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4.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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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의 첫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는 2009년 동안만 32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2009년 전 세계 앨범 판매량 중 총 7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지만, 4위, 5위는 올해 죽음을 맞이한 마이클 잭슨의 스페셜 앨범이었다.
그러니 실제 상현의 위에 있는 사람들은 4명뿐이었다.
물론 네 명이라는 숫자도 많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었다.
상현의 앨범이 전미를 들썩이게 했으며, 대부분의 화제를 휩쓸다시피 한, 경쟁 뮤지션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앨범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Touch The Sky의 발매일이었다.
상현의 앨범은 9월의 마지막 날에 나왔다. 그러니 320만장이라는 엄청난 수치는 불과 3달 만에 쌓여진 결과였다.
2010년 1월 말인 현재를 기준으로 잡자면 앨범 판매량은 더욱 늘어나서 콰드루플 플래티넘(400만장)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제이콜의 은 현재까지 13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해 플래티넘의 고지를 달성했으며, 켄드릭의 앨범은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저력을 발휘해 16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 중에 있었다.
세 뮤지션의 경쟁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언론들은 흔히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앨범 판매량으로는 파이브식스.
-싱글 판매량으로는 제이콜.
-랩 매니아들의 지지로는 켄드릭 라마.
언론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미 상현의 판정승이 결정 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우선 제이콜과 비교를 해보면, 앨범 판매량은 상현이 엄청나게 앞서지만 싱글 판매량은 둘의 차이가 고작 5만장 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 외부에는 제이콜이 싱글로만 따지면 상현을 엄청난 격차로 제친 것처럼 알려져있었다.
이것은 핫 100의 순위 때문이었다. 제이콜이 클럽튠인 ‘Work Out’과 ‘New York's Crown’으로 핫 100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따져보면 상현의 싱글들이 가면 갈수록 힘을 발휘하며 격차를 계속 좁히는 상황이었다.
연일 호평을 받고 있는 ‘I Swear’가 그랬고, 그래미 어워드의 R&B 필드에 노미네이트된 ‘Lonely Road Part2’가 그랬다. 에미넴과 함께한 Gold Digger 역시 높은 판매량을 기록 중이었고.
그러니 현재 제이콜과 상현의 싱글 판매량은 아주 미세한 차이일 뿐이었고, 곡의 성격상 시간이 더 흐르면 판매량이 역전될 가능성도 있었다.
켄드릭과의 비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랩 매니아들의 지지라는 애매한 지표는 언론들이 켄드릭의 특징을 부각시키기 위해 내세운 것이었고, 상현의 앨범에 보내는 랩 매니아들의 지지 역시 전혀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정적으로 상현에게는 엄청난 의미를 가진 기록이 있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4주 연속 1위라는, 2000년 이후로 가장 오랫동안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수성한 랩 뮤지션이 바로 그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상현의 우세가 점쳐졌다.
‘몇 관왕’을 할 것인지가 문제이지 수상 여부 자체는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안 받을 수가 없는 거 아니냐?
-근데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2002년의 에미넴이 생각나지 않냐? 그때도 다들 에미넴의 본상 수상이 이미 결정 난 것처럼 굴었잖아. 근데 아니었지.
-근데 에미넴은 논란이 많았었잖아. 자극성이 높은 가사와 유명인 디스 마케팅 같은. 그래미가 보수적인 단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에미넴은 좀 어려워 보이긴 했지.
-그리고 2002년에는 아직 본상 수상 래퍼가 없었을 때야. 아웃 캐스트는 2003년에 수상을 했다고.
-그리고 작년 그래미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랩 뮤직의 위상이 많이 상승했어. 그래미 꼰대들도 드디어 시대의 흐름을 인정한 것처럼 보였고. 100% 파이브식스의 수상이 유력하지.
-비욘세나 타일러 스위프트가 판매량은 훨씬 높지 않나?
-비욘세와는 거의 비슷하고 타일러한테는 좀 밀리지. 근데 발매일이 차이가 크니까, 뭐.
-그리고 음악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이나, 랩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한계를 깨트렸다는 점에서 파이브식스는 독보적이지.
-아무리 그래도 난 그래미 꼰대들 안 믿어. 솔직히 MJ는 지금보다 2배는 상을 받았어야해. 그가 흑인이란 이유 때문에 놓친 상이 도대체 몇 개야?
-확실히 잭슨은 시대를 너무 앞선 인물이었지. 그가 5년만 늦게 등장했으면 더 많은 그래미상을 받았을 거야.
-글쎄. 난 잭슨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흑인 뮤지션들은 차별을 받고 있을 것 같은데. 뭐, 파이브식스 같은 아시아 인종들도 마찬가지고.
-파이브식스의 이번 수상은 MJ가 미국 대중음악사에 닦아놓은 길과, 에미넴이 랩씬에 닦아놓은 길의 증명이 될 거야.
-근데 벨 포스 같은 놈이 디스나 하고 말이야.
-벨 포스가 누구야?
-그, 왜 BET 힙합 어워드에서 파이브식스가 조롱했던 LA 뮤지션 있잖아.
-아아. 그 병신?
-응, 그 병신.
-영원히 고통 받는 벨 포스.
대중들이나, H&R INC 뮤지션들에게 기대가 가득 찬 날들이 이어졌다.
매년 그렇듯 올해의 그래미도 LA의 스테이플스 센터(Staples Center)에서 열리기 때문에, LA에 도착한 골든 뉴에라 멤버들은 친구들과 회포를 풀고 편한 마음으로 그래미의 축하 공연을 준비했다.
그래미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미 비행기 안에서 선곡과 무대 형식을 결정했기 때문에 급하진 않았다.
그렇게 1월이 가고, 그래미가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어느 날, 파티가 벌어졌다.
큰 파티는 아니었고, 그동안 MTB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달려온 뮤지션들을 위한 H&R INC의 작은 파티였다.
-시작은 소소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여러 벤처 기업들이 주구장창 외쳐서 이제는 식상한 문구.
그게 이번 H&R INC의 파티의 모습을 정확히 나타내는 문구가 되어버렸다.
하델이 별 생각 없이 소속 뮤지션들의 앨범에 참여한 이들에게 ‘관행처럼’ 초대장을 보낸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어……!”
“왜 그래? 어?!”
상현을 통해 파티에 초대받은 웨스트런과 멜이 파티장 밖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지금 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의 얼굴에 현실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이콜의 앨범에는 나스와 제이지가 참여했고, 켄드릭의 앨범에는 닥터 드레, 스눕독, 더 게임이 참여했다.
상현의 앨범에는 히메와 멜로디부터 에미넴과 케이알에스원이 참여했었다.
상식적으로 이러한 이들이 작은 파티의 초대장을 받고 응할 리가 없었다. 이들은 한 번의 무대, 한 곡에 엄청난 돈을 받는 뮤지션들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초대장을 받은 뮤지션들 중 상당수가 LA로 날아왔다.
어차피 이틀 뒤에 LA에서 그래미가 열리기 때문에 겸사겸사 왔다는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그들은 궁금한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식으로 음악을 하면 한 회사에서 나온 앨범이 모두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되는 지 말이다.
그렇게 당장이라도 관객 5만 명 정도는 너끈히 동원할 수 있는 라인업이 완성되었고, 시끌벅적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적진에 막 들어오셔도 됩니까?”
“적진은 무슨 적진이야. 하델은 어딨어?”
“적군이 아니라 산업 스파이셨군요.”
상현이 제이지에게 농담을 건넸고, 제이지가 웃음을 터트렸다.
현재 그래미 본상 수상이 가장 유력한 두 뮤지션이 제이지의 아내인 비욘세와 상현이었다.
또한 제이지는 H&R INC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는 블랙 뮤직 레이블 ‘록 네이션(ROC NATION)’의 사장이기도 했다.
“수상 소감은 준비했고?”
“요즘 가사보다 더 많이 쓰는 게 그건 걸요.”
“Touch The Sky를 만들 때, 혹시 그래미를 받고 싶단 생각을 했나?”
상현은 제이지의 질문에 스탠다드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하자.’
‘뭘?’
‘빌보드 앨범차트 1위. 빌보드 싱글차트 1위. 앨범 판매량 1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까지.’
‘그 정도는 해야지 하늘에 닿을 수 있다?’
상현이 굳이 그래미를 노렸던 건 아니었다.
그냥 증명을 하고, 증거를 얻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부지런히 달리다보니 눈앞에 남은 증거가 그래미인 것뿐이었다.
‘뭐, 싱글차트 1위도 못하긴 했지만.’
그때 제이지가 물었다.
“그래서, 그래미를 받고 나면 뭘 하려고?”
“글쎄요. 아직 받은 것도 아니니까요.”
“슬럼프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던데?”
“와, 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갔어요?”
“가장 뜨거운 뮤지션이니까. 소문의 속도는 언제나 인기에 비례하지.”
“슬럼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보통 슬럼프면 괴롭고, 답답하고 그러지 않나요? 전 그렇지가 않아서.”
“그런 경우가 없진 않지.”
“어떤 경우죠?”
“음악을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은 경우.”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음악을 그만두면 뭐로 먹고 살겠어요?”
상현이 씩 웃는 순간, 뒤에서 하델이 말을 걸었다.
“적끼리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는 거야?”
“아, 하델. 여기 산업 스파이 있어요. 신고해요.”
하델이 피식 웃으면서 제이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데쓰 로 레코드와 활동 반경이나 활동 지역이 겹쳤던 하델은 투팍이나 비기를 만난 적은 있었지만, 제이지는 처음이었다. 제이지가 막 활동을 시작하고 메인스트림으로 올라가려는 즈음에 하델이 음악계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또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 아니었다.
“아, 그럼 그때 레코딩 부스에 있던 래퍼가……?”
“그때가 아마 제가 비기와 프리모를 처음 만났을 때일 겁니다. 브루클린에서 마약을 팔다가 불려왔죠.”
“그때의 비기는 정말 엄청났지. Juicy가 프리스타일이었다는 소문이 돌 때는 마케팅을 위한 거짓말이라고 확신했으니까.”
그렇게 하델과 제이지가 옛날의 추억에 젖어드는 사이에도 파티는 계속 되었다.
에미넴과 나스를 제외하면 상현과 제이콜, 켄드릭 라마의 앨범에 참여한 모든 뮤지션들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파티장은 음악 이야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독차지 하는 뮤지션이 있었으니, 바로 멜로디였다.
멜로디는 제이콜이 초대한 몇 명의 보컬을 제외하면 오늘 파티의 유일한 보컬이기도 했고, 그 포텐셜이 어마어마하다는 평가를 받는 보컬이기도 했다.
특히 상현과 함께한 Lonely Road Part 2에서 청순함과 요염함을 동시에 공존시킨 묘한 창법은 많은 랩 뮤지션들의 영감을 자극했었다.
“상현.”
“응?”
“나가자.”
“왜? 너도 대마초 펴?”
“무슨 소리야. 더워서 그래.”
한참 스쿨보이 큐와 다트를 던지고 있던 상현은 뮤지션들의 러브콜에서 도망치려는 멜로디와 함께 파티장 밖으로 나왔다.
파티장이라고 해봐야 호델 같은 곳이 아니라, LA의 한적한 교외에 있는 하델의 별장이기 때문에 잠깐만 걸으면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안에는 더웠는데 밖으로 나오니까 춥네.”
“겨울이니까.”
“한국은 여기보다 더 춥지?”
“음…… 비슷할 걸? 조금 더 추운 것 같긴 한데.”
“그래미 어워드가 끝나면 이제 뭐할 거야?”
“요즘 나한테 왜 이렇게 그래미 어워드가 끝나면 뭐할 건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지?”
상현의 반문에 멜로디가 답했다.
“같이 있고 싶으니까.”
“응?”
“같이 있고 싶다고. 너랑. 지금 고백하는 거야.”
“어…….”
너무나 태연한 멜로디의 표정에 상현이 잠시 당황한 사이 멜로디가 재차 말했다.
“그냥 말한 거야. 말은 해야 할 거 같아서.”
상현은 문득 쇼케이스를 할 때 멜로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너 게이 아니야. 게이면 안 되고.’
‘응? 왜?’
‘음……. 한인 타운에 줄 서 있는 네 여성 팬들이 슬퍼할 테니까?’
“그래서 대답…… 역시 No야?”
“뭐 이렇게 급해. 생각 좀 하자.”
“아닌 걸 아니까 이렇게 물어보지.”
“……미안.”
“한국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거지?”
상현은 멜로디의 질문에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상현은 바보도 아니고, 애도 아니고, 눈치가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러했다.
‘아니, 이미 눈치가 없는 건가. 미국으로 오기 얼마 전에 알아차렸으니까.’
그동안 너무 바빴고,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미국행이 결정된 상태여서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트로피를 보여줄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확신을 준 거야?”
“미안해.”
“미안하면 내 앨범에 피쳐링이나 해줘. 공짜로.”
“그건 하델과 상의를 한 다음에…….”
“와, 너무하네. 시련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려는 가련하고 인기 없는 뮤지션한테.”
“인기가 없다고? 오늘만 벌써 열 번 이상 피쳐링 제안을 받으신 분께서?”
상현의 말에 멜로디가 피식 웃었다.
그녀가 혼자서 상현을 좋아했던 건 틀림없지만 오늘의 고백은 일종의 끝맺음이었다. 마음을 완전히 정리하는데 필요한 증거 같은 것이었다.
상현의 마음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으니까.
“들어가자. 춥다.”
“그래.”
“아, 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티를 좀 내. 어디서 반지라도 하나 사서 끼고 다니던가.”
“한인 타운에 줄 서 있는 여성팬들을 위해서 안 돼.”
멜로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딱 보니 상현은 어차피 이런 일이 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남의 연애사에 끼어드는 게 좀 뭐해서 말하진 않았지만, 히메의 마음고생이 그려지는 듯했다.
-짝!
멜로디가 상현의 등짝을 때렸다.
“악! 뭐야!”
“벌이야.”
“아프잖아! 근데 왜 익숙하지……?”
“뭐라는 거야?”
상현은 등짝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아픔에서 왠지 모를 익숙한, 어머니의 된장국 맛이 난다고 생각하며 파티장으로 들어갔다.
둘이 사라졌음에도 파티는 계속 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켄드릭이 프리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웨스트런과 스쿨보이 큐가 서로를 향해 다트를 던지고 있었다.
하델은 그 모습을 보며 이 파티가 이틀 뒤의 스테이플스 센터까지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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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se 44. The End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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