후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나머지 한 명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영원한 록스타가 남긴 말을.
‘부디 기억해주길 바란다. 천천히 소멸되는 것보다는 한순간에 타오르는 것이 낫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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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se 44. The End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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